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의 주교요지 12-1
39<1>. 세상이 끝날 때에 천주 예수께서 다시 내려오시어 천하 고금 사람들을 다 심판하시느니라.
천주께서 이미 세계를 내셨으니, 반드시 끝내실 날이 있을 것이다. 세계를 끝내실 때에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다시 내려오시겠노라 하시니, 그 제자들이 묻자오되, “어느 때에 내려오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기를, “하늘에 있는 천신도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하시고, 그 때를 일러주지 아니하시되, 그 때에 하실 일을 미리 일러 가라사대, 세상이 장차 끝날 때에는 천하만국이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며, 흉년이 들고, 나쁜 병이 크게 돌고, 재앙이 무수하여 사람이 많이 죽고, 바다가 뒤끓고, 산이 무너지며, 온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어즈러이 흔들리며, 해와 달과 별들이 다 그 빛을 잃는다.
[시작이 있으면 마침도 있다. 태어난 날이 있으면, 세상을 떠날 날도 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 날과 그 시간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태어난 날을 내가 정할 수 없듯이 떠날 날도 내가 정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앞날을 알려주지 않은 이유가 있다. 앞날엔 좋은 일만 있겠는가! 좋지 않은 일도 있다. 언제 어느 때 좋지 않은 일이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게다가 내가 죽는 날까지 알고 살아간다면 무슨 낙이 있겠는가! 그 날이 다가오는 것에 마음이 빼앗겨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기쁘게 살 수 없다. 때문에 하느님은 앞날을 알려주지 않는 은총을 베푸셨다. 매일 매일 기쁘게 하느님을 섬기며 살고자 하는 마음만이 시작이요 마침이다.]
세상이 끝날 날이 이르매, 하늘로부터 큰 불이 내려와 초목과 짐승과 사람을 죄다 불태우고, 천주께서 무수한 천신을 시켜 천하 고금의 죽었던 사람을 불러내어, 천주의 무궁하신 힘으로 다시 살리시니, 무덤 속에서 썩어 흙이 된 몸이 눈깜짝할 사이에 본 몸을 이루고, 천당에 있던 영혼과 지옥에 있던 영혼이 세상에 나와 각각 제 몸에 결합하여 완연히 산 사람이 되니, 이 때에 천신이 뭇사람을 데리고 오리와(올리브) 골짜기에 모이고, 예수께서 못박혀 구속(救贖 : 속량)하신 십자가가 홀연히 공중에 나타나 보이니, 착한 사람은 십자가를 보고 감사하여 기뻐하고, 악한 사람은 십자가를 보고 제 죄를 생각할 것이니, 어찌 놀라고 무서워하지 아니하리요? 천주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니, 뭇사람이 눈으로 그 얼굴을 보고 귀로 그 소리를 들으리라.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제는 인성을 취하여 천주의 무궁하신 권능과 위엄을 감추사 다만 인자하시고 겸손하시고 인내하시는 모든 덕으로써 우리 사람을 가르쳐 구속의 일을 공부하시었으나, 이 때에 이르러서는 그 위엄과 영광이 천지에 진동하여 당신의 지극히 공번되시고 지극히 의로우심을 혁혁히 나타내어 보이시니라.
[예수님께서 인자하고 겸손하신 덕으로 인내하심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인자와 겸손, 인내를 이용하여 교만해지고 간사해진 인간은 끝까지 요리조리 피해다니곤 한다. 그러다가 홀연히 나타난 십자가 (곧 죽음)를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형장으로 나아가는 순교자의 얼굴에 희색(기쁨의 모습)이 가득했다’는 선조들의 모범을 따라 십자가를 만났을 때 (곧 죽음이 다가왔을 때) 미소로 화답할 수 있는 자는 복되어라.]
예수께서 이미 내려와 임하시매, 성모 마리아는 천주의 왼쪽에 가까이 계시고, 무수한 천신들은 차례로 옹위하여 뫼시느니라. 천하 고금 사람이 세상에서 생각한 바와 말한 바와 행한 바가 착하나 그르나 낱낱이 다 드러나 뭇 사람이 서로 그 선악을 알게 되어 가리움이 없느니라.천주께서 착한 사람을 상주어, 그 육신과 영혼을 같이 천당에 올리시어 무궁한 복을 누리게 하시고, 악한 사람을 벌하시어 그 육신과 영혼을 같이 지옥에 내리시어, 무궁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니, 지옥은 영구히 닫히고, 천당은 무궁세에 이르느니라.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서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낱낱이 알지 못한다.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른 사람이 낱낱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나마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낱낱이 다 알고 있다면 부끄러워서 어떻게 살겠는가! 하느님의 깊은 배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만하거나 비양심적이어서는 절대 안 된다. 하느님의 배려로 다른 사람은 모를 수 있겠지만, 하느님은 다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눈과 귀와 입을 인간은 막을 수 없다. 하느님은 다 알고 계시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숨기시면서 우리를 그래도 살게 해주시는 이유가 있다. 모든 것이 낱낱이 드러날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니 지금부터 준비하라는 배려일 것이다. 그 준비를 위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은총의 시간이 고해성사이다. 고해성사는 단순히 죄를 고백하는 자리만이 아니라, 하느님과 형제들 앞에 낱낱이 나를 드러내는 시간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요 라고 드러내는 시간이다. 때론 부끄러워 낯이 뜨거워 질 수도 있지만, 지금 드러내는 것이 좋다. 드러내고 드러낼수록 자유가 무엇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니! 지상에서의 고해성사는 하늘나라에서의 심판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간이니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한다고, 또 잘 숨겨졌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그리고 두렵다는 이유로 꼬깃꼬깃 구겨 책상 밑에 짱박아 놓지 말고, 기회가 되는대로 바로 지금 드러내야 한다. 내 입을 열어 나를 드러내는 고백을 통해서...]
<39항 계속>
첫댓글 두려워하지 않고 문을 두드려 나를 드러내보일수 있는 용기를 청합니다.
자신을 돌볼수 있는 길이 있음이 은총임을 알겠습니다.
주는 찬미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