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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람들이 예처 하-라 를 사로잡아 가두었다. 사람들은 이 일을 축하하며, “이제부터 우리는 낙원 같은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사악한 행위도 없고, 거짓말도 도난 사건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다음 날, 어느 누구도 일하기 위해 가게를 열지 않았고, 구애를 하거나 결혼하지도 아이도 갖지 않았다.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의 일부, 즉 즐기고, 축하하고, 서로 의지하는 수많은 활동들이 이기심과 공격성이라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너무 당황스러워 했다. 가게 주인과 사업가들은 프로 운동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온 힘을 다해 경쟁자들과 싸워 이기려 하고, 사회는 그런 경쟁 때문에 더 발전한다. 남자와 여자들은 단지 사랑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매력을 인정해 주는 애인,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싶어 하는 애인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결혼한다. 이기심과 공격성이 전혀 없다면, 세계는 잘 굴러갈 수 없을 것이다. 이기심과 공격성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겠지만, 없어서는 안 될 우리의 본질적인 일부이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마지못해하며 가두어 두었던 예처 하-라 를 풀어주고, 그것과 더불어 다시 원래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해롤드 쿠쉬너,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Living A Life That Matters)』, 65-66면 - |
이제 예처 하-라, ‘이기주의 원칙’, ‘이기적인 충동’과 연관된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에 참여해 보자.
스무 명의 사람이 각자 작은 칸막이 속에 앉아 손가락을 버튼 위에 올려놓고 있다. 아무도 버튼을 누르지 않고 기다리면 10분 후에는 모두에게 1,000 달러씩 배당되지만, 누군가 버튼을 누르면 그 사람은 100 달러를 받고 나머지 사람은 한 푼도 받지 못한다. |
매트 리들리(Matt Ridley)의 『이타적 유전자(The Origins of Virtue)』(2001, 사이언스북스)에 나오는 이 실험은 더글러스 호프스테터(Douglas Hofstadter)가 내놓은 ‘늑대의 딜레마’라는 게임이다. 당신이 피실험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아마 잠깐이나마 내면에 천사와 악마가 교대로 등장하는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먼저 천사가 나타나 우리 내면에 내재한 선함을 지향하도록 인도하려는 찰라, 삼지창을 든 악마가 천사를 뒤로 밀치고 나타나 “좀 이기적으로 되면 어때,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가 대수냐”며 유혹했으리라.
매트 리들리는 “영리한 사람이라면 버튼을 누르지 않고 기다렸다가 1,000 달러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영리한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멍청하게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아주 작은 확률이 존재하며, 이 경우에는 차라리 자기가 먼저 눌러 버리는 것이 이익임을 눈치 챌 것이다. 그러나 아주 영리한 사람이라면 앞의 좀 더 영리한 사람이 그 같은 추론의 결과 먼저 버튼을 누를 것임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먼저 버튼을 눌러 버릴 것이다. 논리적으로 옳은 판단이 집단적 재앙을 가져온다.”는 설명을 덧붙인다(밑줄은 필자의 강조). 요컨대,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정도가 조금씩 다른 예처 하-라 가 도사리고 있는데, 그것을 적절히 제어하는 힘을 지닐 때 집단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실험이다.
일찍이 한스 큉(Hans Küng)은 『세계윤리구상』(1992, 분도출판사)에서 생명존중, 연대성 문화, 공정한 경제 질서, 관용의 문화, 평등, 남녀양성의 동반자 정신을 기초로 하는 세계윤리를 주장했다. 한스 큉의 주장에 영향을 받은 많은 학자들 역시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물질 만능주의와 경제 우선주의로 인해 직면하게 된 전 지구적인 환경파괴와 자원고갈, 그리고 전쟁 등의 위기에 대처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공존’과 ‘상생’이라는 새로운 윤리가 필요하다는 논의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공존과 상생이라는 윤리의 천명에 동참하는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매트 리들리는 진화 심리학에 근거하여 이기적 유전자의 경쟁적 진화과정 속에서 역설적으로 이타적 유전자가 진화되며, 인간의 협력, 상호 이타주의 같은 사회성도 진화의 결과로 본다. 매트 리들리의 논의에 따르면, 협동하려는 인간의 본능, 상생과 공존의 윤리는 생존을 위한 경쟁과정에서 인간의 심리가 가장 높은 차원으로 진화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요즘 소위 우리 사회의 최고위층에 있는 지도자들도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공존과 상생이라 강조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상생과 공존의 윤리가 그 진정한 가치를 상실해 가고 있다는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고 권력을 기반으로 국가를 자기 개인의 수익모델로 이용하는 ‘가장 영리한’ 지도자, 그에 찬양, 동조하는 기득권 세력들이 이 구호를 입으로만 외치며 남용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임계점에 직면하여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준비하는 힘 역시 부단히 진화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나 한 사람부터 그 준비에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