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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st. Feb(화) 1978
역시 아침부터 꾸릿한 날씨다. 소나리라도 한줄기 퍼부었으면 속이 시원할 것만 같다. C/O 상륙시켜 서류를 보내다. 어서 들어가야 할텐데. 급하면 전보로 할 수 도 있지만 전보는 월말보고시 선주에게 사본이 들어감으로 여러 가지 번거로운 점도 있다. 날씨만 좋고 분명한 일정이나 입항지가 정해져 있으면 교대로 한 번씩 땅을 밟아보고 흙 냄새라도 맡고 오도록 보내고 싶다만. 상육한지 1달하고도 10일이 넘었다. 아득한 곳도 아니고 바로 지척간에 두고 밟아보지 못하는 것은 형벌과 같다.
토고마루 출항하다. 입항보다 더 부럽군. 결국 입항 중에도 청수보급을 받지 못하고 가쯔시마마루에서 30톤 얻어간다며 대리점을 원망한다. 뭔가 잘못된 것이다. 그냥 서류를 내기만 하는 것으로 일이 척척 해결되는 곳이면 무슨 염려들이 있겠는가. 그래도 어떤 배는 Sign도 없이 공짜로 물 받아 가기도 하는데-. 기적을 붕-하고 울리며 본선 옆을 지나간다. 이제 50여일 후면 그리던 고국 땅을, 그리고 가족들의 품에 돌아갈 것이다. 즐거운 듯 손을 흔들어 준다. 멀건히 쳐다보는 우리 선원들의 눈길이 한참 따른다. UW기 그리고 VHF로 安航을 빌어주다. 비록 국적이 달랐고 같은 선장으로서 나이는 한참 차이가 났지만 마치 知己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신세 많이졌오만 다음 기회 있으면 다시 부탁합니다.”
“재수 있으면 일본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오.”
“그땐 한잔 사지요.”
예나 제나 배에서 늙은 사람들의 그 순진하고 단순한 마음들이 한참 오갔다.
늦게 Mr. Assaf이 찾는다. 내일 아침 6시 기어이 자신이 직접 Port Harcourt까지 갔다가 오후 6시경 돌아올 예정인데 그때 VHF S/B해달라고 -. 갔다 오면 무슨 수가 생길 것도 같단다. 그래 늦어도 좋으니 뭔가 좀 분명한 것을 알려다오. 이게 뭐 오뉴월 소금 접시 들고 소불알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너무 막연하지 않는가 말이다. 아무리 마음을 크게 먹고 생각을 말자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은 내 자신이 소심해서만이 아니다. 종일 해사법령집을 뒤졌다. 그것도 일본놈의 것을-. 겨우 증서관계를 찾았다. 역시 SOLAS관계를 국내법규에서 찾았으니 처음부터 실책이었다. 그런데 중간검사 연기조항은 있어도 정기검사의 연기는 조항이 없다. 분명이 若生(와카오) 가쯔시마마루 선장이 될 수 있고 또 있다고 했는데-. 그의 말대로 중간검사 연기신청서 양식에다 문항을 바꾸면 우선 해당 조문이 달라지니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협성 재직시 선박검사를 취급해본 것이 많은 도움이 되기는 하나 역시 비슷하면서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곳이 있다. 특히 법률용어인데다 눈에 익지 못한 片仮名(가타가나)로 되어있다.
토고마루 다음으로 가쯔시마마루가 들어간다더니 대신 Circe 1호가 들어간다. 뭣이 어찌 되는건가? 그렇담 또 15일 가량 늦어진다는 계산인가? 알고 보니 Circe 1이 먼저 왔다가 보급차 Cotunou갔다 오느라 그랬다고 한다만 기분은 영 좋질 않다. 빌어먹을! 짜증과 욕지꺼리를 빼면 별반 지꺼릴 말도 없는 요즈음이다.
22nd. Feb.(수)
Canpex 전보에 의하면 분명히 어제밤에 입항해야할 Kano Reefer는 소식이 없어 09:00 CW 연락결과 오늘 아침 출항예정이란 것이 Apapa Reefer에 의해 밝혀지고-. 갈팡질팡이고 엉망이다. 에라 모르겠다. Byron, Sunflower 다녀오다. Byron 김 선장의 간곡한 부탁이 있단다. Broken Carton이 너무 많단다. 가보니 극히 정상이다. “보소 이게 정상이니 안심하소.” 놀란다. 허허 웃고 잡담 섞어 낮걸이(?)나 가자고 했더니 너무 늦었고 너무 덥다. 내 목적은 그게 아니고 얼마만큼이라도 부식을 인수할 수 있는냐를 타진하려 했는데 그 놈의 배도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언제 어디로 갈 것인지 감감하고 현재의 예정이라고는 2-3일후 양하가 끝나면 외향에서 20여일 기다리는 것이라니 시세문자로 ‘뻔할 뻔자’다
Sunflower호. 마침 기관장이 FAO 8기생이다. 반갑다. 선장도 처음이라며 Wari와 이쪽 항정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1등항해사가 죽을 인상을 쓴다. “다 그러니 너무 신경쓰지 말고 몸이나 조심하소.” 그게 현명하겠단다. 連夜 달려드는 ‘盜’선생 떼거리에 노이로제가 될 지경이라 울상이다. 아마 뱃놈치고 이놈의 Lagos 거쳐갔다면 특별히 그 커리어를 인정해주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귀선시간이 늦어 입구 초소 녀석들에게 5N 뜯겼다. 총을 들고 오후 6시 이후 통행자들에겐 발포 및 잡히면 2년 징역이라고 공갈치던 놈도 “나 선장인데 -” 하는 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뭐 줄래?” 하고 나섰으니 쉽게 해결 되는 건 당연지사. 지폐 한 장에 입이 헤벌려지며 조심해서 가란다.
둥근달이 둥실 떴다. 잔잔한 바다 위에 부서지는 은빛이다.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군. 이 뜨겁고 텁텁한 보름. 깡통을 휘두르며 쥣불을 놓다가 바지가랭이에 불구멍을 내기도 하고 콧구멍 밑이 수염 그리듯 시커멓게 되어 놀림을 받던, 청솔가지 달불을 피우고 뜨는 달을 먼저 보기 위해 눈알을 굴렸고 경건히 두 손 모아 절을 수도 없이 해대던, 그래서 총각은 쉬이 장갈 가고 처녀는 시집간다던 그 대보름이 오늘 이 적도 부근의 검은 대륙에서 맞은 것이다. 그 달이 아직도 그 달이련만 유난히 둥글고 크고 가깝게 보인다. 잡곡밥에 귀밝이 술, 부스럼을 깬다던 강엿조각. 꿩알을 줍는다는 피마자 잎사귀 나물, 1년 내내 몸쇄비 없게 한다던 김(1년 내내 가봐야 이렇게 온 장을 구운 것이 돌아오는 날은 이 날뿐이었다만) 그리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솟 뚜껑을 열어두고 그 위에서 종이를 태우며 양손바닥을 부지런히 빌면서 1년간 가족들의 건강을 축원하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간절하던 소망들. 복조리를 들고 밥 얻으러 다니던 개구쟁이 녀석들도 이제는 그런 개구쟁이 얘들을 가진 애비들이 됐다. 추억이란 그것이 다시 소생할 수 없는 것이기에 존재를 하고 또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며 다시 동경의 대상이 되는가 보다. 비록 그것이 어려웠고 고통스러웠다고 하더래도-.
어제 받는 德丸의 제1종검사 5개월 연기와 거기 따라 6월3일인 정기검사도 날짜를 맞춰서 연기. 모두 일본에서 한꺼번에 수검하도록 하고 항해에 지장이 없도록 바란다는 전보 내용대로 서류를 보냈다기에 언제 보냈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오늘 같은 내용의 답신이 각각 다르게 입전했다. 하나는 20일이고 다른 하나는 15일이다. 내용으로 봐서 15일이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만, 어째서 같은 날, 같은 사무실에서 이렇게 다른 내용의 전보가 발송되어 사람을 골탕맥이나? 낮에 Assaf에서도 그랬다. Byron에서 본선 C/O와 교신할 땐 분명이 Assaf사무실에서 나를 찾더라고 해서 직접 물어보니 찾은 일없고 내일 연락한다고 했는데 귀선해서 보니 오후 7시경 또 나를 찾았단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하기사 오늘 Mr. Assaf가 Port Harcourt.로 간다고 했으니 오후 6시까진 아무런 연락이 없을 것으로 보고 나가긴 했는대 -. 제놈들 오락가락 하나 내 오락가락하나 매 일반이다. 잊어버리자.
23rd. Feb(목)
아침 6시반부터 VHF앞에 죽치고 앉았다. 역시 매부리코의 놈의 소리가 왕왕한다. 어제 오후에 어디갔더냐고? “어이 Toni 어제 일본 대사관에 갔다가 오던 도중 보트가 고장나 2시간이나 표류했지. 그래 어제 갔던 일은?” Apapa는 즉시 Port Harcourt로 가고 Hiroshima는 더 기다리란다. “야 당신은 나한테 기다리라는 말 빼면 할 말이 없군.” “하아하” 자식 웃기는-. 남의 속고 모르고-. 그리고 일본에서 편지 온 것 없소? No 다. 오면 좀 알려주시오. ‘Very Good’하고 말았다.
기다릴 수는 없고 연기서류 작성하다. 정기검사관계도 밝혀냈다. 역시 내 차분하지 못한 탓에 그랬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갔으면 됐는데 -. 검사증서만 연기 받으면 되는 것이다. 내일은 들고 가서 후딱 마치자. 미뤄두면 그만큼 일만 쌓이는 셈이 된다. Yue Hope. Mino Star도 오후에 각각 입항, 진짜 외톨이가 된 신세다. 유독 이번항차는 모든 일이 사사건건이 약만 올리는 듯 하다. 그런 일이 없더니 이제는 늦게 온 놈도 일찍 들어가는 수도 생겼나 보다. 보나마나 그놈의 동그라미가 힘을 쓰는가 보다만 -. 참 Uniqe호도 출항했지. 가쯔시마마루가 유일한 친구(?)로 남아있다. 토쿠마루에서 다시 전보. Canpex에서 73동방호로부터 A유 100톤 받기로 되었으니 받는 즉시 연락할 것이며, 양하는 금주에 시작할 예정이니 Agent에 확인하고 양하 후 공선시 Greece Buyer 방선할테니 잘 좀 협조하란다. ‘엿이나 먹어라’다. 인도놈들한테 감쪽같이 속은 모양. 금주 좋아하네. 여기서는 꿈도 안 꾸는데 -. 보나마나 독촉에 못 이겨 거짓말하고 매선 소개할테니 어쩌고 하면서 꼬신 모양이다. 약다는 일본놈들도 그놈들에겐 굴신을 못하느만. 그토록 당하고도-. 그래 노력하마. 해서 될 일이면 해야지. 그러나 동방호는 언제 올런지 소식도 없고 대리점 물어보니 양하항이 Lagos가 될는지 Port Harcourt가 될는지 분명치 않다니 아는 대로 연락하겠다고 답신을 띄우다. 동방호에는 직접 madrid 무선국을 경유해서 타전하도록 하다. 그놈들 믿느니 바로 두들겨 보는 게 빠르고 정확할 것 같다.
오후 조해일의 ‘겨울여자’ 상권을 읽다. 그런 것도 소설이 되는가 모르겠다만 어쩌면 그런 소설이 있음으로 해서 오히려 선량한 아가씨들이 그와 비슷한 사실을 만들어 내게 할 것만 같아 불쾌감마져 든다. 여자의 순결! 그것은 세상이 아무리 개방되고 성의 자유화니 어쩌니 해도 귀하고 값진 것이라 믿는다. 아무런 사랑도 의미도 없이 여기저기 개보지 모양 내 맡긴다는 것은 어거지가 아닌가. 더구나 교양과 학식을 갖춘 사람들로서 -. 그것을 두고 어른들 말로 도덕이 땅에 떨어졌느니 문란해 졌느니 하고들 있겠지만 실상 내 자신의 고루함도 있다고 해도 난해한 일이다. 그래도 가장 사랑하고 또 그래야 할 아내에게서부터 순결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이 과연 여자의 순결이 귀하고 값진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인가. 처음 아내를 알던 날의 받은 충격과 감명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 여자의 순결을 앗았다는 양심의 가책이 아니다. 무어라 집어서 말할 수 없는 큼직한 감동이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순수한 내 것, 그 어느 누구도 범접해서는 안 될 신성함을 가지고 있다. 그 감명이 결국은 한꺼번에 더욱 가까이 사랑을 가져왔고 그 하나 이외는 아무것도 생각하지도 뵈지도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20세 이상의 처녀는 박물관에 모시자.’ 는 왜놈들의 말이 점점 현실화된다면 정작 처녀와 결혼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불쌍할 뿐 아니고 그러한 사람들이 늘어감으로 더욱 사회는 썩어가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의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던 내가 낳은 내 딸들에게는 또한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를 생각한 아내의 말이 얼마만큼 무게와 깊이를 가진 것인가 새삼 느낀다. 진실한 얘기다.
24th, Feb.(금)
07:30시 Assaf에서 전보가 왔다고 알려왔다. 대아해운 것이다. 3개월 계약 연장키로 하고 5월 중순 일본에서 보충 교대한다는 내용이다. 아침부터 또 사람 미치게 하는군. 10시경 일본 대사관과 대리점 들러 일단 검사 및 증서관계는 마쳤다. 대사관의 영사도 쉽게 일을 잘 봐준다. 통신장이 Mino Star 그리고 Sunflower에서 부식을 의외로 많이 구입했다. 출발할 때 부글부글하던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다. 바람 없는 땅위는 그냥 불밭이다. 살이 그냥 탄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나보다. 한 걸음 빨랐으면 미노스타에서 좀 더 살 수 있었다고도 했다. 가쯔시마마루 편지 전해주었다. 낯이 따갑고 등이 땡긴다. 같이 갔던 미우라군의 얼굴도 그냥 벌겋게 익었다. 편지 받다. 의외의 기쁨이고 위안이다. 분명 마누라도 제 Face를 잃고 있는 듯하다. 진짜 그의 말마따나 “이 무슨 일인고?”
마치 집 장수한테 온 듯한 느낌이다. 그저 땅이 집이 눈에 선하고 자나께나 떠나질 않는가 보다. 거기다 귀국한다고 또 야단이다. 허허참! 어쩌면 좋을꼬? 사다리는 올라갈수록 넓게 보인다. 내려오기가 싫어진다. 그러나 어느 정도 봤으면 내려와서 다시 사다리가 선 자리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제 그를 내려오게 하거나 더 이상 못 올라가게 해야 할 때다. 지금의 내겐 집도 땅도 있다. 또 할 수 만 있다면 더 늘이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처럼 절실한 것도 아니다. 감기 걸린 애들. 그리고 밤잠을 설쳐가며 얼굴이 화끈거리도록 수면제를 먹어야 하는 마누라가 몇 십배 간절하고 안타깝다. 자기 말 마따나 “좀 이상해진 것 같아요.” 가 아니고 많이 이상해졌다. 하루 이틀에 될 일도 아니고 또 “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일인데도 긴 편지 거의 전부를 차지해가면서 땅과 집만 들먹이다니 원참! 그래서 골치만 아프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처음 1년 더 할까 했을 때 공갈(?)도 하고 꼬시기도, 달래기도 하더니 이제 와서 맘 잡고 있는데 또 일을 그르치다니, 말 돌린 이유가 아리숭하다니-. 좌우지간 중병이다. 어서가야 한다. 그래서 꼭 잡아주고 포근히 안아줘야 하고, 땅과 집쪽으로 향하는 그의 마음을 내게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가정과 직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또 한쪽으로 정신이 앗겨간다면 그 전부가 완전해 질 수가 없질 않는가. 과연 그 자신의 욕망이 눈덩이처럼 부풀어만 가고 있든가 아니면 그렇게 주위의 사회가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든가 그도 아니면 내가 하는 일이 전부 못마땅하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가. 어쩌면 세 가지 모두가 한꺼번에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가장 기쁨과 용기를 주었고 지금도 가끔 읽어보는 12월 10일자 편지가 정영 한낱 공염불이 되고 마는가? 실상 그 부푼 욕심을 줄이지 않으면 한 동안은 심한 갈등을 가져오기 쉽다. 그것이 문제다. 무엇으로 채우지 못할 바엔 줄여서 현재의 실정에 맞추어야 한다. 내가 의사고 약이 되어야한다. 환자에게 약이 없고 의사가 없다면 악화되는 것은 당연지사. 땅도 잊고 학교도 잊고 그저 얘들과 나와 자신을 가꾸고 생각해 주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내 일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1년 중 가장 짧은 2월이 가장 길게 느껴진다. 그 자리에서 답신을 띄웠다만 오해는 않을는지? 함께 지어보고 싶고 얘기도 해보고 싶은 것을 왜 알아주지 못하는지? 근원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땅이나 집, 돈을 위한 얘기가 아니면 지면을 매울 수 있는 대화의 결핍, 그리고 단절된 지금의 상태와 그러한 일에 능숙하겠금 자신이 변해버렸다는 데 있다. 어느 쪽이나 모두 내 탓이지만-. 이번 귀국으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분으로 해보려던 작심이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도 같고 다시 몇 달 놀다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어쨌거나 우선 가볼 일이다. 한해 번 것 까먹고 말더래도 무엇인가 몸부림이 그리고 조치가 요구되는 지금이다.
25th. Feb (토) 1978
기다리던 동방호보다 Kano Reefer가 먼저 왔다. 어제 저녁 8시경 도착, 외항 멀찍히 묘박을 하고 아침에 잠시 교신을 했다. Shifting 하려했는데 잠시 Eng. 손 본다나. 모자라는 게 너무 많단다. 그래서 어찌 선박을 운행하는지 환자도 4명이나 된단다. 첫 항차는 처음이라서 그런 경황을 당했다 하더래도 계속 그렇지 않도록 조치를 강구해야 하는 것이 선장의 임무이고 책임인데 어딘가 구멍이 뚫렸다는 증거다. 우리가 줄 것은 Ammonia뿐이다. 마침 동방호도 연락이 닿았다. Madrid로 친 전보가 주효. 지금 Cotunou 외항에 정박중이라나. 본선 보유관계는 아직 연락을 못 받았다고 한다. 또 속았나. Mr. Tikam도 얼빠진 자식들 데려다 월급만 주는가 아니면 그 자신이 정신이 나갔나? 마침 최후 통첩용 전보를 기안했다가 일단 철회하고 좌우지간 Lagos로 오라고 했다. 오후에 한꺼번에 두 척이 닿았다. 그런데 또 엉터리가 있다. 우리가 들은 것은 100키로였고 전보를 받은 것은 80키로라고 했는데 오늘 수취했다는 동방호의 전보는 50키로란다. 뒤죽박죽이다. 이럴 땐 할 수 없이 그저 집어삼키는 놈이 임자다. 마침 그 배는 암모니아가 시급하댔다. 흥정을 붙였다. 결국 80키로 받고 암모니아는 동방호 주고 동방호의 냉동유를 Kano에 주기로 합의 실행했다. Kano 선장한테 Port Harcourt의 항정을 대강 들었다. Wari와 거의 같은 실정이다. 그 많은 모기, 벌레 그리고 바람기 없는 더위, 무질서한 하역실정. 아득하다. 차라리 조금 늦어도 Lagos에서 양하를 하고 싶다. 셋 선장이 장시간 잡담으로 보냈다. 하나도 의미가 있고 내용이 있은 것도 아니지만 속은 후련한 기분이다. 역시 노 선장의 처세가 안타깝기도하지만 일면 측은한 생각도 든다. 저나 내나 비슷한 나이에 이 꼬락서니 하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자신의 처지를 자신이 알아야 하는데 -. 2/O를 선장이라고 대리점에 보내놓고 중계해 달라니 말이 막힌다. 그래도 어거지를 쓰는 그 뚜꺼운 얼굴을 자신이 느끼지 못하니 결국 이런 결과를 초래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21:00시 동방호 이선. 부식을 다소나마 구할 수 있을까 했으나 헛사. 그러나 한 가지는 또 해결을 본 셈이다. Las까지 못가고 Dakar에서 실었다니 그도 부족할 수밖에 -. 그럭저럭 앞으로 한 달은 버티겠다만 문제는 한 달 안에 양하를 마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Las까지 가는 8일 동안은 또 어떤 수를 쓰던 정 안되면 쌀과 간장만 있으면 되니까. 내일 아침 10시경 Assaf에 나오란다. 일요일인데 무슨 일일까? 대아에 Telex 넣다. 일본까지는 너무 멀고 Las에서 교대 바란다고. 그러나 기대하지는 않는다. 약한 선원들의 약점을 이용하는 듯한 생각도 없지 않으나 피차가 부득이한 처지임을 짐작하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26th, Feb(일)
10시경 Assaf에 가다. 일요일이라 Mr. Assaf의 가족이 모두 회사에 나왔다. 얼굴이 갸름하고 코고 오똑하며 유난히 눈이 파란 그의 마누라. 그리고 우리 정화 정주 또래의 두 아들과 한 딸이 너무 너무 부럽다. 넷인데 가장 큰놈 12살짜리는 안 왔다나. 아버지의 사무실에 온 손님에게 마실 것도 권하고 심부름도 하며 재롱을 떤다. 일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왜 불렀냐? Las의 Mr.Tikam에게 전화 할 참인데 좀 같이 하잔다. Mr. Kishinani도 왔다. 그건 그렇고 “야 좀 일찍 끝낼 수 없냐? Circe 1 다음이 가쯔시마마루인데 그러지 말고 내가 먼저 좀 풀자. 검사기간도 넘어 대사관에 이틀이나 다녔다.” 노력해보겠단다. Port Harcourt에도 가지 말고 여기서 하자고도 졸랐다. “그래 Mr.Tikam에게 전화해서 상의해보자” “동방호와 kano Reefer 어찌 됐소?” 내가 불러서 타협해서 잘 해결됐고 오늘 오후 다시 출항하기로 되어있오? 했더니 그도 Mr. Kishinani도 ‘Very Good’을 연발한다. 그러면서도 K/R의 Capt.는 미친놈이라 한다. 언제부턴가 그가 나를 “Big Boss”란 별명으로 통하고 소개할 만큼 가까워진 느낌이지만 좀 더 시원스럽게 표현하지 못함이 답답하다. 3시간을 기다려도 통화가 불가. 포기했다. “당신만 믿겠오. 대신 내가 여기 있는 동안을 당신을 위해서 최선의 협조를 하겠오. 또 Mr. Tikam과 전화 되거든 이 말은 꼭 전해주시오. 나는 당신을 위해 Best를 다하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다” 고 -. 불일간 좋은 소식있을거라고 했지만 믿긴 어렵다. 입항순서를 바꾼다는 것은 그들에게도 적은 문제는 아니다. 그래도 그만큼 그가 나를 믿어주고 의사가 통할 수 있어 일본 배를 비롯해 다른 한국선원에게도 중계를 부탁할 만큼 인정을 받는다는 그 자체도 내겐 하나의 보람이다.
동방호에게 약간의 야채. K/R에게서 남미산 쇠갈비 두 짝을 고기하고 바꾸었다. 쇠고기전 앞을 그냥 못 지나간다는 정화의 얘기가 생각나고 종일 그놈의 Toni 가족이 삼삼거린다. 몇살이냐고 묻자 분명히 6살하고 7개월이 됐다고 대답하던 계집애의 깜직한 눈동자. 겨우 두 살을 넘은 사내녀석이 신기한 듯 쳐다보며 장난을 걸어오던 모습이며,-이 뜨거운 태양아래 어떻게 갈무리 했는지 새하얀 그의 마누라 살결하며 볼수록 속이 끓는다. 내게도 분명히 있는 것들이다. 내 막내딸이 1년 뒤에 가니 아빠를 못 알아보더란 얘기를 듣고 웃기는 켜녕 정녕 염려와 안타가운 표정을 지으며 “Oh! No!” 하던 Mrs. Assaf의 눈길에 오히려 내가 미안하기도 했다. 마치 무슨 내 죄상이 낱낱이 드러나는 부끄러움처럼. 얘들을 보니 내 딸들이 생각난다고 했더니 어서 마치고 가길 빈단다. 일요일이라 얘들까지 데리고 요트 놀이하는 가족들이 많이 보인다. 심통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저렇게 쓰지 못할 돈이면 벌어서 뭣을 할 것인가. 수만금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안정된 생활 그리고 단란한 가정과 가족을 갖고 큰 불편없이 사는 것이면 족하지 않은가. Mr. Assaf. 우리한테만 퉁명스러운가 했더니 저거 마누라 한테도 얘들한테도 그렇군. 어디가나 남정네들이 심퉁한거야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일본에서도 그렇지만 서양에서도 주부들의 꼭 얘들한테 경어를 쓴다. 그리고 얘들 말이라고 절대 그냥 묵살해버리는 일이 없다. 가끔 나무랄 일이 있으면 그 이유를 분명히 하고 잘못을 지적해 준다. 그래서 그런지 얘들도 낯선 사람 앞에서 당당히 제 뜻을 이야기 해오는가 보다.
그래도 쇠갈비 소금구이 해 먹을려고 숯포대 사 싣고 귀선하는 내 신세가 어찌 그리 처량한지 모르겠군. 그 쇠갈비맛이 우리집 된장맛이나 될라나.
27th. Feb(월)
일본에서 등기우편물이 왔다고 알려왔다. Mr. Assaf 내일 아침 일찍 다시 Port Harcourt로 갔다가 밤에 온다며 모래쯤 무슨 소식 있을 것 같기도 하다고-. 내일 우편물 찾기로 하다. 멀근 정신으로 그냥 놓쳐버린 시간이다. 요 며칠간은 정신없이 보냈다. 한 주일에 3번의 상륙에다 동방호 및 카노리퍼와의 만남들 때문이었다. 겨우 한시름 놓을 만큼 됐는데도 쉬이 안정이 되질 않는다. 내일이면 2월도 안녕이다. 집에선 아내와 얘들이 방학 중이 되겠군. 정화 성적이 괜찮은지?. 마음만은 학부형 노릇을 하고 싶기도 하다. 1년간 욕본 선생님에게 한턱 쓰기도 하고 남 선생님이면 소주도 한잔 나누고도 싶다. 그래서 좀 더 자라는 애들의 성격도 알아두어야 하고 더욱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요구도 해야 한다. 담임선생님이 그만큼 애들한테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학부형이 선생님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지난날 내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다. 마누라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마는 하나의 욕심일거다.
28th. Feb. (화)
C/O를 대리점에 보내다. 우편물통에 정작 있어야 할 서류는 없고 엉뚱한 것만 들었더랜다. 그러니 두 가지 전보가 한꺼번에 오기도 했었나 보다. 대아 공문도 있었다. 15척의 중견회사로 자부하는 모양이다. 정 사장의 박사학위 땄다는 얘기, 그리고 Manning 회사로서의 취약점을 선원들에게 협조 바라는 내용의 글들이다. 선원들 쪽으로도 그렇다. 3개월 더 연장한다는 그 조항. 막상 출국시에는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이 순순히 도장을 찍고 Sign을 한다. 그런데 정작 귀국할 때가 되면 꼭 자기가 한 일이 아닌 것처럼 말들을 하고 법이 어떠니 저떠니한다. 현재 본선의 입장이 그렇다. 일본에서 교대에 협조바란다는 내용의 전보가 바로 그렇다. 어제 德丸에서는 Las에서 교대를 재고 바란다고 오더니만. 아무래도 일본까지는 가야 할 것 같다. 5월 중순이면 시절이야 좋은 때이지만 조금 늦다. 4월초. 중순이면 좋으려만-.
동방호 교신. Eastern Peal 중계. Ent. No. 알려주고 본선 곁으로 전묘하도록 했다. 내일쯤 방선하기로 하고. 수당지급, 월말보고 작성하다. 혹시 내일이라도 불쑥 P. Harcourt로 가라고 할는지 모른다. 마치 완전무장을 갖추고 출동을 기다리는 전투병 같은 신세군. 아무리 Check해봐도 식량이 부족하다. Eastern Peal이 조금 여유가 있다니 한 번 문의해보자. 2월말 결산을 위한 선내 재고품조사 의뢰가 德丸에서 왔다. 자라보고 놀란 놈 소똥보고도 질겁한다고 또 지레 짐작으로 매선한다고 넘겨들 짚겠군. 일본에서 교대하는 대신에 다믄 얼마라도 항공료 명목으로 준다면 설득하기가 좋으련만 그냥 맨입에 하기엔 아무리도 다소 강압적인 태도가 필요할 것도 같다. 무엇보다 이쪽의 Schedule이 불분명한 것이 가장 큰 Handicap이다. 대강이라도 알면 그대로 밀어붙이면 되겠는데.
내일부터 맞는 3월은 좀 더 시원한 달이 되었으면 싶다. 새벽의 소나기와 돌풍이 서서히 우기가 닥쳐옴을 뜻하는 것일까. 시원한 빗물 속에 뛰어들어 마음끝 씻고 소리치며 딩굴고도 싶다. 새로운 3월엔 다시 마음부터 새로 갖자. 비록 주위가 불안정하드래도 禪을 하고 道를 닦는 정신으로 자신만이라도 흔들리지 않게 가져보자. 내일모래면 3학년이 되는 데 그래도 아빠가 안 온다고 정화가 불편을 할 것만 같다. 한 번 꿈쩍하기만 하면 쉽게 한두 달은 훌쩍 뛰어넘어갈 것만 같은데도 도무지 꿈쩍을 않는 바위처럼 무겁기만 하다.
1st. Mar. 1978 (수)
3월이 시작된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이외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무의미한 생활의 연속일 뿐이다. 아침부터 제법 파도가 있고 바람이 있으나 지체할 수가 없다. 무엇이라도 닥치는 대로 준비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 그만큼 조급증을 부채질한다. 당장이라도 P. Harcourt로 가라면 별수 없이 가야지. 부족한 식량을 저놈들이 알아줄 리는 없지 않는가. E/P에 가다. 林彩守 선장. 그리고 김기태 기관장 좋은 분들이다. Consigner측이나 Agent에서 30일 정도로 자신있게 장담했다지만 만약을 위해 석달 분을 준비했다니 열번 잘한 일이라고 치켜주었다. 겨우 이야기를 시작하는 데 오늘 오후 2시에 Pilot승선 입항한단다. 어제 겨우 Number를 받았는데-. Shipper가 J. Berge 라더니 과연 영향력이 큰가보다. 부럽다. 마침 해수 Pipe 수리 중. 애로가 있으나 Pilot를 구워 삶은 모양. Pool 5에 입항한단다. 좌우지간 내일 염치불구하고 갈테니 좀 잘 부탁하잘 수밖에-. 동방호 허 선장과 정남기 기관장이 본선에서 자고 가다. Boat의 Rudder가 파손. 떠내려 가는 바람에 한동안 소동을 빚었다. 근간 다소 무리하게 사용을 했고 또 날씨도 거칠었다. 응급조치라도 해야겠다. 강행군을 하긴 해야겠는데 계속 바람이 자질 않고 파도 끝에 흰 꼬리마져 물기 시작한다. 어제는 그리도 좋더니만. 쉬이 잠도 오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어찌 될 것인가? 대아 정 사장 앞으로 축하전보, 그리고 德丸에는 결산을 위한 재고조사 결과를 Telex하다. Mr. Assaf이 Mr.Tikam과 달리 사람이 얄삭하지 않고 듬직하여 일단 그의 약속에 기대를 걸어봄직도 하다. 다소 늦더래도 Lagos에서 하고 싶다는 의사도 전했고 그도 수긍을 했다. 강 속의 더위. 모기 벌레들, 마라리아의 위험 등이 마지막 항차를 얼룩지게 먹칠할 것만 같아 정영 가기 싫은 곳이다. 세네갈의 다카에서 1주일을 입원한 2/E. Las에서 한 달을 입원하고 수혈까지 한 갑견 강군의 기억이 현실로 되살아 나는 것만 같다. 어제부터 다시 키니네를 복용시키는 중이고 각방에 살충제도 충분히 준비해 두긴 했다만 자신이 자신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함이 최고의 방법이다. 그래도 가끔은 그놈의 ‘재수 옴 붙는’ 수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
내일 아침부턴 3학년이 된 정화, 또 새로운 학년을 맡을 아내에다 정주도 데리고 다닌 뎄으니 제법 의젓해졌을 테지만 집안이 북적대겠군. 벌써 두 얘들을 학교에 보내야 할 만큼 내 자신이 성장을 한 것이다. 어서 가고 싶다. 얘들도 보고 싶고 그 속에도 파묻히고 싶지만 그 보다도 아내의 모든 것을 갖고 싶고 빠져들고 싶다. 모두를 위해 지금이 하나의 과정이라고 하지만 우선은 그래도 조그만 여유라도 가질 수 있지 않는가. 늘 마누라가 “하루속히 안정을 갖지 못하면 늘 이렇다.”고 했듯이 뿌리가 약한 체 가지나 잎이 무성하면 더욱 불안정해져갈 뿐이다. 내일은 또 어쨌던 오늘 이 순간만이라도 그 열열한 바램을 갈구하는 것은 역시 또 다시 승선할 수 있다는 안일한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단순한 욕심인지도 모른다. 결코 그러한 생각에 자신이 빠져들거나 져서는 안 되는데도-.
2nd. Mar(목)
“오! 하느님! 오늘 하루 뜻대로 이루고 끝낸 날이 된 걸 무한히 감사드리고 기뻐하는 바입니다. 순진한 얘들의 마음처럼 정작 하늘에 계실런지는 저 자신도 모르겠으나 오늘의 이 감사함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종교란 것이 그리 어렵고 멀리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자신을 위해 가장 어렵고 무서운 경우를 당했을 경우 그리고 그 순간을 무사히 벗어났을 경우 자신도 모르게 부르짖고 찾는 하느님. 혹은 신령님 아니면 귀신님이라 해도 좋다. 그때가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종교인이 된 것이 아닌가?.
아침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우선 Assaf이다. 뜻대로 그쪽에서 꼬셔왔다. Toni의 목소리다. “수고 했오. 무슨 소식은?” “엊저녁 너무 늦게 와서 연락을 못했는데 아직 분명한 예정은 없다.” “그럼 오늘 나 부식 구입하러 시내에 나갔다가 오후5시경 귀선할 예정이오. 그때 연락할테니 좋은 소식 부탁합시다.” 좋다고 했다. 하나의 구멍은 파 둔 셈이다. 예상대로 해상이 거칠다. 그러나 나중 굶고 앉아 있을 것을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서둘러 Eastern Peal호를 찾았다. R/O와 C/S를 바로 소개 거래하도록 하고 배수진을 쳤다. 의외로 많은 협조를 얻었다. 쌀, 야채 설탕 등 깊고 긴 한 시름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이렇듯 하지 않으면 길이 없는가? 앉아서 보내라고 전보로 연락 기다리면 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Las에서 무조건 준비하지 못한 내 판단의 착오. 그리고 너무나 무질서한 이쪽의 항정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책임!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과정을 자신 이외는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 우리의 이 실정은 그 수십 분의 일이라도 선주측이나 대아 그리고 용선자인 Canpex에서 알아 줄 놈은 없다. 그들 자신은 기업가다. 지난 한 해 동안 처음 두어 달 동안 고역을 치른 뒤의 교훈이 그간의 원만한 운항을 가져왔었다. 결코 이번 항차도 큰 미스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더욱 따지자면 그 원인은 그 놈들 자체에 있다. 내가 너무 그들을 믿은 것이 탈이면 탈이다. 세상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먹고 사는 일, 아니다. 먹는 일이란 인종을 불문하지 않는다. 제법 파도가 높았으나 주부식을 덤뿍 실은 보트의 중량감처럼 마음속에 되살아나는 시한부의 안도감이지만 흡족함을 진정 감사드리고 싶은 것이다. Agent에도 들렀다. ‘Big Boss’라고 대우해 주며 반겨주는 그놈도 실상은 자기의 잇속과 통할 때만 유효한 것이다. P. Harcourt로 안 가게 된 것만은 확실하게 결론을 얻었다. “너만 믿으마, 먹고 살기 어려우니 잘 좀 협조해다오. 필요하면 내가 직접 Mr. Kishinan한테 얘기할까?” 아니랬다. 자기가 하겠단다. Las의 Mr.Tikam이 이 녀석만큼만 해도 한 번 불알을 물고 달겨 들어봄직도 한데-.
김기태 기관장과 좀 더 긴 시간을 갖지 못한 게 아쉽다. 50이 넘은 나이에 고생이 많다. 벌기도 많이 벌었으나 집사람의 암수술, 얘들 학비 등으로 지금끝 날려버린 결과 겨우 작년부터 숨을 쉰다고 했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이 곧 그것이 아닌가? 이런 곳에서 모든 것을 바쳐가며 번 귀중한 달러가 병을 얻은 가족 때문에 엉뚱한 놈의 수중에 들어가야 한다니 -. 저주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70년 초반 처음으로 상선의 2등항해사로 발을 딛였을 때 그는 1등기관사로 하늘같이 쳐다본 사람이었다. 세상은 어디가나 자신이 성실하고 노력하고 거짓이 없으면 서로를 믿고 인정을 하고 그 속에서 협조가 생겨나고 살아 갈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새삼 느낀다. Apapa의 김 선장이 말은 나보다 다소 능통하다고 하나 신용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비록 대학을 나왔다고는 하나 그 무지막지한 K/Reefer 노 선장의 비참한 꼴은 곧 웅변보다 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세계의 모든 기업이 얼키고 설켜서 서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을지라도 어디까지나 지키고 수행해야할 규범의 한계 그것을 벗어나면 영영 되돌릴 수 없는 나락의 길로 가야하는 엄연한 현실을 바로 직시해야만 한다.
자! 이제 남은 것은 가쯔시마마루 보다 일찍 입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Mr. Assaf이 그처럼 약속 했다면 기다려 봄직도 하지만 그를 부리는 Trans-con의 총수 Mr. Kishinani의 의중을 잡아야한다. 어느 정도 자신이 있기에 맡기라고 했겠지만 한 번쯤 접촉해 봄도 좋을 것이다. 이 절실한 형편을 설득시키기 위한 구수하고 호소력 있는 대화. 그게 술술 나오지 않으니 사람 죽인다. 언제 이놈의 영어가 달통되려나?
가쯔시마마루는 지금 내게 하나의 적이다. 내가 반드시 이겨내야 할 -. 그렇다고 표면적으로 들어낼 수도 없는 일. 결과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그것도 내가 저들보다는 한마디 단어를 더 지껄일 줄 아는 데서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간 내가 그에게 베풀어준 그 진의를 그가 알면 놀라겠지만 만약의 경우 내가 실패할 경우 이용할 수 있는 계기는 충분히 만들어 둔 셈이다. 서로 잡아먹고 사는 사회! 그러나 그것이 어떤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고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모처럼 푸근히 잠들 수 있는 밤이다. 철지난 것이지만 잡지. 신문도 한 동안은 좋은 살번제가 될게고 -.
3rd. Mar. (금)
이곳 Lagos Road에 온지 꼭 40일째다. 본선으로선 처음 있는 일이다. 아침에 느닷없이 Toni가 부르더니 다음주쯤 Tinkan Island에 접안할 것 같기도 하다고 슬쩍 귀뜀을 한다.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다. 더 자세히 물어보고 싶으나 가쯔시마도 듣고 있을 것으로 보고 그만 두었다. Toni의 약속이 무위로 끝나지 않는가 보군. 입항한다는 사실을 영영 잊어버린 것처럼 생각되는 요즘인데 어떤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도 같다. 어제 德丸에서 다시 입항예정 및 보다 빠른 입항을 위한 Push(독촉)하고 한시라도 빨리 Las로 오라고, 경우에 따라서는 Booking해둔 Cargo가 Cancel될 우려도 있다고 알려왔다. 그 답답한 심정도 이해야 간다만 나보고 그러면 난 어쩌나? Las의 Canpex보고 독촉해야지. 여기선 내가 너희들보다 몇 백배 노력하고 있고 더 답답하고 갑갑한데-. 줄어드는 식수와 식량에다 집으로 가고픈 향수병이 사람 미치게 하는 줄도 모르고-. 본선보다 앞서 가쯔시마마루가 있고 어쩌면 그보다 우리가 일찍 갈 수 있도록 Agent와 약속도 했고 내주쯤 입항할 지도 모른다는 내약을 받아두고 있다고 답신을 보냈다만 떱떠름하다. 차라리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할 것을-.
어제 얻어온 신문을 들췄다. 최근 부산에도 큼직한 사건들이 있었군. 살인사건이 점점 늘어가는 것도 심각한 사회적 문제지만 범인들의 연령이 20대란 점. 그리고 더욱더 잔인해져 가는 것 그러면서도 모두가 자기 일이 아닌 양 무관심해버리는 방식도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심각성이 있다. 특히 어린이 유괴사건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그저 그런 놈들은 잡히는 데로 법에 앞서 무조건 총살시키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 아닐까? 아무리 기성세대가 어떻고 사회가 그렇게 만든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본인 자신의 이성의 문제가 아닌가? 금전만능 시대가 되고 배금사상이 왼통 절여있어 그것이 불신풍조를 불러일으키고 없는 자의 이유 없는 분노를 낳게 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원천적으로 보면 모두가 개인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의 전부를 읽은 ‘수사반장’에서 그리고 신문에서 본 범인의 신상을 보면 모든 범죄의 요소는 아무렇게나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가정환경의 비정상에서부터 생겨난 변칙스런 성격의 형성. 조그만 악이나 부정이 씨앗이 되어 더 큰 범죄를 자초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러한 범죄로 인해서 생판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데 더욱 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린애를 잃은 울산 부모의 심정은 곧 그만한 자식을 가진 세상사람들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를 할 것이다. 이제부터 정식 3학년을 시작했을 내 정화가 벌써 9살인가.
光洋丸 다시 입항, 교신하다. 몇 군데 어디서 뭣한테 물린지 모르겠지만 말썽을 부릴까 염려스럽게 부푼다. 가끔 날아드는 개미탓인가. 흉터가 남는다. 아무리 굽고 태워도 원래 내 것 이상은 여물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4th. Mar.(토)
이상한 일이다. 속이 쓰리지도 않고 숙취로 인한 골치가 하나도 아프지 않는데도 뭔가 제정신이 아닌 듯, 마치 지난일 전부를 잃어버린 듯한 휑한 기분이다.
엊저녁 혼자서 조니워크를 육회로 안주 삼아 반병이나 마셨다. 깊은 잠 좀 자볼까 해서 찔끔 찔끔 마신 것이다. 물론 오늘 당할 그 속쓰림이랑 종일 팅- 할 골치를 각오는 했다. 모처럼 취기가 돌았고 언제 잠들었는지도 또 어떻게 잤는지도 모르게 골아 떨어지기는 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가 않다. 다만 머리속에 아무것도 없는 듯한 기분이 오히려 이상하다. 식사도 극히 정상으로 했다. 그저 물만 두어 모금 더 마셨을 뿐이다. 그렇담 술을 그 만큼씩 마셔도 꺼떡없다는 소린가? 그렇지 않다. 아무래도 나는 영영 술을 끊든가 취기가 돌만큼 마셔서는 안 되겠다는 강한 느낌이 종일 뒤따른다. 분명한 이유는 집어서 말할 수 없어도 그저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다시 취한다면 내 자신부터 송두리째 잃어버릴 것만 같은 예감이다. 그만큼 체질이 약해진 듯도 하다. 전신을 휩싸고 도는 탈기. 아무것도, 꼼짝도 하기 싫은 그 무기력함이 괴롭힌다. 술은 자신의 의사에 맞게 마실 수 있을 만큼 자기를 통제하고 이길 수 있으면 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면서도 지금끝 한 번도 실천해보지 못한 내 경우를 생각하면 술, 그것은 정영 요주의 해야 할 물건이다. 그러면서도 풍년으로 다시 시작된 ‘쌀막걸리’ 보도를 보는 순간 침 한 덩어리가 꿀꺽 넘어가는 걸 보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끊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절제하는데 있다. 종일 잠만 잤다. 세상모르게 잤는데도 낮에 두 번이나 더 잤다. 그놈의 술기가 잠귀신을 불러 깨웠는가? 잠이란 확실히 중요한 것이다. 인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낸다고 해야 한다. 항우 장사라도 잠한테는 못 이긴다는 옛말이 있고 보면 신기한 일이다. 이 잠을 못 이루는 불면증은 실상 병치고는 지랄 같은 것이었다. 그 불면의 고통이란 잘 알려지지 않은 자기만의 고민이고 고통인 것이다. 속상하는 일처럼 툭 털어놓고 얘기한데서 쉬 아는 것도 아니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 당사자만의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것이 현대병이라고도 한다. 아니 한때는 집에 불이 나도 몰랐을 만큼 깊이 잤고 하루 20시간을 자고도 눈이 떨어지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는가 하면 하루 2-3시간을 못자서 두 눈이 붉게 충혈되고 정신이 몽롱한 적도 있었다. 요즘의 이 증상을 그리 중한 증세는 아니다. 다만 현재의 불안한 상태와 늘 버리지 못하는 직업상의 긴장감 때문에 숙면을 못하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것도 여러 날을 겹치면 탈이 된다. 건전한 정신상태는 건전한 신체라기 보다 충분한 잠에서 생겨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만사를 잊은 체 마누라 곁에서 푹 빠져들었던 그 깊이를 알 수 없던 그 잠이 그립다. 아내도 분명 불면 때문에 고역이 심하다고 했다. 그에게는 내가 곧 수면제인데 -. 이미 병적으로 고질화 된 것은 아닌지. 원래는 ‘토끼잠’을 잤는데 -.
Sunflower출항하다. 기약없는 날들일 테지만 서로의 안항과 건투를 빌어준다. 내게 저런 기쁨이 언제 오려나. 기다린 40여일이 더욱 길어 보인다.
5th. Mar. (일)
Byron 다시 입항. Lagos에서 Loading 예정이란다. Agent가 어딘지 불명확하단다. 역시 작업선의 버릇이 남았는가 Owner, Charterer 등과의 연락관계가 서툰 모양이다. 우선 선주측에 도착전보를 보내고 Agent를 지정 받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임을 일러주다. 저녁에 불갈비 파티를 열다. K/Reefer에서 얻은 쇠갈비를 통째로 자르고 드람통을 잘라 만든 화덕에 숯불을 피우고 구웠다. 갈비한대의 길이가 20여센티가 넘는다. 그기에 붙은 고기가 아무래도 반근은 족히 될 것이다. 냄새도 모처럼의 불고기 바로 그것이다. 코가 확 뚫리는 기분이다. 모두들 많이도 먹었다. 그래도 모자라는가 눈치를 보며 화덕을 빙빙 도는 친구가 있다. 이제 귀국해서 이렇듯 불갈비 먹으려면 적어도 기만원 들지 않으면 엄두도 못 내리라. 쇠고기 한 근에 2,000여원을 한다니 원참!. 질긴 힘줄을 다시 구어 좀 오래 씹었더니 턱이 얼얼하게 아프다. 캭!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집구석에 돌아가면 생일날이나 경삿날이 아니면 제대로 고기 얻어먹을 형편이 안 되면서도 막상 배에서는 고기가 질기니 어쩌니 하고 투정을 부리는 자들이 어디에나 한둘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자들일수록 그 자신의 속과 겉이 다른 점이 많음도 공통된 사실이다. 식수를 더욱 절약하도록 명하다. 다행이 다음 주에라도 입항이 되면 별문제 없지만 아직은 확정된 것이 아닌 이상 믿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선 급한 것이 식수니까 일일 최대한 2톤으로 끝내도록 하다. 光洋丸, 동방호, Byron 다시 한 번 모이고 상륙하자고 했으나 해상이 거칠다. 내항에 입항중인 Eastern Peal에도 한 번 더 가야하는데-.(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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