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왕국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필리핀의 7,500여개에 이르는 섬들에 모여 살던 부족들이 왕조 국가로 발전하기 이전인 1500년대 초에 이미 스페인의 영향력에 들어가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00여 년간 통치 를 엮은 필리핀은 다시 미국령과 일본의 지배를 받고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1946년 독립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기구한 역사의 필리핀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마닐라를 여행하고 있노라면 별다른 느낌을 받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스페인의 영향력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정말 손에 꼽을 지경인지라 아리송하기 그지없다. 400 여년이라는 시간을 식민 치하에 있으면서도 문화나 역사 유적이 별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니 말이다.
하지만 필리피노들의 생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진한 흔적을 받은 세 가지를 찾을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스페인 계열의 혼혈. 400 여년간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피가 섞이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그런 까닭에 동남아시아 계열인 필리피노들 중 다소 다른 외모를 찾을 수 있다.
부리부리한 눈망울과 진한 눈꺼풀 그리고 우유빛으로 매끄러운 피부의 미인을 가끔 만날 수 있는데 이들이 바로 스페인의 진한 흔적중의 하나로 이런 혼혈인들 덕에 필리핀은 세계 미인 대회에서 심심치 않게 상위 입상을 하곤 한다.
또 다른 증거는 바로 카톨릭. 필리핀 인구의 90% 이상이 카톨릭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데 바로 이 카톨릭을 스페인 군대가 식민 통치를 하면서 필리핀 사람들에게 전파한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성당과 신부, 수녀 복을 입은 사람들과 작은 건물 구석에라도 경건하게 모셔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은 필리핀의 또 다른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란 묘한 구석이 있어 사실 스페인 군대의 진주가 있기 전에 이미 일부 필리핀 제도에 이슬람 군이 일정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까닭이었기에 스페인 군의 진출이 약 3년 정도 늦게 이루어졌거나 혹은 스페인 군이 이슬람교도에게 밀렸었다면 지금쯤 필리핀 여성들은 차도르를 얼굴에 감고 다녀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페인이 필리핀인들에게 남긴 흔적은 바로 피에스타. 바로 축제를 말하는데 느긋한 성품과 '인생을 즐기자'주의의 스페인들의 성품을 배워서 인지 필리핀에는 유난히 축제가 많다. 종교인 카톨릭과 연관된 축제를 비롯해서 한해의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축제와 중국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전통 축제에 이르기까지 필리핀이 먹고 즐기는 축제는 일년 내내 어디선가 열린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