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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 敎 理 解 스크랩 단기 선교의 이해와 실제 - 5. A
總會神學大學校 추천 0 조회 19 14.07.22 11: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단기 선교의 이해와 실제 - 5. A|
푸른초장 조회 0 |추천 0 | 2006.08.01. 22:44

 

 

5. 선교적 교회론의 정의

   가. 교회’의 어원적 정의(Etymological Definition of Church)

필자는 7년 동안 지역교회의 단기선교팀과 다양한 선교헌신자들을 훈련하면서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에게조차도 선교적인 교회론(???을 이해시킨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교회론을 연구하려면 먼저 수 많은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 본질은 무엇인가? 교회는 세상에 어떠한 사명을 갖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초대교회에서부터 제기되어 왔으나, 현대에 이르러서야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이장식은 1920년부터 40년간 독일어로만 발간된 교회론 관련논문이 6,000여 편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교회론의 연구에 힘입어 본 장에서는 간략하게 선교하는 교회(Missional Church)로써의 정의와 본질, 기원을 살펴보고자 한다.  

‘교회’(church)라는 단어는 헬라어의 ‘퀴리아콘’(κυριακον)에서 온 것이다. 사실 신약성경에 두 번 사용된 이 단어는 직접적으로 교회를 가리키지는 않았다. 고전 11:20에서는 주의 만찬을 가리키고 있으며, 계 1:10에서는 주님의 날을 지칭한다. 신학자들은 교회(church)의 직접적인 어원보다는 의미론적인 어원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주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마 16:18)고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단어는 ‘에클레시아’(εκκλησια)였다. 이 단어는 구약의 개념과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카할’(qahal)과 ‘예다’(edah)라는 두 단어이다.
위에서 언급한 네 단어 - kuriakon, ekklesia, qahal, edah - 를 역사적인 순서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교회 : 구약의 용어
구약성경에 교회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 역’(LXX)의 전통을 따라 구약의 두 단어, 즉 ‘카할’과 ‘예다’를 교회라는 단어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1. 카할
신학자들은 구약에서 교회를 의미하는 단어의 기원을 ‘카할’(부르다)로 설정하고 있다. 이것은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 역'(LXX)에서 이 히브리어 ’카할‘은 헬라어 ’에클레시아‘로 번역하고 있는 번역상의 역사적 경향에 기인한다. 클라우니(L. Clowney)는 '교회의 이야기가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시작한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옳은 지적이다. 개혁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강조하여 왔는데, 구약의 이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이다. 특별히 시편 22:23에서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의적 회중(cultic congregation)으로서의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있다.

사전적으로 카할은 '대회', ‘집회’(convocation) 혹은, ‘회중’을 의미하며, 특별한 모임을 위해 모인 사람들의 무리를 가리켰으며,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천사(시 89:5)와 일반 군중(창 28:3; 35:11)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점차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전문적인 용어가 되었다.

2. 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라는 의미로 사용된 또 하나의 단어는 ‘예다’(회중)인데, 70인 역에서 이 단어는 주로 ‘회당’(συναγωγη)으로 번역되었다. 이 회당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장소이다.

이 단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지녔다. 때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가리키기도 했지만(왕상 8:5; 시 1:5; 시 82:1), 벌떼(삿 14:8), 악인의 반역무리(민 16:5)등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단어는 교회의 직접적인 어근으로 관심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교회: 신약의 용어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교회’(εκκλεσιαν)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마 16:18). 그리고, 의미적으로 볼 때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토대로 세워진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칭하는 ‘주’라는 단어에서 오늘날 영어의 교회(Church)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1. 에클레시아(εκκλησια)
루이스 벌콥(Louis Berkhof)은 교회(church)라는 용어가 신약의 '에클레시아'(εκκλησια)라는 단어에 기원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단어는 전치사 ek(밖으로)와 동사 kaleo(부르다)로 구성되었다. 즉 ‘밖으로 불러내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특별한 목적을 위해 모인 사람들을 의미한다.

바울시대 이후에 이 단어는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새 이스라엘, 하나님의 참 교회를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슈미트(K. L. Schmidt)는 바울시대 이전에 이미 이 단어는 유대인의 회당(συναγωγη)으로부터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였다고 지적한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몇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첫째는 정치적인 회합(행 19:39)이나, 무리 지어있는 군중(행 19:32, 40)을 의미하는 세속적인 용례이고, 둘째는 종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모인 이스라엘 회중(히 2:12-시 21:23)을 가리킨다. 이 경우에는 군중이라는 첫째와 같은 일반적인 의미에 유대적 개념이 추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는 교회라는 의미이다. 이 경우 교회는 회중으로서의 교회(고전 11:18), 공동체로서의 교회(마 18:17; 행 5:11; 고전 4:17; 빌 4:15 등), 가정 교회(롬 16:5; 고전 16:19), 보편적 교회(마 16:18; 행 9:31; 고전 6:4; 12:28; 엡 1:22등), 지역교회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2. 교회(Church)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가리킨다.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엡 5:23)인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교회 'Church'는 중세 영어에서 chirche로 표기되었으며, 이는 독일어의 Kirke(교회)에서 차용한 단어이다. Kirke는 헬라어의 κυριακη에서 온 단어로 ‘그리스도의 집’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그리스도께 속한’(κυριακον)이라는 의미로 두 차례 사용되고 있으며, 오늘날 교회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는 교회가 기독론적 교회론의 이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교회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임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다

   나. ‘교회’라는 성경적 단어들 간의 연속성

위에서 살펴본 ‘부름 받은 공동체’로서 교회에 대한 이 신구약의 단어들은 놀라운 연속성을 보여준다. 콘첼만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이 단어(εκκλησια)는 그리스도인들이 70인경에서 받았다는 것과 또한 시내산에서의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가 평행선을 나타내고 있는 점에서 폭넓은 견해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콘첼만, 신약성서신학, 김철손외 공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2), p. 51

바울이 주로 사용한 이 단어는 건물개념을 가리키기보다는 ‘구원받은 백성’으로서의 ‘믿는 자들의 공동체’(共同體)를 의미한다.
물론 예수님 역시 교회에 대하여 언급하실 때 가시적인 건물보다는 신앙 공동체를 의미하셨다고 볼 수 있다. 마 16:20, cf. 마 16:18

이것은 예수님 자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동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의 어원을 구속개념과 관련된 ‘하나님의 백성’ 개념으로 설정하는 것은 타당하다. 신학상의 교회관(敎會觀)은 주로 이 ‘공동체적인 관점’을 중심으로 연구된다. 이것은 신약교회의 새 언약의 공동체적 특징을 수용하고 구약에 있어서도 의미론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바른 교회관 정립을 위해서는 신약에 있어서 가시적인 교회건물에 대한 바른 연구와 이해 역시 필요할 것이며, 구약의 가시적 성막과 성전과의 관련성(關聯性)을 통해 그 의미를 밝혀야 할 것이다. 또한, 이미 연구된 성전과 성막의 기독론적 해석을 교회론 연구와의 연속선상에서 조명(照明)해야 할 것이다


  
다. 교회의 정의

교회에 관한 개혁교회의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개념은 의심할 바 없이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된 인간의 몸’을 의미한다. James Bannerman, The Church of Christ, vol. 1 (Canada: Still Water R. Books, 1869, reprinted 1991), p. 14

영화된 육신과 연합된 이 몸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된다. 이 기본적인 ‘우주적이며, 불가견적인 그리스도의 교회’(the universal invisible Church of Christ)로부터 다양한 개념들이 도출된다. 제임스 배너만(James Bannerman)은 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첫째, 교회는 ‘가견적인 조직체’이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서 보존하는 조직체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설립되며 유지된다. 사도바울이 서신서의 각 서두에서 교회를 지칭할 때 그것은 가견적 조직교회를 지시하는 것이다.

둘째, 교회는 ‘지역성’을 가진다. 그래서 전 우주적인 성격을 갖는 교회로서보다는 일정지역에 존재하는 교회로서의 의미(意味)를 가진다. 이 교회는 특별한 지역에 세워지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에 의해 형성된다.

셋째, 교회는 ‘예배공동체’ 이다. 신약성경에서 발견되듯이 교회란 한 곳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이다. 이것은 개개의 지역교회에 모인 신앙공동체를 의미한다.

넷째, 교회란 ‘지역적인 연합체’이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의 지역적인 연합을 이루는데, 몇 개의 교회가 하나의 권위와 질서 아래 모인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쓴 서신서가 한 도시의 여러 교회에게 쓰여진 것으로 보아 교회의 연합성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거대한 ‘영적공동체’이다. 이것은 불가견적인 교회이다. 개혁주의자들은 교회를 가견교회와 불가견 교회로 나누고, 불가견 교회는 오직 택자들만으로 구성되며, 교황을 포함한 개인은 가견교회에 속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Elwell, EDT, p. 231; 이에 대하여 Bannerman은 ‘로마 캐톨릭은 조직체로써의 가견교회만을 강조하기 위해 가장 근본적인 불가견교회는 부정하거나, 실제적으로 다루지 않고, 오직 교회의 개념을 교황을 중심한 가견교회에 한정시킨다’고 평한다. Bannerman, p. 16

그들은 가견교회에는 택자들과 불택자들이 공존하지만, 불가견교회에 속한 택자는 오직 하나님께서만 알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가견교회보다는 불가견교회를 더 비중있게 다루는 것이다. 하지만 카톨릭은 이 가견교회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벌콥은 교회의 정의에 대한 개신교와 카톨릭의 견해간에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벌콥, op. cit., p. 298
카톨릭의 교회는 교회의 신자들이 아니라 주교, 대주교, 추기경, 교회 등 교권자들의 단체를 의미한다. 그들은 ‘교훈하는 교회’로서의 교권자들과 ‘교훈받는 교회’로서의 신자들의 공동체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개혁교회는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교통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는’ 교회관을 갖게 된 것이다


  
라. 교회의 기원

교회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주장되고 있다. Saucy, op. cit., p.57
세대주의 신학자들은 교회를 신약시대의 독립적인 산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주로 교회의 기원을 신약과 구약의 정경적인 배경에서 찾으려는 노력에 동의하고 있다.

교회의 기원을 구약에서 찾으려는 배너맨(Douglas Bannerman)은 ‘교회는 모든 세대의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의 모임으로 아브라함의 언약에 기원하며 그것이 교회의 첫 시작이 되었다’ D. Douglas Bannerman, The Scripture Doctrine of the Church, (Grand Rapids: Eerdmans, 1955), p. 43
고 주장한다. 퀴퍼(R. B. Kuiper)는 이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교회는) 아담과 제정한 하나님의 언약(창 3:15)을 믿고 행해온(exercised)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고 주장한다. (R. B. Kuiper, The Glorious Body of Christ, (Grand Rapids: Eerdmans), p. 21-22)
구약에서 교회의 기원을 찾으려는 관점은 하나님과 인간간의 언약 관계속에서 교회의 실체를 이해한다. 즉,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언약을 통해 부름받은 공동체라고 정의된다.

놀랍게도 교회의 기원을 구체적인 성막과 성전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가견적인 조직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불신과 플라톤적 이분법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스데반은 구약의 성막을 ‘광야교회’(행 7:38)라고 칭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신약교회의 성도들이 구약의 성막과 자신들의 교회간에 일련의 연속성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교회의 기원을 구약의 가시적 성전인 성막과 성전, 그 이전 족장시대에 제단에서 발견하려는 것은 이상한 노력이 아닐 것이다.

신약에서 교회의 기원을 찾으려는 학자들 중에도 다양한 학설이 제기된다. 존스톤(George Johnston)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친히 교회가 되셨다’ George Johnston, The Doctrine of the Church in the New Testament (Cambridge: Univ. Press), p. 46-47
고 주장하며, 교회의 기원을 그리스도에게서 찾는다. 다른 학자들은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신 이후에 교회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며, 세대주의자 중의 일부는 교회의 시작이 사도 바울의 사역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J. C. O' Hair, A Dispensational Study of the Bible (Chicago: O' Hair, n.d.), p. 32

신약에서 교회의 기원을 찾으려는 제 학자들의 공통점은 일반적으로 성령과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구원사역과 관련된다. Saucy, op. cit., p. 57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의 사역을 완수해야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교회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성령약속, 특히 성령이 (그리스도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는 사역적인 약속(요 14:26)에 기인한다. 교회의 사명은 성령의 임재(고전 3:16; 12:13)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것이다. 헤들런드(Hedlund) 역시 교회의 기원을 신약의 오순절에서 찾는다. (Hedlund, op. cit., p. 315)
그는 신약의 교회가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교회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헤들런드가 교회의 기원을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보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은 신약의 오순절 강림으로 부름받은 공동체는 새로운 선교적인 사명을 갖게된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며, 두 번째는 ‘남은자 사상’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구약의 희미한 교회를 신약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세우신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기원을 성령의 역사와 구속사역에 관련시킨다면, 우리는 구약에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를 추적함으로 교회의 기원을 보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듀퐁(Dupont)은 신약의 오순절과 구약의 시내산의 하나님 강림사건간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그는 오순절의 성령강림이 ‘구약의 시내산 오순절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타나심(theophany)의 재연’ 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Jacques Dupont, The Salvation of the Gentiles, John Keating trans. (N.Y.: Paulist Press, 1979), p. 40; 재인용 Hedlund, p. 303~304 -
그 특징으로 큰 소리(행 2:2, 6; 출 19:16), 불꽃(행 2:3; 출 19:18), 방언(행 2:4; 출 19:19)등을 들고 있다. 이것은 구약의 시내산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건축 명령을 받기 직전인 것과 오순절 사건이 예수님의 명령에 따른 초대교회 형성 시점이라는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성령을 교회의 기원으로 이해한다면 보다 오랜 창조의 장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는 창조시의 모습은 당시 온 우주가 하나님의 완전한 성전(聖殿)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이전에는 온 동산이 - 전 지구가 - 하나님의 성전(聖殿)이었다. 하지만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이제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새예루살렘 성전을 소망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약에서 성전과 성막 건축이 성령의 임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성령의 사역이 이스라엘의 제의적인 형태에서도 발견되는 것을 감안하면 구약전체가 교회론의 연구대상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견적인 교회기구는 무시하고, 교회의 개념을 ‘그리스도와의 성숙한 교제를 나누는 영적인 실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만을 주장한다. - Saucy, op. cit., p. 98 -
이러한 정의는 교회론에서 많은 신학자들이 가견교회의 기원을 구약의 불가견적 공동체 개념이나, 물리적인 개념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에 국한하여 정의하려고 하는데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가견적인 교회와 그 조직이 분명히 언급되고 있으며, 그들은 교회의 기원을 구약의 성전과 성막에서 찾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다. 예를 들어 스데반(행 7장)과 바울은 교회개념을 이스라엘의 성전개념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제3장에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교회의 본질이 ‘하나님의 구속언약’에 있다면, 성막과 성전의 제사를 통해 구속이 주어진 구약적인 배경에서 교회론의 연구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기원을 공동체라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역사가운데 점철된 가현적인 교회, 성전, 성막과 그 이전의 제단을 통해 살펴봄으로 보다 입체적인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현대교회는 조직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바른 시각과 신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성경적인 교회관의 선교적 본질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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