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강의(經史講義) 10 ○ 논어(論語) 3
[요왈(堯曰)]
윤집기중(允執其中)의 중(中)은 대본(大本)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달도(達道)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주자도 무과불급(無過不及)이라고 풀이하였는데, 다만 집(執)이라고 하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하나의 물건이 있는 듯하다. 사마씨(司馬氏)가 말한 염중(念中)이라는 학설도 정자(程子)는 오히려 그르게 여겼으니, 더구나 집중(執中)이겠는가. 《중용》에는 “그 양쪽 끝을 잡아 그 중간을 백성들에게 사용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용중(用中)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집중(執中)이라고 한 것은 과연 무슨 뜻인가?
[이익진이 대답하였다.]
여기서는 일에 있어서의 중(中)을 가지고 말하였기 때문에 집(執)이라고 한 것입니다. 집(執)이라는 것은 하나의 물건을 손으로 잡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있어서 그 중(中)을 요량하여 잡아서 사용함을 말하는 것이니, 실제로는 《중용》의 용중(用中)의 용(用)과 한가지 뜻입니다.
여기 “예(禮)를 알지 못하면 입(立)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였는데, 입(立)이란 무엇을 말함인가? 대저 예(禮)에는 반드시 입(立)을 말하였으니, 이를테면 ‘예(禮)에서 입(立)한다’느니 ‘예(禮)를 배우지 않으면 입(立)할 수가 없다’느니 하는 것이 모두 이것이다. 입(立) 자가 예(禮)에 절실한 까닭에 대해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는가?
[김희조가 대답하였다.]
예(禮)는 사람의 일상생활에서 몸을 세우기 위해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禮)에 반드시 입(立)을 말합니다. 예(禮)에는 체(體) 자의 뜻이 있으니, 예(禮)에 입(立)함은 곧 몸을 세움을 말합니다.
위는 요왈편(堯曰篇)이다.
[堯曰]
允執其中之中。非以大本言。以達道言。故朱子亦以無過不及釋之。而但謂之執則似有一箇物事爲可把捉者然。司馬氏念中之說。程子尙以爲非。况執中乎。中庸云執其兩端。用其中於民。此不曰用中。而必曰執中者。果何義也。翼晉對。此以在事之中言。故曰執。執者非謂其把捉一物也。謂其於事物上。酌其中而執以用之也。實與中庸用中之用一義。此曰不知禮無以立。立者何謂也。大抵禮必言立。如立於禮不學禮無以立皆是也。立字之所以切於禮。可得聞其說歟。煕朝對。禮者。人之日用動靜。所靠著以立身者也。故禮必言立。禮有體字之義。則立於禮者。卽立身之謂也。以上堯曰
출전 : 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