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입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일것 같아서 올린다.
화성이란 명칭는 1949년 행정구역을 개편할때 처음으로 화성군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된것이다.
그러나 전혀 근거없이 사용된것은 아니다.
현재 융릉과 건릉, 용주사가 위치한 뒷산의 이름이 "화산(花山)"이다.
정조대왕이 부친 사도세자의 릉을 양주군 배봉산에서 이곳으로 천장(임금의 릉을 이전할 경우 "이장한다"란 용어보다 한단계 위인 "천장한다"란 용어를 씀)할때 풍수지리적으로 가장 명당자리를 찾게 되었는데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원래 화산의 정식 명칭은 "꽃뫼"라 칭하는데 이를 한문으로 표기할 경우 "화산"이 되는 것이다.
어느 고을의 명칭을 고대로부터 한 나라를 다스리는 수장(임금)이 붙이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정조대왕은 그 고을의 지명을 참고하여 고을 이름을 사용하고자 하였던 것으로서 현재의 수원으로 수부를 옮기고자 하여 팔달산 기슭에 터를 잡고자 하였다. 조선 후기의 산성축조방식으로 조성을 한 이후 "화성(華城)"이라 명명하였다. 1700년도 후기의 일이다.
이때부터 화성이란 용어가 탄생된 것이며, 이를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수원군에서 분리하여 1949년 화성군으로 탄생시키고 현재의 수원시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상이 화성시가 탄생하게된 배경이다.
화성시의 연혁
○삼한시대 마한의 54개 부족중 3개 부족으로 형성
○고구려시대 매홀군과 당성군으로 개편
○757년 신라 35대 경덕왕 16년에 수성군(매홀군), 당은군(당성군)으로
개편
○822년 고려 헌종 14년에 당은군이 수성군에 통합
○955년 고려 성종 14년 지방제도정비시 수주와 당성군으로 개편
○1018년 고려 현종9년에 수주로 정비
○1413년 조선 태종 13년에 수원도호부, 남양도호부를 설치
○1895년 고종 32년에 수원, 남양군이 인천구에 편입
○1914.3.1 전국 행정구역 재편성, 수원군은 도서를 제외한 남양군을
폐합
○1949.8.15 수원읍 수원시로 승격 분리됨에 따라 잔여지역을 화성군으로 개칭
○1970.6.10 수원에서 오산읍으로 군 청사 신축이전
○1985.2.15 태안면이 읍으로 승격(2읍 15면)
○1989.1.1 오산읍이 오산시로 승격 분리
○1994.12.26 태안읍 영통리 일원, 신.망포리 일부, 반월면이 수원시,
안산시, 군포시로 각각 분할편입(1읍 14면)
○1995.4.20 태안읍 영통리 일원, 신.망포리 일부가 수원시로 편입
○1998.4.1 봉담면이 읍으로 승격
○1999.3.4 2읍 13면의 행정구역(517개리)
○2000.11.1 2읍 13면의 행정구역(522개리)
○2000.11.1 오산시에서 남양면으로 군 청사 신축 이전
○2001.03.21 화성군에서 화성시로 승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