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평동의 기억-원평동 시장통에서 한평생 김옥금(여, 1937년생)씨
2020.10.10. 인터뷰
친정이 경남 창영으로 군무원인 남편 따라 의정부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그 후 남편의 직장이 팽성읍 안정리 k-6캠프험프리즈로 옮기면서 원평동에 정착했다. 남편 작고 후 1970년대 초부터 시장통에서 쌀과 식료품 상점을 열었다. 2000년경까지 장사를 했다.
원평동에는 언제부터 사셨어요?
스물 네 살 때 왔어요.
그럼 1960년이네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나는 경상도 창녕이 친정인디 결혼하고 의정부에서 3년 살다가 첫 딸 낳고 이리로 왔어요. 그 애가 지금 예순 두 살이네.
창녕이 고향인데 의정부에 살게 된 동기는요?
우리 바깥양반이 군무원이었어요. 의정부에서 근무하다가 안정리 K-6미군부대로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따라왔쥬. 보급창고 책임자였는디 몇 년 근무하다가 그만두더라고.
여기가 옛날 시장통이잖아요. 이 집에서 장사를 했나 봐요?
여기서 장사했슈. 내가 이 집을 살 때는 방 1개에 부엌 한 개밖에 안 됐는디 바깥양반이 부대를 그만두고 돌아가시는 바람에 집을 새로 지어서 장사를 했슈. 여기 집 옆으로 또랑이 흘렀는디 그 때는 또랑 옆에 붙은 집이었지.
그 시기가 1970년대인가요. 뭘 팔았어요?
1970년대인가 뭔가 그 때쯤 돼요. 쌀, 식료품 같은 거 팔았는디 장사는 잘 되더라고. 이 동네가 마트가 없잖아요. 외상이 문제였지.
외상주고 못 받은 것도 많죠?
많다마다. 숱하게 떼였지. 그래도 자식 키우고 먹고 살만 했슈.
자녀는 몇 명을 두었어요?
딸 하나에 아들 둘. 큰 애가 예순 둘, 막내가 쉰 살. 우리 큰 딸은 성동학교 다니다가 평택초등학교에서 졸업했는디 육교가 없을 때라 철길을 넘어다녔슈. 위험했지.
그 때가 언제예요?
아마 1970년대 전일 꺼요.
당시 원평동 풍경은 어땠어요?
우리가 1967년에 이리로 왔는디 여기는 집들이 모두 납작지붕이었지 뭐. 지붕 위에 텔레비전 안테나만 올라와서 잠자리처럼. 미군기지 다니는 사람도 많았고. 저기 땡땡거리 쪽으로 대동연탄공장 있었던 거 기억나고. 이 동네 사람들도 거기 많이 다녔어요. 집들도 드문드문 있었고 웅덩이도 많고. 저기 안정리 가는 길도 우리 올라올 때 쯤 생겼을 거요.
마을이 지금처럼 커진 것은 언제죠?
2009년 AK백화점(서부역) 생기고 나서 변했지. 집들도 많이 생기고 사람들도 많아지고. 이 동네는 충청도, 전라도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많아요. 옛날에는 전라도 사람들이 품 팔러 평택역에 많이 왔었으니께 여기에 살게 된 거지.
장사는 언제까지 했어요?
한 20여 년 전에 그만뒀슈. 나이도 먹고 마트들도 생기고 장사도 안 되고 해서 그만뒀슈. 우리가 올라왔을 때(1960년대 후반) 여기는 병원도 없고 약국도 없었다니께. 여기서도 애들 아프면 철둑 너머 박애병원 다녔지. 옛날 기독병원 자리에 박애병원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