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자의 질문2328-목사님 대답해주세요. 목사님들이 자기 말이 거짓말인 것을 안다면 그것을 시인하고 돌이킬까요? ☎ 010-7793-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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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십계명회복선교교회 이소자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은 「목사님 대답해주세요. 목사님들이 자기 말이 거짓말인 것을 안다면 그것을 시인하고 돌이킬까요?」입니다.
제가 답할 수 있는 결론은 ‘못한다’를 넘어 ‘안 한다’입니다. 왜냐하면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 교인들에게 “내가 틀렸습니다. 그동안 제가 한 말은 뱀이 미혹한 말이었고, 뱀의 말이었습니다” 하고 자기를 부인(否認)하는 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부모처자식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사랑해야 한다”고 한다면 그런 하나님을 믿을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눅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그러니까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입니다. 이 열두 사도들을 파송하시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야 한다”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그러면 이런 질문이 됩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는 목사의 ‘자기 십자가’는 무엇인가?”입니다. 특히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의 자기 십자가는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처자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자기를 부인(否認) 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하나님처럼 존경하는 그 존경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온 교인들이 돌변하여 돌을 던지는 그 돌팔매를 맞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던 유대 백성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오! 구원하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우리를 구원하소서!(마21:9)”라며 환영하고는 돌변하여 소리 질러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눅23:21)”라고 하는 ‘십자가’입니다.
로마인들에게는 황제를 배반한 형벌이 십자가였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의 형벌이 십자가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온 가족들이, 부모처자식들이 부끄러워할 만큼 치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부모처자식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하신 것은 부모처자식에게까지 버림을 받는 십자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목사들은 그럴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여기서 의문이 됩니다. 교회 목사들이 정말 ‘자기를 부인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떤 경우로 ‘지금까지 말해왔던 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섬기는 교회 교인들에게 정직하게 ‘내가 틀렸습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도 교인들이 돌변하여 “미쳤다” “이단의 꾐에 빠졌다”고 하는 돌팔매를 맞을 수 있을까?
정직한 목사님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교인들에게서 왕처럼 존경을 받는 목사는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부모처자식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척’은 할 수는 있어도 자신이 쌓아 올린 치적과 존경을 부인하는 그 십자가는 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왕처럼 존경을 받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눅18:24]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산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25] 약대(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자기를 자랑하며 세리를 비웃은 바리새인 유대 선생과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켰다며 자기의 영생을 자신한 유대 관원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자’는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 목사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예수님께서 유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오늘날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 목사인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로 이들이 누군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는 에베소교회의 목사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 목사에게 보낸 목회서신인 것을 생각하면 ‘목사는 경건한 척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는 저는 장로교 목사입니다. ‘일요일’이 거룩한 주일(主日)인 줄 알고 일요일을 성일로 지킨 목사입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 로마가톨릭이 성경의 다니엘서 예언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로마가톨릭계명으로 변개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7: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로마제국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24절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의 뿔-로마가톨릭이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로마가톨릭은 하나님의 ‘언약의 열 말씀’ 십계명의 둘째 계명 ‘우상숭배 금지’ 계명을 없애고, 넷째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을 ‘일요일을 주일로 거룩히 지키라’고 바꾸고, 둘째 계명을 없앤 것을 채우려고 열째 계명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둘로 쪼개어 가톨릭 십계명으로 변개 해서 세운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성경의 언약의 계명을 따라 ‘안식일’을 ‘주의 날’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는 ‘이단’이라는 돌팔매를 맞았고, 지금도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저에게 산상수훈으로 위로해주셨습니다.
『[마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저는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았습니다.
말씀을 마치며 다음 말씀으로 대한민국 기독교 교회 목사님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롬2:25] 네가(유대인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이방인이)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그 이방인을)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사도 바울은 빌3:6로 자기가 사울일 때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사울이 신앙을 개혁한 사도가 되어 율법을 논증한 말씀이 로마서입니다. 그런데 롬2:25 이하로 ‘율법’과 ‘의문(儀文)’이 ‘같지 않다’고 합니다.
개역한글 성경은 ‘의문(儀文)’이라고 번역하였는데 개역개정 성경은 ‘율법 조문’이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유대인 너희는 의문(儀文=율법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였다”
그래서 하는 질문입니다.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순복음교 등등 소위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 목사님은 대답해보십시오! ‘율법과 의문(儀文)!’ 어떻게 다릅니까?
『[엡2:14] 그는(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
사도 바울이 말하는 ‘중간에 막힌 담, 원수 된 것,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다음 말씀의 ‘율법’이 아닙니다.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그래서 묻는 것입니다. 소위 정통을 주장하는 교회 목사님들은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율법’과 ‘의문’ 어떻게 다릅니까?
이 질문에 성경적으로 답을 하려면 그동안 목사님들의 설교와 강론을 뒤집어야 합니다. “내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쌓아 올린 것은 여리고보다 더 완고하고 바벨탑보다도 더 높이 쌓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여리고보다 더 완고하고, 바벨탑보다도 더 높은가는 성경적으로 ‘율법’과 ‘의문’을 정직하게 말하는 것은 목사님들이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들의 교인들에게 「성경의 ‘하나님의 안식일’을 ‘태양절’ 숭배사상을 교리로 세운 가톨릭이 불법으로 ‘일요일 주일’로 변개하였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전부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의 ‘자기 부인(否認)’ 아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하는 말이 틀렸다면 ‘율법주의자 사울’이 ‘신앙을 개혁한 바울’이 되어 논증하고 간증한 ‘율법’과 ‘의문(=법조문)’이 어떻게 다른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답할 수 있는 목사님들이 될 수 있길 바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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