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눈을 밝히소서(시 13:1-6)
우리는 너무나 연약합니다. 매일 숨쉬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하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의 힘으로는 벅찹니다. 그렇습니다. 매순간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은 자라가야 합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
우리의 믿음은 퇴보해서는 안됩니다. 뒤로 물러서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0:38)
우리는 목표를 달성한 줄로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의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는 앞을 향하여, 푯대를 향하여, 믿음의 길을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도중에 멈추면 안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의 길을 걸어가면서, 우리는 좋은 일만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들을 만나 당황할 때도 있습니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금방 지나갈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삶을 통째로 흔들어 놓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기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전혀 응답이 없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져 가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은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간구하였거만, 침묵만 계속 될 뿐입니다.
“하나님이 금방 도와주실 것이다.”라는 믿음이, “왜 하나님이 안 도와주시지!”라는 의문으로 바뀌어갑니다. 믿음이 흔들립니다. 믿음이 떨어집니다.
이런 순간을 맞이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윗도 그런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을 때, 이제는 마음 편하게 살 것 같을 때, 그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줄 알았는데, 문제가 사라지지 않고,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갑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금 어떤 형편 속에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있는 그대로 주님께 표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넋두리를 하였습니다. 탄식했습니다.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했습니다. 기도한 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다윗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맞이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큰 문제를 만납니다. 큰 고통을 경험합니다.
“주님,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렵니까? 영원히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시렵니까? 언제까지 나의 영혼이 아픔을 견디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여야 합니까? 언제까지 내 앞에서 의기양양한 원수의 꼴을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새번역)
다윗은 “어느 때까지(언제까지)”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어느 때까지 이 고통을 견디어야 합니까? 어느 때까지 이 아픔을 당하여야 합니까?”
우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최상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계속 성장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어떤 형편 속에 있든지, 우리의 믿음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는 믿음으로만 살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믿음으로 행동하기보다, 세상 방법을 따라 행할 때도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당연하게,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믿음이 있었고, 교회 밖에서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교회 밖에서는 세상 지식과 방법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그것이 편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믿음은 매순간마다 최상의 믿음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문제 앞에서도, 믿음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세상 방법을 따랐습니다.
다윗은 지금 매우 어려운 문제를 만났습니다. 큰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래도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하게 하십니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왜 도와주시지 않습니까? 왜 해결하여 주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멀리 멀리 계십니까? 내 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너무 멀리 계셔서, 내 소리를 듣지 못하십니까?”
믿음의 사람도,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믿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는,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셔서, 내 소리를 듣지 못하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 곁에 가까이 계셔야 할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고 생각하니, 괴롭습니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이 아픔과 고통은, 하나님이 내 곁에서 멀리 계셔서, 생긴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하나님이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신다. 하나님은 나를 잊으셨다.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이 없으신다. 나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다.”
어려움을 당하면, 누구나,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1절)
다윗은 지금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지금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문제 앞에서, 큰 좌절감을 맛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잊지 아니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 31:6)
하나님은 우리의 가는 길에 앞서서 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가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여러분! 다윗은 왜 믿음이 흔들렸을까요? 그는 왜 깊은 좌절감 속에서 괴로워했을까요?
그는 왜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였을까요?
2절 말씀입니다.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다윗은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다윗이 말하는 “원수”가 무엇일까요? 많은 성경학자들은 다윗이 말하는 “내 원수”는 인생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수”가 다른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원수”를 “죽음”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윗을 깊은 좌절감으로 몰아넣었던 원수는 죽음이었습니다. 다윗은 큰 병이 들었습니다. 그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금방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병의 상태는 깊어만 갑니다. 쉽게 일어서지 못합니다. “이렇다가 영영 일어서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처음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금방 병을 낫게 하실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은 점점 더 심해지고, 시간이 갈수록,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그때 문득, “하나님이 어디 계시지?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지 않고 어디 가셨나? 하나님이 왜 내 병을 치료해 주지 않는 거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하나님이 왜 나를 죽도록 내버려두시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괴롭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와 탄식합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신 것처럼 여겨집니다. 어찌 할 바를 모릅니다. 탄식의 소리만 흘러나옵니다. 한숨소리만 터져 나옵니다. 너무 견디기 힘든 시간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너무 견디기 힘든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탄식과 괴로움의 자리에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3-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굽어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대하 7:16)
하나님은 성전에 계십니다. 성전에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택하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택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택하여,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마음이 항상 여기, 성전에 있습니다. 교회에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택하여 거룩하게 하신 곳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여기 이곳에서 기도하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더 잘 나를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곳에서 기도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응답하여 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원수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나의 눈을 밝히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왜 “나의 눈을 밝히소서”라고 기도했을까요?
그는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죽음의 잠에 빠지지 않게 나의 눈을 뜨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원수가 ‘내가 그를 이겼다’ 하고 말할까 두렵습니다.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두렵습니다.”(새번역)
기도의 제목이 응답되었는가?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기도의 제목이 응답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보다도,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 “믿음이 흔들렸는가? 흔들리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기도의 제목은 응답되고, 문제는 해결되었는데, 믿음은 흔들리고, 믿음이 없어졌다고 하면, 그것만큼 불행한 것은 없습니다.
기도의 제목은 응답되지 않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도, 믿음은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을 굳건하게 지켜야 합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안됩니다.
믿음 버리고, 원수를 이기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한 순간의 유익을 위하여, 영원한 것을 잃으면 큰 손해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너무 큰 손실입니다.
죽음을 이기기 위하여, 원수를 이기기 위하여, 믿음을 버리게 된다면, 그것만큼 원수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잘 살기 위하여, 건강한 삶을 위하여, 오래 오래 살기 위하여, 죽지 않기 위하여, 원수에게 영혼을 팔아먹으면 안됩니다. 마귀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죽지 않겠다고 발버둥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고 미련하고, 불쌍한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의 눈이 밝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안이 밝아야 합니다.
무엇이 중요한가를 구별하여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라는 문제보다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먼저이어야 합니다.
원수, 마귀, 대적들을 기쁘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 원수 마귀는 기뻐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 원수 마귀는 “내가 그를 이겼다”고 기뻐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을 밝히 떠야 합니다. 사망의 잠을 자서는 안됩니다.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5-6절 말씀입니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큰 문제를 만날 때, 우리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주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한결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 곁에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바로 여기 이 자리에 계십니다. 바로 내 옆에 계십니다. 바로 내 마음에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구원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은덕을 베푸십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 116:13)
우리는 우리 가까이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 나와, 늘 기도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