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과 베히스툰 비문
도입
베히스툰(Behistun) 비문이란? ‘고대 비문의 여왕’이라 불리우는 베히스툰 비문은 페르시아 다리우스 대왕이 자기가 왕으로 즉위하는 과정을 산 중턱 평평한 절벽 위에 두 단에 걸쳐 새긴 비문과 부조물이다. 그런데 이 비문이 고대 페르시아어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줌으로써 세 가지 쐐기문자들, 즉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아카드어(바빌로니아어)로 기록된 내용을 이해하게 되었다. 비문은 거의 높이가 15미터에 폭이 100미터 정도 되는 석회암 절벽 바위 표면을 깎아 만든 것이다. 이 절벽은 바빌로니아와 메디아의 수도 바벨론과 엑바타나를 잇는 고대 도로에 있다.
전개
1. 로제타 스톤 발굴 이후 발굴 경쟁은 어디로 향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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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이집트에서 로제타 스톤이 발견된 이후 영국, 프랑스, 터키, 러시아, 미국 등 강대국들은 앞다투어 아브라함의 고향이며 구약 성경의 무대인 메소포타미아로 향했다. 티그리스와 유브라테스 강 사이의 광대한 지역에서 흙무더기 속에 감춰졌던 수많은 유물들이 나왔다. 그런데 이 수많은 점토판들과 벽돌, 그리고 다양한 문각들과 부조들은 쐐기문자로 불리우는 설형문자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1843년 프랑스인 보따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다시 굉장한 크기의 앗시리아 궁전을 발견했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 문자였던 쐐기문자에 대한 이해 그 궁전이 누구의 것이며 그 장소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2. 고대 문서와 기념비를 통해 감춰졌던 고대역사와 구약성경의 진리를 드러내 줄 설형문자(쐐기문자)의 판독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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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 영국의 동인도 회사 소속 젊은 장교 헨리 로린슨(Henry Rawlinson)이 군사 고문으로 임명되어 페르시아로 가는 도중 고대 페르시아 지방의 베히스툰(Behistun)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그는 마을 뒤쪽 300피트 높은 절벽 위 바위 표면을 깎아 만든 부조와 세 나라 언어로 쓰여진 비문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호기심에 이끌린 그는 다시 그곳을 방문하여 그 가파르고 위험스런 절벽을 여러 번 기어올라 탑본을 떠서 그 암호 같은 이상한 글자를 해독해 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1847년 이 불가사의했던 글자를 판독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로린슨과 그의 제자들의 판독을 인정하지 않았고 속임수로 치부했으나, 1857년 왕립 아시아 학회에서 로린슨과 그의 제자들의 판독 능력을 시험하는 학회가 열렸다. 로린슨과 그의 세 제자들에게 아직 공개되지 않은 원본을 따로 따로 나눠주고 그 해석을 풀게 한 후 발표하게 하였는데 놀랍게도 그 해독이 일치했고 학계는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3. 헨리 로린슨이 판독해 낸 베히스툰 부조에 나타난 구약 성경의 인물은 누구인가? (학 1:1; 스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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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로린슨이 목숨을 걸고 깎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을 기어올라 탑본을 뜨고 10년 이상 심혈을 기울여 판독에 성공한 그 부조(浮彫)에 나타난 인물은 구약 성경 여러 곳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1세(522~486 B.C)였다. 특히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1세는 제2차 성전 중건령을 내린 왕으로서(스 6:1) 에스더의 남편인 아하수에로(486~465 BC)의 아버지 즉 에스더의 시아버지였다.
이제 이 베히스툰 부조에 씌여졌던 설형문자가 판독되면서 구약 성경의 무대인 메소포타미아 전역에서 출토된 수많은 고대 점토판과 비문들이 읽혀지게 되자 성경의 진실성은 다시 한번 입증되게 되었고, 성경은 거부할 수 없는 진리의 광산으로 다시 한번 반짝반짝 빛을 발하게 되었다.
https://youtu.be/6KpuL9kmUq0?si=Q4HuBVR9xNE9NmwN
생각 나누기
성경의 역사성을 의심하게 하는 수많은 파멸적인 도전들이 있어왔다. 특별히 19세기 유럽에서 퍼졌던 고등비평은 더욱 기독교 신앙을 뿌리째 뒤흔든 공격이었다. 하지만 1840년 영국의 한 젊은 청년 헨리 레이어드(Henry Layard)가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방을 여행하다가 불룩불룩 솟아난 ‘텔’(언덕)에 매력을 느껴 관심을 갖다가 영국 대사의 후원으로 발굴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성경에 등장하는 앗수르 왕의 유적들을 발굴하게 되었다. 그가 찾아낸 앗수르 왕들 중에는 살만에셀 3세, 에살핫돈(왕하 19:36,37, 대하 32:21; 사 37:37-38)등이 있다. 특히 앗수르 왕 아슈르나세르팔이 니므롯에 있는 그의 궁전 입구에 세워 둔 기념비가 발굴되었는데, 이 비문에는 그 당시 왕궁에서 벌어진 엄청난 연회의 규모를 증명해주고 있다. 새 궁전을 헌당할 때 무려 69,574명에게 10일 동안 대접한 식단이 기록되어 있는데 마치 다니엘 5장의 벨사살 잔치나 에스더 1장의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를 연상케 한다. 고고학을 통해 밝혀진 이 성경의 진실성과 역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