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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090330
제목: 성난 황소 같은 내 생애의 챔피언
본문: 시24:1-10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성난 황소 같은 내 생애의 챔피언이라는 제목의 말씀 증거 합니다.
성난 황소 같은 내 생애의 챔피언.
좀 제목이 깁니다.
여러분, 1980년에 나온 흑백영화가 있습니다.
제목이 Raging Bull. 그러니까 그대로 번역을 하면 성난 황소가 되겠습니다.
거장 마틴 스콜세이지감독이 감독해서 만든 흑백영화인데 이 영화는 실제 40년 된 1940년대 미들급챔피언이던 제이크 라모타, 제이크 라모타라는 권투선수의 생애를 그린 영화입니다.
1941년부터 60년대 중반까지 라모타의 생애를 집중적으로 다룬 그런 영화입니다.
전 미국에 있는 평론가들에 의해서 1980년대 10대 영화중에 전 세계 10대 영화 중에 하나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오프닝, 오프닝은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화의 오프닝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아침홈채플 시작하기 전에 흑백의 필름으로 한 권투선수가 링 위에서 몸을 풀고 있는 그런 모습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게 바로 이 Raging Bull이라는 영화의 오프닝입니다. 주인공은 로버트 드니로인데.
이 영화의 내용자체는 오늘 우리가 생각하려는 이 시편말씀과 그렇게 크게 매치되는 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이크 라모타가 챔피언을 따고 너무 무절제하고 방약무도하다고 말할까요?
그런 방종한 삶을 살면서 그 가운데 뭐 아내, 조강지처를 버리고 10대 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또 자기의 동생과자기가 사랑에 빠지게 된 이 10대 소녀와의 관계를 의심하면서 동생과의 관계도 또 이 애인과의 관계도 다 끝이 나고 마지막에끝없이 쇠락하면서 몸은 비대해지고 술을 파는 바에서 개그맨으로 코미디언으로 전락해가지고 쇠락한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그 내용자체가 오늘 시편과 매치되는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오프닝의 이미지,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그 오프닝의 이미지, 그 오페라 까발레리나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 간주곡과 어우러져서 아무도 없는 링에서 그 챔피언이 몸을 풀고 있는 그 모습, 그 이미지, 그리고 그 간주곡이 까발레리나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이 이미 개사가 돼가지고 성가곡으로도 쓰이지 않습니까?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맘의 위로를 주소서. 이런 내용.
병들고 약한 몸, 맘을 고쳐주시고. 하는 그런 가사가 붙으면서 이 오페라곡이 성가곡으로도 많이 불리는 것을 여러분 알 수 있을 것이에요.
그 이미지를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래요.
그리고 혹시 늦게 일어나셔서 앞에 그 Raging Bull의 오프닝장면을 보지 못하신 분들은 이 채플이 끝난 다음에 저희가올리겠습니다. 카페나 이런데 올릴 테니까 한번 보시면서 시편 24편의 이미지가 왜 챔피언이 링에서 몸을 풀고 있는 그런 모습으로매치가 되는가, 함께 생각해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편 24편은 블레셋에 뺏겼던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 그 마을전체를 다 초토화시켜버리자 블레셋사람들이 보냅니다.
그 법궤를 보내다가 사고가 나고 그러니까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오벳에돔이라는 사람의 집에 두게 되지 않습니까?
거기 뒀다가 오벳에돔의 집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전해 듣고 다윗이 다시금 법궤를 가져다가 시온, 예루살렘성 안으로 모셔 안치하려고 하고 그 안치할 때 그때 부른 노래가 바로 시편 24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시편 24편에도 앞에 나왔던 그런 비슷한 구절이 반복되는데요, 여러분.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리까. 하는 그런 구절이 앞에 있지 않았습니까?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한다. 거짓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다.
지금 이 노래의 내용이 뭐냐 하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어요.
첫 번째는 1절과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만물의 주인이시다.
바다에 있는 것과 땅에 충만한 모든 것들, 그것들을 다 여호와께서 주인 되신 위치에서 만드시고 먹이시고 살리신다.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허락하셨다. 바다와 강을.
그렇게 설명한 다음에 그렇게 만물의 주인이신 분이 너무나도 조그맣고, 조그맣고, 조그맣고 티끌 같은 예루살렘성 안으로 임재하시나? 이유가 뭐냐?
바로 말씀을 담은 법궤가 있기 때문이다.
그법궤위로 당신의 말씀을 두신 곳 위로 이 천하 만물, 우리 식으로 말하면 뭐 미국사람, 내가 알지 못하는 인도사람,아프리카사람, 태평양바다, 대서양바다, 인도양바다, 모든 걸, 히말라야 산맥, 뭐 모든 걸 다 지으신 그 하나님께서 아니어떻게 우리의 성 안으로 들어오실 수가 있겠는가? 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게 임재하시는 그 하나님과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
대통령과 같이 있을 수 있는 사람도 한정되어있고 미국에 백악관에서 함께 머물 수 있는 사람도 한정되어있는 거고 옛날에 또 세종대왕 앞에서 머물 수 있는 사람이 한정돼있듯이.
그러면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신 그 하나님과 실제로 나의 이 현실 속에서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라는 것을 노래하면서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고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않고, 라는 말을 조건을 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여호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그 사람은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다시 말해서 의를 얻는다?
하나님이 너무너무 예뻐하신다.
날마다 얼굴을 붙잡고 뽀뽀하고 아이고, 이뻐라. 아이고, 이뻐라. 그게 의를 얻는다는 말입니다.
의를 얻는다는 게 좀 딱딱하게 느껴지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날마다 아침마다 순간마다 아이고, 예쁜 내 새끼. 아이고, 예쁜 내 새끼.
제가 그러거든요. 저희 아들을 보고.
얼굴을 잡고 그저 뽀뽀하고 이마에 뽀뽀하고 눈에 뽀뽀하고 애가 그냥 몸서리를 칠 정도로 괴롭힐 정도로 이뻐합니다.
그 하나님께 의를 얻는다는 게 바로 그거에요.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 너무너무 이쁘다.
젊은 남자아이가 연애하면서 자기 애인한테 그러지 않겠습니까?
너, 왜 그렇게 이쁘니. 그런 마음이죠.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자, 그러고 났는데 7절부터 갑자기 뭐가 나옵니까?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이것도 복음송에 있지요.
문들아 머리 들어라. 이런 노래 있지요.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굽니까?
전쟁에 능한 여호와로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여러분?
앞에는 천지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이 자그마한 예루살렘성에 머무시는 이유가 말씀이 들은 법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하나님과 이 천지의 주인이신 그 하나님과 함께 머물 수 있는 자가 누구뇨?
손이 깨끗한 자요, 마음이 청결한 자요, 허탄한 데 뜻을 두지 아니하고. 거짓맹세를 하지 아니하는 자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있을 수만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너무너무 이뻐서, 이뻐서, 아이고, 이쁜 내 새끼, 아이고, 이쁜 내 새끼, 그런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문들아, 머리를 들지어다. 이 문이 여러분, 뭐겠어요?
인생의 관문이에요.
다윗의 생애를 가로막고 다윗의 행복을 가로막고 다윗의 기쁨을 가로막는 모든 관문과 장애들이 있을 거 아닙니까?
등용문, 관문, 이런 얘기하잖아요.
그 문을 통과해야 되요. 문을 통과해야 행복을 거머쥘 수가 있습니다.
그 모든 문들과 생애 관문들이 있을 겁니다.
그 관문들을 이제 다윗이 보니까 내 생의 링에 하나님이 올라가셔서 나의 행복을 방해하고 나의 평강을 방해하는 모든 관문들을 향하여 성난 황소처럼 뛰어가실 준비를 하고 계시더라는 겁니다.
왜 전쟁에 능한 여호와라는 말을 합니까? 전쟁에 능한.
누구와의 싸움을 하자는 겁니까?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는 자, 다윗. 그 다윗의 평강과 그 다윗의 행복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과 싸워서 내 생의, 내 인생의 삶이라는 사각의 링에서 하나님께서 챔피언이 될 때까지.
그런데 챔피언이 될 때까지 싸워나가실 텐데. 내 하나님이.
누구를 위해?
다윗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이 챔피언이 되셔서 손에 거머쥐시는 챔피언의 트로피는 뭡니까?
그게 바로 다윗의 행복이라는 것이에요.
다윗의 평강이요, 다윗의 기쁨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트로피가.
그 노래를 지금 24편에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윗이 앞에 23편에서 뭐라고 노래합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는 얘기를 합니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각의 링, 내 생애의 사각의 링, 내 인생의 링 위에 올라가셔서 챔피언 트로피, 나라는 사람의 행복이라는 챔피언 트로피를 손에 쥐시기 위하여 성난 황소처럼 싸워나가시는 그 상대는 무엇입니까?
누구와 싸우시는 겁니까?
나에게 평강과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요. 관문, 관문을 통과한다, 그러면 우리의 관문이라는 게 여러분, 안방과 거실을 갈라놓는 게 문 아닙니까?
그러니까 문을 통과해야 안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안방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관문이라는 건 뭐냐?
등용문, 관문, 이 문이 뭐냐?
지금 있는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입구입니다.
우리는 관문을, 우리가 생각하는 관문은 대부분 뭐냐 하면 돈이 없는 안방에서 돈이 있는 거실로 건너가는 것, 고3아이가 대학을 들어가는 것, 다 이런 게 관문이에요.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하는 것, 이게 등용문이고 관문입니다.
직장이 없던 상태에서 직장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내 생의 사각의 링에서 싸우려고 하실 때 이러한 관문들을 통과하시는 것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싸움이겠습니까?
아니라는 거예요.
분명한 것은 법궤를 두고 그 법궤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이뻐 하시고그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시고 그리고 그 사람의 생애는 이제 하나님께서 싸워나가시는 것, 틀림없습니다.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하나님인 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께서 10명의 과장 중에 3명이 부장이 되는데 부장이 되도록 싸우시겠습니까?
어차피 모든 사람이 다 부자가 될 수 없는 세상에서 내가 부자가 될 수 있도록 관문을 통과하기 위하여 성난 황소처럼 싸우시겠습니까?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누르고 대학에 무조건 들어갈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겠습니까?
그거 아니라는 것이에요.
그럼 뭘 위해서 하나님은 싸우시겠습니까?
돈과 싸우시는 거예요. 돈을 벌도록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돈과 싸우는 겁니다.
돈과 싸운다는 거 무슨 말이죠?
우리 지난번에 언젠가 그런 말씀했어요.
기독교는 돈 버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이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이 돈과 싸우신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돈이 있어도 돈에 빠지지 않고 돈이 없어도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도록 돈과 싸운다는 것이죠. 내 행복을 위해서. 내 행복을 지키시기 위해서 돈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를 원하십니다.
내 행복을 위해서 건강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를 원하십니다.
건강을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건강하게만 지켜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건강이 있어도, 자긍하지 않고 건강이 없어도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도록 건강의 힘과 싸운다는 거예요. 건강의 힘이 뭐예요?
건강이 없으면 우리가 다 쪼그라들어버리지 않습니까?
건강이 없으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도바울에게서 하나님이 싸워 승리한 것은 무엇입니까?
몸에 말뚝을 박고 있었어요. 말뚝이 박힌 것 같은 아픔을 갖고 있었던 사도바울에게서 어떤 고백을 끄집어냅니까?
하나님, 내게 허락하신 은혜가 충분합니다. 라는 고백을 끄집어내요.
이게 승리한 것이지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습니다. 얼마나 얼마나 육체적으로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픔과 고통 속에서 자기를 무고하게 돌로 치는 자들을 용서하며 하늘나라를 보며 감사하고 기뻐합니다.
승리하는 겁니다.
이렇게 싸워 이긴다는 거예요. 이렇게 싸워서.
명예가 있게 해주신다는 얘기가 아니라 명예가 없게 해주신다는 얘기도 아니고 뭡니까?
명예가 있거나 없거나 행복과 평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거지요.
이게 싸워 이긴다는 겁니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승리합시다. 승리합시다.
이러면 사업 잘하는 것, 승진 잘하는 것, 건강을 유지하는 것, 이런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어요.
아니지요.
하나님이 내 생의 링에서 싸워서 챔피언이 되시고 이기신다.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로서 내 생애를 하나님이 활동하시며 이기려고 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 힘이 있는 그 어떤 것 앞에서도 내 행복이 내 기쁨이 내 감사가 나의 평강이 좌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싸우시는 겁니다.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는 거예요. 세상을.
이 세상에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자식. 엄청난 힘을 갖고 있어요.
그러나 자식의 일이 어떻게 됐든지 간에 예를 들어 다윗의 경우, 압살롬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 극악무도한 패륜아로 바뀌어버리지 않습니까?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아들 압살롬이 그러한 패륜아가 된 상태에서조차도 다윗은 뭐라고 얘기합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도다.
이게 이긴 거예요. 이게 이긴 거. 뭐가 이긴 거라고 생각합니까?자식이 잘못되면 마음이 끌려가가지고 그냥 괴롭고 힘든 거예요. 그냥.
세상에 먹힌 거지요.
자,자식이 잘못됐을 때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라고 노래하며 푸른 초장에서 쉬는 모습과 자식이 잘못됐을 때 그 구렁에 같이 들어가서끌어안고 너, 이러면 안 된다. 네가 사람이냐. 고쳐라. 바뀌어라. 나랑 같이 올바른 길로 돌아서자.
이런다고 됩니까?
그럼 자식을 위해서도 어느 게 나을까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마음의 행복과 평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자식을 위해서도 진정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내 마음이 그럴 수 있는 게?
내 생의 사각의 링에서 하나님께서 싸워서 얻으시려고 하는 것은 막강한 파워를, 돈, 무시무시한 힘이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자식, 남편, 아내, 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엄청난 힘을 가지고 내 행복을 좌우해 들어옵니다.
관계가 좋으면 행복해지는 것 같고 아니면 금방 불행해집니다.
가족, 막강하지요.
건강, 무섭습니다. 당장에 몸속에 고통이 있는데 어떻게 웃고 지냅니까?
막강한 힘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어떤 인정, 명예, 무섭습니다.
그야말로 강한 챔피언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가 그 영상에서 본 것처럼 뛰어 올라오셔서 내 생의 사각의 링에서 돈이라고 하는 상대방을 무찔러KO시키시고 자식과 남편과 아내 부모 가족이라는 상대방을 무찔러 KO시키셔서 내 마음의 평강을 유지하시고 그리고 명예와 직장과내 건강, 이 모든 라이벌들을 무찌르시고 그것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있든, 없든, 잘되든, 못되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하나님의 품안에서 내 마음이 행복과 에덴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싸우고, 싸우고, 싸우신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자들에게?
법궤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있을 수 있는 자들에게.
허탄한 데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거짓맹세하지 아니하며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한 자, 이게 다 어떻게 가능해집니까?
오늘 사순절, 계속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다시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해봐요.
주님의 십자가에서 온전히 죽는 자들이. 허탄한 마음이 죽고.
손이 깨끗한 자.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에 손을 대는 것이 손이 더러워지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내 뜻이 죽은 자, 마음이 청결한 자가 누굽니까?
마음에 담아야 될 유일한 대상이신 하나님만을 담은 자,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마음에 담고 있는 모든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 내가 십자가에서 죽어버리면 가능하지 않습니까?
주님의 십자가에서 사람에 대해 죽고 사물에 대해 죽고 내 뜻에 대해 죽고 내 소원에 대해 죽고 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
법궤에 말씀이 주님의 십자가말씀 아닙니까? 이제는.
말씀의 총화가 주님의 십자가사건 아닙니까?
그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내 살과 피가 되게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이쁘다. 이쁘다. 아이고, 이쁜 것,아이고, 이쁜 것. 끼어 안으시고 그리고 내 생애에서 나의 마음의 행복과 기쁨을 뺏어갈 수 있는, 평강을 뺏어갈 수 있는 모든적들과 싸워서 이기시는 챔피언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내 행복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와 모든 관문들아 이제 성난 황소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달려가실 텐데 그는 전쟁에 능하신 자요, 내 행복을 지켜줄 자이시다.
하나님께서 챔피언이 되실 때까지 싸워 나가실 것입니다.
돈은 뜻에 따라 주어지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고 건강도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허락하시기도 하고 낫게도 하실 것이고 취직도 시키시기도 하고 직장을 없애기도 하실 것이에요.
그러나 이 모든 일과 무관하게 하나님은 그 모든 파워풀한 라이벌들을 이기시며 내 마음의 평강과 기쁨을 유지해주실 것입니다.
내 생애의 사각의 링에 올라가신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다윗이 부른 이 24편의 노래가 우리들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아버지!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결집되어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온전히 말씀을 받아들이고 십자가에서 온전히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할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나를 끼어 안으시고 내 생의 사각의 링에 올라오셔서 나의 행복과 평강을 방해하는 모든 관문들을통과하시려는 그 하나님의 성난 황소 같으신 간절한 바람을 우리가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축복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