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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의 시
송재욱(시인)
1
연변의 젊은 시인 석화의 시를 읽는 다는 것은 무엇인가? 석화를 읽는다기보다 연변의 시인을 읽는다는 것이 더 합당할지도 모른다. 시인을 통하여 우리는 먼저 역사의 여러 굴곡을 연변의 밑그림으로 채택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사에서 근대사까지 그곳은 경이와 질곡의 무대였다. 심지어 석화에게도 《천년 전에 멎은/ 노래 한가락이/ 커다란 휴지부로/ 여기에 서 있다/ 그때 다 못 부른 노래/ 온몸에 피어나/ 마주선 이의 가슴에서/ 새 선율을 찾는다》(《노래》 전문)처럼 만주벌판은 감동적인 무게를 지닌다. 또한 연변은 일종의 대리 체험 장소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연변과 북한을 동일시하는 감정상의 전이를 나는 보았다. 그 전이의 이유에는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갈 수 없는 곳 연변과, 갈 수 없는 땅 북한이 연결되어 있었던 탓이 아닌가. 문학판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연변문학이 북한의 문학적 관심에 종속되어 왔음을 지적하는 글들이 많다. 지도를 꺼내어 연변자치주와 한반도를 살펴보면 그러한 감정 이행이 얼마나 손쉬웠는지 알 수 있다. 여러 곳의 두만강 기행문들은 그 강폭이 무척 좁고 대안이 손으로 뻗으면 닿을 듯하여 북쪽 아이와 중국쪽 조선족 아이들이 서로 몸 비비며 같이 자맥질을 즐기는 것을 알려준다. 연변을 여행한다는 것은 윤동주 생가와 백두산, 두만강의 도문을 한 꼭지로 연결시킴에 다름 아니다. 대성중학교의 윤동주란 백두산, 도문 이후 꼭 들러야 되는 장소이다. 대성중학교에 있는 윤동주 기념관에서는 관광객의 성금을 받는다. 우리 돈으로 일만 원에서 이만 원 정도를 내는데 그 사용처가 수상쩍기도 하지만 윤동주, 아 그 《서시》의 윤동주 기념관을 지나면 그 돈을 내지 않을 수 없게 마음은 이미 애국심으로 고양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곳은 우리 고대사와 근대사의 감상의 중심에 놓여 있는 셈이다. 택시를 타거나 술집에 가도 말이 통하고 한화가 그대로 유통되는 곳에서 여행객은 시간을 거슬러서 어느 한적한 지방에 돌아다니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모아산과 용정과 대성중학교와 두만강변 농촌의 조는 듯 한 풍경, 석화의 시는 그 거슬러간 시간의 어느 한 쪽에서 시작한다.
우리 일행이 묵은 연길작가초대소 건너편에 《원채호동》이란 작은 골목이 있었다. 새벽부터 원채호동은 시끌벅적해진다. 9시 출근 전까지 채소류를 사고파는 번개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도로에는 중앙선 개념이 제대로 없지만 영업용 택시가 3천 대 가량 되는, 이제 바야흐로 시장경제가 도입되고 아파트가 곳곳에서 우뚝우뚝 솟기 시작하는 연길에도 도시화가 가파르고 재빨리 진행되는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한국 어느 건설회사의 《행복예감》이라는 광고카피가 눈에 띈다. 눈을 비비면서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비산비야(非山非野), 만주의 여명을 물끄러미 보다가 부산민족문학인협의회와 연변작가협회가 공동으로 출간한 《두만강 여울소리》란 교류문집을 읽는다. 소설에는 이러한 연길의 변화가 이미 문학화 되어 수용되어 있다. 그러나 그 교류문집에서 시는 아직 연길의 경제골목에 들어가질 않았다.
2
1991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두만강 여울소리》는 연변 《오월시회》의 사화집이다. 조선족 젊은 시인들로 이루어진 이 시집에서 그들의 체험이 농경 사회적인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아직 해체되지 않는 농경 사회의 질서 위에서 그들의 시가 박혜경이 말한 그대로 《행복한 원체험의 공간》과 원체험에서의 원근을 낳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또 한 가지 그들의 시가 서로 비슷한 것은 80년대 초까지 시행된 창작지침의 영향이다. 창작지침이란 문예에 대한 당의 공식입장이고 시인과 작가들은 그 지침을 준수해서 작품을 창작 발표해야만 했다. 우리 일행과 비공식적으로 만난 연변의 시인들이 그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석화에게도 이 점은 예외가 아니다.
내 또한 너에게서 온
그 모든 것들 중의 하나이니
내 손발의 모든 움직임도
너에게로 돌아가는 연습이다. 흙아
오호, 모든 것의 고향인 흙아
―《흙아》 중에서
그 원체험의 농경문화는 이처럼 흙으로 표징 되는 일원적 세계이다. 석화를 비롯하여 연변의 시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그리움의 대상은 바로 그러한 고향이다. 그것은 단단한 명사의 세계이다. 《그러나 나는 돌이 아니외다/ 풀이나 귀뚜라미나 바람일지는 몰라도/ 진정 돌만은 아니외다.》(《나는 돌이 아니외다》)라는 선언은 그 속에서의 정체성 확인이다. 돌이 일원성의 경직을 상징하는 이미지라면 풀이나 귀뚜라미, 바람의 이미지는 그 세계의 변화를 바라는 서정적 자아의 자각일 것이다. 그 세계를 떠받치는 버팀목은 사회주의라는 강력한 정치체제에서 탄생된 공동체적 집단생활이다.
물이고 싶다
물이어서 흐르고 싶다
낮은 데로 낮은 데로만
흐르는 물이고 싶다
―《염원》 중에서
이와 같은 발상의 밑에는 그러한 일원적 세계관이 강하게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야기된 괴로움은 어떤 것일까.
네온들 밝은 거리 거닐어도
산촌의 돌다리가 그립다네
지난 밤 꿈결에도 나는 보았네
어머니 서 계시는 돌다리를
―《돌다리 》 중에서
이처럼 그곳을 떠나올 때 괴로움은 내재하는 것이다. 그 괴로움은 쉽게 말하면, 나는 지금 고향에서 먼 곳으로 왔다. 그곳으로 금방 돌아가기는 힘들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향수이다. 농경문화에는 훼손되기 힘든 공동체적 삶의 질서가 있다. 그곳을 뿌리로 둔 사람들의 괴로움은 그 질서로부터 멀어질 때 두드러지는 법이다. 당연하게 괴로움은 멀어짐이나 돌아가기 힘듦의 등식을 만든다. 1983년 미국서 출간된 《재중조선민족시선집》이란 사화집에서 가장 두드러진 정서는 향수이다. 그러나 석화에게 이러한 일원적 세계의 어긋남만이 있지 않다. 그것이 석화와 다른 연변 시인과의 변별성이다.
간다고 너는 떠나갔지만
골목길 굽이돌아 떠나갔지만
눈감으니 너는 다시 내 앞으로
머릿발 날리며 달려오누나
간다고 너는 떠나갔지만
뒤돌아도 아니 보고 떠나갔지만
네가 섰던 길목에 가로수 밑에
햇살이 조각한 눈부신 네가
언제나 서 있는 줄 너는 모르리
―《간다고 너는…》 전문
그 일원적 세계내의 불화에 대한 진술인 이 시는 단순하게 읽히지 않는다. 산문으로 풀어서 이 시의 행간을 따라가 보자.
1. 너는 떠났다.
2. 눈감으면 너는 내 앞에 되돌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3. 너는 떠났지만 햇살로 조각한 너는 남아 있다.
너는 어떤 이유에선지 이 세계를 떠난다. 그 행위에는 단조롭고 평화로운 이 세계에 대한 강한 불만이 내재되어 있다. 나는 너를 말리는데 내 생각에는 네가 가고자 하는 세계가 놀라운 줄 알지만 이 세계와 무엇이 크게 다르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는데, 한사코 너는 떠나버린다. 그러나 네가 완전히 떠난 줄 알았는데 너는 네 모습을 햇빛에 새겨 이 곳에 남겨 두었다. 네가 도착하는 세계가 불화의 세계라면 네가 다시 살아가려는 세계가 너를 파괴하거든 다시 돌아오려고 너는 너도 모르게 네 영혼을 이곳에 영원히 남겨 두었다. 이러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세계에 대한 믿음 없이 불가능하다. 이 시의 놀라운 점은 그러한 세계에 대한 믿음보다 그 믿음을 부재로 표현한 역설에 있다. 그 믿음을 햇살이라고 부르는 마음은 또한 그것을 꽃이라고도 부른다.
여기 언덕 위에
꽃이 피어 있길래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줄
당신은 아십니까
두텁던 성엣장 가뭇없이 사라지고
저기 들판 한가운데로
맑은 물 한 줄기 흘러감도
꽃이 피어 있기 때문인 줄
당신은 아십니까
―《꽃의 의미》 중에서
석화의 시는 시집 《꽃의 의미》에서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는데 그 변주의 움직임은 역시 개방화, 경제화에 따른 삶의 역동성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고 석화의 시가 《몽롱시》를 지향한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중국사회의 용트림하는 변화를 석화는 어떻게 수용하는가?
아버지는 심심해서 담배를 피운다고 하셨다
(내 아이 적 들은 말이다)
저 화장터도 심심해서 길다란 담뱃대를 하늘에 겨누었을까
(오늘 아버지를 화장한다)
그런데 나도 심심해서 담배를 꼬나무나
(높다란 굴뚝에서 흰 연기 한 가닥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담배》 전문
우리가 80년대 매장한 아버지가 석화의 시에 등장한다. 온건하게 석화의 아버지는 우리가 싸워온 그 아버지는 분명 하지만, 농경사회의 매장문화에 의해 세습된 아버지임에 분명하지만, 이미 돌이라고 명명된(《나는 돌이 아니외다》에서) 아버지, 아들은 매장을 선택하지 않는다. 시인은 아직 매장이 일반적 관점일 연변에서 화장을 죽음의 방식으로 선택한다. 그 아버지의 죽음은 농경문화에 이입되지 못할 몹쓸 죽음인가. 《나도 심심해서 담배를 꼬나무나》라는 자조적 질문이 아버지의 죽음을 향한 것인지 죽음 이후의 화장의 방식을 향한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시인의 삶이 혹은 시인이 몸담은 세계가 거대한 커브를 그리는 것을 지시한다. 《담배》는 수사에서도 초기 시와 많이 다르다. 굴뚝과 담배의 비유는 일원적 세계관이 무너지기 시작한 뒤에서 나온 해체의 이미지이다. 그 변화는 사회주의자인 석화에게 무엇인가.
홀로 걷다가
갈림길 길목에 멈춰 섰다
이젠 누구와 갈라져야 하겠는데
갈라질 누구가 없다
길은 언녕부터 놓여져 있어
작별의 멋진 몽타주 펼쳐져야겠는데
지금 텅 빈 화면 속에
갈라질 누구가 없다
누구였을까
벌써 멀리 앞서간 이는
또 누구일까
아직 훨씬 뒤에 오는 이는
―《갈림길 길목에서》 중에서
훨씬 전, 그 변화에 대한 예감을 시인은 감지했던 것, 드디어 세계는 그 세계에 내재한 여러 모순에 의해 거대한 몸을 이끌고 다른 세계와 충돌할 것이다. 물론 그 충돌 이전에 그 안에서 먼저 기미가 있었다. 변화의 외형인 도시화는 불안에서 온다. 삶은 일상에서부터 조금씩 흔들린다. 그 흔들림의 일상을 노래한 《어떤 하루》는 그 불안의 정체가 산업화로 이루어진 익명성과의 싸움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농경문화의 모든 덕목은 개방된 시선에 있다. 인구 30만의 연길은 어떤가. 우리가 연길을 돌아다닐 때 한 택시운전사는 100미터를 태워주고 인민폐 5위안을 받았다. 농경사회라면 이루어질 수 없는 행위가 연길에서 이제 시작되고 있다. (퇴폐화의 가속이 남한에서 온 한국인 탓이라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거론된다.) 익명성이 일상과 곧장 마주치면서
공문가방을 옆에 끼고
달음박질쳐 나가도
6선 버스는 떠났고
우두커니 서 있는 전봇대마다
《조루, 불임증치료》라
시뻘건 딱지들만 다닥다닥 붙어 있어
어젯밤 불타던 꿈자리를
누군가 엿보지 않았나
귓불 뜨겁다
―《어떤 하루》 중에서
라는 시구를 낳는다. 속도는 도시적 삶의 징후이다. 항상 버스를 놓치는 퇴근시간 같은 느낌의 출근시간은 지난밤과 이어져 있다. 성병 치료제가 붙어 있는 전봇대의 풍경은 과거 우리 도시의 뒷골목과 닮으면서 끔찍해 진다. 석화에게도 도시 시는 어떤 의미에서 이제까지의 모든 가치관을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그 현실은 거역할 수 없고 아직 제 모습도 제대로 드러내지 않은 것, 그러나 분명 그것은 거대한 괴물의 모습으로 시인에게 다가온다. 그 도시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야! 야! 야!―
외쳐대는 바람에
헤이! 헤이! 헤이!―
굴러대는 바람에
쿵! 쿵! 쿵!―
흔들리는 바람에
백 오십 년 멋진 꿈을 슬슬 펼쳐 가시던
김삿갓 아저씨
마침내 일어서다
―《김삿갓 아저씨 디스코 추신다》 중에서
마침내 비판이라는 시의 한 본보기가 시인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그것은 명사가 주어가 아니라 동사가 주어가 되는 역동적인 속도의 세계이다. 김삿갓을 좌충우돌 등장시켜 혼란된 세계를 패러디 화한 위의 시에서 석화는 《서로서로 헷갈》리는 세상을 디스코 무대의 조명으로 파악한다. 판소리의 리듬을 빌려 한바탕 세상을 조롱(=조명)하며 자신도 그 조롱 속에 파묻히는 위의 시는 석화의 시에서는 드물게(연변에서 이러한 담시의 전통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풍자시의 양태를 취한다. 풍자는 야유이고 또한 유머이기도 하다. 풍자란 석화가 도시에 대한 시를 쓰면서 가장 먼저 도입한 비유처럼 보인다.
3
석화에게는 처음부터 자의식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는 《고백》에서 《남들이 나를 무엇이라 하던/ 나로서는 내가 이 세상 가장 사람다운 사람인 줄로 압니다》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 정체성은 처음에 일원적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그가 지향한 초기 시는 《한 송이 꽃이나 한 그루 나무나 또 돌이나 별이겠습니까/ 나는 그것들과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어우러진 통일체이며 우주입니다》라는 질서의 우주관이다. 농경문화에서 시인의 행복이 그대로 드러나는 진술이다. 더욱이 그곳은 사회주의, 모든 것은 공동의 생산과 분배를 우선으로 한다. 석화시의 변모는 역시 중국의 개방화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벽 세우기》에서 우화의 양식으로 개방화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암시했다. 또한 개방화가 시장경제에 의한 것을 암시한다. 그로부터 그의 싸움은 도시의 일상성, 도시의 익명성과 속도 그리고 그에 부속한 혼란이다. 그러나 아직 석화에게 모더니즘의 씨앗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모더니즘이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담론일 것이다. 나는 그가 선택한 담시 풍의 풍자가 어떤 방법론을 이끌어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니 서정의 방식으로도 저속도의 속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연길은 인구 30만의 도시이다. 그곳의 시인은 겨우 50명, 우리가 석화를 통해 너무 많은 것을 읽으려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시가 우리가 거친 과정을 답습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곳은 우리의 60년대의 속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빠르고 그는 자기 정체성의 확인에 철저한 사회주의 시인이므로.
계간 《시와 반시》 199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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