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사를 둘러보고 청룡사 사적비에서 오른쪽 마을로 들어서 바우덕이 사당으로 갔다 사적비에서 500여 미터 걸어가면 있다
바우덕이는 남사당패의 전설적인 인물로 바우덕이와 관련한 정보는 구체적인 자료형태로는 전하지 않고 구전으로만 알려져 있다.
본명이 김암덕(金岩德)으로 1848년 안성에서 태어나 안성 남사당패의 일원으로 활약을 하다가 1870년 사망한 것으로 말해지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바우덕이는 안성 서운면 청룡사를 거점으로 활동한 남사당패의 구성원이었다. 소고에 능했으며, 남성들이 주축을 이루는 남사당패를 이끌었던 여성 꼭두쇠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본래 바우덕이는 개다리패에 속했던 사당으로, '개다리'라 불리는 꼭두쇠가 따로 있었지만, 바우덕이의 활약이 워낙 두드러져 바우덕이패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만큼 바우덕이의 기·예능이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구전에 의하면 5살 때 머슴살던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자 남사당패에 맡겨져 살면서 재주를 익혀 염불, 소고춤, 줄타기 등 남사당의 모든 기예를 익혔다고 한다.
15살 때 당시 안성남사당패를 이끌던 윤치덕이 사망하자 남사당패의 관례를 깨고 바우덕이를 우두머리인 꼭두쇠로 선출했다. 바우덕이는 여성꼭두쇠라는 특성과 탁월한 기예로 안성 남사당패를 최고의 인기패로 육성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1865년(고종2)년 경복궁 중건 공사 때, 인부들을 위로하기 위해 전국의 남사당패를 불러들였다고 한다. 이때 안성에 거주하던 이승지의 후원으로 바우덕이패와 안성 돌우물패가 최고의 인기를 얻어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옥관자기를 하사받았다고 한다.
바우덕이가 살던 곳은 청룡사가 위치한 불당골인데, 이 곳은 예로부터 남사당패가 겨울을 나던 장소이다. 이 곳 남사당패는 청룡사의 신표를 받아 봄부터 가을까지 전국을 누비고, 겨울에는 이곳에 와서 월동을 했다고 한다.
바우덕이는 23세 때 폐병으로 사망했다고 하며, 마지막에 그를 돌보던 이경화가 망인의 유지에 따라 청룡골 입구 개울가 양지바른 곳에 매장했다고 한다.
사당에서 차를 끌고 10여분 이동하면 바우덕이 묘를 방문할 수 있다 지금 청룡사에서 바우덕이 묘지까지는 서운산둘레길이라는 명칭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둘레길의 한 코스가 되었다
그 가운데 청룡사에서 걸어 5분 거리에 풍물기행 수제식빵 집도 있다
한옥카페라는데 아기자기 사진촬영의 명소이기도 해서 많은 이들이 찾는다
풍물기행 한옥카페를 돌아나오면 청룡지가 나타난다
약 120,000㎡ 면적으로 주변에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입구에 남사당 조형물이 있는 바우덕이 마을이 있고, 서운산과 좌성산 등산로가 있어 휴일이면 등산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모터보트, 오리 배, 수상 스키를 즐길 수 있는 레저 시설이 있고 봄이면 청룡호수부터 청룡사까지 약 1km의 길에 벚꽃이 피어 드라이브 코스와 산책코스로 좋단다.
청룡지 끄트머리 입장에서 진천가는 지방도가 나오면 입장방면으로 1km정도 이동하다 이정표를 보고 들어가면 500여미터 지점 하천변에 바우덕이 묘가 나타난다
고종 2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으니 안성남사당패 영기는 옥관자 받은 기라 하여 모두의 우러름을 받는다
그런 남사당패가 되기까지 상황을 보자 천대받고 보잘것없는 이 남사당 패거리에 꼬마여자아이를 죽어가던 반가집 머슴 아버지가 겨우 하소연하여 들여보낸다 물론 여자아이도 남사당패의 공연을 보고 순간 그 모습에 혹했을 것이다
인물이면 인물, 기예면 기예 어린 그녀가 커 가면서 15세 되던 때에는 이 남사당패에 그녀를 대적할 상대가 없었나 보다 더우기 여자 남사당이라니 모든 이들이 이 소문에 궁금증을 더하며 유명세는 점점 더 높아졌을 것이다 계기에 이 패에서는 그 유명세를 더욱 끌기 위해 다른 남사당멤버의 입을 해결하기 위해 종국 끊겨진 꼭두쇠 자리에 그녀를 추대하게 된다
그렇게 그녀의 후광과 그녀의 기예에 더욱 성장하여 근 10여년 넘게 남사당의 대명사로 안성 남사당패는 전성기를 맞게 된다 또 그 아류격인 남사당패가 곳곳에서 생긴다 그런 남사당패에게 어쩌면 평소 안면 있던 흥선대원군에 의해 정3품의 옥관자 상이 내려지는 경복궁 재건 인부 위문대회 기회가 생긴다 당연히 흥선대원군은 안성 바우덕이 남사당패를 후원하여 그 명성을 전 나라에 알려질 수 있도록 선정한다 청룡사가 인평대군의 안찰이고 청룡사 주변 인평대군 후손들이 있었기에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소싯적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를 위해 이곳과 공주 예산 등지를 자주 드나들었다 그 자신도 인평대군의 후손이였기에....
그렇게 바우덕이 남사당패의 전설이 만들어지는데 더 기가막힌 것은 그 일이 있고나서 오래지 않아 23살 한창인 나이의 그녀가 폐병에 걸린다
보통 남사당패에서 병에 걸리면 길거리 어느 구석에 내동댕이쳐진채 이름모르게 죽어가는데 바우덕이에게는 흠모했던 이도 많고 돌봐주는 이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 입 하나 해결하기 어려운 시절 그 병 구안에 그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잊혀지는 중인데 바우덕이보다 20~30살 연상인 이경화란 인물이 그녀 곁에서 끝까지 그녀를 돌본다 결국 이곳에 그녀의 주검을 망인 유지에 따라 묻는다
이런 순애보적인 스토리와 남사당패의 성장해가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성공적인 스토리가 맞아 그들의 구전 속에서 안성 바우덕이는 역사속 민간에 구전하는 전설속 인물로 탄생된 것 같다 더우기 요즘 남사당패 같은 기예들이 그 때와는 다르게 민중에게 크게 사랑을 받는 시대이니...
그리고 바우덕이를 기치로 올린 이 안성 남사당패가 현재까지도 이어지며 전국의 풍물 경연대회를 제패하고 있으니 더욱 이 전설은 많은 이에게 기억되는 것이겠다
바우덕이 묘 앞 졸졸 흐르는 청룡의 맑은 물결 속에 바우덕이는 더없이 행복한 기운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