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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방법론, 고도를 기다리는 심상운 시인
김순진
차 례
1. 심상운의 시적 동기
2. 심상운의 초기 시 - 탄압
3. 심상운의 중기 시 – 이미지
4. 심상운의 후기 시 – 방법론
5. 심상운의 디지털시와 하이퍼시
6. 맺음말
1. 심상운의 시적 동기
심상운 시인의 고향은 강원도 춘천이다. 춘주초등학교와 춘천중학교,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심상운 시인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와 깊은 인연을 쌓아간다. 춘천고등학교에서 국어 선생님이셨던 이희철李禧哲 시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당시 이희철 선생님은 청년시인으로서 감수성이 풍부한 사춘기의 학생들에게 문학의 꿈을 심어주시는 분이었다. 이희철 시인의 지도와 영향을 받아서 배출된 춘천고등학교 동기들 중에는 이승훈, 이무상, 유장균, 심상운 시인과 전상국 소설가가 있다. 그 중에 유장균은 초등학교부터 친구였다. 유장균은 그림 수채화와 시 짓기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유장균의 집 다락방에는 1930년대에 발간된 문학서적이 쌓여 있었는데, 그의 형이 읽던 책들이라고 하면서 심상운에게만 보여주었다고 한다. 1958년 발간 된 춘고 교지 <소양강>에 시를 발표한 바 있는 유장균은 고려대 국문과에 진학하여 2학년 말인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가작으로 입선한다. 그는 대학졸업 후 지방 mbc기자로 사회활동을 하다가 미국 LA로 이민을 떠나서 문학과는 인연을 끊은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1990년대 초에 <현대시>로 등단하고 시집 3권을 남기고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심상운 시인은 유장균의 시에 대하여 “그는 역동적인 이미지의 시로 독자들을 긴장시키는 시를 남겼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LA에서는 그의 기일이 되면 문우들이 그를 기리는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춘천문인협회 회장을 지낸 이무상은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다. 그도 고교 때 교지 <소양강>에 글을 발표하고 시작활동을 하였으며, 1970년대 중반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40여 년간 향토시인으로 고향 춘천을 지키고 있다. 심상운은 1980년대 초, 이무상이 주축이 되어 창립한 <삼악시> 동인에 가입하여 10년간 동인활동을 하였는데, 그것을 인연으로 이은무, 이영춘 등 고향시인들과 교류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심상운은 문학보다는 미술에 더 마음이 끌렸고 화가畵家를 동경하였다. 그래서 그림그리기에 열중했다. 1958년, 춘천고등학교에서 소풍갈 때 스케치북을 가지고 가서 풍경화를 그리게 했다. 미술 시간에도 도회지의 거리에 나가서 자유롭게 스케치를 하게하고 그때 그린 그림들을 뽑아서 교내에 전시했는데, 그의 그림도 뽑혀서 몇 달 동안 교실 벽에 붙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매일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가 여가 시간에 택한 것이 독서였다. 라디오도 TV도 없던 시절, 문학에 대한 동경에서가 아니라 그냥 재미에 빠져서 독서삼매에 몰입했던 것이다. 책은 주로 헌 책방에서 밑돈을 깔아 놓고 빌려보았다. 이때 그는 헤르만 헤세, 톨스토이, 스탕달 등 외국의 유명작가들을 만났으며, 이광수, 방인근, 나도향, 김동인, 김말봉 등의 소설을 남포등을 밝히고 밤을 새워 가며 읽게 된다. 그런 폭풍 같은 독서가 훗날 심상운 시인의 문학적 토대가 되었으며 문학에 입문하게 된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심상운은 대학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게 된다. 심상운 시의 길잡이는 박목월의 『보랏빛 소묘』, 유치환의 『구름에 그린다』, 장만영의 『이정표』등, 당시에 발간된 시인들의 자작시 해설집이었다. 그때 심상운은 장만영의 시에 매혹된다. 시를 언어의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장만영의 시가 그림을 좋아하는 심상운의 취향에 맞았기 때문이다. 장만영의 시에 보이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 관념과 형상의 조화는 장만영 시인이 이미지의 조형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상운은 장만영 시인의 직접지도는 커녕 그분을 만나 뵙지도 못했다고 섭섭함을 회고한다. 심상운 시인의 대학 친구로는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신세훈 시인이 있다. 신세훈 시인과의 인연은 1960년 4월 중앙대학교 기숙사 12호실에서 만난다. 신세훈 시인은 연극영화과 신입생이었고 심상훈 시인은 국어국문학과 국문과 신입생으로 한 방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심상운 시인은 신세훈 시인과 만난 인연으로 해서 평생 시의 길을 걷게 된 것 같다고 회고한다. 신세훈 시인은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었다. 대학 2학년 학생으로 시인이 된 것이다. 당시 중앙대학교의 문학활동은 신세훈 시인의 신춘문예 등단으로 인하여 더욱 활화산같이 타올랐다. 한편 심상운 시인은 대학시절 문학동인회보다는 여성잡지 <여원女苑>의 독자란박목월 지도, 중앙대학교 문리대 교지 <문경>, <중대신문> 등에 시를 발표하면서 혼자서 사색하고 독서하고 창작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던 중4학년 말 <중대신문>에서 공모하는 현상문예에 응모하여 당선됨으로써 학생시인으로 인정받는다. 그때 심사위원은 조병화 시인이었는데, 당선작 2편이 뽑혔다. 함께 당선된 학생은 영문과 4학년이었던 노향림 시인이었다.
1964년 대학 졸업 후, 10년간은 젊은 심상운에게 있어서 문학의 공백기였다. 군대, 취직, 등 사회입문의 과정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 공백기를 지나 1973년 11월 월간 <시문학>에 조병화 시인의 첫 번째 추천을 받고, 1974년 2월에 <시문학>에 완료추천을 받아서 등단한다. 완료 추천인은 문덕수 시인이었다. 완료추천작 「목공환상木工幻想」은 관념을 배제한 사물성의 이미지 감각의 시로서 주목받는다. 심상운 시인은 문덕수 시인을 만나면서 대 전환기를 맞는다. 그래서 심상운 시인은 문덕수 시인을 문학수업의 큰 스승으로 여긴다. 1974년 <시문학> 등단 후 30여년 무언의 지도와 토론을 통해 새로운 시론을 펼쳐 보이시는 문덕수 선생님께 크나큰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1987년부터 문덕수 시인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시문학>에 시 월평을 쓴 것은 심상운 시인에게 큰 변혁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현대시의 시론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특별히 2005년 6월에 <시문학>에 연재하여 2008년 3월에 마친 한국현역시인 100인에 대한 비평과 감상, 2006년에 발표한 「탈관념 시의 이해」, 「디지털시의 이해」 요즘에 집중하고 있는 ‘하이퍼시’에 대한 시론도 모두 문덕수 시인의 지도와 감수로 이루어진 성과물이다.
문덕수 시인과의 첫 만남은 1970년대 초 심상운 시인이 <중대부속여중> 교사로 재직할 때로 거들러 올라간다. 그때 심상운 시인은 문예반 지도교사로 한국일보 빌딩 강당에서 중고연합 ‘문학의 밤’을 기획하고 연출하게 되는데, 초청연사로 모실 분을 의논하다가 40대의 문덕수 시인을 모시게 된다, 시인을 지망하는 젊은 문예반 교사로서 문덕수 시인의 시집 『선·공간』이 준 충격이 너무나 신선했기 때문에 그는 불현 듯 문덕수 시인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2. 심상운의 초기시 – 탄압
1974년 문덕수 시인의 추천에 의해 <시문학>으로 등단한 그는 무려 7년이 지나서야 1981년에 첫 시집『고향산천』을 상재하게 된다. 그가 등단한 1974년은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저격당한 해이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배고픔과 가난이 국민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으므로 박정희 정권이 1972년 유신이라는 미명하에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반민주형태의 집권을 해도 무감각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야말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이 있었다. 1979년 박정희가 저격을 당해 오랜 독재가 끝나는 듯 했지만 더욱 심한 독재가 밀려왔다. 심상운 시인이 첫 시집 『고향산천』을 낸 1981년 당시는 독재와 비주주적 행태에 앞서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국민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첫 시집 『고향산천』에는 민족의 현실에 대한 비판과 분단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저항의식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발간되자마자 5공 정권에 의해 이념서적으로 분류되어 판금販禁이 되고, 금서禁書가 되었다. 당시 금서가 된 시집은 양성우의『겨울공화국』김지하의『타는 목마름으로』조태일의『고여 있는 시와 움직이는 시』와 심상운의 시집『고향산천』이었다. 그 후 1985년 6월 8일 해금 조치가 있을 때까지 심상운 시인은 노량진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의 요시찰 주인공이 되어있었다. 그들은 수시로 학교에 들려 심상운 시인의 언행을 점검하고 보고서를 올렸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교장은 시와 관계가 먼 법과 출신이지만『고향산천』을 탐독하였고, 심상운의 시에 감동했다며 중국음식점에서 조촐하게 출판기념회를 열어주었다. 이 시집으로 인해 발행처인 <시문학사>와 발행인 김규화 시인은 문화공보부로부터 압박을 당했고, 그로 인해 심상운 시인은 “정신적인 고통과 불길한 위험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래서 시집 발간 후 그이 시는 서평이나 평론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런 고초를 겪은 덕일까, 그렇지만 1981년 12월 22일자 <동아일보> 분야별 평론가 5인이 선정한 <문화계 ’81 인물 5’- 올해의 시단 5인>의 후보로 올라가서 문학적인 면에서는 뜻밖의 보람을 남겼다. 그리고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에서 발간한 1995년 봄『펜 문학』의 특집 <해방 50년의 시>에서 박철희 교수문학평론가,서강대 교수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시의 경향을 거론하면서 “정치적인 폭력, 빈부의 격차, 계층의 갈등, 공동체 파괴와 이에 따르는 인간관계의 왜곡이 이 시대 시의 대표적인 주제 내지 소재로 나타났다”고 했고, 시인으로는 “김지하, 고은, 신경림, 이성부, 황동규, 김명수, 강은교, 조태일, 양성우, 심상운, 이시영, 정희성 등의 이 시기의 시를 먼저 거론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중요한 한국 현대시사詩史의 정리 즉 사초史草에 내 이름이 들어간 것은『고향산천』이 남긴 귀중한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집에는 31편의 연작시 「고향산천」있다. 그 중 2편을 읽어보자.
이른 여름
강원도 산비탈엔
살내음 환한 싸리꽃
스물 두 살의 나는
소총小銃을 버리고
한 아름 싸리꽃과 함께
땅바닥에 누웠다.
여름은 온통
치마폭 가득
푸른 불길
나는 방금 불속에서
새로 태어난
청록색 풀잎이었다.
-「고향산천 . 12 -싸리꽃」전문
이 시는 1981년 봄 시문학 출신들의 모임 <시문학회> 사화집에 발표한 작품이다. 심상운 시인은 이 시의 시상을 얻게 된 계기에 대하여 “어느 해 여름 강원도 원통 골 산비탈에서 무더기로 피어 있는 싸리 꽃 속에서 만났다. 그때 나는 소총을 들고 포복을 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앞에 발그레한 빛과 향기를 뿜으며 피어있는 싸리 꽃. 나는 무릎이 벗겨져 뻘겋게 번지는 혈흔의 아픔도 잊고 싸리 꽃 무더기 속으로 내 온 몸을 던졌다. 나는 이 시에서 역사 속의 나와 자연본래의 나를 결합시켜 새로운 생명적 창조의 나로 그려 보았다. 스물두 살의 나는 분단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다. 그런 내가 이 시대에 능동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소총증오심, 적대감을 버리고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 고향산천에 환히 핀 싸리꽃 순수한 사랑을 가슴으로 껴안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원형적原形的인 한국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나는 정신적으로 분단分斷의 역사를 극복한 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스물두 살의 청년이 군복무를 하며 소총을 들고 적대감과 증오심을 겨누거나 혹은 가누어야 하는 불안한 심리를 표현한 시라 하겠다.
그는 이제 눈 감고
풀잎에 내리는 흰 눈을 보고 있다.
새소리도 마침내
맑은 이슬로 내리고
질경이 뿌리에 닿는 볕이
손등의 눈을 녹이고 있다.
<밝음과 어둠의 문지방 사이에
걸쳐 있는 그의 발목>
어느 날 그는 소총 멜방에 끌려
청솔 돋는 마을을
떠나갔을 뿐
죽은 것 같지 않다.
눈감고 편안히 누워
산천의 흰 눈 맞으며
언 땅 밑 흐르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소년병의 잠
- 「고향산천·18 - 어느 소년병의 잠」문
이 시는 심상운 시인의 유년시절을 생각하는 시다. 심상운 시인은 6,25동란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춘천에서 30리쯤 떨어진 시골 ‘곰실’이란 곳으로 피란을 갔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가까운 곳으로 피난을 간 이유에 대하여 ‘시내에서는 식량도 없고 횡포가 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때 나는 후퇴하는 한패의 인민군 병사들을 보았다. 길바닥에 주저앉은 그들은 패잔병으로 기진맥진한 몰골이 처참했다. 머리에 하얀 붕대를 감고 다리를 절며 걸어와선 쓰러지던 그들의 모습. 그 중에는 총신을 질질 끄는 소년병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시화하며 그들의 죽음은 결코 단순한 죽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의 죽음은 언젠가 깨어나야 할 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족의 봄이 오면 그들은 깨어나리라. 그들은 잠을 자면서 비로소 산천의 햇빛과 만나고 맑은 새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리고 언 땅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 시에서 ‘죽음을 극복하는 생명의 의지’를 그려 보려 했던 것이다
2. 심상운의 중기 시 – 이미지
첫 시집『고향산천』이후 심상운 시인은 20세기 한국현대시의 현장을 광풍 같이 휩쓸고 간 1980년대의 ‘민중시’와는 정반대의 위치에서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탐구와 순수서정시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 시절 심상운의 시적 표현이 지향하는 것은 ‘언어를 수단으로 하여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들을 들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신선한 감각의 시어가 빚어내는 이미지의 세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미지는 시의 완성도를 높이고 시의 의미를 싱싱하게 지속시켜주는 힘을 발휘할 뿐 아니라, 이미지는 그 자체가 언어의 투명한 보석이 되어 자율적自律的인 독립적 가치를 지니면서 언어의 한계를 돌파하고 시의 세계를 무한히 넓혀주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그에게 고민이 되는 것은 이미지의 객관성과 주관적인 정서의 적절한 조화調和와 현실의 문제였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영혼, 생명, 그리움, 신적神的인 존재’ 등을 중시하여도 현실의 문제들은 피할 수 없고 피해서는 안 되는, 시인의 존재 이유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나는 이 현실의 문제들도 문제의 원형原形속으로 들어가서 이미지화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였다. 나는 또 시각적視覺的인 이미지와 함께 들리지 않는 소리를 시속에 담아보려고 시도하였다. 이 소리는 시속에서 의미를 감각화感覺化 하는데 도움을 주면서 시의 리듬을 돋구어주고 신명을 불러들이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그의 두 번째 시집 『당신 또는 파란 풀잎』에서 시 몇 편을 읽으면서 그의 중기 시를 살펴보자.
아직 개발開發되지 않은
컴컴하고 습한 지역을 아시나요
눈 내리는 날 우리 그곳으로 가요
그곳에는 아직도
고생대古生代의 신神들이 살고 있어
이렇게 눈 내리는 날 저녁엔
흰 수염 달린 떡갈나무가지 사이에 집을 짓고
웅웅 벌떼처럼 날아다니며
소리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인가人家와는 멀리 떨어져
마을의 길은 이미 끊어지고
컴컴하고 습한 진흙 벌만 계속되는
미개발의 그 곳은
하얗게 눈 내리는 겨울 저녁이면
자연의 거대한 사원寺院
하얀 잡목 넝쿨 사이사이
얼굴 비비며 히히덕 히히덕 너풀춤 추는
젊은 신神들의 환한 노래 소리가 들려요
- 「흰 수염 달린 떡갈나무 숲- 신神들의 마을」 전문
심상운 시인은 “이 시의 제목을 처음에는 「신神들의 마을」이라고 했는데 너무 직선적인 것 같아서 「흰 수염 달린 떡갈나무 숲 - 신神들의 마을」이라고 고쳤다. 그리고 시 전체의 이미지는 흰 색과 검은 색을 대조시켜 시의 그림이 선명하게 나타나도록 하였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 시에서 생명의 고향이 어디에 있는가를 독자들에게 환기시키면서 개발開發이라는 인위人爲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컴컴한 잡목림雜木林 속에서 벌어지는 생명들의 움직임과 그들의 환희를 동적動的인 이미지로 그리려 하고 있다. “고생대古生代의 신神들이 살고 있어 / 이렇게 눈 내리는 날 저녁엔 / 흰 수염 달린 떡갈나무가지 사이에 집을 짓고 / 웅웅 벌떼처럼 날아다니며 / 소리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하얀 잡목 넝쿨 사이사이 / 얼굴 비비며 히히덕 히히덕 너풀춤 추는 / 젊은 신들의 환한 노래 소리가 들려요”라고 시의 앞뒤에 시청각視聽覺이 서로 한 데 어울린 동적인 이미지를 넣은 것은 생명의 움직임과 환희의 감정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그려보려는 의도였다. 윤강원尹江遠 시인은 심상운의 이 시에 대해 월평月評에서 “성스러운 것, 활달하고 자유로운 것. 평화스러우면서도 원형적原形的 생명감이 충만한 것에 대한 열망이 일종의 복귀의지의 꿈으로 나타나 있음을 보게 된다.”고 하였다. 그는 이 시를 깊이 이해하고 시에 담긴 의미를 높은 정신세계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이 시에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원형적 생명의 기운을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변형시키기 위해 신神을 등장시켰다. 이 신은 생명의 원형을 은유적隱喩的으로 표현한 것이다. 독자들은 원시적인 애니미즘animism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심상운 시인이 시각적인 이미지에 중점을 둔 시로 또 「수부水夫의 꿈」과 「벼랑 위의 꽃」을 들 수 있다.
나는 언제나
검은 꿈의 바다를
떠도는 수부水夫
한밤중 달의 은사시빛
밧줄이 부서진 내 배의
동체를 끌고 간다.
나는 저 북해北海의
빙산氷山 곁으로 가고 싶다.
그것이 항해의 끝이 되어도
설령 내가 영혼만으로
떠돈다 할지라도
사시사철 하얀 풀잎으로 덮인
지구地球의 지붕
나는 얼마나 황홀한 빛의
침대 위에 누워 있을 것인가.
그 곳에는 악惡도 선善도,
오직 순수한 신神들의 소리만 살아
고생대古生代의 바다가 아직도 파도 친다.
아아, 나의 첫 항해는
여기서 시작된 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차디찬 꿈의
빙산氷山을 지나 더 멀고 먼
푸른 바다로 떠나가야 한다.
내 시간時間의 바닥이
환히 보이는 해변
그 모래밭까지
-「수부水夫의 꿈」전문
앞의 시 「흰 수염 달린 떡갈나무 숲- 신神들의 마을」이 외적인 것을 대상으로 한데 반해 「수부水夫의 꿈」은 시인의 내면의식을 시각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시다. 두 편의 시에 공통점이 있다면 생명의 원적지原籍地를 찾는 의식의 흐름이다. 심상운 시인은 “나는 이 시에서 내 존재의 고향을 찾아 항해하는 수부水夫가 되었다. ‘북해北海의 빙산氷山, 사시사철 하얀 풀잎으로 덮인 지구地球의 지붕, 황홀한 빛의 침대, 고생대古生代의 바다, 내 시간時間의 바닥이 환히 보이는 해변’ 등은 내 의식을 객관화하여 드러내기 위한 은유의 언어이고 상상想像 속의 그림이다. 나는 불교의 선禪이 지향하는 세계를 아직 체험하지 못했지만 그 세계는 선善과 악惡, 죽음과 무無의 세계를 넘어선 푸른 바다와 같은 생명의 세계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라고 말한다.
이 시는 관념적觀念的이고 사색적思索的인 내용이 중심이 되는 시다. 그는 벽돌같이 딱딱한 관념을 부드럽고 신선한 상상의 언어로 포장해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어는 관념어와 구상어具象語의 조화를 시도하였으며, 객관적인 이미지와 주관적인 정서를 조화시켜 독자들에게 친근감과 시적인 감흥感興을 주기 위해서 ‘나’를 시의 화자로 삼아 독백조獨白調의 어조로 시를 구성하였을 것이다.
4. 심상운의 후기 시 – 방법론
심상운 시인의 요즘 시적 관심은 음풍농월에 있지 않다. 심상운의 시는 4차원세계를 갈망한다. 그의 시는 현재에 안주하지도, 평면을 유지하지도 않는다. 그의 시는 기체처럼 증발하거나 외계인처럼 뚝 나타난다. 그가 관심을 두는 시는 무엇일까. 그것은 가장 최근에 나온 그의 제3시집 『녹색 전율』을 읽으면 그 해답을 알 수 있다. 그는 지금껏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그만큼 만지고 매만지고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결국 결과물 모두를 버린 채 마음의 껍질만 옷으로 해 입는다. 알맹이를 놔두면, 비워두지 않으면 다른 걸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방법만 터득하고 시는 버린 것이다. 1974년 등단해서 44년의 시력에 매일 시와 만나면서 단 세 권의 시집만 낸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보통 나이가 들면 시가 짧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선시禪詩로 흐른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심상운의 시는 점점 더 새로운 세계를 지향한다. 나이가 들면 그간 찍었던 사진을 없애고, 옷을 정리하고, 책을 정리한다고 하는데, 심상운 시인은 끊임없이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제3시집 『녹색 전율』에 는 116편의 시가 들어있는데 시의 제목을 살펴보면 보통 시인들이 쓰는 시의 제목과는 달라도 많이 다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럼 그의 시 몇 수를 읽고 특징들을 살펴보면서 그의 시적 장치들을 살펴보자.
7월 아침나절 갑자기 쏟아지는 비
한 낮의 아프리카 대평원
피범벅이 된 사자의 입과
사슴의 붉은 살덩이가 내뿜는 싱싱한 비린내
6월의 태양아래 이글이글 벌어지는 초원의 잔치
나는 TV에서 가슴 떨리는 아프리카 생태계를 보다가
식탁의자에 앉아
빨간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고 우쩍우쩍 씹는다
그때 휴대폰을 울리는 그녀의 숨가쁜 목소리
그녀는 여름비의 유혹이 참을 수 없어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 굵고 기운찬 빗줄기에
온몸 부르르 떠는 녹색 가로수들이 제각기 잎사귈 퍼덕이며
소리치는 도로를 지나 녹색의 광기를 한껏 즐기고 있는
뜨거운 들판의 가슴을 향해 돌진하듯 달리고 있는 그녀
- 「녹색 전율」 전문
그 첫 번째가 색깔로 나타나는 이미지시다. 심상운 시인이 좋아하는 색깔은 아무래도 녹색인 것 같다. 시집 제목에서도 『녹색 전율』을 사용했듯이 녹색은 생산의 색이다. 그러나 심상운 시에 있어 단순히 녹색을 여름이나 생산의 이미지로만 생각해서는 오산이다. 그가 생각하는 녹색은 생산의 색이 아니라 안정의 색이다. 밑그림 색이다. 우선 녹색이 많은 그림을 살펴보자. 일찍이 세계적화가 인 샤갈은 그의 그림 중 대부분의 그림에 녹색을 넣어 그리고 있다. 그것은 심리적 안정감과 함께 생겨나는 새로운 도전의 염원이다. 심상운 시가 그렇다. 그러나 심상운 시인의 시에 있어 칼라는 비록 검은 색이라 할지라도 생산을 위한 완충지대에 놓인 색이다. 그의 시에는 무수한 색깔이 등장한다. “노랑나비, 검은 도로, 한 여름의 검은 자전거와 파란 비닐봉지와 빨간 모자, 파란 의자, 파란색 기차, 은백색 미확인 물체, 노란 색을 주조로 한 세 개의 그림, 검붉은 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 녹색 전율, 검은 기차 또는 하얀 비닐봉지, 빨간 방울토마토 또는 여름바다 사진, 푸른 물, 붉고 노란 손, 새파랗고 붉은 재 한 줌, 초록빛 역, 어느 흑인 남자의 기타 소리, 푸른 들판, 흰나비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처럼 시에 다양한 색깔을 자주 넣는 것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언어에 그림을 그려주기 위함이다. 색깔을 통해 연상되는 시적 이미지화하여 독자로 하여금 두 마리의 토끼 사냥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6월의 태양이 눈부신 한낮 국립박물관 모형 전시실에서는 신석기시대 근육질 젊은 사내의 돌칼 가는 소리가 난다. 사내는 숫돌에 칼을 갈다 가끔씩 고개를 들고 사냥할 때 쓰던 돌화살촉을 움켜쥐고 유리 상자를 깨고 뛰쳐나오려는 듯 허연 수은등 불빛을 노려보고 있다.
12월이 되면 카메라를 메고 세찬 눈보라로 뒤덮인 겨울날 뻘겋게 이글거리던 드럼통 석탄 난로 곁에 둘러서서 외지外地로 떠나려고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방금 검은 탄 속에서 나온 듯 이빨이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젊은 광부들의 뿌연 입김이 깨진 유리창에 묻어 있는 30년 전의 K역을 찾아서 눈길을 떠나는 그녀.
낮 12시 20분, 나는 그녀의 모형 작업실 벽에 걸려있는 컬러사진 검붉은 고철古鐵들의 무더기 사이로 돋아난 풀잎의 푸른 혈관 위에 앉아 있던 벌 한 마리가 잉잉 잉잉 방안을 돌며 유리창에 몇 번 몸을 부딪칠 듯하다가 열린 유리창 밖 환한 빛 속으로 날아가는 것을 본다.
- 「모형 전시실 또는 깨진 유리창」 전문
그 두 번째는 ‘또는’이라는 말로 시를 환기시킨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에서 그는 두 가지 이상의 이미지 또는 상황들이 서로 교차하고 환치되며 심상을 보완하면서 세상은 달처럼 환한 부분도 있고, 달의 이면처럼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면도 있음을 증명해나간다. “모형전시실 또는 깨진 유리창, 박쥐 또는 소녀, 그림 또는 링크, 검은 기차 또는 하얀 비닐봉지, 빨간 방울토마토 또는 여름 바다 사진,안개 속의 나무 또는 봄비, 몸 또는 유령, 칠놀이 또는 페인트통”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또는’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모형전시실’과 ‘깨진 유리창’의 관계, ‘박쥐’와 ‘소녀’의 거리, ‘그림’ 또는 ‘링크’의 이질감, ‘검은 기차’와 ‘하얀 비닐봉지’의 속도, ‘빨간 방울토마토’와 ‘여름 바다 사진’의 기억, ‘안개 속의 나무’와 ‘봄비’의 상호 텍스트성, ‘몸’과 ‘유령’의 동질성, ‘칠놀이’와 ‘페인트통’의 갑을관계 등 대하여 유추할 수 있도록 상상의 폭을 열언둔다.
초여름 감자밭 고랑에 앉아 포실포실한 흙 속으로 맨손을 쑤욱 밀어 넣으면 화들짝 놀라는 흙덩이들, 내 난폭한 손가락에 부르르 떠는 축축한 흙의 속살, 나는 탯줄을 끊어내고 뭉클뭉클한 어둠이 묻어 있는 감자알을 환한 햇살 속으로 드러낸다. 그때 아 아 아 외마디 소리를 내며 내 손가락에 신생의 비릿한 피 냄새를 묻히고 미꾸라지처럼 재빠르게 흙 속으로 파고드는 어둠, 흙 속에 숨어 있는 어둠의 몸뚱이에는 빛이 탄생하기 이전 우주의 피가 묻어 있을거라고? 그럼 붉은 피는 어둠 속에서 나오기를 거부하는 우주의 꽃빛 파일! 몇 장의 헌혈증서를 남기고 떠나 간 20대의 그녀는 하얀 침대에 누워 누군가의 혈관 속으로 흐르는 자신의 장밋빛 시간을 상상했을까? 아니면 비 오는 밤, 검정고양이가 청색 사파이어 눈을 번득이며 잡동사니로 가득한 헛간을 빠져나와 번개 속을 뛰어가고 있는 TV화면을 보고 있었을까? 나는 불빛이 번쩍하는 순간 번개 속을 통과한 검정고양이를 찾아 승용차의 헤드라이트를 켜고 강변도로를 달린다. 비가 그치고 가로수를 껴안고 있던 어둠들이 깜짝깜짝 놀라면서 몸을 피하는 게 희뜩희뜩 보이는 밤이다
- 「헤트라이트」전문
세 번째 특징은 외래어를 통한 ‘낯설게 하기’가 그것이다. “헤트라이트, 블랙홀, 아우슈비츠, 오토바이가 달리다, 사각형 스크린, 그림 또는 링크, 맨살에 링크하기,아스팔트 위의 맨살 여자, 퇴직 혹은 오브제 되기, 어느 유스호스텔에서, 칠놀이 혹은 페인트통, DNA” 등이 그것인데, 특별히 어려운 말은 없다. 그렇지만 자연이미지나 고전이미지만 주로 사용하는 시인들에게 김광균 시인의 「추일서정」에 나오는 낙엽을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같이 이국적 분위기를 끌어냄으로써 독자로부터 이국에 대한 동경과 너무 잦은 고전적 소재의 사용으로 인한 지루함의 탈피, 그리고 엉뚱한 발상으로부터 오는 신선함까지 보내준다.
파란 지붕의 자전거 보관대에 쓰러져 있는 검은 자전거의 바퀴살이 햇빛에 번쩍이고 있다. 오전 10시 46분, 우체부의 빨간 오토바이가 서 있는 가로수 밑으로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빨며 지나가고 점점 뜨거워지는 8월의 태양. (검은 자전거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자전거 보관대의 파란 플라스틱 지붕은 자신의 가슴을 다 드러낸 채 번쩍이고 있다.
그 파란 플라스틱 지붕은 왜 하루 종일 번쩍이고만 있을까요? 지금 을지로 상공을 날아가는 반투명의 파란 비닐봉지는 몸무게가 0으로 줄어든 나의 모습이에요. 나는 시청 앞 광장을 지나 바람에 출렁이며 청계천 다리 위를 가고 있어요.나처럼 가끔 허공을 떠다니고 싶으면 눈을 감고 공중으로 떠오르는 0의 감각에 집중해 보세요. 그리고 몸의 무게를 계속 줄여 보세요. 그러면서 저기저기 빌딩 창문 위 하늘로 둥둥 떠가는 자신을 느껴 보세요. 검은 자전거의 주인이 노랑 풍선이 되어 햇빛에 반짝이며 여의도 쪽 상공을 날아가고 있는 게 보일 거예요.
아, 아, 여보세요. 8월의 풀밭에서는 빨간 모자를 쓴 발가숭이 아이들이 모여서 노란 나팔을 불기도 하고 파란 페인트 통을 굴리며 뱀과 놀고 있다고요? 그 맨살의 아이들이 사람들의 잠속 연못에 들어와서 물장구칠 때가 있다고요? 그 시간에 꿈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으면 빨간 꽃잎 요리가 아이스크림처럼 달디 달다고요? 그것이 한여름 낮잠의 신비한 맛이라고요?
- 「한여름의 검은 자전거와 파란 비닐봉지와 빨간 모자」 전문
네 번째는 ‘와(과)’라는 나열형조사로 연결된 시가 그것이다. 그의 시 “한 여름의 검은 자전거와 파란 비닐봉지와 빨간 모자, 사각형과 삼각형과 원” 등에서 보이는 ‘와(과)’는 서로 다른 사물이나 사건을 비교하게 하고, 분석하게 하며, 판단하게 하고, 감상하게 한다. 그리하여 결점을 말하게 하거나 칭찬하게 한다. 그의 나열은 개나리, 진달래, 벚꽃 같은 나열이 아니다. 토끼와 호랑이 같은 천적의 사이도 아니고,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의 관계도 아니다. 그의 나열은 동시에 함께 살아가자는 나열이다. 그를 인정하고 나를 인정받자는 나열이다. 해바라기는 민들레를 깔보지 않고, 민들레는 해바라기에게 주눅 들지 않는다. ‘한 여름의 검은 자전거’는 그만의 세계가 있다. 결코 ‘파란 비닐봉지’가 검은 ‘자전거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으며, ‘빨간 모자’는 이 둘을 모두 바라보면서 나는 ‘빨간 모자’일 뿐이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그 외에도 여자로 연결된 심상 “뱀과 그녀, 박쥐 또는 소녀, 아스팔트 위의 맨살 여자, 10월의 사과와 소녀, 대웅전 처마 밑의 여인”이나 시간으로 연결된 심상“오전 10시 30분의 그래픽, 오전 11시 40분의 통화, 일요일 오전 10시 25분” 등은 특이한 시적 기법이다.
5. 심상운의 디지털시와 하이퍼시
심상운 시인을 우리는 하이퍼시인이라 부른다. 심상운 시인에게 있어 ‘하이퍼 시’는 이제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김규화, 오진현 등과 함께 최초의 <하이퍼 시 동인>을 결성하였고 자중에 이끌어온 시인이다. 이후 신규호, 유승우, 손해일, 조명제, 정연덕, 최진현, 송시월, 안광태, 이솔, 김기덕, 위상진, 이선, 신진 등이 참여하게 된다. 그럼 디지털시란 무엇인가? 심상운은 “‘디지털 시’란 영상 시대의 언어미학과 가상현실의 세계를 추구하는 시로서 ‘하이퍼시’의 모태가 되는 시다.”라고 말한다. 심상운 시인의 말에 따르면 “현대는 영상 시대이고 인터넷을 통한 수평적인 네트워크 시대이다. 따라서 논리적인과적이고 공리적인 선명한 주제의식의 시에서 벗어나 현실과 가상현실의 복합구조를 시에 도입하여 상상의 영역을 넓히고 이미지의 독자성을 시의 중점에 두고자 하는 디지털시는 21세기의 감각에 부합하는 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디지털시에는 엉뚱한 이야기, 돌출 이미지 등이 뒤섞이어서 시의 기본 줄기가 무엇인지 모호해지고 난해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의 논리적 사고의 시보다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열어주고, 가상현실의 공간, 영상성과 공연성, 자유연상의 이미지 세계를 다양하게 펼쳐준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의 예술적 공간을 담고 있는 시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의 시를 단선구조의 시라고 하면 디지털시, 하이퍼시는 다선구조의 시다.”라고 말한다.
‘디지털시’라는 명칭은 오남구 시인이 이름붙인 ‘디지털리즘시’에서 나왔다. 심상운은 2004년 시단의 총평을 의뢰받고, 「2004년 한국 현대시의 동향과 새로움의 모색 - 문제 시집과 시와 시론을 중심으로」를 집필한다. 그때 현대시의 기법에서 이미지를 중시하는 심상운의 눈을 놀라게 한 것은 오남구 시인을 중심으로 <시류동인>들이 시도하고 있는 ‘디지털리즘 시’ 운동이었다. <시류동인>들의 시운동은 언어에 대한 인식탈관념, 기호성과 대상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서 대상의 생생한 현실을 사진 찍기염사, 접사를 통해서 보여주는 ‘디지털리즘 시’ 운동을 매우 참신하게 느낀다. 그래서 그들의 ‘디지털리즘시’를 21세기 새로운 시의 모델로 설정하고 집중적인 조명하게 된다. ‘의미의 세계관념에서 영상의 세계로 변화하는 것’이 심상운 시인에게 공감을 주었던 것이다. 그 후 심상운 시인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오남구 시인과의 오랜 시간 대화를 통해서 얻은 결과를 토대로 하여 바로 이 자리인, 2006년 11월 <한국시문학아카데미>금요포럼에서 시론 「디지털시의 이해-디지털시의 원리와 언어의 특성」을 발표하여 평론가와 시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필자인 나도 그 자리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심상운은 “디지털의 특성+시= ‘디지털시’는 현대시에 어떤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만, 핵심을 요약하면 디지털의 공학적 세계에서 구현되는 현상을 언어의 예술인 시의 세계에서도 구현해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디지털의 특성을 시로 ‘옮겨 온다’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시로 옮겨오는 디지털의 특성에서 중요한 것은 ‘디지털 적인 언어와 상상력’이다. ‘디지털 적인 언어’라는 것은 언어를 분리와 결합이 자유로운 컴퓨터의 데이터data같이 취급하는 것이다. 언어를 기호의 한 형태로 인식하고 음악의 ‘소리’나 회화의 ‘선과 색채’와 같이 의미나 실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언어에는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탈-관념무의미의 언어라고도 한다. 이 탈-관념의 언어는 디지털의 감각인 영상성, 동시성, 정밀성선명한 이미지 등을 구현하는 언어가 된다. 이런 디지털시의 언어는 20세기 언어학자 소쉬르erdinand de Saussure 스위스 제네바 1857. 11. 26 ~1913. 2. 22의「일반 언어학 강의Cours de linguistique générale」1916에 근거를 두고 있다. 소쉬르는 언어라는 기호가 청각영상과 개념, 또는 ‘의미하는 것시니피앙 記票’과 ‘의미되는 것시니피에 記意’의 결합이라고 생각했으며, 이 결합은 자의적恣意的인 것으로서 기호는 본질이 아닌 형식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언어는 실제적인 의미의 구속에서 벗어나서 그 자체가 스스로 독립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디지털시’의 상상은 이런 언어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이미지는 가상현실 속에 존재하는 허상虛像이지만 실재실체와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심상운은 ‘디지털의 특성을 ① 불연속적 흐름, ② 가상현실의 구현, ③ 데이터의 기호성. ④ 모듈의 독립적 기능. ⑤ 감각의 영상화. ⑥ 사실성, 정밀성, 현재성의 구현 등 6가지’로 파악하고 다음과 같이 현대시에 대입하여 시론을 전개한다.
첫째, 불연속적인 흐름 ⟶ 디지털시에서의 이미지의 단절과 연결, 비논리성.
둘째, 가상현실의 구현 ⟶ 상상력의 무한한 확산가상세계.
셋째, 데이터의 기호성 ⟶ 언어의 기호성.
넷째, 모듈의 독립적 기능 ⟶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 하이브리드 구현.
다섯째, 감각의 영상화 ⟶ 의미의 세계에서 이미지영상의 세계.
여섯째, 사실성, 정밀성, 현재성의 구현 ⟶ 탈-관념, 염사, 접사,사진찍기, 순간포착,사물성의 시 , 현장 시 쓰기
여기서 심상운은 “첫째부터 다섯째까지는 초현실주의 시론과 부합되고, 여섯째는 사물시 쓰기와 탈-관념 시 쓰기에 부합된다. 이런 면에서 ‘디지털시’는 초현실주의 시와 사물시, 탈-관념시를 모두 포함하는 21세기적 감각의 시 쓰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디지털시에는 하이퍼텍스트도 포함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디지털시의 이론을 1930년대 이상李箱의 시 「오감도 시제1호」에 대입하여 다음과 같은 개념을 정리해낸다.
⑴ 언어의 기호성 : 이 시를 구성하는 언어는 컴퓨터 모니터의 화면글자나 그림을 구성하는 디지털의 데이터data와 같다는 것.
⑵ 달관념 무의미 : 이 시의 언어들은 어떤 의미에도 감염되지 않아서탈-관념 분리와 결합을 통한 변형이 자유롭다는 것. 탈관념, 무의미
⑶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 : 이 시의 언어들의 결합은 집합적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⑷ 가상현실 : 이 시가 표현하는 것은 가상현실의 영상 즉 추상적인 버추얼 그래픽Virtual graphic이라는 것.
⑸ 상상력의 확산 : 이 시는 컴퓨터 그래픽의 자유로운 그림 바꾸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이라고 말하면서 이상李箱의 시 「오감도 시제1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⑴ 이 시의 언어들은 관념이 전혀 묻지 않은 순수한 인지단계의 언어들이라는 것.
⑵ 그 언어들을 조정하는 이상李箱의 사고思考가 탈-관념된 사고라는 것은 이 시의 해석과 감상에 무엇보다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것.
⑶ 그래서 이 시에 대한 이런 접근은 이 시가 이상李箱이 디지털적인 탈-관념과 상상의 언어로 그려낸 단순한 액션action의 그림가상현실이며,
⑷ 그의 개성적인 사고思考가 창조한 짧은 허상의 드라마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어떤 의미도 없다는 관점 즉 디지털적 관점의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면서 그는 “이상李箱 시에 대한 디지털 적 관점의 해석은 소쉬르가 말한 언어의 기호성 즉 언어는 실체가 아니고 실체와 관계되는 기호일 뿐이라는 것. 언어는 기표와 기의로 분리될 수 있으며 기표만으로도 언어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과거의 의미론적 해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이라 힘주어 말하는데, “디지털시에서의 언어단위단어, 문장의 집합적 결합과 컴퓨터프로그래밍의 모듈은 서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며 그 유사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는 그들이 모두 독립된 단위로 되어 있다는 것.
둘째는 독자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의 시스템 속에서 상호 보완적 생산기능 현대시에서는 이미지, 감각, 정서의 조화를 한다는 것.
셋째는 교환 가능한 독립된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분리될 수도 있고 작가프로그래머의 의도 대로 임의로 변경할 수도 있다는 것.
넷째는 모듈화 된 시의 구문들은 작가의 의도성에서 이탈하여 그 스스로 독립된 생명력을 가지고 독자에게 다가 갈 수도 있다는 것.
심상운은 “이때 모듈화 된 언어단위의 독자적인 방향성상상작용, 영향력은 작가도 예측하기 어렵게 된다. 그것은 모듈의 특성인 객체지향성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의 모듈화라는 기능성機能性을 부가하게 된 현대시의 디지털적 구성집합적 결합은 시의 공간을 무한히 넓히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이 모듈의 객체지향성은 현대시의 구조를 새롭게 하고 현대시의 성격과 형태를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라 설명하는데, 리좀에 대하여 “리좀Rhizome이란 뿌리줄기라는 자연과학적 개념으로 포스트구조주의에서 중심의 집중에 반대되는 중심의 다양화 또는 탈-중심 체계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다양한 종류의 이질성이 결합하여 새로운 것, 새로운 이질성을 창출한다는 뜻이다. 디지털시의 모듈 이론은 하이퍼시에서 리좀의 이론으로 나타난다. 리좀은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이루어졌으며, 서로 대립적인 독립관계를 갖는 세계입니다 이 리좀은 서로 연결되고 결합함으로써 다양하고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연출한다.”고 역설한다.
또 심상운은 초심자들이나 일반인들이 자주 헷갈려하는 ‘디지털시, 디카시, 하이퍼시’ 등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하여 “디지털시, 하이퍼시, 디카시가 의미보다 영상이미지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리고 잡종결합 즉 하이브리드를 시의 골격으로 삼는 점에서도 같다. 그러나 디카시는 사진과 시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디지털시나 하이퍼시와 다르다. 디지털시나 하이퍼시는 대상을 순간적으로 포착접사하여 탈-관념된 언어영상으로 표현하는데, 디카시는 실제로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여 사진 찍기를 하고 그 사진과 시를 결합시킨다. 그리고 하이퍼시는 논리성에서 벗어난 의식의 흐름 속에 시의 맥락을 두고 이미지와 이미지가 대등한 독립적인 관계에서 결합을 하는데 비해, 디카시는 사진과 시가 종속적인 관계에서 결합되는 경우를 보게 된. 만약 디카시에서 사진과 시가 서로 대등한 독립적인 관계에서 결합되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독자에게 설득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디지털시나, 하이퍼시와 디카시가 ‘사진+시’라는 점만 제외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디카시의 영상언어사진과 디지털시, 하이퍼시의 언어영상은 궁극적으로는 같기 때문이다.”라면서 경계를 분명히 한다.
현대시의 발전방향에 대해서도 그는 “현대시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언제까지 과거의 언어비유, 상징에 갇혀 있을지 답답하다. 그런 면에서 디지털시나 하이퍼시나 디카시는 이 시대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시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의 길은 다양하고 모두가 독립적인 가치를 지닌다. 꼭 한 가지만 고집하고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이제 우리 현대시에도 T. S. 엘리엇의 「황무지」같은 장시가 출현할 때가 되었다.민족의 울타리를 벗어난 높은 관점의 사유, 동서양을 넘나드는 인류적이고 우주적인 깨우침 그리고 다양한 표현을 거침없이 구현 하는 기법의 시, 그런 시를 써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인들을 감동시키는 시인의 출현을 기대한다.”고 말하는데 그런 시점에 문덕수 시인께서 「우체부」를 발표해주신 것은 우리 시단에 매우 획기적인 일이라 하겠다.
6. 맺음말
문덕수 시인은 심상운 시인의 시집 『녹색 전율』의 해설에서 “심상운의 시에서는 여러 가지 연결의 방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자에게는 종전의 시처럼 감정이나 관념이 곧 전달되지 않습니다. 조금 참고 견디며 고리 이미지를 찾아보는 그런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도 하이퍼시를 읽는 즐거움의 한가지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문덕수 시인의 말씀처럼 심상운 시인의 시는 의미가 아니라 방식이다. 감정이나 관념의 전달이 아니라 연결고리의 이미지를 찾는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언젠가 신촌의 어느 소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을 본 적이 있다. 이 연극은 부조리극이다. 부조리극이란 세상은 모두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논리 정연한 것은 없다는 뜻의 연극이다. 따라서 사실과 사건은 서로 아무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인간이 독선으로 관여한다. 혼돈과 모순과 공허함이 주된 내용이고 논리나 질서, 확실성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연극에서 주인공은 ‘고도가 언제 온다고 그랬지?’라며 자꾸 같은 곳을 맴돌며 같은 말을 되풀이 한다. 심상운의 시는 부조리극과 같은 실험시다. 부조리극은 심상운 시인의 시에서처럼 메시지가 연결되지 않는다. 심상운의 시 역시 부조리극처럼 주제가 없다. 그럼 우리는 왜 주제 없는, 메시지 없는 예술을 할까? 세상은 연장으로 땅을 파는 사람도 있지만 연장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말에는 “나는 학교에 간다”라고 할 때 ‘나’, ‘학교’ ‘간다’ 같이 뜻이 있는 말도 있지만 ‘는’이나 ‘에’처럼 메시지가 없는 말도 있다. 메시지 없는 말이라 해서 말이 아니거나 필요치 않은 것이 아니듯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작품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남극을 탐험하러 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사람에게 먹을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나 방안이 잘되는 옷을 개발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심상운의 시는 방법론에 관한 문제이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시가 아니다. 부조리극은 혼돈과 모순, 공허함이 가득한 세상을 고발하기 위함이다. 심상운 시인의 하이퍼시는 논리와 질서, 확실성만을 강조하는 세상에서 비논리적이거나 불완전함 같은 모순적 지향에서 생기는 카타르시스를 기반으로 한다. 인간은 심상운 시인이 쓰고 있는 하이퍼시처럼 불합리한 조건에 살고 있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개념은 시의 범주에서 쫓겨난 지 오래다. 그런데 많은 시인들은 멜로드라마 같은 시를 쓰고 있다. 멜로드라마란 무엇일까? 멜로드라마란 힘없는 주인공이 악당의 핍박을 견디고 마침내 악당을 물리치며 행복한 결말을 얻는다. 앞뒤를 다 알려줘야만, 결론까지 보여주어야만 시를 써놓고 최고의 시인 양 어깨를 으쓱대며 행복해한다. 최근의 최영미 시 「괴물」은 멜로드라마다. 마치 자기가 악당을 물리친 양 의기양양하다. 시에는 목적이 없어야 한다. 목적이 있는 시는 이데올로기다. 심상운 시인은 생소한 장치들을 곳곳에 숨겨놓아 궁금증이나 호기심을 유발시킴으로써 현실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하게 한다. 사람들은 시가 왜 이렇게 어려워지느냐고 묻는다. 문학이 쉽기만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아동문학만 살아남을 뿐, 문학이 나가야할 방향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같은 말을 묻고 같은 대답을 하는, 같은 길만을 걸어왔다. 그래서 심상운 시인을 비롯한 김규화, 신규호 시인 등 하이퍼시 운동을 하는 분들이 우리 현대시인협회에 있다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며 그분은 더 나갈 곳 없는 시단에 매우 중요한 개척자역할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또 우리 문단에 시인들은 이론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심산 문덕수 선생님의 뜻에 따라 이론공부를 하고 이론운동을 해나가는 한국시문학아카데미가 있다는 것 또한 자랑스럽다. 나는 후일 분명 한국시문학아카데미가 해온 업적에 관해 정리하게 될 것이다.(끝)
김순진
경기도 포천 출생, 한국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수료, 계간 스토리문학 발행인, 도서출판 문학공원 대표,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중앙대문인회 수석부회장, 은평문인협회 회장역임, 은평예총 회장,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과정 강사
시집 『광대이야기』, 『복어화석』, 『박살이 나도 좋을 청춘이여』, 『더듬이주식회사』
시론집 『좋은 시를 쓰려면』, 『자아5, 희망5의 적절한 등식』, 『효과적인 시창작법』, 『오규원 시에 나타난 생태주의와 노장사상』,『시문학파를 만나다』외 저서 1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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