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쩌면, 이미 로그아웃되었는지도 모른다
전창수 지음
https://blog.naver.com/helpmeoo
http://blog.yes24.com/helpmeoo
https://blog.aladin.co.kr/helpmeoo
https://blog.daum.net/helpmeoo
https://cafe.daum.net/telesinda
https://cafe.naver.com/telesinda
1.
“시버, 시버, 시버…”
나의 아들인 그 녀석은 연신 싫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뭐가 싫으냐고 물어봐도,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하기는 그른 저녁이었다. 이 녀석이 자꾸 왜 이러지? 내가 방송에 나온 게 싫다는 건가, 내가 싫다는 건가, 아니면 밥을 먹기 싫다는 건가? 나는 녀석에게 다시 물었다.
“아들! 싫은 걸 말을 해야지? 엄마가 잘 모르겠어서 그래.”
“시버, 시버, 시버…”
아들은 꺼져 있는 TV를 바라보면서, 차려놓은 밥은 쳐다보지도 않고 연신 싫다고만 했다. 도대체 이 녀석이 왜 이러는 걸까.
“아들? 밥 먹을 거야, 안 먹을 거야?”
“시버, 시버, 시버…”
도대체, 이 녀석이 오늘 왜 이러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녀석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밥은 안 먹을 거야?”
“머거 머거… 시버 시버…”
그러면서, 녀석은 밥을 흘겨넣은 채, TV를 계속 바라보았다.
“TV 켜줄까?”
“시버, 시버, 시버…”
아들 녀석은 계속해서 싫다고만 할 뿐, 그 이상은 말하려 하지 않았다. 아들은 계속해서 밥을 먹으면서 꺼진 TV만 바라볼 뿐, 더 이상의 어떤 표현도 하지 않았다.
2.
“오늘은 발달장애 아들을 돌보면서 10년을 살아온 공공이의 엄마 설상희씨를 모시고,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설상희씨, 발달장애 아들을 벌써 10년째 돌보고 계시는데요, 힘든 점은 없으신가요?”
“제 아들인데, 힘들기는요. 아들이니까, 사랑스럽기만 하죠.”
“그래도,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은 드는데요?”
“아, 그러신가요? 오히려, 저는 아들을 사랑하기에 같이 있는 게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회자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아, 정말로 아들을 사랑하시는군요. 제가 잘못 생각한 거 같습니다.”
생방송에서 발달장애 아들을 두고 있는 설상희씨의 방송은 그렇게 어색하게 종료되었다. PD는 빨리 다른 화면으로 돌리라고 재촉하였고, 설상희씨와의 인터뷰는 부랴부랴 마무리되었다.
3.
“공공이 엄마, TV에 나왔네?”
“어, 봤어?”
“근데, 인터뷰를 뭐 이렇게 빨리 끝냈어?”
“글쎄, 원래 질문하기로 되어 있는 게 있었는데, 시간관계상 여기서 생략한다고 하면서 빨리 끝내 버리네?”
“아, 그런 거지? 어쩐지. 너무 싱겁게 끝나 버려서.”
“싱거웠어? 인터뷰가?”
“아니, 방송이.”
“방송이, 왜?”
“많은 발달장애 어머니, 아버지들, 그리고 발달장애인 센터 원장님들께서 잔뜩 기대하고 계셨는데, 몇 마디 하고 끝났잖아? 너무 싱겁게 끝나버려서 아쉬웠대.”
“아, 그래? 인터뷰를 좀더 길게 하자고 말을 할 걸 그랬나?”
“아, 다음에 혹시 또 나갈 기회가 있으면 좀 길게 하자고 해.”
“아, 그래야겠네.”
4.
남편이 들어왔다.
“밥은?”
“먹었어.”
“먹었는데, 일찍 들어왔네?”
“배고파서.”
“저녁은 안 해도 돼?”
“아들 녀석은 먹었어?”
“아, 대충 먹었어. 계속 싫다고만 하네.”
“뭐가?”
“나도 모르겠어. 아까 엄마가 TV에 나온 걸 보더니, 그 다음부터 계속 싫다고만 해.”
“TV는 껐어?”
“응, 껐어. 자꾸 싫다고 해서 껐더니, 그래도 계속 싫다고만 하네. 뭐가 싫다는 건지 모르겠어.”
“그래? 왜 그러지.”
그런 다음, 남편은 말없이 옷을 갈아입더니, 자기 서재로 들어가려 했다.
“책 보려고?”
“아니.”
“그럼?”
“그냥 쉬고 싶어서”
“응 그래”
“나, 쉴게.”
“응.”
5.
“공공이 엄마, 오늘은 TV에 안 나와?”
“글쎄, 인터뷰는 하루로 끝나는 거 아냐?”
“출연료는 얼마나 받았어?”
“30만원.”
“에게? 고작 그거?”
“작은 건가?”
“어떤 사람은 인터뷰 한번 하면 3천만원도 받는다던데?”
“아, 그래? 작은 거구나.”
“그래, 다음에 또 나가게 되면, 출연료 좀 많이 달라고 해봐.”
“그래야겠네.”
6.
“아들, 오늘 또 왜 그래?”
공공이는 두 눈을 부릅뜨고 엄마를 쳐다보았다.
“시버, 시버, 시버…”
“도대체 왜 그래? 왜 자꾸 싫다고만 해?”
나의 신경질에 아들 녀석은 금세 눈물을 글썽거리시 시작했다.
“시버, 시버, 시버…”
아들 녀석의 눈물에 잠시 마음이 동하기도 했으니,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아들, 다음부터 싫단 말 하면, 엄마도 더 이상 아들하고 대화할 마음 안 생겨.”
그러자, 아들 녀석, 글썽이던 눈물을 터뜨려 버렸다. 그렇게 서럽게 울던 모습을 본 건, 내가 공공이를 본 이래 처음이었다.
7.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고?”
“밤새 울었는데,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 말을 안 하니,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아침에 그냥 맛있는 반찬 해줬어.”
“그게 다야?”
“응, 다른 때보다 반찬에 더 신경을 썼어.”
“그랬더니?”
“한참 울던 애가, 반찬을 먹더니, 뚝 그치더라구.”
“그리고?”
“더 이상 시버, 시버, 시버… 이 소리를 안 해”
“왜지?”
“모르겠어. 도대체 얘 왜 이런 거야?”
“우리도 모르겠어.”
“난 지금까지 공공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하면 정말 모르겠어.”
“그러게, 왜 그랬을까? 궁금하다.”
“공부를 좀 더 많이 해야 할 거 같아.”
“공부?”
“심리학 공부?”
“아니, 발달장애인에 대한 공부.”
“왜?”
“모르니까.”
“심리나 상담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런가?”
“아닐 거야. 발달장애인에 대한 책도 나올 거야.”
“그걸 본다고?”
“그래야 할 거 같아.”
“뭐가 맞지?”
“모르겠어.”
“일단, 공부를 해 보고 난 다음에 결정하자구. 뭘 공부할지는.”
“근데, 이거 같이 하자구?”
“싫어?”
“싫어.”
“넌 또 왜? 왜 공공이처럼 말하고 그래?”
“싫다는 게 공공이 같은 거야?”
“아, 아닌 거 같은데.”
“그러게.”
“그래서, 공부 안 할 거야?”
“난 안 해.”
“왜?”
“왜 싫냐고?”
“응.”
8.
남편이 출근하려고 서재에서 나오고 있다.
“밤새 거기 있었어? 거기서 잔 거야?”
“응.”
“왜?”
“그걸 말해야 돼?”
“말하기 싫어?”
“응”
“왜?”
“그냥.”
9.
“다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그런 일이 있었어?”
“응, 다혜는 안 와?”
“여기 있으면, 공부 같이 해야 할 거 같다고 자기는 오기 싫대. 공부 끝나거든 부르래.”
“그래?”
“응.”
“그리고”
“응”
“이 말 해서 미안한데.”
“응”
“우리도 공부 안 해.”
“왜???”
“하기 싫어서”
10.
아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다가, 이내 웃음을 보였다. 그러다가 또 다시 “시버, 시버 시버”를 하더니, 다시 “괘안아져쪄”라며, 괜찮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 있는 요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오늘은 뭐 해 주까?”
“마싰는 거, 마싰는 거, 마싰는 거.”
“알았어, 맛있는 거 해줄게. 그럼, 맛있는 거 같이 찾아볼까?”
녀석이 연신 깔깔대며 냉장고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냉장고 속에는 앞으로 익혀가야 할 많은 요리들이 대기 중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생각지 않기로 했다. 냉장고 안에서 들리는 소박한 소음들이 하나 둘 나의 마음에 들리고 있었다. 그렇지! 녀석, 그것 때문이었구나. 이제야 이해한 녀석의 마음이 내게도 들려왔다. 나는 또 하나의 결심을 하였다. 그 결심은 내게 공공이를 더욱 더 이해하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냉장고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 한편에는 남편까지 들어 있었다. 공공이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길게길게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