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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시등 감상 라캉의 응시:주체가 어떤 대상을 볼 때 그 대상은 이미 늘 주체를 그 뒤에서 주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응시 *응시/한영희
시냇물 추천 0 조회 226 22.09.12 10:52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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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2.09.12 11:15

    첫댓글 응시/한영희

    묘지 울타리를 가르는 찔레나무들
    언제부터 그 아래 살았는지 모른다
    어젯밤 어깨를 들썩이던 여자가 축축함을 내려놓고 간 후
    의자는 전염병에 걸린 듯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어둠이 걷히기 전에
    아기 눈빛 같은 이슬을 모아 세수를 마쳐야 한다
    환경미화원의 빗자루는 나의 넓은 품을 달래줄 것이다
    따스한 햇살로 아침밥을 지어먹고
    밤사이 뭉친 근육을 풀어줘야 한다
    사람들이 몰려와 자신을 덜어내기 시작하면
    나는 만삭의 배가 불러온다
    겉옷의 색이 점점 야위어 간다
    더운 바람은 계절도 없이 불어오지만
    체온은 비석아래 쌓여가는 먼지를 닮았다
    허물어져 가는 몸에서 꽃을 피우고
    나비가 내려와 노란 꽃가루를 털고 간다
    목련꽃봉오리 피워 물었던 가지에서
    내부수리 중 푯말이 숨을 쉰다

    *2018 투데이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http://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895

  • 작성자 22.09.12 11:04

    응시 / 길상호(1973~ )

    빨랫줄의 명태는
    배를 활짝 열어둔 채
    아직 가시 사이에 박혀있는 허기마저
    말려내고 있었네
    꾸덕꾸덕해진 눈동자를
    바람이 쌀쌀한 혀로 핥고 갈 때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네
    꼬리지느러미에서 자라난 고드름
    맥박처럼 똑.똑.똑.
    굳은 몸을 떠나가고 있었네
    마루 위의 누런 고양이
    한 나절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켰네
    빨랫줄을 올려다보는 동안
    고양이는 촉촉한 눈동자만 남았네
    허기를 버린 눈과 허기진 눈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참 비린 한낮이었네

  • 작성자 22.09.12 11:07

    열 개의 입을 가진 불의 응시 / 김연아

    야생 당나귀와 까마귀들이 지나간다
    내 눈을 끌고
    내가 갈 수 없는 장소까지

    차가운 벨벳 냄새가 창으로 파고든다
    내 핏속으로 검은 수액이 흐른다

    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사랑할 거야,
    어떤 예언은 내 안에서 남발된다

    모르는 얼굴이 나를 버리는 꿈을 꿨다
    그런 밤이면
    나에게서 네가 스며 나온다
    말이 되지 못한 그림자는
    내 몸을 차지하고 내 피를 흘린다

    너의 깊은 내장 속에 무엇을 숨겼나
    창이 창이기를 그만두고
    네 안에 타오르는 늙은 소녀들

    열 개의 입으로도
    불리어질 수 없는 이름들

    불의 혓바닥 아래서
    나는 돌들과 함께 지냈다
    하늘을 향해 뻗은 손
    나의 외침은 안개와 밤의 해변으로 쓸려갔다

    말할 수 없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훼손되지 않는다

    불의 안쪽에는 여전히 눈동자가 있다
    한 눈에는 밤이,
    한 눈에는 낮이 소용돌이친다

  • 작성자 22.09.12 11:13

    응시/유종순

    어둠속에서 어둠 가득 어둠을 끌어 안은
    그러나 결코 어두워지지 않는

    새벽보다도 더 빠르게 한낮의 태양보다도 더 완전하게
    어둠을 분해하고 벗겨낼 줄 아는

    눈 무서운 눈
    눈 실아있는 눈
    눈 타오르는 눈

  • 작성자 22.09.12 20:43

    시각장애인 안내견/정호승

    지하철을 탄 시각장애인 안내견 곁을
    노숙자 한 사람이 낡은 허리를 구부리고
    손에 든 모자를 내밀며 지나간다
    아무도 동전한닢 넣지 않는다
    전동차는 수없이 문이 열렸다가 닫히고
    시각장애인 안내견만이 천천히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
    천원짜리 지폐 한장을 모자에 넣어주고
    다시 주인 곁에 앉아 말없이 나를 바라본다
    동호대교를 달리는 차창 밖에 초승달 하나
    한강에 몸을 던진다

    *상황을 굽어보던 시각장애인 안내견 '만이' 노숙자의 가난에 "지폐 한장을 넣어준다. 그리고 "말없이 나를 바라본다”. '나'를 바라보는 개의 시선을 기억하라. 이것은 다름 아닌 시인의 '자기응시'의 시선이다. 이는 자신에 대한 도덕적 검열의 시선이기도 한데, 이 시선에 의하여 시인은 스스로 검열관이 되기도 하고 검열 대상이 되기도 한다.(김영희)

  • 22.09.14 08:1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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