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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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게, 너는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연극 ‘투명인간’
동시대의 소외와 관계의 문제를 신체언어로 독특하게 풀어내...
김세운 기자 ksw@vop.co.kr 발행시간 2014-10-07 07:35:18 최종수정 2014-10-07 07: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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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이 장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난이 진짜가 되는 순간은 일종의 비극이다. 생각 외로 이런 일은 일상생활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연인이 장난을 칠 때만 봐도 그렇다. 처음에 두 사람은 낄낄거린다. 하지만 계속되는 장난은 결국 한 사람의 ‘언짢음’을 통해서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대화마저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바로 옆에 앉아 있는데도 마치 서로 없는 사람취급을 한다.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약속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팔짱을 끼거나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기괴한 관계를 유지한다.
연극 ‘투명인간’은 아버지 생일날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생일 케이크를 준비하면서 작년 아버지 생일을 떠올리던 가족은 야릇한 장난을 계획한다. 바로 아버지를 투명인간 취급하자는 것이다. 짓궂은 장난은 종국에 ‘진짜 현실’이 된다.
아버지를 투명인간 취급하자는 장난이...
아버지를 진짜 투명인간으로 만들다.
현관에서 아버지의 신을 벗는 소리가 나자 가족들은 투명인간 놀이에 돌입한다. 아버지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없는 사람처럼 대한다. 아버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면 저들끼리 재밌다고 낄낄 거린다. 관객 역시 낄낄거림을 피할 수 없다. 코믹스럽고 뻔뻔한 상황극에 참여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극은 아버지의 단 한마디 대사로 폐부를 찌른다. “내가 정말 보이지 않는거니.”
위의 말처럼 아버지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검열하는 순간은 섬뜩하다. 진짜 투명인간이 되버린 건지 아버지 스스로 의문을 갖기 시작한 거다. 그러면서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고 몸을 더듬어 보기도 하는 과정은 쓸쓸함을 넣어서 기괴해 보인다. 아버지가 자신의 내면을 훑어보는 일련의 모습은 과장되고 괴상해 보이는 몸짓 언어로 표현된다.
극이 중후반으로 흐르면서 장난은 더 이상 재밌지 않다. 아버지 스스로가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투명인간이 된 걸 인정하거나 혹은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보이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가족 역시 투명인간이 됐다는 것을 반증한다. 가족이 자신을 못 보니 자신도 가족이 보이는 것처럼 행동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결국 아버지를 투명인간 취급했던 가족과 투명인간이 된 아버지는 서로 존재하지 않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상태가 된다. 서로 ‘비존재’를 확인시켜주는 꼴이 된 것이다. 이처럼 이들이 ‘비존재’를 향해서 달려가는 과정은 그로테스크함의 수순을 밟는다. 생기와 웃음, 그리고 언어가 절단된 이들 뒤로 암흑이 깔린다.
우리사회의 고독과 소외 문제를 신체언어로 풀어내
연극 ‘투명인간’은 단순한 가족 이야기를 뛰어 넘는다. 물론 자신의 가족을 돌아보게 만든다. 더 나아가 자신을 둘러싼 또 다른 가족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사회라는 범주까지 관통하면서 우리 사회의 소외와 고독의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낸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만든다. 투명인간이 투명해서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쳐다보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것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투명인간으로 변해버린 아버지의 모습은 사실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혹은 그 모습은 우리가 만든 것은 아닌지 물음을 던진다.
1999년 창단 이후 신체행동과 움직임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구한 극단 ‘동’의 기지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극은 중후반으로 흐르면서 대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신체 언어와 움직임, 몸의 놀이로 극을 이끌어 나간다.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오히려 평범함에서 기괴함으로, 현실과 환상을 옮겨다니는 이들의 신체 언어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기괴하게 일그러져 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게 해준다.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손홍규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투명인간’은 오는 10월 19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