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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멜산을 떠나 텔 므깃도에 도착했습니다.
므깃도.
기독교인들에게 므깃도는 익숙한 이름이지만,
이곳은 아마겟돈이라는 이름으로 비 기독교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입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아마겟돈이라는 곳이 인류의 최후 전쟁이 일어나는 장소라고 알고 있지요.
수년 전에는 ‘아마겟돈’이라는 이름의 영화도 있었습니다.
20세기 말, 1998년에 개봉된 영화였지요.
세기말적인 분위기에 걸맞게 지구의 종말을 다룬 영화였습니다.
줄거리는 커다란 떠돌이 별이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고, 그 별이 그대로 지구와 충돌하게 되면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설정.
지구를 구하기 위해 급조된 팀이 파견되어 행성을 파괴하므로 지구는 종말의 위기를 벗어나게 되는데요...
바로 이 영화였지요.
여담입니다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소재의 ‘딥임팩트(Deep Impact)’라는 영화도 있었지요.
역시 세기가 끝나갈 때가 되니 인류의 심리가 불안했던가 봅니다.
지구의 종말을 상징하는 아마겟돈이라는 이 지명은 바로 므깃도라는 지명에서 온 것입니다.
므깃도 언덕을 히브리 말로 ‘할 므깃도’라고 하는데 이를 헬라어로 음역하면 '아마겟돈'이라고 읽게 됩니다.
아마겟돈이 바로 므깃도라는 것이지요.
므깃도를 이야기하려면 곧 전쟁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므깃도는 전쟁의 대명사인 곳입니다.
왜냐하면 지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요지 중의 요지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땅은 누구에게나 중요하지요.
그러니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차지하려고 애쓰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전쟁이 빈번할 수 밖에 없는 것이구요.
우리나라로 비유한다면, 한국전쟁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철의 삼각지 정도라고 하면 될까요?
지역적으로 본다면, 삼국시대 가장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점유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었던 당항성(오늘날의 경기도 화성시 지역) 정도라고 하면 될까요?
한국전쟁시에나, 삼국시대에나 그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까닭은 그곳이 지역적으로 의미있는 요충지였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므깃도가 바로 그런 지역이었습니다.
므깃도는 이집트에서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해변길(Via Marisa)의 길목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해변길은 고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잇는 가장 중요한 도로였습니다.
이 길은 통상은 물론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길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출발하여(반대쪽 방향도 마찬가지이겠지요) 메소포타미아로 가려면 지중해 해변을 따라 오다가 갈릴리 호수를 거쳐 북동쪽으로 가야 하는데, 지중해 해변과 갈릴리 호수 사이에 갈멜산맥이 가로 막혀 있습니다.
이 갈멜산맥을 지나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 골짜기 옆에 므깃도가 있는 것입니다.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목 옆에 므깃도라는 도시가 있는 것이지요.
므깃도는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교통의 요지 중의 요지인 것입니다.
게다가 므깃도가 자리하고 있는 이 지역 앞에는 쉐펠라와 더불어 이스라엘 최대의 곡창지대인 이스르엘 평야가 펼쳐져 있습니다.
교통의 요지요, 곡창지대인 이스르엘 평야를 내려다 보는 므깃도.
이렇게 중요한 땅이니 어느 누구나 욕심내지 않을 수 없는 땅이고,
그러다보니 므깃도는 수 많은 전쟁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슬픈 운명의 땅이기도 했지요.
대략 역사적으로 훑어보면,
주전 3,300년경부터 이미 사람들이 도시를 건설하고 살기 시작했고,
초기 청동기 시대였던 주전 3,000년경에는 가나안의 중요 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주전 15세기 경, 이집트가 가나안 땅을 확고하게 지배할 때 므깃도는 이집트 군대의 주요 주둔지가 되었고,
텔 므깃도 발굴을 통해 알려진 바로는 이곳에서 적어도 24차례 이상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므깃도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전쟁은 남왕국 요시아 왕이 이집트의 바로 느고를 막기 위해 벌인 전쟁입니다.
[왕하23:29]
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
사사 드보라의 승리의 노래에도 므깃도는 언급되고 있습니다.
[삿5:19]
왕들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왕들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은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므깃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솔로몬은 므깃도에 요새를 건축하게 됩니다.
[왕상9:15-19]
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이러하니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읍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또 바알랏과 그 땅의 들에 있는 다드몰과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였는데
요한계시록에는 아마겟돈에서의 전쟁에 대하여 언급되고 있습니다.
[계16:13-16]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가장 유명한 전쟁은 이집트의 투트모스3세의 원정에 따른 전쟁입니다.
주전 15세기, 이집트 18왕조의 투트모스3세는 유명한 합셉수트 여왕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장악하자, 17회의 해외원정을 통해 이집트를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던 정복군주입니다.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지역의 작은 군주들 330명은 이집트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힘을 합쳐 므깃도에서 이집트에 대항하였지만, 결국 투트모스의 군대에게 패하여 항복하고 말게 되지요.
이 반란의 댓가로 이 지역의 군주들은 이집트로부터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고 하는군요.
므깃도에서는 고대에만 전쟁이 벌어진 것이 아닙니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주둔했던 적도 있었고(1799),
제1차대전 중에는 영국의 알렌비장군의 군대와 터키군이 전투를 벌인 바도 있다고 합니다(1918).
독립전쟁 당시에도 이스라엘군과 아랍군의 전투가 있었다고 하는군요(1948).
그 유명한 므깃도에 도착하였습니다.
(2013 성지답사 시에 찍은 사진에 2011 답사 때 찍은 사진을 함께 사용하였고, 필요시 구글 검색을 통해 사진을 보충했습니다.)
[사진: 차창 밖으로 내다 본 텔 므깃도 유적지 입구]
[사진: 유적지 소개 표지판]
매표소를 통과하면 텔로 오르는 오르막 길이 나타납니다.
[사진: 텔로 오르는 길. 2011 여름에 찍은 사진입니다]
오르막 길을 거의 오르면 텔로 들어가기 위한 성문 유적을 대하게 됩니다.
[사진: 성문에 대한 설명 표지판입니다. 후기 청동기 시대의 성문이라고 되어 있군요]
[사진: 이렇게 성문을 통과합니다.]
[사진: 철기시대의 성문에 대한 안내 표지판입니다. 시대에 따라 성문의 모양이 달랐음을 알 수 있겠습니다.]
[사진: 성문 유적지 위에서 입구를 내려다 보며 찍어보았습니다. 성문은 대단히 복잡하게 지어져 있어 이 복잡한 구조물을 지나야 성내로 진입할 수 있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쉽사리 진입하지 못하게 하려는 방어전략이겠지요.]
성문을 지나면 텔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이어집니다.
[사진: 오르며 바라본 텔 므깃도의 정상(?) 모습]
텔 므깃도의 정상(?)에 오르게 되면 눈앞으로 시원하게 이스르엘 평야가 펼쳐집니다.
[사진: 광활하게 펼쳐진 이스르엘 평야. 좌우서 우로 찍어보았습니다]
2013년 답사는, 3월이었습니다. 우기의 끝자락이지요. 보이는 곳마다 푸르른 모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2011년 답사는, 8월이었습니다. 건기가 한창일 때였지요. 보이는 곳마다 누런 색갈이었습니다.
세심하신 분들은 사진을 보시면서 색갈이 다른 것을 발견하실 수 있어셨을 것입니다.
정상에 올라 먼저 공부를 합니다.
[사진: 텔 므깃도에서도 여전히 열공!!]
므깃도와 같은 요새는 전쟁이 빈번합니다.
적에게 포위를 당할 경우에 버텨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식량과 물입니다.
텔 므깃도 정상에는 거대한 사일로(식량저장창고 유적이 있습니다.)
[사진: 식량저장창고 유적.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이시는지요? 저 계단을 타고 내려가 차곡차곡 양식을 쌓아두었겠지요.]
정상에는 시대별로 섬기는 신에게 제사를 드렸던 제사 유적들도 있습니다.
[사진: 가운데 둥그런 부분이 제단이라고 하는군요.]
텔 므깃도에서 가장 주목되는 유적은 마병장과 수로입니다.
마병장은 솔로몬이 군마를 조달하기 위해 설치한 시설이라고 하는군요.
당시 상황으로 보면 대단한 시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마병장에서는 450마리의 말을 길렀다고 하구요,
150대의 병거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을만큼 큰 규모였다고 하는군요.
[사진: 마병장 유적 사진들입니다. 철구조물로 말의 형상을 만들어 놓아 이해를 돕습니다]
[사진: 병거 모형]
[사진: 병거는 통상 세 사람의 병사가 탔다고 합니다. 가운데 병사는 말을 몰고, 양쪽의 두 병사가 활을 쏘았다고 하는군요.]
[사진: 아이들이 병거에 올랐습니다.]
마병장은 솔로몬이 만들었고, 여기에서 군마들을 길러냈다고 하는데요...
학자들에 의하면 솔로몬 시대가 아니라 그러부터 약 100년 후, 아합 왕 때에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합니다.
아마 현재의 마병장 유적은 아합이 만든 것일지라도, 그 이전에 솔로몬이 만들었던 것을 아합이 보완했거나, 다시 만든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므깃도에서 마병장과 함께 가장 주목할 유적지인 수로시설로 갑니다.
수로 시설은 북왕국 아합왕이 만든 시설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므깃도에는 수원지가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언덕 기슭에 있는 지하 10미터에서 나오는 샘.
평화시에는 사용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시, 적에게 포위를 당하면 이 샘은 성내 사람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아합은 이 물을 성내로 끌어들이는 지하 터널을 팠습니다.
이는 히스기야가 만든 예루살렘의 실로암 터널과 같은 것이지요.
성안에서 60미터 정도를 아래로 파 내려간 후,
성밖의 샘을 향해 120미터 정도를 지하로 터널을 팠다고 합니다.
거대한 암석지대이므로 난공사였지만, 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공사였던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성밖의 물을 끌어들일 수 있었고, 이 물은 외부에서는 발견할 수 없도록 위장해 놓았다고 합니다.
[사진: 구글에서 찾아본 므깃도 수로 그림입니다]
이 터널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가파른 경사로 이어진 183개의 계단을 내려갑니다.
다 내려가면, 터널로 80미터를 지나갑니다.
샘에서 다시 계단 80개를 오르면 출구로 나오게 됩니다.
[사진: 수로에 대한 해설 안내판]
[사진: 다 내려와 만나는 샘.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이 샘이 생명줄인 셈입니다]
[사진: 밖으로 나와 위로 텔 므깃도를 바라본 사진]
위 사진들 외에도 여러 유적들이 있지만 생략합니다.
텔 므깃도 박물관에서 자료들을 보았으면 좋았을텐데, 시간 관계상 잘 못 보았습니다.
구글에서 참고할 만한 사진들을 찾아서 추가해 봅니다.
[사진: 텔 므깃도 상상도]
[사진: 항공촬영 사진. 텔 주위로 광활한 이스르엘 평야를 볼 수 있습니다]
[사진: 므깃도 박물광에 만들어져 있는 모형]
므깃도 이야기 여기서 마칩니다.
2013. 9. 20,
여러분의 목사,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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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음은 다시 나사렛, 갈릴리로 가고 있습니다. '므깃도'에 이어 곧 '나사렛 사람 예수', '갈릴리 민초와 함께한 예수'! 목사님의 성지 답사 후기가 계속 이어지기를 응원(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