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할아버지
을숙도공원을 잇는 낙동강하구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가락타운 아파트단지가 우리 동네이다. 그리고 우리 동네를 자주 오가는 사람 가운데 유명한 분으로 우산할아버지가 계신다.
이미 일흔이 넘은 고령의 할아버지이신데도 일을 무지하게 많이 하신다. 키도 껑충하게 크신데다 시력도 좋으셔서 우리처럼 안경을 끼지 않고도 멀리서 우리를 알아보신다.
할아버지는 길거리에 버려진 헌우산들을 말끔하게 고쳐서 비오는 날마다 학교 앞에서 우산이 없어 쩔쩔 매는 아이들에게 우산을 하나씩 나눠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할아버지가 수십 개의 우산을 준비하고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기다리시기 때문에 우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할아버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아파트와 주변 일대의 상가를 돌며 폐지와 박스 등을 수거하셨다.
리어카에 그득 실린 폐지를 힘겹게 끌고 가는 할아버지를 발견했을 경우 우린 할아버지의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주곤 했다. 그렇게 해서 할아버지랑 친해진 뒤로 나와 몇몇 친구들은 에덴공원 앞에 자리한 할아버지 집에도 종종 놀러갔었다.
할아버지 집에는 정말 우산이 많았다. 한번 쓰다 버린 비닐우산도 많이 모아놓으셨지만, 새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멀쩡한 우산도 수백 개는 족히 되리라 여겨질만큼 많았다.
할아버지는 비가 그치고 나면 길거리에 못쓰게 된 우산들이 즐비하게 버려지고 있다고 하셨다. 어떤 날은 한꺼번에 스무 개도 넘는 우산을 줍기도 하셨다는데, 대부분 조금만 수리하면 얼마든지 새우산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라 하셨다.
“요즘엔 너무 풍족한 것도 탈이라. 예전 같으면 너덜거리는 비닐우산도 버리지 않고 다음에 또 쓸 요량으로 집에 가져갔는데, 이젠 조금만 망가지면 길거리 아무데나 마구 버리지.”
“할아버지가 쓸 것도 아니고 팔 것도 아닌데, 뭐 때매 주워다가 일일이 고쳐서 남들한테 주는데예.”
“그냥 버려지면 쓰레기라 처치 곤란하지만, 봐라, 몇 군데만 손질하면 새우산처럼 멀쩡하게 변하잖니. 내가 조금 힘들여서 고쳐놓으면 쓰레기도 덜거고, 또 물자절약도 되잖니. 그리고 갑자기 비가 올 때 당장 비를 막을 수 있는 우산이 공짜로 생긴다면, 또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겠니.”
할아버지가 사는 두 평 남짓의 작은 방에는 겨우 몸 하나 비집고 누울 공간을 빼고는 온갖 우산들과 온갖 연장들로 꽉 차 있었다. 그래도 물건이 넘쳐나서 한쪽 벽에는 여러 개의 선반들이 벽을 가로질러 걸려있었고, 그 선반 위에도 많은 물건들이 빼곡하게 놓여있었다.
할아버지 방안엔 만물상처럼 없는 물건이 없었다. 망치며 톱이며 바이스며 펜치며 그런 연장들도 종류별로 얼추 다 갖춘 듯이 보였고, 못이나 나사 종류며 철사며 웬만한 자재들도 철물점 못잖았다.
처음 할아버지가 사는 방안에 들어섰을 땐 할아버지 특유의 노린내와 어두컴컴함으로 머물기를 꺼렸지만, 할아버지와 친해지면서 그런 냄새도 어둠도 친숙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게도 친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그런 분위기에 진작 익숙해졌을 거라 여겨졌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젊었을 땐 제법 솜씨 좋은 사출금형 기술자였노라 하셨다. 30년 넘게 쇠를 깎아 금형을 만드셨고, 하찮은 실수로 유압프레스에 찍혀 손가락 두 개를 잃으셨다고 했다.
라디오 케이스부터 선풍기 날개, 자동차 시그널램프, 버스 손잡이 등 주로 플라스틱제품을 사출성형하기 위해 필요한 금형을 제작하셨다는데, 손재주가 여간 아니면 할 수 없는 고급기술이라 자랑하곤 하셨다.
“그땐 금형기술자를 일류로 쳤어. 대우도 제법 좋았지. 어떤 물건이든 금형가다가 없으면 찍어낼 수가 없었거든. 그리고 금형가다란 물건의 형태가 찍혀 나오게끔 쇠를 아주 정교하게 깎아서 만들었는데, 영쩜일밀리0.1mm의 오차도 허용하질 않았어.”
“그럼 할아버진 쇠로도 인형같은 걸 만들 수도 있겠네예.”
“만들 수야 있겠지만, 쇠로 인형을 만들면 어찌 갖고 놀려고?”
“그럼 로봇이나 장난감자동차는 만들 수 있겠네예.”
“그런 건 오히려 장난감가게에 가면 수두룩하지.”
“할아버진 왜 혼자 사시는데예?”
“내게도 한때는 마누라도 있었고, 또 너보다 훨씬 큰 아들도 둘이나 있었어. 아마 살아있었더라면 지금쯤 손자들도 낳았겠지. 그러니까 18년쯤 전인 8월14일인가 시골에 다녀오던 길이었는데, 영동고속도로에서였지. 그날따라 비가 엄청 쏟아지던 날이었어. 날도 어두운데다 시야도 굉장히 좋질 않았고…. 갑자기 봉고차 한 대가 내 차 앞으로 끼어들면서 속도까지 늦췄던 거야. 순간적으로 피한다는 것이 중앙선을 침범하게 되면서 차체가 휘청거리더라고. 그리곤 바로 그때 마주 오던 대형트레일러가 내 차 뒷부분을 그대로 깔아뭉갠 거지. 그 때문에 뒷자리에 탄 아들 둘하고 옆자리에 탄 할망구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한 거지. 그날따라 어찌나 장대비가 그리도 내리던지 사고를 미처 발견 못한 여러 대의 차들이 더 와서 부딪힌 거지.”
“할아버지도 그때 다치셨고예?”
“나만 아주 멀쩡했어. 조금 긁힌 것 외에는…. 나도 그때 차라리 함께 죽었더라면….”
할아버지는 먼 곳을 응시하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셨다.
“그 뒤론 비만 억수로 쏟아지면 그때 일이 자꾸 떠오르고, 비만 개면 길거리로 나가 버려진 우산들을 줍기 시작했지.”
할아버지는 비가 오다 그치면 거리에 버려진 낡은 우산들을 주워 모아 그걸 일일이 고쳐 우산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 하셨다.
“요즘엔 쓸 만한 우산들도 살이 조금 꺾였다고 예사로 버리더구나. 그것도 낭비여 낭비….”
“근데요. 할아버지. 우산을 공짜로 나눠주면 할아버진 뭘 먹고 살아예?”
“응 난 폐지나 박스 등을 주워서 먹고 살지.”
“그렇지만, 우산 고치는 데도 돈이 들테고…. 또 시간도 많이 뺐기잖아예.”
“그렇지만 내가 고친 우산을 너희들이 쓰고 비를 피해 갈 수 있음, 난 그 걸로도 만족해.”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띄질 않았다. 그렇게 3일인가 지났을 때, 우리 몇몇은 할아버지집을 찾아갔다. 할아버지는 집에 계셨고, 그 좁은 방안에 홀로 누워계셨다.
“할아버지 어디 아프십니꺼?”
“응, 몸살이 난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셨지만 힘에 부쳤던지 일어나질 못하셨다.
“할아버지 그냥 누워 계시이소. 저희가 앞으론 종종 놀러올께예.”
“그래, 고맙다.”
그리고 3일쯤 지나 우리가 할아버지 집을 다시 찾았을 땐 할아버지가 안 계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저녁 무렵 가락타운아파트 관리실의 안내방송을 통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락타운 입주민들께 알립니다. 우산할아버지로 불리던 할아버지께서 오랜 지병을 앓아오시다 오늘 오후 4시15분경 신평동 강동병원에서 끝내 운명하셨습니다. 우산할아버지는 지난 몇 년 동안 비오는 날이면 많은 우산을 우리 단지 어린이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여온 분으로써, 그분의 은덕을 기리고자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영결식에 많은 주민들의 참석을 적극 권유하는 바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나는 내 친할아버지를 잃은 것 이상으로 크나큰 슬픔을 느꼈고, 그로인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꺽꺽거리는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할아버지, 엉… 엉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