- 셋째, 490년대 백제가 제나라를 도와 북위의 기병을 대파했다는 기록이《남제서》<백제전>에 전해진다. 이 기록에 따르면 백제가 북위의 기병 수십만을 상륙작전을 통해 격파한 뒤 대륙 동해안의 광양, 성도 등 7개군을 지배했다고 한다.
- 하지만 지도에 보면 성도가 아니라 성양태수라고 적혀 있습니다.
2. 80~81p - 고구려 부흥전쟁과 유민의 이동(668~698)
- 당은 신라를 견제하고, 고구려 부흥을 막기 위해 요동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남아있는 고구려인들을 통치했다. 하지만 안동도호부는 677년 고구려인의 저항에 의해 신성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 하지만 지도에 보면 안동도호부의 이동은 요동→신성이 아니라 평양→신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3. 84~85p - 후신라의 정치 변동(676~8세기)
- 그리고 693년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된 중앙군인 9서당 가운데 6개의 서당을 옛 고구려인과 백제인, 말갈인, 보덕인 등으로 구성하여 이들을 신라인으로 적극 동화시켰다.
- 지도에 보면 9서당 설치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는데 이것을 설치된 연대별로 나열한 것인지, 구성하고 있는 인원들을 중심으로 나열한 것인지 쉽게 구분이 되질 않습니다. 차라리 녹금, 자금, 비금서당을 맨위에 배치하거나, 따로 칸을 그어 구분했으면 어떨까 합니다.
4. 86~87p - 발해의 팽창과 대 신라 관계(8세기~9세기)
- 당시 신라와 발해의 상인들은 바다와 국경을 넘나들며 교역을 하였다. 신라는 750년대에 발해와의 국경에 탄항관문을 두었고,
- 하지만 지도에는 ‘단항관문 설치(750)‘ 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5. 104p - 삼국시대의 고분벽화(3세기~7세기)
- 평양 지역의 고분 분포도에서 31, 32, 37, 38, 39, 40, 41, 42, 43, 안악, 60, 61, 62, 63, 65, 66번이 표기되어 있는 둥그런 부분이 다른 곳에 비해 진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유독 진하게 해서 강조한 듯 하지만 그보다는 인쇄할 때 잘못된 듯 합니다.
6. 124~125p - 발해의 멸망과 유민의 동향(926~12세기)
- 올야국도 약 1만호 정도로 커지며 거란족을 압박하였지만 996년에 멸망했고,
- 하지만 지도에는 다른 부흥운동은 다 표기되었건만 올야국은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쇄상 안 나온 것이라면 몰라도 글에는 나와있는데 지도에는 없다면 이것은 이 책의 발간 의도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7. 132~133p - 왕건과 호족(943~997)
- 지도에 왕건의 왕비 배출지와 12목에 대해서 표기했는데 이는 어떤 연관성이 있다거나,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적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황주, 충주, 나주, 승주 등이 겹쳐있기에 그렇게 추측했는데 글에는 이를 암시할만한 아무런 기록도 없어서 왜 이런 지도를 그렸을지 의문이 듭니다.
8. 135~136p - 윤관과 9성(1107~1125)
- 지도상에 있는 작은 칸에서 약간 어긋남이 있었습니다.
기병 :신기군
보병 : 신보군
승병 : 항마군
신기군을 표기하는데 있어서 띄어쓰기가 안 되어있어 언밸런스를 이룹니다.
- 아울러 윤관이 개척한 동북 9성의 위치도 각 지도마다 표기를 해 주셨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9. 172~173p - 고려의 불교문화(918~1392)
- 지도에 보면 오교가 표시되어 있는데 개경 귀신사(화엄종-균여), 김제 금산사(법상종), 동경 분황사(법상종), 양산 통도사(계율종) 이렇게 4개밖에 없습니다. 제가 오교의 뜻을 몰라서 이런 부분을 짚어냈을지는 몰라도 언뜻보면 이해가 안 갑니다.
10. 200~201p - 4대 사화(1498~1545)
- 게다가 상대적인 참신함을 바탕으로 기존세력을 비판함으로써 왕의 신임을 이끌어 내는부산데 성공했다.
- 띄어쓰기도 틀린 듯 하고, 밑에 부산이라고 하는 작은 글자가 겹쳐서 인쇄됐습니다.
11. 230~231p - 사회시설과 종교(15세기)
- 하지만 세조 10년 이후 주자학자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해마다 치러지던 제천행사는 대한제국 성립 후 중단되고 말았다. 참성단과 원구단, 그리고 환인․환웅․단군을 모시는 삼성사의 설치는 민족의 주체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 분명 216~217p, 유학과 예제건축 편에서는 “하늘에 대한 제사는 천자만이 지낸다는 유교적 명분론에 의해 세조 10년(1464)을 끝으로 오랫동안 제사가 끊겼다가 1897년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부활되기도 했다.” 라고 적혀 있어 윗 내용과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한제국 성립 전까지라든가, 다른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합니다.
12. 240~241p - 전쟁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16세기~17세기)
- 오른쪽 밑에서 8번째 줄부터 4번째 줄까지 둥그런 부분이 잉크가 덜 찍힌 듯 다른 부분에 비해 흐리게 나왔습니다.
13. 290~291p - 이필제의 반정부 봉기(19세기 중반)
- 영해 봉기에서 성공한 이필제는 다시 조령에서 봉기하려 하였으나 거사 직전 체포되어 서울 서소문 밖에서 처형당했다.
- 하지만 지도에는 네장의 지도 마지막에 조령 봉기라고 적혀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진천 봉기(1871.3. ~1871.8.)라고 적혀 있습니다.
14. 308~309p - 대한제국의 성립(1897~1910)
- 지도에 울릉도가 표시되어 있는데 일본 본토, 대마도와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러․일 전쟁 시기 일본이 독도를 무력으로 강탈한 사실을 나타냈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독도의 영토 문제에 대해 혼란만 가중시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표기가 뒤에도 여러번 보이고 있어 수정했으면 합니다.
첫댓글 예전에 군대에서 이 책을 봤을때...김용만 선생님이 초판본의 오타를 좀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셨고, 그때 책을 읽고 찾았던 오타들이다. 오랜만에 자료 정리를 싹 끝내고 나서 예전 자료들을 뒤지다가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