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언어 파괴는 세종대왕이 몸져눕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정말 심각하다.
TV 오락프로의 3행시 짓기부터 시작한 언어유희는 이제 맞춤법에 맞춰 글을 쓰면 시대적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로 비쳐지기도 한다.
다들 알겠지만, 그 대표적인 예가 '∼했어여', '∼∼임당', '∼했어염'류의 종결어미를 귀엽게 하려고 하는 스타일 -물론 내겐 하나도 귀엽지 않지만-,
'죽어도'를 '주거도', '먹었다'를 '머거따', '굳이'를 '구지'등 소리나는대로 표현해 학창시절 배웠던 자음동화나 구개음화를 완전히 무시하는 '국문법은 학창시절 시험볼때만...' 스타일, '컴퓨터'를 '컴터', '비디오'를 '비됴' 등으로 부르는 '시간없는데 언제 일일이...' 스타일 등이 있다.
이러다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한' 표준어 규정에 따라 몇 년 후의 '국어 교과서'가 '구거'로 바뀌지 않으리라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솔직히 나도 올바른 국어 사용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거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던 기억을 떠올리자면 국어는 분명 제2외국어만큼 어려운 과목이었음을 고백한다.
띄어쓰기, 맞춤법, 외래어 표기법, 문장부호 등 어느 것 하나 쉬운게 없었기에 평생 말하고 쓰며 살았던 언어가 이 정도로 어려운데, 기껏 몇 년 배운 중국어 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자위했었다.
언어가 시대의 반영임을 잘 안다. 그래서 언어 또한 진화하는 것이고. 더 쓰기 편한 글자, 말하기 쉬운 언어들이 주류를 이루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게 보인다.
그러나 인터넷이 이토록 보편화되어있는 현실에서 인터넷 언어가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미치는 비중이 그 어느 매체보다도 크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래도 대학을 나왔다는, 그 중에서도 문학사 학위를 지닌 우리부터라도 한글사랑에 동참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예전에 재미 국어학자가 한 말이 기억난다. 미국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미국인 학자들은 한글의 오묘함과 과학성에 놀란다고.
난 잘 모른다.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세계의 많은 언어들 중에 과연 얼마나 뛰어난 글자인지도. 하지만 난 사랑할거다. 세계의 그 많은 언어중에 내가 자유자재로 말하고 쓸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이므로...
이제는 족벌언론, 재벌언론에 대한 언론개혁이라는 이름의 전쟁이 본질과 핵심을 비껴나 색깔론과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추잡한 정쟁으로 번져버린 이 싸움의 최전방을 맡았던 저격수는 강준만과 손석춘이다.
물론 안티조선 모임인 '우리모두'를 비롯한 수많은 이름모를 독자들의 힘을 폄하하고픈 의도는 전혀 없지만, 분명 오피니언 리더들의 역할 또한 간과할 순 없다.
솔직히 강준만, 진중권, 손석춘같은 논객들의 칼럼이나 시평을 읽노라면 그 통쾌함이 마른하늘에 새끼손가락만한 굵기의 소나기가 내릴 때의 시원함과 맞먹으며, 가운데손가락을 쭉 펴서, 아니면 엄지손가락을 두 번째 손가락과 세 번째 손가락 사이에 끼워서 수구기득권 세력에게 날리는 듯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손석춘이란 이름이 생소한 이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 저 이는 한겨레 여론매체부장이라는 직함과 사회적인 명성, 언론개혁의 저격수보다는 제목처럼 우리말 지킴이라는 별칭이 훨씬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한겨레에 연재되는 손석춘의 여론읽기를 읽노라면 그가 지닌 신문개혁에 관한 애정도 애정이거니와 어휘선택에 있어서 어찌 그리 아름다운 한글들을 끄집어내는지 그 탁월한 선택에 고개숙여 경의를 표하게 된다. 이번주의 칼럼(6월 28일자)을 보자.
생게망게하다, 되술레잡다, 부르대다, 언죽번죽, 여든대다, 터울거리다, 부닐다, 섟, 남우세스럽다, 되치이다 등.
이 칼럼을 읽는데 사전의 힘을 빌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국어학자이거나 아니면 특이한 것만 좋아하는 변태임에 분명하다.
사전 찾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사전을 옮겨놓는다.
생게망게하다 : 뜻밖에 갑작스러워 어리둥절하거나, 전혀 엉뚱하여 이해하기 어렵다.
되술래잡다 : 잘못을 빌어야 할 사람이 도리어 남을 나무라다.
부르대다 : 거친 말로 남을 나무라다시피 떠들어대다.
언죽번죽 :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고 뻔뻔한 모양.
여든대다 : 귀찮게 억지를 부리다.
터울거리다 :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애를 몹시 쓰다.
부닐다 : 붙임성 있게 굴다.
섟 : 《‘-는’, ‘-耈’ 뒤에 ‘섟에’의 꼴로 쓰여》 ‘마땅히 그리하지는 못할망정 도리어’의 뜻을 나타내는 말.
예) 잘못을 빌어야 할 ∼에 큰소리를 친다 / 돈을 갚아야 하는 ∼에 또 빚을 지다.
남우세스럽다 : 남에게 조롱과 비웃음을 받을 만한 데가 있다.
되치이다 : 1.남에게 덮어씌우려다가 도리어 자기가 당하다.
2. 하려던 일이 뒤집혀 반대로 되다.
놀랍지 않은가?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글 어느 곳을 보아도 윤똑똑이, 곰비임비, 싸다듬이, 살천스레 등 어감이 너무 좋은 이런 예쁜 단어들을 만나기란 매우 쉬운 일이다.
그의 이러한 한글사랑의 노력이 헛되이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이 되지 않길 바라며, 이 외로운 싸움에 동참하겠다는 의미에서 앞으로 게시판에 맞춤법에 어긋나는 문장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