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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전 계몽을 통해, '영원한 공간'인 천국과 이데아를 그리던 고전적 세계관이 몰락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오래지 않아, 아인슈타인의 등장으로 과학에서조차 뉴턴의 절대적이고 공간중심적 이론이 무너지며, 현대는 오히려 공간을 허상으로, 시간을 우리 세계의 새로운 주인으로 맞아들이고 있다. 근세 최고의 발명품, '시계'라는 공간에 갇혀버렸던 시간은, 일반 상대성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며, 변하지 않는 것 처럼 생각되는 눈 앞의 공간들도 시간에 의해 변화할 수 있음을 전제하는 현대 과학의 도움을 받아 다시금 이 세계에서 주도권을 쥐게되었다.
이에 현대의 예술은, 천국과 같은 가시적이지 않은 공간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눈앞의 세계의 공간도 단지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실체인 '사건'의 장場일 뿐이라는 현대 형이상학의 유행을 충실히 따라 '시간성'을 보여주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이는 영상과 퍼포먼스, 인터렉티브아트 예술가의 비약적인 팽창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미술'이라 함은 어느 새, 네모난 프레임을 벗어나 시간을 따라 변모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의례 생각되고 있다.
이러한 시간성에 반기를 드는 예술장르는 단연 사진이다. 사진은 회화보다도 더 공간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마저도 '현대적임' 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기 위해서는 노출을 길게한, 필터가 두껍게 짓누른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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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09년 상상마당 작가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었고, 현재 노암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은종은 도대체 무슨생각으로 작업을 하는 것일까.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그리고 전시장 나들이 작가와의 대화를 하기 전, 두개 층에 걸쳐 전시되어 있는 Museum Project 시리즈를 감상하면서 그 생각은 더 짙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지나가 버린 공간에 대한 탐구는 오히려 신선하다 하더라도, 국공립 미술관을 어질러 놓고, 자신의 과거 작품을 삽입하는 식의 예술계를 비꼬는 듯한 작품은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술계의 권위를 넘보고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이미 공론화 되어 식상한 주제라는 점을 들어 작가에게 날카로운 질문공세를 퍼부을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자신의 길지 않은 작품활동의 결과물들을 설명하는 작가의 세련되지 않은 설명을 들으며 어느 새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신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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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한 짧은 머리의 여자라는 첫인상에서와는 달리 작가는 소소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 점이 나의 마음을 가장 먼저 흔들었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이는 작가의 작품 역시 소소하고 따뜻하다는 점에서 분명 중요하다. 작가는 미술관이라는 예술계의 권위적인 공간을 허물어버리고자, 평가절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 대한 도발, 애정에서 나오는 장난질이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눈을 반짝이며 미술관을 직접 섭외하고, 직접 어질르고, 자신의 작품을 그 속에 끼워 넣고, 지게차를 주인공 삼은 자신의 작업들을 설명하는 작가는, 소녀였다.
뮤지엄 프로젝트와 함께, 이전의 작업들 - 모텔과 다른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같은 방식으로 촬영한 시리즈들 - 을 통틀어 작가는 <역마살 프로젝트>라 이름 붙인다. 여관 프로젝트 또한 뮤지엄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누추하고, 욕망이 들끓는 그 장소를 비꼬기 보다는, 그곳에 대한 나름의 추억을 품고, 차분하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셔터를 누르는 장면이 저절로 그려지는 포근한 작품들이었고, 나는 다른사람의 사랑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몸이 자꾸 앞으로 기울어졌다.
공간을 주제로 하는데 왜 <역마살 프로젝트>라 이름 붙였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작가는 '자신에 대한 프로젝트기 때문에'라는 답을 해 주었다. 역마살이 낀 작가, 그녀에게 공간을 전제하지 않고는 떠남이라는 것도 없다.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떠나가지만, 다시 모든 것은 공간을 향할 수 밖에 없다. 고도로 발전된 현대의 과학과 정교한 현대 철학, 예술이 지향하는 대로, 세상은 시간에 처해있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려운 생각은 접어두자. 우리는 공간을 그리워하고 공간을 찾는다는 것이 더 자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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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작업 계획을 묻는 질문에 작가는 우리주변에 있을지 모르는 '우주인의 공간'을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 말에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다시금 공기와 같이 잊고지내던 공간의 존재를 상기하게 된다.
이은종은 고리타분하다. 그래서 따뜻하다. 우리가 그리는 어떤 공간과 같이.
작가 홈페이지 : http://www.eunjonglee.com/
글 ㅣ 상상마당 서포터즈 2기 김은준
사진 ㅣ 상상마당 스튜디오
첫댓글 스튜디오에서 오늘 사진을 받아서 이제야 올립니다! 얍!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ㅎㅎ
(홈피에서도 확인 잘했고...앗~ 근데 홈피에서 사진등록을 붙이기가 아닌 불러오기를 통해 해주세요^^ 담부터~)
동시성의 배경에 대해서도 고려는 해볼만한 것 같고 글 말미가 작가에 대해 따뜻한게 참 좋다. 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