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뇌 안에 ‘젊음의 샘’ 있다
![<b>(왼쪽)</b>젊은 쥐와 늙은 쥐의 병체결합 실험을 묘사한 그림. 네이처(2015·1·21)<br /><b>(오른쪽)</b>늙은 쥐의 뇌혈관(왼쪽)이 젊은 쥐로부터 혈액을 공급받자 혈관의 전체 부피와 분지(branching)가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이언스(2014·5·9)](http://img.khan.co.kr/news/2016/11/04/l_2016110501000304700050761.jpg)
(왼쪽)젊은 쥐와 늙은 쥐의 병체결합 실험을 묘사한 그림. 네이처(2015·1·21) (오른쪽)늙은 쥐의 뇌혈관(왼쪽)이 젊은 쥐로부터 혈액을 공급받자 혈관의 전체 부피와 분지(branching)가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이언스(2014·5·9)
‘젊음의 샘(Fountain of Youth)’은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의 글에 처음 등장한다. 서양에서는 16세기 대항해시대에 스페인의 탐험가 후안 폰세 데 레온(Juan Ponce de Leon)이 젊음의 샘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난 인물로 유명하다. 비록 기적의 샘을 발견하진 못했지만 그의 노력으로 오늘날의 플로리다가 처음 서양에 알려졌으니 탐험가라는 본업에는 충실했다고 하겠다.
동양에서는 불로초를 찾아 헤맸던 중국의 시황제가 유명하고, 지금은 TV의 리모컨만 돌려도 젊음의 샘을 찾아주겠다는 상품과 광고가 가득하다.
■ 나를 젊게 만드는 혈액
아이러니하게도 대서양을 누비던 탐험가나 절대 권력의 군주도 젊음의 샘이 바로 자신의 머릿속에 있다는 상상은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현대과학은 우리가 움직이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더 나아가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이 뇌에서 조절된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뇌를 젊은 시절의 뇌로 되돌릴 수 있다면, 최소한 젊은 상태로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젊음의 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뇌를 건강하고 젊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뇌에 필요한 에너지를 원활하게 공급하고, 노폐물을 신속하게 청소해야 한다. 이 역할은 뇌의 곳곳을 흐르는 혈액과 이를 운반하는 뇌혈관이 한다. 즉 젊음의 샘은 뇌 속에서 항상 흐르고 있는 혈액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성인의 뇌는 겨우 1.4㎏으로 체중의 40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심장이 내보내는 혈액의 15%에 해당하는 750㎖의 혈액이 매분 흐르고 있으며, 몸 전체 산소 소모량의 20%를 차지해 호흡활동도 왕성하다. 뇌의 혈류량이 정상 상태의 절반까지 떨어질 경우 에너지가 부족해지고, 남는 독성물질을 방출하지 못해 뇌 조직이 급속히 손상되기 시작한다.
차의 수명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좋은 휘발유를 공급하듯이, 우리의 뇌도 좋은 혈액이 충분히 공급되어야 더 젊게 오래 사용할 수 있다.
현대과학이 발전하기 전인 17세기부터 이미 과학자들은 노화의 원인이 혈액에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었다. 17세기 독일의 화학자이며 의학자인 안드레아스 리바비우스(Andreas Libavius)는 젊은이의 동맥과 늙은이의 동맥을 직접 튜브로 연결하면 건강하고 영적으로 충만한 젊은 혈액이 늙은이에게 전달돼 회춘(回春)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혈액형이나 면역반응의 원리가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한 추측만으로 이뤄진 다양한 실험들은 안타깝게도 수많은 희생을 낳았다. 당시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교황이 수혈 금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 늙은 쥐를 젊게 만들다
1900년 오스트리아 의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가 ABO식 혈액형을 발견해 안전한 수혈이 가능해지면서, 수세기 전의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다시 시도해 볼 용기가 생겨났다. 마침내 2014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와이스 코레이(Wyss-Coray) 교수가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연구팀은 ‘병체결합(Parabiosis)’이라는 방법을 통해 젊은 쥐와 늙은 쥐의 혈관을 하나로 연결했고. 이 결과 늙은 쥐의 뇌가 젊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병체결합은 두 쥐의 피부를 절개한 뒤 옆구리를 서로 묶어 주는 방법이다. 두 쥐의 모세혈관은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통해 점차 연결되는데 마지막에는 하나의 단일 혈관계로 작동하게 된다.
이 수술법은 1864년 프랑스의 생리학자 폴 베르(Paul Bert)가 처음 성공한 뒤 새로운 혈액인자와 호르몬 등을 찾기 위한 연구와 노화 연구 등에 많이 이용되었다. 1970년대 들어 병체결합을 통해 늙은 쥐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20세기 후반부터는 기술적 한계와 윤리적 문제 등으로 관심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혈액에 들어 있는 다양한 물질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뇌과학 지식이 많이 쌓이면서 다시 병체결합을 통한 수명 연장 연구가 주목받게 된 것이다.
와이스-코레이 교수팀은 젊은 쥐와 늙은 쥐를 병체결합한 후 늙은 쥐의 뇌에서 기억과 학습의 중추에 해당하는 해마(hippocampus) 부분을 분석했다. 특히 신경세포 간의 결합인 ‘신경 가소성’을 조절한다고 알려진 단백질들(Egr1, c-Fos, pCreb)이 젊은 쥐와 병체결합한 늙은 쥐에서 눈에 띄게 증가했음을 확인했다. 아울러 늙은 쥐의 뇌에서 건강하고 젊은 신경세포의 특징인 툭 튀어나온 가시돌기(spine)의 숫자가 늘어나고, 신경 활성 또한 증가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결과에 고무된 연구팀은 이번엔 젊은 쥐에서 뽑아낸 0.1㏄ 정도 소량의 혈장(혈액에서 혈구를 제거한 것)을 늙은 쥐에게 직접 투입했다. 그러자 병체결합 실험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신경세포 내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늙은 쥐의 학습능력과 기억능력이 높아졌다. 젊은 쥐의 혈액에 젊음의 샘을 유지하는 비밀의 물질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해 준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연구를 통해 뇌 속에 있는 노화시계를 천천히 움직이는 방법이 혈액 속에 있을 거라고 기대하게 됐다.
■ 신경줄기세포 자극 또는 노폐물 청소
그렇다면 혈액에 숨어 있는 비밀의 물질은 무엇일까. 인간의 혈액은 혈장과 혈구로 구성된다. 혈장이 약 55%를 차지하는데 혈장의 92%는 물이다. 혈장의 나머지 8%에 알부민, 글로불린, 피브리노겐 등을 포함하는 700가지 이상의 혈장 단백질과 호르몬, 당류, 무기질 등이 들어 있다. 지금도 첨단 검출기술을 이용해 혈장 속에 있는 새로운 물질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이 중 젊음의 샘과 관련된 물질은 2가지 방향에 맞춰져 있을 것이다.
첫째는 신경세포의 손상을 막고 회복을 도와주며, 뇌 속에 존재하는 소량의 신경줄기세포를 자극해 새로운 신경세포를 만들 수 있는 물질이다. 아직까지 결정적인 물질을 찾지 못했지만 근육에 대한 연구를 보면 희망이 보인다. 근육 역시 나이가 들면서 약해지는데 근육의 강화와 재생과 관련된 성분들, 즉 Notch, TGF-beta, Oxytocin, GDF11 등에 관한 최근의 연구는 젊은 뇌를 유지시키는 물질의 발견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두 번째로 뇌 속에서 증가하는 노폐물 및 노폐물을 만드는 데 관련된 물질이다. 실제로 몇 년 전 CCL11이라는 단백질이 나이가 들수록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과학자들이 이 단백질을 젊은 쥐에게 투입한 결과 뇌의 노화가 촉진돼 해마의 신경세포 재생이 손상되고 기억과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단백질의 활성을 억제하는 중성화 항체를 동시에 투여하자 신경세포 손상이 줄어들었다.
![혈관성 아밀로이드가 뇌혈관 주변에 침착되어 플라크를 형성하고 있는 3차원 영상.<br />브레인(2015) 138권](http://img.khan.co.kr/news/2016/11/04/l_2016110501000304700050762.jpg)
혈관성 아밀로이드가 뇌혈관 주변에 침착되어 플라크를 형성하고 있는 3차원 영상. 브레인(2015) 138권
이처럼 뇌에서 유해 성분의 기능을 제어하는 방법으로도 뇌 기능을 젊게 유지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단백질은 사람에게서도 나이가 들수록 혈액에서 증가한다고 하니, 같은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충분하다. 최근 치매, 파킨슨병 등 퇴행성 신경질환의 원인을 뇌혈관의 기능 저하와 혈액 내 노폐물에서 찾고자 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특히 치매의 원인은 최소 20% 이상이 혈관의 병리 현상에 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주원인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 역시 뇌혈관 주변에 달라붙어 혈관을 손상시키고, 주변 신경조직을 파괴해 결국 치매에 이르게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젊은 혈액 속에 있는 미지의 물질이 이런 현상을 늦추거나, 되돌릴 수 있을까?
최근 젊은 쥐와 병체결합을 하거나 젊은 혈액을 투여한 경우,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생쥐(알츠하이머 가족력이 있는 생쥐)의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침착을 줄이지는 못했지만, 신경세포의 손상 개선과 기억력 증진이 일어났다고 한다. 젊은 혈액 속의 알려지지 않은 인자들이 알츠하이머 치매를 개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는 현재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건강한 혈액을 수혈하는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하니 조만간 긍정적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머리를 맑게 해주는 마법의 알약
인간의 뇌는 1000억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되고, 하나의 신경세포는 평균 7000개 정도의 시냅스를 통해 다른 신경세포들과 정보를 교류하고 있다.
뇌의 노화는 엄청난 숫자의 시냅스 연결이 조금씩 끊어지고, 손상된 신경세포들의 회복 능력이 감소하면서 점차 손실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세포 내 활성산소의 증가에 따른 유전자와 단백질의 손상, 무기물질의 불균형에 따른 생리활성 저해, 비정상적인 노폐물질의 침착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이 우리의 신경세포를 병들게 하고 있다. 우리가 혈액 속에서 찾고자 하는 무언가는 이 같은 신경노화의 원인이 되는 잘못된 고리를 풀어버리는 열쇠인 것이다.
![인간의 영생과 젊음에 대한 열망을 그린 루카스 크라나흐의 ‘젊음의 샘(The Fountain of Youth, 1546)’. 주름지고 약한 노인들이 옷을 벗고 의사로부터 검진을 받은 후 샘물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젊은이로 회춘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위키아트](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khan.co.kr%2Fnews%2F2016%2F11%2F04%2Fl_2016110501000304700050763.jpg)
인간의 영생과 젊음에 대한 열망을 그린 루카스 크라나흐의 ‘젊음의 샘(The Fountain of Youth, 1546)’. 주름지고 약한 노인들이 옷을 벗고 의사로부터 검진을 받은 후 샘물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젊은이로 회춘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위키아트
물론 현재 밝혀지거나 진행 중인 동물 실험의 결과를 인간에게 바로 적용하기는 아직 이르다. 신경줄기세포를 지나치게 자극하면 자칫 종양(암)을 만들 수 있고, 뇌를 젊게 만들라고 넣어준 성분이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달 탐사도 다시 시작하고, 화성에도 사람을 보내겠다는 시대 아닌가. 젊음의 샘을 찾아 헤매다 어처구니없이 인디언의 화살에 맞아 죽은 탐험가 레온이나 불로초인 줄 알고 수은을 마신 진시황과 같은 어리석음을 우리는 과학의 힘을 빌려 비켜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머지않은 미래에 마치 아프리카의 오염된 우물을 깨끗이 만들어 주는 정수용 알약처럼 우리 머릿속의 샘을 맑게 해 줄 수 있는 마법의 알약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khan.co.kr%2Fnews%2F2016%2F11%2F04%2Fl_2016110501000304700050764.jpg)
살아 있는 것들이 신기했고 생명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생명과학을 전공했다. 미국 조지아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의대 연구원으로 신경과 혈관이 항상 가까이서 친구처럼 돕는 현상을 공부하면서, 뇌혈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재 한국뇌연구원에서 뇌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혈관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