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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아프요?"
"허리가 말도 못 허게 빠져요. 숨도 차고 불면증도 있어요. 병원에 그렇게 다니고 약을 먹었어도 낫질 않아요."
"병원에서 고칠 병이 따로 있지 아주머니 병은 간장이 나빠서 온 병이요. 이런 병은 그 근본을 다스리기 전에는 고쳐지들 않는 법이요."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삶이 그을었음이 분명한 쉰 쯤 되어 보이는 아낙의 말을 유심히 듣고 진맥을 하던 이 옹은, 진단을 마친 듯 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친절히 설명해준 다음 혈자리에 침을 꽂았다. 이렇게 환자들이 침을 맞고 꽂은 채로 있는 시간은 대개 이십 분 가량.
오십대의 시골 아낙에게 침을 다 꽂은 이 옹은 이번에는 "아이구 아이구"하며, 오만상을 찌푸리고 겨우 부축해 들어온 이성갑(취재 당시 67세 남자, 서울 면목동) 씨에게 다가가 아픈 사정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허리가 아파요?"
"병원에 일 년 넘게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았어도 낫지 못했어요. 나이가 먹어서 나을 수 없다고 해요."
"걱정하지 마요. 침 맞으면 나을 수 있을게요."
"제발 낫게만 해줘요. 집 한 채라도 드리리다."
"그런 소리 말고 엎드려 봐요."
이씨는 몹시 상태가 나쁜 듯 혼자서는 엎드리지도 못하고, 남의 부축을 받아 겨우겨우 엎드렸다. 그리고 움직일 때마다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이런 이씨에게 이 옹은 항문 부근의 장강(長强)이란 혈에 장침(長針)을 꽂고, 무릎 아래에 대여섯 개의 짧은 침을 꽂았다. 그리고 척추 부위의 툭 불거져 나온 허리뼈를 두 엄지 손가락으로 힘껏 눌러댔다. 그럴 때마다 이씨는 금방이라도 죽겠다는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이 옹의 뛰어난 침술효과가 눈으로 확인된 건 바로 이때부터였다.
"그렇게 비명 지르지 마소. 죽을 병은 아니니께. 이제 조금 있으면 좀 괜찮아질거요,"
저렇게 아픈 사람이 조금 있으면 괜찮아진다니…… 척추 관절이 어긋나 경혈(經穴)에 피와 기(氣)가 뭉쳐 탈이 난 병인데, 어긋난 관절을 맞춰 주고 경혈을 풀어 주면 자연히 낫게 될 것이라는 게 이 옹의 설명이었다.
"조심해서 일어나 앉아 봐요."
어느 정도 치료를 마친 듯 이 옹은 침을 빼더니 이씨를 일어나게 했다. 이씨는 옆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조심 일어나 앉았다.
"살살 허리를 흔들어 봐요. 바늘구멍만큼이라도 괜찮으면 나을 조짐이요,"
"할아버지, 이것 괜찮은 것 같은데요. 아직 아프긴 해도 아까보단 허리가 시원해요."
금방까지 비명을 지르던 이씨는 이번에는 자신의 허리가 시원해지기 시작한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앉아서 허리를 이리저리 살살 흔들어 댔다.
"시원하다면 나을 조짐이요. 이제 다음에 올 땐 집 반 채는 들고 와야 돼요."
이 옹은 제법 얼굴색이 돌아온 이씨에게 농담을 하고는 다른 환자의 아픈 사정을 들어주려고 손을 옮겼다. 아무리 침술이 뛰어나다지만, 저렇게까지 즉효가 있을까. 쉽게 믿어지지 않아 이씨에게 확인해 보았다.
"진짜 아픈 통증이 덜합니까?"
"예,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참 신기하네요. 병원에 그렇게 다녔어도 나을 생각은 않고, 겨우 진통제로 버티다시피 한 병인데 말입니다."
눈으로 확인했으면서도, 또 귀로 들었으면서도 쉽게 믿기지 않았지만, 올 때 서너 번 기다시피 왔다는 이씨가 갈 때 지팡이를 짚고 걸어 나가는 건 분명했다. 동양의학과 침술에는 일반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 저런 신비함이 있는 것인가.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옆에 있던 이기수(취재 당시 45세 남자, 서울 청량리) 씨가 요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바람에 웃지 못할 일도 간혹 벌어진다고 목격담을 들려주었다.
"지금처럼 며칠 전에도 허리를 못 쓰는 아줌마가 왔는데, 침을 놔서 낫으니께 처음엔 일어나서 막 성질을 내요. 침에 마취약을 묻혀 무슨 속임수를 썼지 않냐고 막 화를 내는 거예요. 올 때는 통증이 심해 부축해서 겨우 왔는데, 단박에 낫으니 이상하다 그거지요. 나중에 여러 환자들이 이해시켜주니 수궁하고 연신 할아버지에게 고맙다고 하고 가더라고요."
이런 이 옹의 침술효과는 잠깐 있으면서 몇 사람에게서 더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침술의 탁월함에 다시금 마음을 곧추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가 묵직하고 쑤신다는 마흔쯤 된 여인은 발바닥 중앙에 있는 용천혈(湧泉穴)에 침을 꽂아 주니, 이내 머리가 맑아 온다며 "이젠 눈 감고 잠 좀 잘 수 있게 됐다" 고 좋아했다. 또 발가락이 말도 못하게 찌르고 아프다고 호소하던 환자는 발등의 임읍혈(臨泣穴)과 태충혈(太衝穴)에 침을 맞고는 시원해져 온다며 자신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심한 타박상으로 팔이 퉁퉁 부어 팔을 전혀 들어 올리지도 못하던 환자는 어깨와 손등에 침을 맞고서 서투나마 '삐걱삐걱' 팔을 들어 올리기도 하였다.
즉효를 보는 병은 그렇다 치고, 중풍 등 고질병의 치료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그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치료 받으러 온 사람들로부터 증언(?)을 듣기로 하였다. 먼저 서울 면목동에서 온 최승순(취재 당시 53세 여자) 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디가 아파서 왔습니까?"
"7개월 전에 중풍으로 쓰러졌어요."
"침 맞고 효과가 있었습니까?"
"처음엔 한 쪽을 못쓰고, 말도 잘 안 되고, 인사불성으로 업혀 왔어요. 그런데 열흘 간 침을 맞고 나니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고, 20일째부터는 남의 도움 없이도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이번엔 서울 중곡동에서 온 조순자(취재 당시 58세 여자) 씨가 자신이 겪은 신비한 일도 빼 놓을 수 없다는 듯 자청해서 말을 걸어 왔다.
"제 남편이 올 4월에 머리가 아프고, 눈 부위 근육이 쑤셔 가까운 안과에 여러 날 다녔어요. 그런데 낫질 않고 일주일쯤 되니 눈꺼풀이 내려와 감기고, 머리 통증이 심하게 왔어요. 그래도 병명이나 원인을 몰랐어요. 그러다 지난 4월 말 경에 이곳 할아버지에게 와 진찰하니, 지라(=비장)에서 병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3개월째을 침을 맞았더니 신기하게 정상으로 돌아오더라고요."
"아주머니는 어디가 아파서 왔습니까?"
"저는 신경통으로 이틀에 한 번씩 와서 침을 맞고 있어요. 한 달 간 침을 맞았는데, 지금 벌써 좋아지고 있어요."
"여긴 언제부터 다니기 시작했나요?"
한 15년 전에 심한 정신질환을 앓은 적이 있어요. 처음에 피곤하고 불면증으로 답답하고 불안한 전조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괜히 울고 싶고 튀어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허리에 멍이 생기고, 피부가 아리고, 다리도 붓고, 발 뒤꿈치도 시큰거리는 증상이 나타나더군요. 이곳 할아버지한테 와서 침을 딱 두 번 맞고 가슴이 시원해지면서 불안감과 답답한 마음이 없어지더니 나았어요. 그 후 침술이 용하다는 걸 알고 소화가 안 되거나, 머리가 아프거나, 조금만 병이 나면 쫓아와요."
이 밖에도 무릎 관절염에 걸린 중년 남자, 집에 강도가 들어 당한 충격으로 심장병에 걸린 여자, 심한 좌골신경통에 걸린 할아버지도 이 옹의 침을 맞고 비로소 몸이 나아지고 있다며 한결 같이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양방병원에서 두 손들어 버린 난치성 질병을 고쳐내는 이 옹의 침술실체는 무엇인가. 궁금하여 잠시 물어 보았다.
"침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는 주로 오행침법(五行針法)을 많이 써. 다른 침법을 써보기도 했으나, 그 중에서도 오행침이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제일이여. 오행침은 대개 팔꿈치와 무릎 아래 쪽의 혈자리에 침을 놓으니, 사고 날 염려가 거의 없어."
"오행침법이란 어떤 침술입니까?"
"자연은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五行)의 상생상극(相生相剋) 원리에 따라 생성되기도 하고, 사멸되기도 하는데 인체의 장부도 마찬가지여. 이 오행의 원리를 가지고 바람(風)으로 온 병, 차가워서(寒) 온 병, 화(火)로 온 병, 말라서(燥) 온 병, 습(濕)해서 온 병, 더워서(暑) 온 병 등을 다스리지."
"침술 효과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신통하던데, 침술의 병 치료 원리는 무엇입니까?"
"혈과 기가 막히면 뚫어 주고, 차면 덥혀 주고, 더우면 식혀 주니 나을 수밖에 없지. 모든 건 자연의 원리여.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야 제대로 돌아가듯이, 인체도 조화를 찾아주면 자연 건강허게 돼."
그리고 이 옹은 오행침법의 구체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 달라 하자,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
다.
"예를 들어 위가 허해서 온 병은 위가 토장부(土臟腑)니께 화생토(火生土)의 원리에 따라 화경(火經=心臟經)의 화혈(火穴)을 보(補)해주고, 토(土)는 목(木)에 의해 죽으니께(木剋土) 목경(木經=肝臟經)의 목혈(木穴)을 사(瀉)해주면 되지. 또 간이 허해서 온 병은 간이 목장부(木臟腑)니께 수생목(水生木)의 원리에 의해 수경(水經=腎臟腑)의 수혈(水穴)을 보해주고, 목(木)은 쇠(金)에 의해 죽으니께(금극목(金剋木) 금경(金經=肺臟腑)의 금혈(金穴)을 사해주면 되지. 그러나 무조건 그렇게 되는 건 아녀. 인체의 조화란 우주의 변화마냥 무궁무진혀서 같은 병이래도 그때그때 다 다르고, 치료하는 데 머리가 잘 돌아가야 혀. 지라(陰의 土臟腑)가 강하면 토극수(土剋水)에 따라 수장부인 콩팥을 괴롭혀서 나빠지게 혀. 그렇다고 지라를 사(瀉)해주는 게 아니고, 위(陽의 土臟腑)를 보해 줘야 콩팥이 살아날 때도 있어. 이건 개가 닭을 물었을 때 그냥 닭을 뺏으려 하는 게 아니고 개에게 다른 살코기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여. 의술이란 그저 되는 게 아녀. 이거 오래 허다 보니 영(靈)이 통한 것 같이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보여. 허지만 환자들은 장난처럼 그냥 꾹꾹 찔러 주어 나은 줄만 알고 있지."
이렇게 이 옹이 난치성 질환을 침술로 고쳐 주고 받는 대가는 환자들이 성의표시로 담뱃값이나 하라고 놓고 가는 이삼천원 정도. 이것도 주면 받고 안주면 안받는 형편이고, 노인이나 가난해 보이는 사람이 쌈지돈을 내놓을라치면 "돈 벌 목적으로 이짓 허고 있는 것 아니다"라며 극구 사양하는 게 예사였다.
돈 좀 많이 받지 그러냐고 묻자, 이 옹은 의술하려면 돈과 욕심을 떠나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의술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단호한 태도부터 보였다.
"의술이 돈과 연관되면 환자를 속이게 돼. 가령 돈 많은 사람이 왔잖여. 그럼 이걸 어떻게 해서 돈 좀 뜯어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한 번에 고칠 병도 질질 끌고 안 먹을 약도 먹으라 허게 돼. 일단 의술을 허려면 통선도(通善道) 허고 적음덕(積陰德)허야 혀. 의사는 양의사가 되었든, 한의사가 되었든, 침쟁이가 되었든, 머리부터가 원의사가 돼야 혀."
이런 의술정신에 대해 옆에 있던 이 옹의 처 전기순 할머니는 이 옹이 이 세상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거든다.
"이 양반은 침 값을 받기는 고사허고, 돈 없고 불쌍헌 사람이 오면 숱허게 차비 주고, 약 지어 줘서 보내는 사람이요. 한 번은 어린애를 하나는 업고, 둘은 걸려서 온 뚱뚱 부은 아지매 하나가 의자에 앉아서 우는 거여. 이 양반이 문을 열더니 저 아지매 왜 저렇게 우는지 한 번 사유나 물어 보라고 그러는 거여. '아지매 왜 그러냐'니까 말도 못 허고 마냥 울어. 몰골을 보니 눈은 부어서 꼴도 아녀. 알고 보니 이 아지매가 어린애 낳고 먹을 게 없으니께 시래기를 주워다 죽을 끓여 먹은 거여. 그게 체혔다고 그러면서 침 잘 놓는다는 소문은 듣고 왔는디, 돈은 없고 혀서 서러워 운다는 거여. 신랑은 어디 있냐니께 신랑은 마침 한 달 간 예비군 훈련이 있어 집을 비웠는디, 간 지 삼 일 만에 애를 낳았대. 그 소리를 이 양반이 듣더니만 바로 들러오라고 그러대. 이 아지매가 침을 맞더니 이제 살 것 같다는 거여. 오목가슴에서 뭐가 툭 떨어지는 것 같고 시원하다는 거여. 그래 갈 때 같이 따라가 사는 것 봐 주고 오라고 그러대. 택시를 태워 가지고 집에 갔더니 방이 손바닥만헌디 개떡만헌 이불 있고 아무것도 없어. 진짜 시래기죽 끓여 먹었다는 게 옳아. 그래 우리도 가난허지만 쌀 한 말 사고 연탄 열 장 사서 불 지펴 주고 간장 한 병과 미역 하나 사서 국을 끓여 줬어. 그러고 얼마나 흘렀을까 신랑허고 왔는디 다 살아 깨끗허게 와서 땅에 코 닿게 절을 하는 거여. 그걸 보니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도리를 혔다고 생각허지만 마음이 흡족 허드라고."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압적으로 내려보는 이 사회에 인술의 정신이란 무엇인지 모르겠만, 잠시 옆에서 이 옹이 환자를 대하고 치료하는 걸 보니 이 옹에게 온 환자만큼은 돈이 없어 병을 못 고치고, 무식하다고 업신당하고, 가난하다고 설움을 받는 일만은 없을 듯하였다.
한편 이 옹을 찾아온 환자들과 인근 주민들은 많은 난치병 환자를 구료하고 불쌍한 이웃을 돌보는 이 옹의 의술인생과 인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공덕비를 세우기도 했다. 이 점에 대해 심한 간질을 앓다 이 옹의 침을 6개월 간 맞고 결국은 나았다는 이상로(가명, 취재 당시 46세 남자) 씨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금년 정월에 할아버지한테 병을 고친 교수하고 목사 몇 분, 주민들이 앉아서 상의했어요. 이렇게 고맙게 공덕을 닦고 계신 분을 그대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연령이 돼서 어느 때고 가실 양반이니께 그러기 전에 공덕비라도 세우자고 추진했는데, 과거에 난치병으로 고생했던 사람들의 호응이 참 좋았어요. 할아버지는 '낯 내기 싫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고마움을 입은 사람에겐 진심의 표현일 뿐이예요."
이 공덕비는 이 옹의 집앞에 서 있는데, 비석의 앞면에는 '인술인 만죽 이중구 공덕비(仁術人 晩竹 李中求 功德碑)'라고 씌어 있고 옆면에는 공덕비를 세운 장승태(전 체신부 장관) 오승근(판사) 이태수(교수) 최정목(목사) 조운영(우남 스님) 등 오십여 명의 설립자 이름과 설립일(1992년 辛未 4월), 그리고 뒷면에는 이 옹의 인술역정이 새겨져 있다.
"…… 공은 오로지 간병과 구호에만 전심전력하였을 뿐, 전혀 이재(利財)에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찾아오는 환자들은 신분의 귀천을 불문하고 지성으로 치료하고 빈한한 사람에게는 완치시까지 무보수 가료와 차비를 제공했던 사례가 비일비재하였다. 요즘 일부 몰지각한 의료인들이 빈사(瀕死)의 응급환자를 예사로 외면하는 세태에 공은 묵묵히 적선(積善)과 음덕(陰德)으로 일관하였으니 참으로 인술인의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서 공덕비 설립에 동참했던 장승태 전 체신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장 전 장관은 재작년에 중풍으로 쓰러져 병원 치료를 받다 결국 낫지 못하고, 친구의 소개로 작년 겨울부터 금년 6월까지 이 옹에게 침술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 결과 이제는 걷게 되었다며 이 옹의 신통한 침술 능력과 인술 정신에 공감하는 바가 많아 공덕비를 세우는 데 힘을 합했다고 답변해 주었다.
이 옹의 진료 시간은 오전 다섯 시에서 오후 한 시까지. 그날 점심 후에 이 옹과 마주 앉아 의술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행침법을 주로 쓰신다고 했는데, 오행침법은 언제 개발되었습니까?
"임진왜란 당시 유명한 사명대사의 수제자에 사암(舍岩)이란 분이 계셨어. 석굴에서 득도했다 해서 사암 도인이라 했는디, 이분이 개발하여 전래되어 내려오고 있어. 그래서 사암침법(舍岩針法)이라고도 혀.
-오행침법은 어떻게 터득하셨습니까?-
"나는 열세 살 적부터 의술공부를 시작혀서 평생을 두고 공부허고 있어. 지금꺼지 본 책만도 1백 권이 넘지. 오래 책을 읽다 보니 영이 통헌 것마냥 병을 고치는 법이 훤히 보여. 허지만 오행침법은 간단혀. 오행의 원리만 알면 되지. 문제는 진찰여. 사람의 몸은 우주의 변화와 같이 조화가 무궁무진헌디, 같은 중풍이라도 이게 어느 장부에서 왔는지 다 틀려. 그걸 가려내야 허고, 또 그 장부가 뜨거워져서 그랬냐, 차가워서 그랬냐, 말라서 그랬냐를 가려내야 혀. 그리고 차갑더래도 어떻게 해서 차가워졌는지를 알아내야 혀. 그걸 오행의 원리에 따라 다스려 주기만 허면 돼. 그런디 진찰은 내가 평생을 두고 깨쳐도 다 못 깨닫것어. 진단만 정확히 해내면, 어떤 병이고 낫는 방법이 있어."
-오랜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터득한 진찰 방법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진찰에는 전통적으로 사진법(四診法)이라 혀 관형찰색(觀形察色=望診)이 있고, 문진(問診, 聞診)이 있고, 맥진(脈診=切診)이 있는디, 제일 정확한 건 문진(問診, 聞診)여. 이걸 종합해서 판단내리지. 얼굴색이 황색이 돋으면 지라가 나쁜 것이고, 청색이 돌면 간이 나쁜 것이고, 흑색이면 콩팥이 나쁜 게지. 그리고 허즉양마(虛卽痒痲) 실즉동통(實卽疼痛)이라고, 허하면 가렵고 실하면 통증이 오지. 또 차가우면 오그라들고, 뜨거우면 늘어져. 너무 뜨거우면 오그라드는 경우도 있지. 그리고 간병(肝病)은 대장경(大腸經)에 나타나니 대장을 소통시켜야 낫고, 대장병은 간경(刊經)에 나타나니 간을 고르게 해야 허지. 콩팥병은 삼초경(三焦經)에 나타나니 삼초를 조화시켜 줘야 허고, 삼초병은 신장경(腎臟經)에 나타나니 콩팥을 보해 줘야 허지. 또 지라병은 소장경(小臟經)에 나타나니 소장을 사해 줘야 허고, 소장병은 비경(脾經)에 나타나니 지라를 보해 줘야 허지. 그리고 방광병(膀胱病)은 폐경에 나타나니 폐를 맑게 해줘야 허고, 폐병은 방광경에 나타나니 방광을 맑게 해줘야 허지."
-침술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입니까?-
"병은 무슨 병이든 침술로 다 고칠 수 있는 법이 있어. 발병시기가 얼마나 됐느냐에 따라 빨리 낫느냐 더디안 낫느냐만 차이가 있지. 그리고 요는 진찰여. 진찰만 잘 허면 고칠 수 있지. 한 번은 해 돋을 때마다 오른쪽 눈자위를 중심으로 정신없이 아픈 할머니가 있었어. 아들이 고위관직에 있어 좋다는 병원에 다 가 봤는디 그래도 낫질 않았어. 그러다 나헌테 왔는디 처음에 편두통인 줄 알았어. 세 차례 침을 놔도 안들어. 그래서 발병헐 때 보자 하고 해 돋을 때쯤 돼서 보니, 눈은 충혈되고 머리는 아파 움켜쥐고 붙들어도 안 될 정도로 이 구성탱이 (구석) 저 구성탱이 찧고 야단이여. 그렇게 한 삼십 분 하더니 그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짱혀. 꼭 귀신들린 것처럼 그 시간만 되면 항상 그런다는 거여. 그래서 바로 생각해냈지. 시간을 찾는 병은 비장이 나빠졌을 때 잘 나타나거든. 그래서 비장은 토장부(土臟腑)니께 화생토(火生土)의 원리에 따라 화경(火經=心臟經)의 화혈(火穴)인 소부(小府)를 보(補)허고, 목극토(木剋土)니께 목경(木經=刊經)의 목혈(木穴)인 대돈(大敦)을 사(瀉)혀주고, 또 비경(脾經)의 화혈(火穴)인 대도(大都)을 보(補)시켜 주고, 비경의 목혈인 은백(隱白)을 사(瀉)혀주었더니 단박에 말짱하게 낫는 거여. 그러니 진찰을 잘 허고 원인을 밝혀 내는 게 문제여. 또 왼쪽손부터 흔들리며 시작하는 간질은 간이 실(實)해서 오는 것이니 경거·중봉·소부·행간에 침을 하여 간을 사혀주면 낫어. 또 한 번은 서울서 한의원에 있을 때 어떤 걸인이 왔는디, 썩은 냄새가 난다고 못 들어오게 혀. 그래 사람이 사람을 못 들어오게 허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들어오라 혀서 보니 헝겊으로 싸맸는디 다리가 퉁퉁 붓고 썩어 들어가. 이건 습(濕)이 많아 온 병이거든. 습을 끌고 다니는 장부는 비장이여. 그래서 대돈·은백·경거·상구에 침을 하여 비장을 사해 주었더니 두 번 만에 깨끗이 났더라고."
-요새 중풍환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중풍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중풍은 말 그대로 바람이 차 올라와 생기는 병이지. 그러니 바람만 빼 주면 자연 낫게 돼. 방광이나 쓸개가 강해서 바람이 생기기도 하지만, 요즘은 대개 심장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심장은 화장부인디 요새 사람은 돈이나 모든 욕심이 지나쳐. 그러니 심장에서 볼이 일어나 인체가 조여 타고, 자연히 바람(가스)이 생기지. 그래서 요새 병은 심장을 잘 다스려야만 쉽게 나아. 그러고 젊어서 계집질 많이 헌 사람도 물이 말라붙어 화가 승(勝)허니 자연 바람이 많이 생겨 쓰러지지."
-정신병을 침으로 고쳤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고치십니까?-
"한번은 짝사랑하다 실연당해 미친 처녀가 왔어. 오줌 똥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아무 데나 보고 완전히 넋이 나갔어. 항문 부근의 장강혈(長强穴)에서 피를 소주잔으로 한 잔 뽑아 주니 나았어. 독맥(督脈)이 지나치게 강해진 것이니 이것을 사혀 준 거지. 육체의 병이나 정신의 병이나 결국은 부조화이지. 조화를 찾아 주면 자연 낫게 돼."
-의술을 배우게 된 동기가 있었을 텐데요.-
"우리 집안은 충남 한산에서 논 백팔십 마지기 짓던 양반집이었어. 그 당시 양반집에선 대개 문중 의사를 맨들었는디, 부친이 나를 의술 공부시켰어."
-문중 의사는 왜 만들었습니까?-
"옛날에 의술은 천대 받던 술수였는디, 상놈이 양반과 교제헐려고 배우거든. 가령 양반집 며느리나 딸이 아프면 상놈에게 부탁혀야 혀고, 또 상놈이 양반집 딸이나 며느리를 주물럭 주물럭 허는 꼴도 쑥스럽고 혀서 문중에서 한 명을 내세워 가르치는 거여."
-의술을 깨우쳐 준 스승이나 집안에 의술을 하던 사람이 있었는지요?-
"없었어. 주로 의서를 보고 스스로 깨우쳤어. 뛰어난 침술인이 있다고 소문을 들으면 부여고 영월이고 쫓아가 무슨 법으로 허고, 어떻게 고쳐 내나 보기도 혔어. 허지만 별 것 없더라고."
-의술을 깨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떤 점이었습니까?-
"의서를 한창 읽을 적엔 하도 앉아 있어 궁둥이뼈가 걸려 못 앉을 정도였어. 그래도 많은 의서를 읽을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지. 읽고 또 읽고 통헐 때까지 읽었어. 그리고 지금은 척 보면 알 수 있지만 혈구멍 찾아내는 데도 고통이 오래 따랐지."
-의술을 터득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준 책은 어떤 것입니까?-
"<의학입문>이 기초가 되었고, <황제내경>과 <의부전서>가 큰 도움을 주었지. 거기엔 자연의 이치, 사람의 이치 모든 게 다 쓰여 있어. 침술을 깨치는 데는 <침구대성>이 큰 도움을 주었고."
-어느 정도 되니 의술에 자신이 생기던가요?-
"한 스무 살 되니 의술에 자신이 생기기 시작했어. 당시엔 지금처럼 어려운 병 없었어. 체허고 설사허는 것 등이 고작이었어. 농사 지으며 찾아오는 사람 있으면 치료혀 주고 살았지."
-의술에만 전념한 때는 언제입니까?-
"사이비 종교에 미쳐 정신병자가 된 서울 살던 큰 누님 병을 침으로 완전 고쳐 주고, 또 이웃집 안동 김씨라는 양반 정신병도 고쳐 주니 소문을 듣고 제기동에 있는 한의사 넷이서 또 다른 정신병 환자를 데리고 왔어. 그래서 그 환자도 다 치료혀 주고나니 서로 데려가려고 그래. 그래서 제기동에 있는 제성국한의원에서 한 2년 간 일허고, 그 다음엔 망우리에 있는 절로 올라가 버렸지."
-망우리 절엔 왜 올라간 건가요?-
"한 2년 제성국한의원에 있었을 무렵, 하루는 견비통 환자가 왔는디 사흘을 침을 해도 낫질 않여. 그래서 바로 책을 싸 들고 의술 공부 더 혀야겠다고 망우리에 있는 절에 들어가 한 2년 있었지. 그러다 내려와 이문동에 방 한 칸 얻어 놓고 있는디 한의사들이 데려 가려고 노상 집에 와서 살어. 그래서 제기동에 있는 동남한의원에 가서 환갑 되던 해까지 한 15년 있었지."
-한의원에 있을 때 기억에 남는 일이 많이 있었을 텐데요.-
"나헌테 침 맞은 환자들이 낫으니께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정신없이 찾아들더라고. 그러니 다른 한의원에서 난리 났어. 자기들은 파리 날리니께, 무면허 한의사가 침을 놓는다고 하루가 멀다 허고 뭐라 허고 난리여."
-그 한의원은 언제 그만 두었는가요?-
"면허 없고 허니 주위 사람들에게 시달려서 도저히 못 허것어. 환갑 때까지만 허고 퇴계원 이 골짜기로 들어와 숨었지."
-그래도 요즘 환자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는데…….-
"여기서 한 석 달 있으니 제기동 한의원에서 침 맞았던 환자들이나, 침 맞고 나았던 사람들에게 소문 들은 사람들이 정신 없이 밀려들어. 환자들이야 병 고치고 싶은 생각뿐이지."
-면허가 없다고 어려운 점도 많이 겪었을 텐데요.-
"제기동 한의원에 있을 때부터 어려움 많이 당했지. 나야 불쌍한 사람들 고쳐 줄 목적이었지만 세상이 어디 그려. 의술은 있어도 면허 없다는 것 때문에 속 상허고, 하도 서러워 모든 것 때려 치고 숨어 살겠다고 몇 번이고 맘 먹었어. 그 사연을 어떻게 일일이 말헐 수 있것어. 그냥 가슴에 묻어 두고 살아가는 게 낫지."
그게 무슨 사연인지 이 옹은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았다.
-면허 없더라도 의술이 뛰어난 사람을 보호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장 장관이라고 전에 체신부 장관허던 분이 보사부 장관 찾아가 내 얘기 죽 허고 어떻게 면허 낼 수 없냐니께, 법만 있으면 당장 보호해 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허겠는디 법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허더래. 그런데 여기 와서 봐서 알것지만 침술의 효과란 참으로 뛰어나. 모두 침 맞고 낫는다고 봐야지. 침의 효과를 아무리 작게 잡아도 30퍼센트의 환자는 구헐 수 있어. 그걸 활용헌다면 비싼 약값이나 국민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어 국가적으로 수백 억 이익이여. 정부는 빨리 이런 점을 인정허고 침술을 국민들에게 보급혀서 침을 가정에 상비해 두었다가 간단한 병은 스스로 고치도록 허는 게 필요혀. 그리고 뛰어난 침술인은 보호허고, 그 맥이 끊기지 않도록 혀야지. 나야 다 살았지만 앞으로 원허는 건 그것뿐여. 그리고 병원은 세금을 받아서 정부가 운영허야 돼. 의사는 월급제로 허고. 그려야 의술이 개끗해져."
-선생님 의술을 배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있습니까?-
"한의과대학 졸업한 의사들이 여럿 다녀갔어. 그러나 '나는 한의과대학 나왔노라' 허고 자존심이 있어서 어쩌다 묻고, 이것저것 보고만 가지 배우려고는 안 혀. 옛날에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고 손자한테도 배웠는디, 지금은 그게 아녀. 강남에 있는 한의사 하나는 자기 신경통 환자 데리고 와서 침도 맞히고 유심히 보고 몇 달 댕겼어. 그리고 가선 신경통 환자가 오면 그대로 혔는가 봐. 한 번은 와서 '선생님 허는 대로 혀 보니 잘 나아요' 그러대."
-평소 생활 신조는 무엇입니까?-
"내 신조는 선조인 목은(木隱) 할아버지가 말헌대로 아지자손백대지친(我之子孫百代至親)이지. 아무리 먼 사람도 내 형제처럼 생각허란 말인디, 이것을 명심허면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모든 건 낯 낼 필요가 없어. 내가 가진 의술로 음덕을 쌓고 병든 사람을 사랑헐 뿐여."
이 옹의 의술인생을 듣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었다. 이로움을 보면 의(義)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자신의 몸을 던졌던 우리 선조들. 의인(義人)과 인인(仁人)이 점점 사라져 가는 이 사회에서 인술(仁術)과 의술(義術)은 어디에서 찾아야만 하는가. 의서에서 찾아야 하는가, 아니면 면허에서 찾아야 하는가. 의술(醫術)은 면허로 내줄 수 있지만, 면허로도 내줄 수 없는 게 인술(仁術)이요, 의술(義術)이리라. 병자 하나하나의 생명을 위해 사사로움을 물리치고 일생을 던진 이중구 옹. 그는 비록 면허가 없어 '돌팔이' 취급을 당하고 있지만, 그야말로 이 시대의 의술인이 아닐까. 밤 늦도록 이 옹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서서 나오는 어두운 산길을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비춰 주고 있었다.
필자가 이중구 옹을 발굴 취재하여 <시사춘추> 1991년 9월호에 '향토명의 열전' 제하의 소개기사를 쓰자, 전국 각지의 많은 환자들이 이중구 옹에게 와서 병고를 벗고 갔습니다. 또한 전국의 많은 한의대생들이 그룹을 지어 여러 달 동안 이중구 옹의 집에 머물면서 이중구 옹의 사암침술 경험방을 배워 나가기도 했습니다.
조금이나마 난치병 환자들에게 재생의 길을 안내해주었다는 점에서 '향토명의'를 발굴 취재하고 있는 필자로선 자부심을 느낍니다. 또 이 나라 침술 발전과 연구에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보람을 느낍니다. 이중구 옹은 올해 86세의 고령인 관계로 직접 침술하는 걸 삼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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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분이지요. 마을에 공덕비 하나 남았습니다. 장사질 하는 넘들 많은 세상에서 참고로 지근거리에 있는 의인醫人 한분 소개 해 올렸습니다. 늘 낚시를 경계하며 진위를 식별하시길. 거두 장병두 할아버지는 한국 의사들이 배우려고 혈안이 돼 있습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려고 배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만 한국의 경쟁력을 위해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런 한국의 깊이 있는, 사람살리는 인술의 중요성을 제가 인식하게 된 것은 어느 카페였습니다. 제 독자적인 생각도 아니고 늘 깨우쳐 배워 알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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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가 주의에 아픈이가 있다면 ~`진정 그냥 비우고 다아 비우고 치유시켜주면다압니다 누가요? 하늘에서 다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