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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형시 창작 강의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의 정형시인 시조를 창작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과 문화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예술과 문학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시조가 우리 민족의 삶을 담는 문학의 형식으로, 우리 정서를 담는 예술의 그릇으로 우리 역사와 함께 흘러왔기 때문이다.
우리 정형시의 특성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정형시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형시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바탕이 될 때 정형의 미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세계의 정형시를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세계의 정형시들이 갖는 특징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시조 정형의 미를 체득해야 할 것이다. 주제 다음에 한 편씩 소개하는 시조는 그 작품이 논의하고자 하는 주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싣는 것이며 이를 창작에 응용하자는 뜻이다.
한국 정형시 창작 강의
1. 정형시란 무엇인가?
2. 시조란 무엇인가?
3. 시조의 기본 형식은 어떤 것인가?
4. 시조에는 어떤 형식들이 있는가?
5. 시조, 무엇으로 쓰는가? (소재)
6. 시조, 무엇을 쓰는가? (주제)
7. 시조, 어떻게 짜는가? (구성)
8. 시조의 수사법은? (표현)
9. 시조 운율은 어떻게 만드는가?
10. 행 배열과 퇴고는 어떻게 하는가?
1. 정형시란 무엇인가?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있으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황진이-
<가람 이병기 선생님께서 1938년 1월 2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시조 창작의 스승으로 삼았고, 시조 중에서 이만큼 형식으로나 기교로나 구성으로나 잘 짜인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한 작품이다. 기자가 가람 선생님께 시조의 스승이 누구이냐고 물었을 때 이 작품을 외웠다는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형시(定型詩 . a fixed form of verse)는 시를 외적(外的)으로 분류할 때 한 갈래가 되는 것으로
시의 형식이 정해져 있는 것을 말한다. 주어진 형식은 대게 어느 한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민족의 문화적 관습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계승된 것이다. 따라서 어느 민족의 정형시든 그것은 보수적,
전통적, 규범적 성격을 갖는다.
정형시의 형식은 크게 운율, 행, 연의 배열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눈다. 주어진 운율에 따라 시행을
구성하는 율격, 압운 및 음보 등이 정해져 있는 것과, 한 편의 시를 구성하는 연의 수, 연을 구성하는
행수와 길이, 시를 구성하는 연의 수 등이 정해져 있는 것이 그것이다.
정형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의 변화를 보이긴 했지만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정형시의 본질은 완전을 바라는 인간의 원망(願望) 충족의 소산이다. 그 만큼 완결의 미학을 추구한다. 따라서 조화와 질서, 안정과 균형의 미학을 추구하는 것이다.
동양의 대표적인 형태로는 우리의 시조, 가사, 민요, 중국의 5언 절구(五言絶句), 7언 절구,
5언 율시(五言律詩), 7언 율시, 배율(排律), 일본의 와까, 하이꾸 등이 있다. 서양의 대표적인
정형시로는 소네트(sonnet), 오드(ode), 론도(rondeau) 등이 있다. 이들을 간략히 살펴본다.
가. 시조
공산에 우는 접동 너는 어이 우짖는다
너도 날과 같이 무슨 이별하였느냐
아무리 피나게 운들 대답이나 하더냐.
- 박효관- .
< 생몰연대 미상. 이조 말 고종 때의 가객, 호 운애(雲涯). 1876년 제자 안민영과 『가곡원류』를 편찬, 그 때까지의 가곡을 총정리하였고, 또한 가인의 길잡이가 될 가론(歌論)을 확립했다. 대원군으로부터 총애를 받았으며 풍류객들의 우대를 받았다. 작품 15수가 전한다.>
나. 한시
중국에서는 시를 언지(言志)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ꡐ시는 뜻을 말하는 것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냥 말하는 것처럼 쓴다면 산문이 되고 시는 되지 않는다. 시는 뜻을 거느리되 반드시 운(韻)이
있어야 한다. 한시의 역사는 고체시(古體詩)가 당나라에서 와서 근체시(近體詩)의 확고한 시형으로
갖추어져 지금까지 이어져왔고, 중국 글자를 썼던 우리도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근체시에는 엄격한 작법이 있는데, 운을 다는 것, 평측법(平仄法) 평측법 : 한자에는 사성(四聲)이
있다. 즉 평성(平聲), 상성(上聲), 입성(入聲), 거성(去聲)으로 글자를 나눈다. 평성은 소리가 낮은 글자이며, 측성 (상성, 입성, 거성)은 소리가 높은 글자이다. 쉽게 아는 방법은 자전을 이용하는 것이다.
자전에 □나 ○속에 <동(東), 동(冬), 강(江), 지(支), 미(微), 각(角), 우(虞), 제(齊), 가(佳), 회(灰), 진(眞), 문(文), 원(元), 한(寒), 산(刪), 선(先), 소(蕭), 효(肴), 호(豪), 가(歌), 마(麻), 양(陽), 경(庚), 청(靑), 증(蒸), 우(尤), 침(侵), 담(覃), 염(鹽), 함(咸)의 30자 중의 하나면 평성이고, 그 이외의 한자가 □나 ○속에 들어있으면 측성이다. 또 한글 발음으로 ㄱ, ㄹ, ㅂ을 받친 글자는 모두 측성에 속한다. 한시 작법에 평기법과 측기법이 있는데, 이는 첫행의 둘째 글자가 평성이면 평기법, 측성이면 측기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시는 크게 고체시와 근체시로 나누어지고, 고체시는 다시 시경(詩經), 초사(楚辭), 고시(古詩), 악부(樂府)로 세분되고, 근체시는 절구, 율시, 배율에서 각각 5언과 7언이 있다. 시경은 중국 고대의 민요와 궁중에서 사용되던 가사를 수집 공자가 정리한 것으로 3백여 편이 되는데, 1구가 4자로 된 것이 기본인데 그 이상인 것도 많다. 초사는 초 나라의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경(離騷經) 이소경은 굴원이 왕의 버림을 받은 무렵에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굴원의 작품은 불평과 분만(憤懣)에 차 있으며 우수의 그늘이 짙다. 초나라와 임금을 걱정하면서 동정호 근처를 방랑하다가 멱라의 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이 효시인데 중국 고대 남방에서 성행하던 시체다. 시형은 이소경의 경우 1구가 7자로, 6자로 된 것이 기본이나 자수가 증감되었다.
고시는 근체시가 성립된 뒤, 그 이전의 시체를 가리키는데 비교적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쓰였다. 악부는 악곡에 맞게 부를 수 있게 지어진 시체로 시형은 1구가 5언으로 된 것이 기본이며, 별 제한 없이 길게 쓰고 있다. 근체시는 당나라 이후에 쓰여진 시체로 정형성을 갖는 시들이다.
1) 5언 절구
秋風惟苦吟(추풍유고음)하니 가을 바람에 시를 읊네
世路少知音(세로세지음)이라 세상에 내 마음을 아는 이 없네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요 창 밖에는 밤 깊도록 비가 내리고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이라 등불 아래 마음은 고국을 달리네
최치원 -秋夜雨中-
당나라에 유학할 때 고국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읊은 것, 전 결구가 대구이며, 운은 吟, 音, 心(평성).
2) 5언 율시
昨過永明寺(작과영명사)라가 어제 양명사를 지나다가
暫登浮碧樓(잠등부벽루)라 잠깐 부벽루에 올라왔네
城空月一片(성공월일편)이오 텅 빈 성터에 조각달이 떠있고
石老雲千秋(석노운천추)라 이끼 낀 주춧돌에 천 년이 흘렀다
麟馬去不返(인마거불반)인데 인마는 가고 돌아오지 않는데
天孫何處遊(천손하처유)오 왕손은 어느 곳에 있는가
長嘯依風磴(장소의풍등)하니 휘파람을 불며 난간에 서 있으니
山靑江自流(산청강자류)라 산은 푸르고 강물만 흘러가네
이색 -浮碧樓-
승, 전구가 대구를 이루고 운은 樓, 秋. 遊, 流(평성)
3) 7언 절구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하니 비가 개니 언덕에 풀이 파랗구나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라 님을 남포에 보내는 슬픈 노래 뿐
大洞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고 대동강 물이 마르겠는가
別淚年年添綠波(별루연연첨록파)라 이별하는 눈물이 해마다 뿌려지는데.
정지상 -送人(大洞江) 운자는 多, 歌, 波(평성)
4) 7언 율시
讀書當日志經綸(독서당일지경륜) 하니 글을 읽을 때 큰 뜻을 품으니
歲暮還甘顔氏貧(세모환감안씨빈)이라 가난의 쓰라림도 달게 받아진다
富貴有爭難下手(부귀유쟁난하수)요 부귀는 더러운 것 어찌 손을 댈 것인가
林泉無禁可安身(임천무금가안신)이라 산과 물은 임자 없으니 포근히 안기고 싶다
採山釣水堪充腹(채산조수감충복)이오 나물 캐고 고기 낚아 그런 대로 살면서
咏月吟風足暢新(영월음풍족창신)이라 달을 읊고 바람을 쏘이면서 정신을 씻어본다
學到不疑知快闊(학도불의지쾌활)하니 이제 마음이 트여 즐겁기만 하니
免敎虛作百年人(면교허작백년인)이라 헛된 인생살이를 면한 것 같다.
서경덕 -讀書- 승, 전 구가 대구이며 운자는 綸, 貧, 身, 新, 人(평성)
5) 배율
5언과 7언의 배율이 있는데, 5언이나 7언이 12구(12행) 이상이 기본이다. 중국에서도 많이 지어지지 않았고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지어지지 않았다.
다. 일본의 정형시
일본의 정형시로는 하이꾸(排句)와 와까(和歌)가 있다. 하이꾸는 5. 7. 5 자로 이루어지고, 와까는 5. 7. 5. 7. 7 자의 형식을 갖는다. 하이꾸는 와까의 형식에서 한 부분만을 취한 것이다. 와까 형식은 장구(長句:조오꾸) 5. 7. 5와 단구(단구 : 단꾸) 7. 7로 이루어지는데 장구만을 취한 것이다.
하이꾸는 혼자서 5. 7. 5. 7. 7 전부를 읊고 모든 것을 말해버리는 와까와 차이가 있고, 어떤 주장이나 설명 논리적 귀결점 따위는 아래의 7. 7에 맡긴다. 그러나 하이꾸는 반드시 계절을 나타내는 시어가 들어가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라. 소네트(sonnet)
소네트는 영미어권의 정형시를 대표하는 시 형식이다. 처음 이탈리아에서 생겨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공유하고 있는 형식이다. 지아코모 다 라티모(Giacomo da Latino)라는 프레데릭(Frederik) 2세 치하의 궁중 조신(朝臣 :조정에서 근무하는 신하)이 확립한 것으로 알려진다.
소네트의 형식은 약강5보격(弱强五步格) 14행이 기본 골격이다. 약강5보격이란 약한 음절과 강한 음절이 합쳐서 한 단위로 된 음보가 다섯 번 나오는 시행을 말하며, 14행은 일정한 각운에 의해서 맞추어진다는 것이다.
소네트는 이탈리아형 (Petrarca식) 페트라르카 : 1304-1374. 이탈리아의 시인. 라우라(Laura)라는 여인을 알아 연애시를 쓰기 시작, 한 평생 그녀의 모습을 읊은 것으로 유명하다.
과 영국형으로 나누어지는데 이탈리아형 소네트의 특색은 주제를 두 가지 분위기로 다룬다는 것이다. 첫 번째의 8행 즉, 8행 연구는 문제를 진술하거나 질문을 던지거나 또는 정서적인 긴장을 표현하고, 뒤에 오는 6행 연구는 문제를 풀거나 답을 제시하거나 긴장을 해소시키는 구조를 가진다. 8행 연구의 압운은 abbaabba 이며 6행 연구의 압운은 cdecde, cdccdc 등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대게 a에서 e까지 다섯 개의 각운으로 14행시를 이룬다. 이탈리아식 소네트 한 편을 보자.
My gally charged with forgetfulness
Through sharp seas in winter nights doth pass
ꡑTween rock and rock ; and eke mine enemy, alas,
That is my lord, steereth with cruelness;
And every oar a thought in readiness,
As though that death were light in such a case
An endless wind doth tear the sail apace
Of forced sights, and trusty fearfulness.
A rain of tears, a cloud of dark disdain
Hath done the wearied cords great hinderance ;
Wreathed with error and eke with ignorance.
The stars be hid that led me to this pain.
Drowned is reason that should me consort
And I remain despairing of the port.
-Petrarchꡑs Rime 189- 영역 : Thomas Wyatt 와이어트: 이탈리아의 소네트 형식을 16세기에 처음 영국에 도입 소개한 시인.
내 배는 망각의 짐을 싣고
겨울 밤 바다 사이 거친 바다를
항해한다. 또한 내 주인인 아, 나의
적은 무정하게 키를 잡는다.
그리고 젖는 노마다 이런 때는
죽음도 손쉬운 것인 듯 생각된다
강요된 한숨과 믿지 못할 두려움의
끊임없는 바람은 곧장 돛을 찢어버린다.
눈물의 비와 경멸의 검은 구름은
실책과 무지로 꼬여진
낡아버린 밧줄을 크게 손상시킨다
이 고통으로 나를 이끈 별이여, 사라져버려라.
나를 따라야 할 이성이 물에 빠져 죽으니
나는 항구에 도착할 희망도 없이 떠돈다.
여기서 각운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각 시행에서 마지막 모음과 그 모음 다음에 오는 자음의 소리가 동일한 것을 가리킨다. 위 작품에서 8행 연구의 운은 각 행의 마지막 단어인 forgetfulness, cruelness, readiness, fearfulness에서 마지막 모음과 그 다음 자음이 같은 발음으로 되어서 음악적 효과를 살리는 것이다.
영국형 소네트는 각기 개별적인 압운체를 가진 3개의 4행 연과 압운 2행 연으로 이루어진다. 영국형 소네트의 압운 도식은 a에서 g까지 일곱 개의 서로 다른 각운으로 이루어지며 abab, cdcd, efef, gg로 구성된다. 압운의 수가 많으므로 이 형식이 이탈리아형 소네트보다 덜 엄격하다고 하지만, 마지막 2행 연구가 갖는 어려움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 2행 연구를 통해 앞부분의 4행 연들에서 보여준 효과를 그리이스 경구(警句)에서 만큼이나 호소력 있게 요약해야 한다. 소네트의 주제 면에서는 처음엔 애정이라는 주제에 맞물려 있었으나 점차 시의 전 영역으로 그 범위를 넓혀갔다.
마. 론도(Rondeau)
프랑스 정형시. 13행으로 이루어진다. 13행은 5. 3. 5. 세 절로 나누어, 그 1행은 8또는 10음절로 하였고, 제 1행의 말이나 어구가 전체에 반복되는 형식을 취한다.
바. 오드(Ode)
영국 정형시로 우아하고 명상적 또는 열정적인 내용의 서정시로써 부(賦) 또는 송가 등으로 번역된다. 운이 있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특수한 형식을 가지지 않는 내용상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중한 제재를 장중하게 다룬다고 하는 점이 공통점이다.
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역사가 깊은 나라는 정형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형시를 가졌다는 것은 그 만큼 문화 민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우리는 우리 글자를 가졌고, 우리 문학의 형식을 가진 문화 민족이다. 시조에서 이런 민족 의식이 바탕이 될 때 우리의 정형시는 세계 문학의 한 갈래로 도도하게 흘러가게 될 것이다.
참고 문헌
1. 이어령, 『하이꾸 문학의 연구』, 홍성사, 1986.
2. 조두현, 『한시의 이해』, 일지사, 1984.
3. 정석권, 「영미어권의 정형시, 소네트 개괄」,『전라시조』,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