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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본 통일교회사(統一敎會史)<3>
1.재림주(再臨主)가 이 땅에 나타나려면
<말선52-174>(1971,12,29, 워싱턴) 재림주(再臨主)가 이 땅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는 구약시대(舊約時代)와 신약시대(新約時代)에 잃어버렸던 모든 것들을 복귀(復歸)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귀섭리(復歸攝理)는 아담, 해와 그리고 세 천사장(天使長)을 복귀(復歸)하기 위한 것이라고 간단(簡單)히 얘기되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우주(宇宙)를 창조(創造)하실 때, 그 분은 제일(第一)먼저 천사(天使)들을 창조(創造)했습니다. 그 다음에 아담을 창조(創造)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해와를 창조(創造)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세 제자(三弟子)들은 믿음의 자녀(子女)들이었고, 동시(同時)에 복귀(復歸)된 천사장(天使長)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확실(確實)히 알아야 합니다.
타락(墮落)은 세 천사장(天使長)들이 아담을 섬기는데 실패(失敗)함으로써 야기된 것이었습니다. 완전(完全)히 복귀(復歸)된 아담의 입장(立場)에 서기 위해서는 해와와 복귀(復歸)된 세 천사장(三 天使長)을 가져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타락(墮落)으로 인해 해와와 세 천사장(天使長)을 잃었습니다. 그는 타락(墮落) 전(前)에 에덴동산에 있었던 본래(本來)의 식구(食口)들을 복귀(復歸)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해와와 세 천사장(三 天使長)들을 복귀(復歸)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천사장(天使長)들이 예수와 일체(一體)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해와를 복귀(復歸)하기 위해 예수와 함께 노력(努力)해야 합니다. 그 세 천사장(天使長)들은 예수의 일을 위(爲)해서 그들의 생명을 희생(犧牲)해서라도 그 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 천사장(天使長)들이 아담을 섬기지 않았고, 아담과 하나님과 더불어 일체(一體)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적(絶對的)으로 복종(服從)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탕감(蕩減)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담이 어디를 가든지 간에 따라가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세 제자(弟子)들도, 심지어 십자가(十字架)의 선(線)까지도 예수와 함께 가야 했습니다. 만일 예수 때에 그 제자(弟子)들이 그 십자가(十字架)에 까지 예수와 함께 갔더라면 영적(靈的)으로 예수가 이 지상(地上)의 해와를 복귀(復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는 영적(靈的)으로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영적(靈的)으로 이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룰 수 있었더라면 사탄이 그의 일에 끼어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세 제자(弟子)들을 잃게 됨으로써....,왜냐 하면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혔을 때 그를 따르지 않고 부인(否認)했기 때문입니다.
만일(萬一) 예수에게 세 제자(弟子)가 있었고 그 세 제자(弟子)들이 예수와 일체(一體)가 되었더라면 그 기대(基臺) 위(位)에서 예수가 해와를 복귀(復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해와가 영적(靈的)으로 예수와 그리고 그 세 제자(弟子)와 함께 머물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와 성령(聖靈)이 함께 천국(天國)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적(靈的)으로 이 지상(地上)에 역사(役事)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적(靈的)으로 사탄에게 침범(侵犯)당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육신(肉身)으로는 침범(侵犯)을 당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영적(靈的)으로는 아닙니다. 만일(萬一) 그렇게 되었더라면, 기성교인(旣成敎人)들이 예수를 보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祈禱)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말선52-178>아담을 복귀(復歸)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구약시대(舊約時代), 신약시대(新約時代), 그리고 성약시대(成約時代)를 거쳐 나오셨습니다. 왜 그분이 이 세 단계(三段係)를 거쳐야 했던가 하는 이유(理由)는 아담을 복귀(復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해와를 복귀(復歸)하기 위해서 선생님(先生任)은 바로 그것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구약시대(舊約時代) 해와의 자리와 신약시대(新約時代)의 해와의 자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약시대(成約時代)의 해와의 자리를 복귀(復歸)했다는 조건(條件)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은 본래(本來)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를 함께 사랑하시기를 원(願)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舊約時代)의 하나님은 오직 아담의 자리에 있는 남자(男子)들만 택(擇)하셨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등..., 신약시대(新約時代)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해와의 자리에 있는 여자(女子)들은 바른 조건(條件)이 세워질 때까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先生任)이 끝 날에 그러한 조건(條件)들을 복귀(復歸)해야 합니다. 이해(理解)가 돼요?
<말선52-179>한국(韓國)에서 천사장(天使長)들의 영역(靈域)에 섭리(攝理)의 3단계(三段係)가 있었습니다. 세 천사장(天使長)들을 복귀(復歸)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세 단계(三段係)의 섭리노정(攝理路程)을 통과 하셔야 했습니다. 선생님(先生任)이 그저께 설명(說明)했던 것처럼 한국(韓國)의 동해안지방(東海岸地方)에는 한 남자(男子)의 집단(集團)이 있었고, 서해안지방(西海岸地方)에는 한 여자(女子)의 집단(集團)이 있었습니다. 그 남자(男子)의 사명(使命)은 3단계(三段係)로 계승(繼承)되었습니다. 백씨(白氏), 이씨(李氏), 그리고 김씨(金氏)로..., 그 여자(女子)의 사명(使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일(萬一) 선생님(先生任)이 그 영적집단(靈的集團)으로부터 한 남자(男子)와 그리고 그 남자(男子)와 일체(一體)가 된 세 여자(三女子)들을 복귀(復歸)할 수 있었더라면, 그것에 의(依)해서 해와 복귀(復歸)를 위한 모든 조건(條件)들을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구약시대(舊約時代)에는 늙은 여자, 결혼(結婚)한 여자(女子)에 비유(比喩)될 수 있고, 신약시대(新約時代)는 약혼(約婚)은 하였으나 결혼(結婚)할 수 없었던 여자(女子)에 비유(比喩)될 수 있습니다. 한 가정(家庭)에서, 그 늙은 여자(女子)는 할머니에 비유(比喩)될 수 있고, 신약시대(新約時代)의 여자(女子)는 어머니에 비유(比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약시대(成約時代)의 여자(女子)는 딸에 비유(比喩)될 수 있습니다.(그 여자는 예수의 자매를 뜻합니다)
선생님(先生任)이 김씨(金氏)의 집단(集團)으로 갔는데 그는 세 번째 단계(段階)의 남자(男子)였습니다. 김씨(金氏)가 선생님(先生任)을 축복(祝福)하기 전(前)에, 거기에서 선생님(先生任)에게 주님(主任)을 증거(證據)했던 세 여인(女人)이 있었습니다. 만일(萬一) 이 세 여인(女人)들과 김씨(金氏)가 선생님(先生任)과 하나 되었더라면 모든 그 조건(條件)들이 그 자리, 그 시간(時間)에 복귀(復歸)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先生任)은 또 다른 기독교집단(基督敎集團)을 찾아야 했고, 그 집단(集團)과 함께 기성교회(旣成敎會)목사(牧師)들을 연결(連結)시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정부(政府)를 연결(連結)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삼수(三數)를 만듭니다. 그것은 김씨집단(金氏集團)이 완성단계(完成段階)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종적(縱的)인 섭리(攝理)가 끝 날에 횡적(橫的)으로 복귀(復歸)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김씨집단(金氏集團)이 완성단계(完成段階)의 집단(集團)이 된다는 의미(意味)입니다.
그런데 그 세여인(三女人)들이 선생님(先生任)을 증거(證據)했습니다. 그후(後) 그들은 선생님(先生任)과 하나 되어야 했으나 선생님(先生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先生任)이 북한(北韓)으로 가야 했던 것입니다. 북한(北韓)에서 선생님(先生任)은 그러한 세여인(三女人)과 한 남자(男子)를 복귀(復歸)하기 위해 모든 조건(條件)들을 통과(通過)해야 했습니다. 만일(萬一) 김씨집단(金氏集團)이 선생님(先生任)과 하나 되었더라면 결국(結局)에는 모든 민주세계(民主世界)가 선생님(先生任)과 하나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더라면 공산주의세계(共産主義世界)가 오늘날과 같이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 기성교인(旣成敎人)들이 선생님(先生任)과 하나 되어야 했습니다. 한국(韓國)은 미(美) 군정하(軍政下)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성교인(旣成敎人)들을 통(通)하여 선생님(先生任)이 정부(政府)와 결합(結合)할 수 있었다면 그 기성교인(旣成敎人)들을 통(通)하여 선생님(先生任)이 정부(政府)와 결합(結合)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정부(政府)를 통하여 선생님(先生任)이 민주세계(民主世界)와 결합(結合)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민주세계(民主世界)를 통(通)하여 선생님(先生任)이 그 당시에 공산세계(共産世界)를 멸망(滅亡)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말선52-185.>영계(靈界)로부터의 그런 가르침을 통(通)해서 선생님(先生任)은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3번부인(否認)했는데, 그 사람들도 3번부인(否認)했습니다. 매번, 하늘이 그들을 가르쳤고 그들을 따르게 하기 위해서 환상(幻像)이나 꿈(夢)등 여러 가지로 역사(役事)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先生任)은 감옥(監獄)에서 2년8개월, 예수의 공생애(共生涯)에 해당(該當)하는 기간(其間)을 보냈고 12사람을 복귀(復歸)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2사람을 복귀(復歸)시킴으로써 예수가 잃어버렸던 모든 조건(條件)들을 복귀(復歸)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선생님(先生任)을 따르지 않으려고 했더라도, 선생님(先生任)은 석방(釋放)되었을 때 그들의 자리에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先生任)은 선생님(先生任)이 하기로 되어 있던 모든 것을 완수(完遂)하였기 때문에 천사장국가(天使長國家)(미국)와 유엔군(UN軍)이 북한(北韓)을 공격(攻擊)해서 선생님(先生任)을 해방(解放)시켰습니다. 그래서 선생님(先生任)이 감옥(監獄)에서 나왔습니다. 네 사람이 선생님(先生任)을 따랐습니다. 유엔군이 남한(南韓)을 해방(解放)시켰기 때문에 그 조건(條件)으로 하늘의 운세(運勢)는 다시 민주세계(民主世界)로 돌아올 수 있었고, 다시 기독교(基督敎)를 복귀(復歸)하기 위한 역사(役事)를 시작(始作)할 수 있었습니다.
또 김씨(金氏)(동쪽 집단의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한 사람을 복귀(復歸)시키기 위한 조건(條件)들을 세우기 위해 선생님(先生任)을 따르던 멤버들의 수는 선생님(先生任)이 감옥(監獄)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돌아왔을 때에도 똑 같이 그대로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 김씨(金氏)의 역할(役割)을 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김원필(金元弼)이었습니다. 또한 거기에 3여인(三女人)도 있었습니다. 한 남자(男子)와 세여인(女人)이 있게 됨으로 말미암아 선생님(先生任)이 김씨집단(金氏集團)에서 복귀(復歸)하기를 원(願)했던 네 사람을 복귀(復歸)시킨 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先生任)을 따르던 네 사람(세여인과 한 남자)이 생기게 되었고, 선생님(先生任)을 감옥(監獄)에서부터 따르던 네 사람이 있었는데, 선생님(先生任)이 월남(越南)할 때 그들 중의 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사람은 다리가 부러진 사람이었습니다. 선생님(先生任)은 그를 부산(釜山)까지 데리고 내려왔습니다.
선생님(先生任)이 남한(南韓)에 내려올 때의 일화(逸話)가 참 많습니다. 선생님(先生任)은 그러한 수(數)의 사람을 복귀(復歸)하였기 때문에 남한(南韓)에서 영적(靈的)인 일을 시작(始作)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통일교회(統一敎會)가 시작(始作) 되었습니다. 이것을 완수(完遂)함으로써 선생님(先生任)이 예수가 십자가(十字架)에서 잃었던 것을 복귀(復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後)의 섭리(攝理)는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죽지 않았더라면 이 지상(地上)에서 복귀(復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960년부터 그 일을 시작(始作)했습니다.
<말선52-186.>어머님은 그 집단(集團)의 출신(出身)입니다 서해안지방(西海岸地方)에 김여인(金女人)의 집단(集團)이 있었습니다. 김여인(金女人)이 죽은 후(後)에는 허여인(許女人)이 계속(繼續)했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님은 허여인(許女人)을 독실(篤實)하게 따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어머님이 어머니를 4살 때 그 집단(集團)으로 데리고 갔는데 허여인(許女人)이 어머니를 축복(祝福)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로 사명(使命)이 승계(承繼)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물론(勿論) 그것을 몰랐습니다. 선생님(先生任)이 1960년에 어머니를 만났을 때 선생님(先生任)은 그러한 사실(事實)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에 의(依)해서 준비(準備) 되었던 모든 것들이 1960년에 하나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只今) 참부모(父母)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으로부터 참부모(父母)의 축복(祝福)이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先生任)이 북한(北韓)을 떠날 때는 1950년 겨울이었습니다. 선생님(先生任)은 1951년에 남해안(南海岸)에 있는 부산(釜山)까지 내려왔습니다. 그 때부터 10년 동안 선생님(先生任)은 선생님(先生任)이 성공(成功)했던 1960년까지 심(深)한 박해(迫害)와 싸웠습니다. 1960년 이후(以後)에도 우리는 박해(迫害)를 받아 왔지만 우리의 일은 차츰 성장(成長)할 수 있었습니다.
복귀섭리(復歸攝理)는 가인과 아벨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일에 있어서 항상(恒常) 문씨(文氏)가 가인편에서 나타납니다. 항상(恒常) 선생님(先生任)을 박해(迫害)하는 사람은 문씨(文氏)입니다. 또한 가정적(家庭的)인 레벨과 국가적(國家的)인 레벨에서도 문씨(文氏)가 반대(反對)했습니다. 우리가 정부(政府)에 등록(登錄)을 하려고 했을 때 문교부(文敎部)가 등록(登錄)을 취급(取扱)하였는데 그 때 문교부장관(文敎部長官)이었던 문씨(文氏)가 우리의 신청(申請)을 거부(拒否)했습니다. 우리는 그것과 싸워야 했습니다. 일주일(一週日) 후(後)에 그것이 번복(飜覆)되었습니다. 그 일주일(一週日)은 70년, 700년, 또는 7000년에 해당(該當)합니다.
그 당시(當時)에 그것이 번복(飜覆)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떤 종교적(宗敎的)인 운동(運動)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번복(飜覆)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1963년 5월31일에 등록(登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36가정(家庭)과 72가정(家庭)을 축복(祝福)했습니다. 그 때는 국가(國家)와 싸우던 때였습니다. 그러한 과정(過程)을 겪음으로서 우리는 현재(現在)의 위치(位置)까지 왔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이런 것들을 상세(詳細)하게 설명(說明)하는 책(冊)을 내게 될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