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논치(論治)에 관한 편(篇)
병(病)을 보고 치료(治)를 실시(施)할 때는 정일(精一)함을 귀(貴)하게 여긴다.
천하(天下)의 병(病)들은 그 변(變)하는 형태(態)가 비록 많지만 그 근본(本)은 하나
천하(天下)의 방(方) 안에는 활법(活法)이 비록 많지만 증(證)에 맞는(:對) 것은 하나
병(病)을 치(治)하는 도(道)
'한(寒)이다.' 라고 확실(確)히 알아지면 필경(竟) 그 한(寒)을 산(散),
'열(熱)이다.' 라고 확실(確)히 알아지면 필경(竟) 그 열(熱)을 청(淸).
그 근본(本)을 한번 발거(拔)하면 제증(諸證)이 다 제거(除)된다.
내경([內經])에 "치병(治病)하려면 반드시 그 근본(本)을 구(求)하여야 한다."
이러하므로 병(病)을 진단(診)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그 병(病)의 근본(本)을 찾은(:探) 연후에 약(藥)을 사용(用)할 것.
만약 그 소견(見)이 정확(:的)하지 않다면 차라리 조금 더 기다렸다가(:待) 다시 상세히 살펴야 한다.
이미 그 요점(要)만 얻었다면 단지 1~2미(味)만 사용(用)하여도 발거(拔)할 수 있다.
혹 병(病)이 깊고(:深) 견고(固)하여도 5~6미(味)에서 7~8미(味)만으로도 이미 많다.
(약물을) 7~8미(味)까지 사용(用)하여도 또한 그것들은 도와주거나(:幫助) 이끌어가는(:導引) 것에 불과(不過)함
마음(:意)이 한결(:一) 같아야 비로소 고수(高手)가 된다.
요즘 의사(醫)들
일증(一證)을 만나면 곧 해양(海洋)을 관망(觀望)하는 것 같이 망연(茫)하여 정(定)하여진 소견(見)이 없다.
그 형세(勢)가 난잡(亂雜)하고 광락원야(廣絡原野)하는 술수(術)를 사용(用)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으로는 허(虛)라고 말하면서 보(補)하기는 하지만, 보(補)하는 것이 해(害)가 될까 염려되므로(:恐) 다시 소(消)하는 것으로 이를 제지(制)함
마음으로는 실(實)이라고 말하면서 소(消)하기는 하지만, 소(消)하는 것이 해(害)가 될까 염려되므로(:恐) 다시 보(補)하는 것으로 이를 제지(制)함
가장 가소(:可哂)로운 것은 매번 한(寒)하지도 열(熱)하지도 않거나, 보(補)도 겸하면서 사(瀉)도 겸하는 그런 방제(劑)들을 '확실(:確然)하다.'고 여기면서 투여(投)하고, 이를 '온당(穩當)하다.'고 극찬(:極稱)하는 경우
이것이 어찌 그 치우침(:偏)을 보(補)하고 그 폐(弊: 곧 질병)를 구(救)하는 것이겠는가?
또 치풍(治風) 치화(治火)하고 치담(治痰) 치식(治食)하는 방제(劑)들을 겸하여 사용(用)하면서 '두루 갖추었다.' 하고 심히 칭찬(稱)하는 경우
이것이 어찌 그 본(本)을 따르고 그 표(標)를 따르는 것이겠는가?
이와 같이 한다면 소위 약(藥)으로 그 약(藥)을 다스리는 것(:상충한다는 의미)으로, 아직 바쁘지(:遑) 않다는 것이니, 또한 어찌 그 약(藥)이 병(病)에 이르기를 바라겠는가?
만약 우연히 병(病)이 나아도 이를 보(補)하는 힘(:力)이었는지, 이를 공(攻)하는 공(功)이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만약 낫지 않아도 또한 그 보(補)가 해(害)가 된 것인지, 그 소(消)가 해(害)가 된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 백발(:白頭)이 되도록 (약을) 저울질(:圭匕)하여도 돌팔이(:庸庸)로 늙어갈(:沒齒) 뿐...
그 허물(:咎)은 곧 정견(定見: 일정한 소견)이 없다는 것이니
그 치료(治)의 활용(用)에 정밀(精)하지 못하게 된다.
병(病)이 얕다면(:淺) 오히려 큰 피해(害)가 없겠지만,
그 안위(安危)가 짧은 순간(:擧動之間)에 달렸다면 곧 용약(用藥)이 비록 좋다 할지라도 만약 담대(:膽量)하고 용감(勇敢)하지 않으면 그 약(藥)이 병(病)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마치 배수차신(杯水車薪: 약과 병의 비율이 맞지 않다)과 같으니, 오히려 구제(濟)하지 못할까 염려(:恐)
하물며 (보사의) 양단(兩端)을 모두 고집(執)하면서 약(藥)을 함부로 투여(投)한다면 그 해(害)가 또한 어떠하겠는가?
백성들(:民)의 생명(:生)을 잘못 탐(耽)하는 자들이 모두 이러한 무리들(:輩)이다.
의사(:醫者)들에게 (치료를) 위임(任)하는 자들(:곧 병가)은 이를 깊이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치료(治)를 시행(施)하는 요점(要)은 반드시 정일(精一)하여 복잡(雜)하지 않아야 하니 ◆ , 이것이 최선(:至善)이다.
보(補)를 소(消)로 제(制)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순전히 보(補)를 조금씩 사용(用)하면서 차차 늘리는(:進) 것이 더 낫고,
공(攻)을 보(補)로 제(制)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순전히 공(攻)을 조금씩 사용(用)하면서 하나에서 둘로 늘리는 것이 더 낫다.
◆ 보(補)를 사용(用)하는 법(法)은 먼저 경(輕)하게 쓰다가 나중에 중(重)하게 쓰는 것이 더 귀(貴)하다.
◆ 공(攻)을 사용하는 법(法)은 먼저 완(緩)하게 하다가 나중에 준(峻)하게 하는 것이 필수(必須), 병(病)에 미치게 되면 그만 두어야(:已) 한다.
제(制)를 사용하여도 정밀(精)하지 못하면, 보(補)하여도 허(虛)를 치(治)할 수 없고 공(攻)하여도 실(實)를 제거(去)할 수 없다.
나의 이런 말에 실제와 거리가 멀다(:迂濶)고 충고하는(:譏) 자들이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
'고인(古人)들은 약(藥)을 사용(用)할 때는 매번 많으면 10~20미(味)에 이르는데, (고인과 그대 중에서) 무엇이 정일(精一)한 것인가?
어찌 고인(古人)들은 (당신처럼)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대는) 상제(相制)와 상사(相使)의 묘(妙)를 모르는 자이다.
하나만 고집(執)하여 불통(不通)한 것이니, 동원(東垣)의 법(法)을 모르는 자이다.' 한다.
상제(相制)란 그 독(毒)을 제지(制)하는 것
비유하자면 사람이 기이(奇異)한 인재(才)를 쓰려면 그 태과(太過)로 인한 피해(害)도 고려(慮)하여야 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반드시 미리 미미(微)한 것까지도 (알아서) 예방(防)하여야 하니, 총괄적(總)으로는 득중(得中: 꼭 알맞다)하려는 것일 뿐.
그렇지만 이것도 특별(特)히 부득이(不得已)한 병세(勢)에 간혹 한 번씩 있는 것.
처음부터 잘 알려져서(:顯見) 일상적인(:尋常) 방법(法)을 사용(用)하여도 좋은(:賢) 효과를 낼 수 있는데, 다시 또 스스로의 팔꿈치(:肘)를 끌어내리면(:掣) 안 될 것.
상좌(相佐) 상사(相使)란 혼자의 힘(:獨力)만으로는 (효과를) 이루기 어려울까 염려되어(:恐) 이를 (같이) 사용(用)하여 도와주는(:助) 것.
이 또한 진퇴(進退)를 서로 견제(牽制)하여 저절로 서로 모순(矛盾)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경(仲景)의 처방(方)
정간(精簡)하고 복잡(雜)하지 않으니, 많아야 몇 가지 약미(味)에 불과(不過).
이로 성현(聖賢)의 마음을 저절로 개괄적으로(槪) 알 수 있다.
만약 부득이(不得已: 어쩔 수 없다)하여 행(行)하는 중에 보(補), 보(補)하는 중에 행(行)을 사용(用)한다 하더라도 이 또한 그 형세(勢)가 당연(當然)한 경우이다.
예로 상한론([傷寒論])의 소시호탕(小柴胡湯)에서 인삼(人蔘)과 시호(柴胡)를 병용(並用)하고
도씨(陶氏)의 황룡탕(黃龍湯)에서 대황(大黃)과 인삼(人蔘)을 병용(並用)하는 경우이다.
이는 바로 정전(精專: 아주 정일하다)하고도 묘(妙)한 경우...
요즘 의사(醫)들이 혼용(混用)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러한 이치(理)를 잘 깨달을 수 있으면 비로소 진견(眞見)을 갖는 활발(活潑)한 공부(工夫)가 된다.
동원(東垣)의 처방(方)
10미(味)에서 20미(味) 정도를 사용하였는데, 이처럼 많이 사용(用)한 도(道)는 진실로 저절로 어떤 의도(意)가 있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이 그 법(法)을 본받으려면(:效) 반드시 그 처방(方)의 약미(味)를 총체적(總)으로 이해(:會)하여야 하고 그 처방(方)의 성질(性)을 총체적(總)으로 헤아려야(:計) 한다.
예로 어느 것은 많고 어느 것은 적으며, 어느 것은 전적인 주(主)로 하고 어느 것은 좌사(佐使)로 하여 그 기(氣)를 합(合)하여 사용(用)함으로써 일국(一局: 하나의 시스템)의 성(性)을 저절로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일국(一局)의 의도(意)를 이해(:會)할 수 있으면 이는 동원(東垣)의 마음을 얻은 것.
만약 두(頭)를 보고 두(頭)만 치료(治)하려 하거나, 각(脚)을 보고 각(脚)만 치료(治)하려 하거나, 심지어 3~4개의 단서(端)에만 집착(執)하여 그것들을 일개(一槪)로 혼용(混用)함으로써 요행(僥倖)을 기대(冀)하며서 여전히 '내가 동원(東垣)을 배운 사람이다.' 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동원(東垣)의 법(法)이 좋지(:善) 않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차라리 중경(仲景)을 본받겠다(:師)는 것.
내가 감히 동원(東垣)을 추종(:宗)하지 않는 것은 바로 (배우는 사람이) 그의 청명(淸明)함을 얻지도 못하면서 (그 식견이) 먼저 좁아질까(:隘) 염려(:恐)하기 때문이다.
그 잃을 것이 어찌 단지 방제(方劑) 하나에만 그치겠는가?
현명(明)한 자는 마땅히 이를 변별(辨)해야 함
一. 내경([內經])의 치법(治法)
기백(岐伯) "고(高)한 것은 이를 억(抑)하여야 하고, 하(下)한 것은 이를 거(擧)하여야 하며, 온(溫)한 것은 이를 청(淸)하여야 하고, 청(淸)한 것은 이를 온(溫)하여야 하며, 산(散)하는 것은 이를 수(收)하여야 하고, 억(抑)하는 것은 이를 산(散)하여야 하며, 조(燥)한 것은 이를 윤(潤)하게 하여야 하고, 급(急)한 것은 이를 완(緩)하게 하여야 하며, 견(堅)한 것은 이를 연(軟)하게 하여야 하고, 취(脆)한 것은 이를 견(堅)하게 하여야 하며, 쇠(衰)한 것은 이를 보(補)하여야 하고, 강(强)한 것은 이를 사(瀉)하여야 한다. 또 좌(佐)하여 유리(利)하게 하고, 화(和)하여 적절(:宜)하게 하여야 하니, 각각 그 기(氣)를 편안(安)하게 하여야 한다. 반드시 청(淸)하여지고 반드시 정(靜)하여지면 병기(病氣)가 쇠거(衰去)하니 종(宗: 근본)하는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치(治)의 대체(大體)이다."
기백(岐伯) "한(寒)하면 이를 열(熱)하게 하고, 열(熱)하면 이를 한(寒)하게 한다. 미(微)하면 역(逆)으로 하고, 심(甚)하면 종(從)으로 한다. 견(堅)한 것은 이를 삭(削)하고, 객(客)한 것은 이를 제(除)한다. 노(勞)하면 이를 온(溫)하게 하고, 결(結)하면 이를 산(散)하며, 유(留)하면 이를 공(攻)하고, 조(燥)하면 이를 유(濡)하게 하며, 급(急)하면 이를 완(緩)하게 하고, 산(散)하면 이를 수(收)하고, 손(損)하면 이를 익(益)하며, 일(溢)하면 이를 행(行)하게 하고, 경(驚)하면 이를 평(平)하게 한다. 상(上)하게 하고, 하(下)하게 하며, 마(摩)하고 욕(浴)한다. 박(薄)한 것은 겁(劫)하게 하며, 개(開)한 것은 발(發)하게 한다. 그 사(事)에 적합(適)하게 하니, 그 연고(故)로 인한다."
황제(黃帝)가 "역(逆)과 종(從)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
기백(岐伯)이 "역(逆)이란 정치(正治)이고, 종(從)이란 반치(反治)이다. 소(少)하게 할 것인지 다(多)하게 할 것인지는 그 사정(事)을 잘 보아야 한다."
황제(黃帝)가 "반치(反治)란 무엇을 말하는가?" .
기백(岐伯)이 "열(熱)의 원인(因)에 한(寒)을 사용(하되 온복(溫服))하는 경우, 한(寒)의 원인(因)에 열(熱)을 사용(하되 냉복(冷服))하는 경우이다. 또 색(塞)의 원인(因)에 색(塞: 즉 보제)을 사용하는 경우나, 통(通)의 원인에 통(通: 즉 하제)을 사용할 경우이다. 반드시 그 주(主)하는 바를 굴복(伏)시켜야 하니, 그 원인(因)이 우선(先)이다. 그 시작(始)은 같지만 그 마침(:終)은 다를 수 있다."
기백(岐伯)이 "병(病)이 내(內)에서 생(生)하면 먼저 그 음(陰)을 치(治)한 후에 그 양(陽)을 치(治)하여야 하니, 이에 반(反)하면 더 심(甚)하게 된다. 병(病)이 양(陽)에서 생(生)하면 먼저 그 외(外)를 치(治)한 후에 그 내(內)를 치(治)하여야 하니, 이에 반(反)하면 더 심(甚)하게 된다." .
一. 치병(治病)할 때의 용약(用藥)
본래 정전(精專: 정일하고 순전하다)을 귀(貴)하게 여기되, 특히 용감(勇敢)하여야 한다. ◆
오래된(:久遠) 병(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終始) 당연히 요(要)하는 것은 그 치(治)를 완(緩)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마땅한(:宜然) 것
만약 최근의 갑작스런(:新暴) 병(病)에 있어서 허실(虛實)의 진실(眞)을 이미 얻었으면 곧 마땅히 준제(峻劑)로 그 근본(本)을 직접 공(攻)하여서 이를 뽑아내면(:拔) 매우 쉽다.
만약 이 때 머뭇거리거나(:逗留) 두려워 쪼그라들면(:畏縮) 심고(深固)한 형세(勢)를 양성(養成)하게 된다.
사생(死生)이 이에 관계(係)되므로, 이것이 누구의 죄(罪)가 되겠는가?
진짜 리실(裏實)이 보이면 양격산(凉膈) 승기탕(承氣)으로 하고,
진짜 리허(裏虛)가 보이면 이중탕(理中) 십전대보탕(十全)으로 하며,
표허(表虛)이면 황기백출탕(芪朮)이나 소건중탕(建中)으로 하고,
표실(表實)이면 마황탕(麻黃) 소시호탕(柴) 계지탕(桂)의 종류(類)로 하여야 한다.
다만 일미(一味)를 군(君)으로 사용(用)하고
2~3미(味)를 좌사(佐使)로 사용하여 대제(大劑: 약량을 많이 하여 쓰는 방제)로 복용(:進)하여야 한다.
(그 분량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多多益善).
(분량을) 많이 사용(用)하는 도(道: 이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반드시 그 힘(:力)을 빌리는(:賴) 것에 있으니, (그 약의) 재료(料)가 무해(無害)하다면 바로 과감(:放膽)하게 이를 사용(用)하여야 한다.
성(性)이 완(緩)하면 수(數) 냥(兩: 10錢)을 사용(用)할 수 있고,
성(性)이 급(急)하면 수(數) 전(錢)을 사용할 수 있다.
3분(分), 5분(分), 7분(分)을 써야 한다는 설(說)은 또한 점명구수(點名具數: 이름을 적고 숫자만 맞추다)하는 아이들의 장난(:兒戲)에 불과(不過)
해분치극(解紛治劇)하는 인재(才)들의 거동(擧動)이 이와 같겠는가?
一. 병(病)을 치(治)하는 원칙(則)
당연히 사(邪)와 정(正)을 알아야 하고,
당연히 그 중(重)과 경(輕)을 저울질(:權)하여야 함.
실(實)을 치(治)하는 것
비유(譬)하자면 마치 논에서 김을 매는 것(:耘禾)과 같다. ◆
벼(:禾) 속에 피(:稗)가 생기면 이는 벼(:禾)의 적(賊)이다.
하나가 있으면 하나를 없애야 하고 둘이 있으면 둘을 없애야 하니, 이것이 김을 잘 매는(:耘) 것
만약 (피가) 하나 있는데 둘을 없앤다면 벼(:禾) 하나가 상(傷)할 것,
둘 있는데 넷을 없애면 벼(:禾) 둘이 상(傷)할 것.
만약 벼(:禾)를 정확히 모르고 모두 피(:稗)로 알고 다 없애려고 계획(:計圖)한다면 벼(:禾)는 남아나지 않을 것.
이처럼 공(攻)을 사용(用)하는 법(法)은 (사기와 정기의) 그 진(眞)을 먼저 살피는 것이 귀(貴)한 것이니, 곧 과(過)하게 할 수 없다.
허(虛)를 치(治)하는 것
비유(譬)하자면 마치 군량미(:餉)를 공급(給)하는 것과 같다. ◆
한 사람에게 1되(:升)을 주어야 한다면 열 사람은 10되인 1말(:斗)을 주어야 '군량미(:餉)가 족(足)하다.' 고 말할 것
만약 백 사람에게 1말(:斗)만 주거나, 천 사람에게 1휘(:斛 10말)만 주거나, 전군(:三軍)에 1단(担: 100근 곧 60Kg)이나 1석(石: 1가마 곧 80kg)의 양식(糧)만 준다면 어찌 살아날 수 있겠는가?
또 한 번이라도 군량미(:餉)를 계속 주지 않는다면 앞에 준 군량미(:餉)마저도 소용없는(:棄) 셈
하물며 중간(中)에서 깎아 줄여버린다면(:剋減)? (어찌 되겠는가?)
이처럼 보(補)를 사용(用)하는 법(法)은 그 경중(輕重)을 헤아리는(:度) 것이 귀(貴)하니, 곧 간략(簡)하게 줄이려 하면 곤란(難)하다.
一. 허실(虛實)의 치료(治)
실(實)하면 한(寒)을 잘 받아낼(:受) 수 있고 ◆
허(虛)하면 열(熱)을 잘 받아낼(:受) 수 있느니라. ◆
따라서 보(補)할 때는 반드시 온(溫)을 겸(兼)하여야 하고,
사(瀉)할 때는 반드시 양(凉)을 겸(兼)하여야 함.
량(凉)는 추(秋)의 기(氣)이고 음(陰)은 살(殺)를 주(主)하니, 만물(萬物)이 이를 만나면 곧 생장(生長)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원기(元氣)를 보(補)하려면 이것은 마땅한 바가 아니다.
량(凉)이 또한 보(補)에 불리(不利)하다면 한(寒)은 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곧 '화(火)가 성(盛)하면서 기(氣)가 허(虛)하면 마땅히 량(凉)으로 보(補)하여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 또한 화(火)로 인하여 잠시(暫) 사용(用)하는 것에 불과(不過)한 것
화(火)가 제거(去)되면 (복용을) 바로 중지(止)
이는 결코 허(虛)를 치료(治)하는 법(法)이 아니다.
혹자(或)는 '고한(苦寒)한 약물(物)이 음(陰)을 보(補)할 수 있다.'
내경([內經])에서는 "형(形)이 부족(不足)하면 기(氣)로 온(溫)하게 하고 정(精)이 부족(不足)하면 미(味)로 보(補)한다." .
기미(氣味)가 사람에게 서로 마땅하여야 보(補)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미(味)가 고(苦)하고 기(氣)가 열(劣)하면 사람에게 마땅하지 않다.
이로 보(補)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하였다.
내경([內經])에 "수위(水位)의 주(主)는 함(鹹)으로 사(瀉)하고 고(苦)로 보(補)한다." 는 등의 논(論)이 있긴 하지만, 오행(五行)의 세기(歲氣)의 미(味)를 이론(理)에 근거(據)하여 말한 것일 뿐
'맥(麥) 양육(羊肉) 행(杏) 해(薤)는 모두 고(苦)한 종류(類)이니, 이들은 고(苦)하면서 보(補)하는 것들이다.' 하였는데, 어찌 대황(大黃) 황백(黃栢)의 종류(類)처럼 기미(氣味)가 이처럼 고열(苦劣)한데도 보(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모두 옳은(:是) 이치(理)가 아니다.
왕응진(王應震)이 이르기를
"일점(一點)의 진양(眞陽)은 감(坎)의 궁(宮)에 붙어(:寄) 있으니,
뿌리(:根)를 튼튼히(:固) 하려면 감온(甘溫)한 미(味)를 사용(用)한다네.
감온(甘溫)은 유익(有益)하지만, 한(寒)은 보(補)할 수 없으니,
웃긴(:堪笑) 돌팔이(:庸醫)만 잘못(:錯) 사용(用)하여 공(功)을 이루려 하네."
이 한 마디로 모두를 덮으니(:蔽), 이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一. 보사(補瀉)하는 법(法)
보(補)도 병(病)을 치료(治)하고 사(瀉)도 병(病)을 치료(治)하는데, 다만 당연히 그 요점(要)을 알아야 한다.
최근 갑작스럽게(:新暴) 병(病)하면서도 젊고 건장한(:少壯) 자라면 곧 이를 공(攻)하고 이를 사(瀉)할 수 있으나, 공(攻)은 단지 잠시(暫) 사용(用)할 수 있는 것
쇠(衰)하고 오래된(:久) 병(病)에 누차(屢) 공(攻)하여 해(害)가 없을 수 있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공(攻)으로는 완만(緩)한 공(功)은 거둘(:收) 수가 없다. ◆
오래 끌어온(:延久) 병(病)이면서도 허약(虛弱)한 자라면 이치적(理)으로 이를 온(溫)하고 이를 보(補)하는 것이 마땅하므로, 보(補)를 항상(常) 사용할 수 있다.
근본(根本)이 이미 상(傷)하였는데 보(補)를 버리고서 복원(復元)할 수 있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보(補)로는 신속(速)한 효(效)를 구(求)할 수가 없다. ◆
그런데 여전히 중요(要)한 점이 있으니 임증(臨證)하여 치병(治病)할 때
허증(虛證)이 있는지 허증(虛證)이 없는지를 논(論)할 필요(必)가 없이, 다만 근거(據)할 수 있는 실증(實證)이 없으면서 병(病)하면 곧 당연히 보(補)를 겸하여 영위(營衛) 정혈(精血)의 기(氣)를 조(調). (:보사에서 보가 우선 ◆ )
또한 화증(火證)이 있는지 화증(火證)이 없는지를 논(論)할 필요(必)가 없이, 다만 근거(據)할 수 있는 열증(熱證)이 없으면서 병(病)하면 곧 당연히 온(溫)을 겸하여 명문(命門) 비위(脾胃)의 기(氣)를 배(培). (:온청에서 온이 우선 ◆ )
이것이 탄사(呑瀉: 곧 보사)하는 요령(要領)
이를 모른다면 모두 결렬(決裂)시키고 일에 실패(敗)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
一. 치법(治法)에도 역(逆)과 종(從)이 있으니, 한열(寒熱)에 진(眞)과 가(假)가 있기 때문
이는 내경([內經])에 있는 요지(旨)이다.
경(經)에 이르기를 "역(逆)이란 정치(正治)이고 종(從)이란 반치(反治)이다."
한(寒)으로 열(熱)을 치(治)하거나 열(熱)로 한(寒)을 치(治)하면 이는 정치(正治)이니, 정(正)이란 곧 역(逆: 반대의 성질)하는 것으로 하는 것
열(熱)로 열(熱)을 치(治)하거나 한(寒)으로 한(寒)을 치(治)하면 이는 반치(反治)이니, 반(反)이란 곧 종(從: 같은 성질)하는 것으로 하는 것
◆ 열약(熱藥)으로 한병(寒病)을 치료(治)하여도 한(寒)이 제거(去)되지 않으면 이는 (열의 근원이 되는) 화(火)가 없기 때문
마땅히 인삼(蔘) 숙지황(熟) 육계(桂) 부자(附)의 종류(:팔미 계통)로 명문(命門)을 치(治)
이는 왕태업(王太僕: 왕빙)이 말한 '화(火)의 원(源)을 보익(益)하여 음예(陰翳)를 소(消)한다.'는 것
이 또한 정치(正治)하는 법(法)
또 열약(熱藥)으로 한병(寒病)을 치료(治)하여도 한(寒)이 물러가지(:退) 않고, 도리어 한량(寒凉)한 것을 사용(用)하여 낫는 경우가 있으니, 이는 바로 가한(假寒)의 병(病)
이는 한(寒)으로 종치(從治)하는 법(法)
◆ 한약(寒藥)으로 열병(熱病)을 치료(治)하여도 열(熱)이 제거(除)되지 않으면 이는 (한의 근원이 되는) 수(水)가 없기 때문
그 치(治)는 당연히 신(腎)에 있으니 육미환(六味丸)의 종류(類)로
이는 왕태업(王太僕)이 말한 '수(水)의 주(主)를 장(壯)하여 양광(陽光)을 진(鎭)한다.'는 것
이 또한 정치(正治)하는 법(法)
또 한약(寒藥)으로 열병(熱病)을 치료(治)하여도 열(熱)이 낫지 않고 도리어 인삼(蔘) 건강(薑) 육계(桂) 부자(附) 팔미환(八味丸)의 속(屬)을 사용(用)하여 낫는 경우가 있으니, 이는 곧 가열(假熱)의 병(病)
이는 열(熱)로 종치(從治)하는 법(法)
또한 소위 '감온(甘溫)으로 대열(大熱)을 제(除)한다.'는 것
다만 요즘 사람들(:今人)은 허(虛)한 자가 많고 실(實)한 자가 적으므로,
진한(眞寒) 가열(假熱)의 병(病)은 극히 많고 ◆ ,
진열(眞熱) 가한(假寒)의 병(病)은 조금만 보일 뿐
一. 병(病)을 탐색(探)하는 법(法)
임증(臨證)할 때 허실(虛實)을 밝히기가 어렵거나 한열(寒熱)을 변별(辨)하기가 어렵거나 병(病)이 애매모호(:疑似之間)하거나, 보(補)할지 사(瀉)할지 마음이 정(定)하여지지 않으면 곧 당연히 이 법(法)을 먼저 사용(用)
허(虛)라고 의심(疑)되어 마음으로는 보(補)를 사용(用)하려고 하지만 이를 결정(決)하지 못할 때는 가볍게(:輕淺) 소도(消導) ◆ 하는 방제(劑)에서 몇 가지 약미(味)만을 순전(純)히 사용(用)하여 먼저 탐색(探)
이 때 만약 소(消)하여도 맞지 않다면(:不投) 곧 진짜 허(虛)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실(實)이라고 의심(疑)되어 마음으로는 공(攻)을 사용(用)하려고 하지만 이를 결정(決)하지 못할 때는 감온(甘溫)하여 순전(純)히 보(補) ◆ 하는 방제(劑)에서 몇 가지 약미(味)만을 가볍게(:輕) 사용(用)하여 먼저 탐색(探)
이 때 만약 보(補)하여도 체(滯)를 느낀다면 곧 실사(實邪)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한(假寒)은 약간만 온(溫)하게 하여도 반드시 조번(躁煩)이 나타나고,
가열(假熱)은 약간만 한(寒)하게 하여도 반드시 구오(嘔惡)가 더하여짐.
이러한 병정(病情)들을 잘 탐색(探)하면 마음이 저절로 정(定)해진다.
경(經)에 "(반응이) 있어도 (있는 대로) 이를 구할 수 있고, (반응이) 없어도 (없는 대로) 이를 구(求)할 수 있다." 하였고,
"가(假)이면 반(反)으로 한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함
다만 (시험하여) 탐색(探)하는 법(法)을 사용(用)하려면 극(極)히 마땅히 정간(精簡)하여야 하니, 난잡(:雜亂)하면 안 된다.
정간(精簡)하면 그 진위(眞僞)를 바로 변별(辨)되지만 난잡(:雜亂)하면 그 시비(是非)를 증빙(憑)하기가 어려움.
이는 애매(:疑似)한 중에 활용(活)하는 법(法)이어서 반드시 부득이(不得已)할 때에만 사용(用)할 것
一. 의진([醫診])에서의 치법(治法)
"담(痰)이 보인다고 담(痰)을 치(治)하지 말고,
혈(血)이 보인다고 혈(血)을 치(治)하지 말게나.
한(汗)이 없다고 한(汗)을 발(發)하지 말고,
열(熱)이 있다고 열(熱)을 공(攻)하지 말게나.
천(喘)이 생(生)한다고 기(氣)를 모(耗)하지 말고,
정(精)이 유(遺)한다고 설(泄)을 삽(澁)하지 말게나.
개개(個)의 (병의) 취지(趣)에 분명(明)하면
비로소 의사(醫) 중의 호걸(傑)이라네.
의술(醫)을 행(行)할 때 기(氣)를 알지 못하면
병(病)을 치(治)할 때 무엇을 근거(據)로 하는가?
길(:道) 가던 사람조차 웃으리니(:堪笑),
지음(知音)하는 곳에 이르지 못하였다네."
이 시(詩)의 의도(意)을 보자면 모두 '(직접) 치료(治)하지 않는 치료(治)'를 말함
바로 내경([內經])에서 그 근본(本)을 구하는 이치(理)일 뿐
이는 진실로 격언(格言)
'의술(醫)을 행(行)할 때 기(氣)를 알지 못하면 병을 치(治)할 때 무엇을 근거(據)로 하는가?'
이 일연(一聯)은 또한 심히 이치(理)가 있는 것
천지(天地)의 도(道)에서,
양(陽)은 기(氣)를 주(主)하므로 선천(先天)이고,
음(陰)은 형(形)을 이루므로(:成) 후천(後天)
따라서 대개 상하(上下)의 승강(升降)이나 한열(寒熱)의 왕래(往來)나 회명(晦明)의 변이(變易)나 풍수(風水)의 유행(留行)은 기(氣)로 인하여 동정(動靜)하지 않음이 없다.
사람의 기(氣)도 또한 이로 말미암는다.
유여(有餘)한 병(病)은 기(氣)의 실(實)로 말미암고,
부족(不足)한 병은 기(氣)의 허(虛)로 인함.
풍한(風寒) 적체(積滯) 담음(痰飮) 어혈(瘀血)의 속(屬)은 기(氣)가 행(行)하지 않으면 사기(邪)가 제거(除)되지 않으니, 이는 기(氣)의 실(實)
허로(虛勞) 유루(遺漏) 망양(亡陽) 실혈(失血)의 속(屬)은 기(氣)가 고(固)하지 못하여 원기(元)가 회복(復)되지 않으니, 이는 기(氣)의 허(虛)
사화(瀉火)라고 말하지만 실은 기(氣)를 강(降)하는 것
보음(補陰)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기(氣)를 생(生)하는 것
'기(氣)가 취(聚)하면 살고 기(氣)가 산(散)하면 죽는다.'는 것이 이를 말하는 것
따라서 병(病)이 생(生)하는 것은 기(氣)를 벗어날 수 없고,
의사(醫)가 병(病)을 치(治)하는 것도 기(氣)를 벗어날 수 없다.
다만 귀(貴)하게 여길 것은 기(氣)의 허실(虛實)과 및 기(氣)가 생(生)하는 곳을 알아야 할 뿐이다.
근래(近)에 천박(淺)한 무리들(:輩)
하나같이 임증(臨證)할 때 '내상(內傷)이다. 외감(外感)이다.' 혹 '담역(痰逆)이다. 기체(氣滯)다' 말한다.
이것이 의가(醫家)의 팔자결(八字訣: 여덟 글자로 된 비결)이란 말인가?
이 여덟 글자(: 내상 외감 담역 기체)뿐이라면 어찌 팔진(八陣)이 필요(必)하겠는가?
또 뿌리를 세우고 원천을 맑히려(:端本澄源) 하는데 어찌 거리가 먼(:迂闊) 것을 구하여야(求)할 필요(必)가 있겠는가?
단지 사람들이 피해(害)를 받아서 두려워하지(:畏) 않을까 염려(:恐)된다.
|
첫댓글 병(病)을 보고 치료(治)를 실시(施): 정일(精一)함을 귀(貴)하게
병(病)을 치(治)하는 도(道)
'한(寒)이다.' 라고 확실(確)히 알아지면 그 한(寒)을 산(散)
'열(熱)이다.' 라고 확실(確)히 알아지면 그 열(熱)을 청(淸)
요점(要)만 얻었다면 단지 1~2미(味)만 사용(用)하여도 발거(拔)
요즘 의사(醫)들 허물(:咎)은 정견(定見: 일정한 소견)이 없다는 것
보(補)를 소(消)로 제(制)하는 것보다 차라리 순전히 보(補)를 조금씩 사용(用)
공(攻)을 보(補)로 제(制)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순전히 공(攻)을 조금씩 사용(用)
보(補)를 사용(用)하는 법(法)은 먼저 경(輕)하게 쓰다가 나중에 중(重)하게
공(攻)을 사용(用)하는 법(法)은 먼저 완(緩)하게 하다가 나중에 준(峻)하게
내경([內經])의 치법(治法)
그 사(事)에 적합(適)하게 하니, 그 연고(故)로 인한다.
역(逆)이란 정치(正治)
종(從)이란 반치(反治)
반치(反治)
열(熱)의 원인(因)에 한(寒)을 사용하는 경우
한(寒)의 원인(因)에 열(熱)을 사용하는 경우
색(塞)의 원인(因)에 색(塞: 즉 보제)을 사용하는 경우
통(通)의 원인에 통(通: 즉 하제)을 사용할 경우
특히 용감(勇敢)하여야 한다.
진짜 리실(裏實)이 보이면 양격산(凉膈) 승기탕(承氣)
진짜 리허(裏虛)가 보이면 이중탕(理中) 십전대보탕(十全)
표허(表虛)이면 황기백출탕(芪朮)이나 소건중탕(建中)
표실(表實)이면 마황탕(麻黃) 소시호탕(柴) 계지탕(桂)
일미(一味)를 군(君)으로 사용(用)
2~3미(味)를 좌사(佐使)로 사용(用)
(분량을) 많이 사용(用)하는 도(道)
그 힘(:力)을 빌리는(:賴) 것
(그 약의) 재료(料)가 무해(無害)하다면 바로 과감(:放膽)하게 이를 사용(用)
성(性)이 완(緩)하면 수(數) 냥(兩: 10錢)을 사용(用)
성(性)이 급(急)하여도 수(數) 전(錢)을 사용
병(病)을 치(治)하는 원칙(則)
사(邪)와 정(正)을 알아야 하고,
중(重)과 경(輕)을 저울질(:權)하여야 함
실(實)을 치(治)하는 것
마치 논에서 김을 매는 것(:耘禾)과 같다.
과(過)하게 할 수 없다.
허(虛)를 치(治)하는 것
마치 군량미(:餉)를 공급(給)하는 것과 같다.
간략(簡)하게 줄이려 하면 곤란(難)하다.
一. 허실(虛實)의 치료(治)
실(實)하면 한(寒)을 잘 받아낼(:受) 수 있고
허(虛)하면 열(熱)을 잘 받아낼(:受) 수 있다.
보(補)할 때는 반드시 온(溫)을 겸(兼)하여야 하고,
사(瀉)할 때는 반드시 양(凉)을 겸(兼)하여야 한다.
보사(補瀉)하는 법(法)
공(攻)은 단지 잠시(暫) 사용(用)할 수 있는 것
공(攻)으로는 완만(緩)한 공(功)은 거둘(:收) 수가 없다.
보(補)는 항상(常) 사용할 수 있다.
보(補)로는 신속(速)한 효(效)를 구(求)할 수가 없다.
열약(熱藥)으로 한병(寒病)을 치료(治)하여도 한(寒)이 제거(去)되지 않으면 화(火)가 없기 때문
인삼(蔘) 숙지황(熟) 육계(桂) 부자(附)의 종류(:팔미 계통)로 명문(命門)을 치(治)
'화(火)의 원(源)을 보익(益)하여 음예(陰翳)를 소(消)한다.'는 것
정치(正治)
열약(熱藥)으로 한병(寒病)을 치료(治)하여도 한(寒)이 물러가지(:退) 않고, 도리어 한량(寒凉)한 것을 사용(用)하여 낫는 경우
가한(假寒)의 병(病)
종치(從治)
한약(寒藥)으로 열병(熱病)을 치료(治)하여도 열(熱)이 제거(除)되지 않으면 이는 수(水)가 없기 때문
육미환(六味丸)의 종류(類)
'수(水)의 주(主)를 장(壯)하여 양광(陽光)을 진(鎭)한다.'는 것
정치(正治)
한약(寒藥)으로 열병(熱病)을 치료(治)하여도 열(熱)이 낫지 않고 도리어 인삼(蔘) 건강(薑) 육계(桂) 부자(附) 팔미환(八味丸)의 속(屬)을 사용(用)하여 낫는 경우
가열(假熱)의 병(病)
종치(從治)
'감온(甘溫)으로 대열(大熱)을 제(除)한다.'는 것
요즘 허(虛)한 자가 많고 실(實)한 자가 적다.
가열(假熱)은 극히 많고 가한은 조금
병(病)을 탐색(探)하는 법(法)
1. 허(虛)라고 의심(疑)
가볍게(:輕淺) 소도(消導)하는 약미(味)
소(消)하여도 맞지 않다면(:不投) 곧 진짜 허(虛)
2. 실(實)이라고 의심(疑)
감온(甘溫)하여 순전(純)히 보(補)하는 약미(味)
보(補)하여도 체(滯)를 느낀다면 곧 실(實)
3. 가한(假寒)은 약간만 온(溫)하게 하여도 반드시 조번(躁煩)
4. 가열(假熱)은 약간만 한(寒)하게 하여도 반드시 구오(嘔惡)
탐색(探)하는 법(法)을 사용(用)하려면 극(極)히 정간(精簡), 난잡(:雜亂)하면 안 된다.
부득이(不得已)할 때에만 사용(用)
모두 기(氣)로 인하여 동정(動靜)하지 않음이 없다.
유여(有餘)한 병(病)은 기(氣)의 실(實)
부족(不足)한 병은 기(氣)의 허(虛)
풍한(風寒) 적체(積滯) 담음(痰飮) 어혈(瘀血)의 속(屬)은 기(氣)의 실(實)
허로(虛勞) 유루(遺漏) 망양(亡陽) 실혈(失血)의 속(屬)은 기(氣)의 허(虛)
사화(瀉火)는 기(氣)를 강(降)하는 것
보음(補陰)은 기(氣)를 생(生)하는 것
'기(氣)가 취(聚)하면 살고 기(氣)가 산(散)하면 죽는다.'
병(病)이 생(生)하는 것은 기(氣)를 벗어날 수 없고,
의사(醫)가 병(病)을 치(治)하는 것도 기(氣)를 벗어날 수 없다.
귀(貴)하게 여길 것은 기(氣)의 허실(虛實)과 및 기(氣)가 생(生)하는 곳을 알아야 할 뿐
요약
1. 병을 치하는 도
2. 반치하는 경우
3. 군신좌사 및 분량의 도
4. 가한 가열에 대한 치료
5. 허와 실에 대한 치료 비유
6. 병을 탐색하는 법
7. 치병과 치기
◆ 정일함이 귀하다.
- 1~2가지 약미 사용하여도 병을 제거할 수 있다.
보는 경 -> 중하게 증가
사는 완 -> 준하게 감소
반치
용감하게 사용
치실: 과하게 사용할 수 없다. 김매기. 한을 잘 받는다. 잠시 사용
치허: 줄이면 곤란하다. 군량미 지급. 열을 잘 받는다. 오래 사용
한병에 열약으로도 한이 제거 안되는 경우 - 열의 뿌리인 화가 없어서 - 팔미 계통
열병에 한약으로도 열이 제거 안되는 경우 - 한의 뿌리인 수가 없어서 - 육미 계통
허실 탐색법
허: 소도하는 약 - 맞지 않으면 허
실: 순보하는 약 - 맞지 않으면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