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우주론에 대한 내용은 기원전 140년경에 쓰여진『회남자(淮南子)』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여기에는 우주의 생성이 자연적인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졌음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태초(太始)'라는 원초적 혼돈의 상태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 에서 보편적 원리인 '도(道)'에 의해 우주가 생겨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우주'란 시간(時間, Time)과 공간(空間, Space)의 개념을 함께 지칭합니다. 우주는 기(元氣)를 낳는데 그 기 중에서 가볍고 맑은 것(淸氣)은 하늘(天)이 되고, 무겁고 탁한 것(濁氣)은 땅(地)이 된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천(天)과 지(地)는 다시 음(陰)과 양(陽)을 낳고, 거기서 사시(四時)가 생기고, 사시는 만물(萬物)을 생성시킨다고 합니다. 또한 양기(陽氣)가 응집해서 열의 성질을 지닌 기가 되면서 불(火)이 생기고, 음기(陰氣)가 응집해서 냉(冷)한 성질을 지닌 기가 되고 물(水)이 생기는데, 불 가운데서 순수한 것은 태양, 물 가운데서 순수한 것은 달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양과 달의 기의 작용으로 별들이 생긴다고 합니다.
여기서 특이할만한 점은 우주의 생성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서구에서와 같이 신(神)이나 조물주(造物主)와 같은 절대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우주의 발생을 자연적인 과정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이것을 간단하게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아시아에서 고래로부터 전승되던 우주론으로 대표적인 것에 '혼천설(渾天說)'과 '개천설(蓋天說)'이 있습니다.
『진서(晉書)』「천문지(天文志)」에 의하면 혼천설과 개천설 이외에도 선야설(宣夜說), 안천설(安天說), 궁천설(穹天說), 흔천설(昕天說) 등과 같은 우주론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천설
전한(前漢)시대 초기까지 지배적인 우주론으로 자리 잡았었던 우주론입니다. 개천설의 기원과 발전과정은 대체로 두 개의 단계로 나뉘어 각각 제1차 개천설과 제2차 개천설로 구분합니다.
제1차 개천설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설, 제2차 개천설은 '주비(周碑)'의 설이라고 합니다. 중국 고대의 산학서인『주비산경(周碑算經)』에 나오는 천지의 구조에 관한 학설과 같다는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1차 개천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설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 구조에 대한 정량적 설명에 대해서는 확실한 언급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2차 개천설은『주비산경』을 기본으로 하여 자연적으로 체계화되고 정량화된 천지의 구조를 보여줍니다.『주비산경』에 보이는 개천설의 기본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구고(句股)측량법'이라 하여, 직각 삼각형을 구성하는 세 개의 변(구·고·현)으로 "구의 제곱 + 고의 제곱 = 현의 제곱"이란 공식을 구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 주비(길이가 8자인 표, gnomon의 일종)를 기본 관측의기로 사용하였습니다.
(3) 햇빛은 16만 7천리를 비추는데 개천설은 태양광이 비치는 범위가 유한하다고 본 것입니다. 이 범위를 16만 7천리를 반경으로 하는 구(球)라고 본 것입니다.
(4) 하늘과 땅은 평행인 평면이며, 그 거리가 8만리라고 하였습니다.
(5) 북극은 선기(璇璣)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늘은 북극 선기를 축으로 하여 돈다고 보았습니다.
이 중 (1)과 (2)는 기본 방법이고, (3)(4)(5)는 기본적인 우주모형을 설정하는데 이용되었습니다.
▷혼천설
개천설보다 더 설득적인 이론으로 장형(張衡)의 혼천의에 근거합니다. 설득적이라는 것은 오늘의 우주체계에 더 가까운 그러니까 천체의 운행과 지구의 형상 등의 이론이 개천설 보다 상대적으로 사실에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혼천설의 주된 내용은 세상(혼천)은 마치 달걀과 같아서 땅은 노른자에 해당하고 하늘은 껍질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탄환처럼 둥근 모양이고 땅을 둘러싸고 있는데 하늘의 외부와 내부에는 물이 있다고 합니다.
하늘과 땅을 각기 위와 아래에 위치 지우는 것은 바로 기(氣)이며 이들은 모두 물위에 떠있다고 합니다. 땅은 정지되어 있고 하늘은 남극(南極)과 북극을 축으로 하여 계속 수레바퀴처럼 회전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땅을 둥글게 본 것은 아닙니다.
개천설에 비해 진보된 이론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의 개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하늘과 땅의 상대적인 위치와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서 계란의 노른자에 땅을 비유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혼천설과 개천설 중에서 어느 것이 지배적인 이론으로 자리잡고 발전하였는가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혼천설이 개천설 보다 더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여겨지지만, 천원지방을 표방하는 개천설도 무시할 수는 없는 설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혼천설과 개천설은 중국의 대표적인 천문사상 또는 우주체계로 우리 나라에도 크게 영향을 주어 삼국시대부터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전통적 우주관으로 조선 왕조의 천문학자들은 물론 사회 전반에 계승되었습니다.
유교를 사회전반의 이념으로 하여 생활했던 조선시대의 경우, 양반사대부나 유학자들은 우주와 인간의 근원적 문제인 본체론적 문제, 즉 우주론적 문제를 기본적으로 숙지하고 고민해야 했었습니다. 혼천과 개천의 우주론은 조선시대에도 줄곧 계승되어, 조선의 지식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논의되고 연구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후기(17세기경부터) 예수회선교사들을 통하여 서구의 새로운 우주체계가 들어올 때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습니다.
2. 상상 속의 세계 지도 - 천하도
[지리교사 모임 '지평', "지리로 보는 세상"에서]
세계 지도를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나?
사람들은 왜 지도를 그렸을까? 우리 모두는 주변 환경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며, 그 환경의 특징을 묘사하려고 한다. 초기의 지도는 그런 주변 환경을 사실적인 그림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였다. 그러다 사람들의 지리적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 더 넓은 지역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마침내는 지구 전체를 지도로 그리게 되었다.
하지만 세계에 대한 지식이 지금처럼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과 땅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세계관)에 따라 세계를 그렸다. 또한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잘 모르는 지역도 지도 속에 표현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옛 사람들이 그린 세계 지도를 통하여 지도가 그려진 시대의 세계관과 외국에 대한 시야의 범위를 추정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 그려진 천하도에도 당시의 세계관과 지리적 시야가 반영되어 있다.
천하도는 어떻게 생겼나?
고대인들은 세계를 어떤 모양으로 상상했을까? 사각형 모양, 계란 모양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상상했지만, 가장 오랫동안 일반적으로 생각되어진 모양은 원형(공이 아니라 쟁반)이었다.
가장 오래된 세계 지도인 바빌로니아의 세계 지도에서도 세계는 큰 바다로 둘러싸인 원반 모양으로 표현되었으며, 초기 그리스인, 중세의 기독교인들도 비슷하게 표현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대 세계 지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며, 자신들이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하였다. 바빌로니아의 바빌론, 그리스의 올림포스 산, 중세 기독교 세계의 예루살렘은 곧 세계의 중심이었다.
천하도에서도 세계가 원형으로 표현되었으며, 중국이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중앙에 위치한 중심 대륙이 내해(內海)에 둘러싸여 있다. 이 내해는 다시 환대륙에 의해 둘러싸이고, 환대륙의 외곽, 즉 세계의 가장자리는 다시 바다(外海)로 둘러싸여 있다.
천하도는 왜 원형일까?
아직까지 천하도의 유래에 대해 일치된 정설은 없다. 다만 천하도가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우리 나라에서만 발견되는 고유의 세계 지도라는 점과 대부분의 천하도가 16∼17세기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에는 의견을 같이 한다.
천하도에서 세계를 원형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중국 전국 시대의 세계관을 표현했다는 주장과 17세기 이후 전래된 서양 세계 지도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있다.
먼저 첫 번째 주장을 살펴보자. 중국 전국 시대 때의 사람인 추연(雛衍)은 '중국이 사방에 있는 바다를 비해(裨海)라 부르고, 그 밖을 대륙이 둘러싸고 있고, 그 대륙 밖을 영해(瀛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땅 끝이다'라고 세계를 기술하였다.
이 내용은 천하도의 형태에 부합하지만 추연의 세계관이 왜 중국이 아닌 우리 나라에서만 지도로 만들어졌는지, 또 왜 16∼17세기에 와서야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한편 두 번째 주장은 서양 지리 지식에 배타적인, 한국의 전통 문화를 지키려는 학자들이 서양의 원형 세계 지도(마테오 리치의 서양계 단원 세계 지도)에 대응하여 만든 학국적인 원형 세계 지도가 천하도라는 것이다.
당시 천하도를 만든 사람들은 지도의 내용을 구성하는 데 있어 발음도 안되고 뜻도 통하지 않은 서양의 나라 이름들 대신에 중국 고전에 나오는, 잘 알고 있고 또 익숙한 땅 이름들을 지도에 배치하였다. 즉 지도의 형태는 서양의 것을 따르고, 지도의 내용은 동양 고전에서 취했다는 주장이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중화사상 - 中華思想)이란?
중국을 세계의 중심에 놓은 천하도는 중화적 세계관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중화주의' 또는 '중화 사상'이라고 부르는 세계관은 중국을 정점으로 한 차별적인 지리관이다.
이런 차별적인 세계관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고대 중국인들이 생각했던 하늘과 땅의 모양(천체관)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인들의 천체관은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네모진 땅의 가운데에 중국이 자리잡고 있으며, 중국의 왕(天子, 하늘의 아들)은 하늘의 명을 받아 천하를 다스린다고 보았다.
'중화'라는 용어는 혈연적으로는 한족(韓族)의 국가, 지리적으로는 세계의 중심을 뜻한다. 중국의 주변국들은 중국과의 상대적인 거리에 따라 그 지위가 매김되었다. 중국과 비교적 가깝고 중국 문화의 영향의 받는 한국과 일본 등은 그런 대로 대접을 받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은 사람 취급도 못 받았다. 따라서 산해경에는 변두리 지역의 사람들이 '눈이 하나 뿐인 사람' 혹은 '팔이 매우 긴 사람'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차별적 세계관인 중화주의는 중국의 주변 국가들에게도 전파되었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세계관이 전파되었는데, 이것은 이 세계관이 옳다기보다 그만큼 그 당시에 중국이 강대국이었고 선진 문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하도는 단순히 중국인들의 세계관을 표현한 지도가 아니다. 중국에서 전파된 중화 사상을 우리 나라의 관점으로 재해석해서 만든 지도인 것이다. 이는 중국이 비록 지도 가운데에 있지만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만큼 그렇게 크게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천하도의 지명을 산해경의 특정 부분에서만 따왔다는 점을 통해서도 지도를 제작한 사람의 관점이 개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