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을 먼저 읽고 빌 에반스는 물론 이 책의 저자 피터 페팅거, 그리고 빌 에반스의 주변 인물들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저자가 피아니스트이면서 빌 에반스를 너무도 사랑하는 팬이었기 때문에 빌 에반스의 디테일한 음악적 고뇌, 스타일의 변화 등의 음악적인 면과 삶에 녹아있는 인간적인면을 완벽에 가깝게 표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 보니 어쨌든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더 큰 이유는 빌 에반스가 그토록 재즈뮤지션이 되길 순수하게 갈망했던 그 젊은 날의 삶이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을 읽으며 이 책의 단 한 페이지라도 떨어져 나간다면 얼마나 아쉬울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의 음악적 행로가 너무도 자세히 순차적으로 서술되어있었다. 가지고 있던 그의 CD와 어떻게 구했는지 모를 MP3파일들을 폴더로 다시 정리하며 연도도 적어보고 하면서 책의 내용과 함께 듣는것은 너무도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언제나 책을 읽은 감상을 쓰게 될 수 도 있을것 같아 연필로 좋은 구절의 밑줄을 치곤 하는데 초반의 몇 페이지를 읽다가 그 밑줄긋기를 이내 그만둬버렸다. 그 이유는 모든 문구에 밑줄을 그어야하는 형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받은 감흥으로 단번에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책들을 여러권 읽어 치웠는데 재즈평론가 김현준씨가 주석까지 달아가며 훌륭하게 번역한 '마일즈 데이비스, 거친 영혼의 속삭임'의 내용과 많은 부분 내용이 거론되고 사람에 따라 다른 증언과 해석이 있었기에 비교하면서 독후감을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것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마일즈와 빌 에반스의 관계로만 봐도 충분히 두 사람을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 일것이다.
마일즈 데이비스도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주머니에 마우스피스를 넣고 다녔고 찰리 파커의 연주를 들으러가서 악보에 채보를 하고 모자라 넵킨에 그려오는 그런 음악적인 욕심과 열정을 가졌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를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의 그늘에 있던 비밥연주자에서 꽃봉우리가 만개하기 직전의 쿨재즈를 세상에 알리며 주도권을 잡고 시류에 따라 프리재즈에 발을 들여 놓았지만 오넷 콜맨과 존 콜트레인의 벽을 피해 록재즈, 퓨젼재즈를 탄생시킨 세태 파악에 능하고 아이디어와 특유의 카리스마로 미국의 유행음악을 좌지우지했던 인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앞서 말한 김현준씨의 주석은 이런 마일즈에 대한 약간의 낮은 평가에 모조리 반박하고 정정해 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면 빌 에반스의 경우는 '우리가 아는 빌' 그 이상도 이하도 생각 할 수가 없다. 빌 에반스는 마일즈 데이비스처럼 비지니스적이지 못했고 멤버영입에 있어서도 모든 포커스는 오르지 완벽한 자신의 피아노 트리오연주에 맞추어져 있었다. 빌도 스콧 라파로, 젝 디조넷 등 천제뮤지션에게 매료되어 그들에게 구애 했지만 당대의 물망에 오른 모든 뮤지션을 한 번 써보는 마일즈식의 그것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마일즈의 현실 직시능력, 또는 시대를 읽는 감각은 어떠한가? 너무나도 탁월하여 재즈와 팝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각종 패션, 미술계를 종횡무진하질 않나 자신이 얼마를 벌고 있는지 얼마를 쓰고 있는지 도 알지못했던 빌 에반스와는 너무도 비교가 된다.
빌은 친구이자 메니저인 헬렌 킨 이라는 사람이 없었으면 그렇게 오래(?)살 수 도 없었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돈과 사람들을 능숙하게 이용하고 관리하여 언제나 다른 사람을 리드하는 마일즈의 성향에 비해 빌 에게 가장 중요하고 고민되는것은 오직 음악에 대하여 스스로 고뇌하는 것이었다. 그 괴로움에 빌은 스스로 우울증에 걸릴 정도였고 마일즈의 그것 또한 둘 째가라면 서러운 것이지만 마일즈는 주변인물들, 마약, 레코드사와의 계약관계, 돈에대한 집착, 여성편력 등 스스로 만든 또다른 굴레에 의한 경우가 더 많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거의 무의식중에 일어났기 때문에 난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면서 걱정했다. 그러니까 내일 아침 일어나면 그것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p 122)라고 말했을 정도로 빌은 자신의 연주에있어 어느날 갑자기 찾게된 좋은 느낌을 잃어버릴까봐 다음날이 되어 그것을 연주해 볼 때 까지 불안해 했다. 또한 자신의 음악과 인생에서 너무도 큰 의미를 두었던 두 사람 베이시스트 스콧 라파로와 형 헤리 에반스의 때 이른 죽음이 주는 충격에서 좀 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여린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마일즈는 조 겔바드(화가이자 이웃집여자로 내연의관계로 발전하는..),와 마이클 엘람(미술전공자로 마일즈가 비서로 영입하여 강제로 그림을 그리게 한..) 등의 도움으로 말년에는 개인전시회를 열 정도로 폭넓은 예술적 삶을 과시한다. 그러나 마일즈는 자신이 화가로서 받은 찬사에 쉽게 현혹되지 않았고 단지 그런 것 때문에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졌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처럼 마일즈는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시야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그런 드라마틱한 재즈사를 연출 할 수 있었겠는가?
어떤 책이건 마일즈 데이비스의 전기를 읽는 것은 재즈의 격동기를 섭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레코드레이블 프레스티지와의 의무계약을 마무리하기위해 사생아(물론 오늘날 너무도 고마운 명반들이지만..)같은 다섯 장의 앨범(Miles, Workin', Steamin', Relaxin', Cookin)을 스트레잇으로 발표한 마일즈는 길 에반스와 뭔가 '쿨의 탄생(Birth of Cool)의 연장선상에 있는 앨범을 구상하다 이 책에서 '재즈의 이정표'라는 문구로 표현된 Kind of Blue를 기획하게 되고 마일즈와 빌 에반스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 두 책에서 이 부분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이를 비교하며 읽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당신 흑인들 사이에 백인인 빌 에반스 한 사람이 끼어 있다는 것은 그리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클럽에서 연주 할 때 멤버들은 관중들에게 어떻게 해서 그가 피아노 앞에 앉자있게 되었는지 설명해야 했다고 한다. 물론 모두들 마일즈가 그렇게 하게 했다고 둘러댔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편한 진실'을 뒤로한채 마일즈는 에반스의 여러부분에 매료되어 그를 사랑해 마지 않게된다.
이렇게 빠꿈이 마일즈가 빌의 무엇에 그렇게 빠져들어갔을까? 그것은 말할것도 없이 드뷔시, 라벨 등을 섭렵한 빌의 클래시컬 피아니즘과 그에 걸맞는 작곡스타일이다. 때는 바야흐로 비밥의 대안을 찾고있을 때요, 레니 트리스티아노 군단을 필두로 한 서부 뮤지션들에 의해 이미 쿨재즈의 태동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일즈의 마음은 조급했을 것이다. 어쨌든 마일즈는 빌과 함께 인상주의 클래시컬음악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며 가까워졌고 어느날은 자고있는 빌 에반스에게 전화해 수화기를 놓아둔 채 뭐든 연주해 보라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로 빌의 그 무엇을 사랑해 마지 않았다고 저자는 적고있다.
마일즈는 자신과 연주하다 떠나간 연주자들을 좋게 평가하는 경우가 극히 드믈었다. 소니 스팃 등 많은 팀원들이 콜트레인의 플레이를 '빨래줄에 널어놓은 빨래들 같다'며 비난할 때도 마일즈는 콜트레인의 편에서 그를 옹호했다. 그러나 그가 떠난 이후로는 그에게 칭찬을 했다는 기록이 거의없다. 어쩌면 대단한 약쟁이 콜트레인에게 질릴대로 질렸기 때문일 수 도 있다. 그러나 빌 에반스에 대한 애정은 그가 떠난 이후에도 계속된다.
Kind of Blue 이 후 마일즈를 떠난 빌 에반스는 폴 모션, 스콧 라파로 라인업의 역사적인 피아노트리오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당시 앨범 "Everybody Digs Bill Evans"의 LP표지에 마일즈는 "나는 빌 에반스에게서 확실히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피아노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식으로 피아노를 연주한다"라는 자신의 말을 싣게해 화재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앨범속지도 아니고 이런 유치한 앨범커버는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카데믹한 음악교육에 관한 부분에 대해 마일즈의 경우는 전무하다. 빌 에반스는 잠깐 동안 학교에서 재즈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 모순된 느낌을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여러분께서 재즈를 가르칠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스타일을 가르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겐 열 한명의 피아노 학생이 있었는데, 저는 그 중 여덟 명에게 코드나 그 무엇에 대해서도 알려고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죠. 심지어 그들은 누가 뭘 했는지도 알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모방자가 되길 원치 않으니까요. 음, 물론 그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재즈를 가르치고자 할 때 이 점은 한 가지 사실에 빛을 던져줍니다. 여러분은 음악의 원칙을 스타일과는 무관하게 추상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재즈를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예민한 일이죠.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재즈연주자가 되길 원한다면 스스로 가르쳐야 합니다"
나를 스스로 가르쳐야 한다!! 이 얼마나 공감이 가는 말인가? 그 만큼 그는 연주자로서 셀 수 도 없을 만큼의 고뇌에 빠져 있었으며 그 본질 또한 확실하게 꽤 뚫고 있었다는것에 머리를 숙이게 한다. (계속)
첫댓글 주변 인물 너무 좋아요 ㅎㅎ 스캇 라파로 ~
나를 스스로 가르쳐야한다....정말...100%동감이네요
오오 길군요. 업데이트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편의 글이 될듯..하네요.^^
아무래도 산으로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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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에서 Bill Evans 와 Jim Hall 같이 정말 자기의 음악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매일 듣지만 그들의 음악이 항상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