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마음의 속성 정확히 알면 고통해결에 도움” | ||
전현수 신경정신과 전문의 초청 제4회 53선지식 구법여행 봉행 |
본지와 조계사불교대학총동문회가 공동 주관하는 53선지식 구법여행의 네 번째 법회가 지난 19일 조계사 극락전에서 봉행됐다.
이날 초청강사로 나선 전현수 신경전신과 전문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심리치료자 부처님’을 주제로 약 두 시간 동안 열띤 강의를 펼쳤다. 이날 전 박사는 “인간의 괴로움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 생각과 실제가 다를 때 괴로움이 발생한다”면서 “불교정신치료는 이러한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탁월한 종교”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전현수 박사의 강의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한국불교 총본산 조계사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 불교신문과 조계사불교대학총동문회 관계자 분들에게도 감사하다. 저는 오늘 부처님과 불교를 좀 색다른 관점에서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그간 불교와 정신치료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를 오랜 기간 동안 연구해왔다. 그러다 불교 자체가 훌륭한 정신치료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불교와 정신치료에서 ‘와’라는 접속사를 빼고 이제는 불교정신치료라고 한다. 부처님은 정말 위대한 정신치료자다.
제가 하고 있는 불교정신치료의 원리는 3가지에 입각해 있다. 우리의 근간이 되는 몸과 마음이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는지가 그 첫 번째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를 제대로 아는 것이 두 번째, 어떻게 하면 지혜로써 살아갈 수 있을지가 세 번째이다. 결론적으로 세상은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이를 잘 알고 괴로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굉장히 중요하다. 또한 지혜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다. 지혜가 있으면 괴로움은 아예 시작되지 않는다. 괴로움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언제나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갖고 있는 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불가피한 괴로움 외에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괴로움이 더 많다. 화살에 비유하면 한 번 맞을 걸 두 번 세 번 맞고 있다. 이처럼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게끔 도와주는 것이 바로 정신치료의 작업이다.
서양의 과학적인 정신치료의 역사는 프로이드로부터 시작됐다. 대단한 사람이다. 만약 프로이드가 일찍 불교를 접했더라면 불교정신치료가 100년 전에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분명 한계도 있었다.
저와 불교와의 인연은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1985년 당시 정신과 레지던트 2년차로 생활하고 있었다. 우연한 인연으로 첫 번째 스승을 만났고,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를 배웠다. 불교가 곧 진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전공의 2년차로 바쁘고 힘든 시절이었는데, 배운 것을 제게 적용해 보니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니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이해를 하게 되면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것이 제 불교정신치료의 시발점이다. 2003년도에 미얀마서 약 한 달 동안 위빠사나를 수행했다. 마하시선사가 일상생활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도록 불교 핵심인 무상 고 무아를 깨치게 하도록 만든 수행법이다. 눈떠서 잘 때까지 몸과 마음을 관찰했다. 나름대로 무상 고 무아를 터득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불교가 심리학이나 심리치료가 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초기경전인 니까야도 꼼꼼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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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과 마음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스스로 몸과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과의 법칙에 따라 몸과 마음은 움직일 뿐이다. 생존해 있는 동안은 몸과 마음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불교는 훌륭한 정신치료적인 구성요소를 지니고 있다. 정신치료는 인간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것이다. 불교는 일찍부터 인간을 괴로운 존재로 봤다. 불교는 괴로움에 대해 탁월한 시각을 갖고 있다. 불교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가 사성제이다. 사성제의 첫 번째가 고성제이다. 괴로움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고에 대한 자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프로이드도 본능과 자아, 초자아로 나눠 본능을 기본적으로 안고 있다고 가르쳤다. 불교는 그런 견해와 완전히 다르다. 불교는 괴로움을 뿌리 채 뽑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멸성제이고 그 방법이 도성제이다. 괴로움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전문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 불교는 괴로움에 아주 밝은 종교이다. 어떤 괴로움과 의문도 해결할 수 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인간의 괴로움은 3가지에서 발생한다. 첫 번째는 몸과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 괴로움의 원천 가운데 하나다. 두 번째는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세 번째는 자기 생각과 실제가 다를 때 괴로움이 발생한다. 불교정신치료는 검증된 보편적인 진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다른 분야의 정신치료는 한 개인의 경험과 관찰에 근거하고 있다. 물론 탁월한 경험과 관찰이긴 하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탐진치는 전부 해로운 마음에 해당된다.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마음은 전부 해로운 마음이다. 예를 들어 현재에 집중하게 되면, 탐진치가 없다. 컵을 들 때 들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면 탐진치가 없다. 현재에 집중만 해도 뇌에 좋은 회로가 들어온다. 우리는 보통 양치를 하면서 ‘무슨 일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 이것은 ‘치’이다.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가 갑자기 과거가 생각나면, ‘지나간 일이야’ ‘과거일 뿐이야’ 하고 탁 돌아오면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다. ‘오늘 뭐하지’라는 생각이 일어났을 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른다’ 하고 딱 돌아오면 좋은 현상이 일어난다. 생각이 일어나면 그 자리에서 스톱 하면 된다. 그것만 하면 아주 좋은 현상이 일어난다. 생각이 나면 탁 스톱 하면 된다.
생각이라는 것을 자세히 관찰해 보라. 과거에 관련된 생각은 사실 딱 한 번만 일어난다. 과거는 여러 번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너 왜 이렇게 바보 같냐’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동시에 뇌에 좋지 않은 화학변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나서 집에 와 그때 그 사람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지 하면서 생각하는 순간 심적인 타격을 받고 두 번째 화살을 맞게 된다. 미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처럼 전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미래를 생각하면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생각하면 타격을 받고 뇌에 영향이 온다. 그것을 멈춰야 한다. 병원에 환자들을 보면 생각을 많이 해서 왔다. 생각 많이 하지 않는 환자를 보지 않은 적이 없다. 수행하면서 깨달은 것은 ‘마음이 내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이다.
생각은 내 것이 아니다. 저도 가정이 잇고 환자도 보고 하는데 괴로움이 왜 없겠는가. 괴로움이 일어나는 순간 놓아 버리면 된다. 겨울철 난로에 눈이 닿는 순간 탁 녹는다. 그런 것처럼 생각이 날 때 탁 놓으면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생각은 안 떠오를 수가 없다. 그것이 머무르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 어떤 생각이든 생각은 순간적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그 놈이 친구를 불러 온다. 한 생각을 오래 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멈추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분노조절장애 등 요즘 화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부처님 당시 화를 많이 내는 왕자를 재도한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자타카에 나오는 이야기다. 부처님에게 한 나라의 왕이 찾아와 자신의 왕자가 너무 포악하다고 하소연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잔혹한 마음이 많으면 죽어서 지옥에 태어나고, 분노의 마음은 가족에게도 큰 상처를 남긴다고 법문했다.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나도 각종 병으로 고통을 당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왕자는 부처님 말씀에 바로 감화가 됐다. 험악한 코끼리를 길들이듯 왕자를 딴 사람으로 만든 모습을 보고 제자들이 감탄하자 부처님께서 ‘내가 저 왕자의 과거생에도 제도를 했다’고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과거생에 히말라야 설산에서 수행하고 있었을 때, 우연히 인가에 내려갔다가 왕을 만나게 된다. 그런에 이 왕은 자신의 왕자가 나이는 어리지만 포악하기 이를 때 없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부처님은 왕자를 만나 동산에 함께 올라갔다. 부처님이 잎사귀를 가리켜 왕자에게 한 번 맛을 보라고 했다. 왕자는 그 잎을 먹고 너무 쓰다며 그 자리에서 나무를 뽑아버렸다. 부처님은 이 쓴 나무가 크면 얼마나 쓰겠냐면서, 너 또한 풀포기를 통해 가진 감정을 다른 사람도 너에게 똑같은 감정을 갖고 있다. 이 말씀을 듣고 왕자는 마음을 고치게 된다.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같은 환경에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우리는 살다보면 좋은 자기의 품성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다음과 같은 18가지를 제대로 실천하면 지혜로워 질 수 있다. 부탁과 거절에 자유로우면서, 인사를 잘하고, 거짓말을 하지 말 것이며, 약속을 지키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대화를 잘 하고, 인간관계를 단절시키지 말고, 여유 있는 마음 시야를 넓게 갖고, 생각을 줄이고 현실에 충실한 것,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 독서를 통해 간접 경험을 쌓는 것, 자기 형편에 맞게 사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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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기사] 데스크승인 2016.02.22 09:00:05 정리=홍다영기자 I 사진=신재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