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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 일원 주요 문화재 탐방-2
1. 산청 남명 조식 선생 유적, 산천재(山天齋) 기타. 산청군 시천면 사리 384번지 외 92필지. [대공원역에서 125KM, 2시간 13분, 남사예당촌에서 9.8Km, 13분], 조선 중기의 유명한 산림의 유학자인 남명 조식의 유적으로 사적 제305호(1984.1.26.)이다. 조식 선생은 많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냈다. 이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院里)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년(1561)에 세웠고, 순조 18년(1818)에 고쳐졌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이다. 덕천서원은 선조 9년(1576)에 세웠고, 앞면 5칸, 옆면 2칸의 현재 건물은 1926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세심정은 선조 15년(1582)에 처음 세웠다.
2. 덕천서원.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원리.[산천재에서 1.7Km, 6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9호. 1576년(선조 9)에 창건되었으며, 조식(曺植)의 위패를 모셨다. 1609년(광해군 1)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했으며, 그뒤 최영경(崔永慶)을 추가 배향했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0년대에 복원되었다. 서원 앞 덕천강 기슭의 세심정(洗心亭)은 남명의 제자 守愚堂(수우당) 崔永慶(최영경)이 선조 15년(1582) 덕천서원 유생들의 휴식처로 세운 정자이다.
3. 지리산 내원사.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538. [덕천서원에서 5Km, 10분]. 이 절은 신라 때 덕산사라는 이름의 지어진 천년 고찰이었으나, 1609년에 화재로 전소된 이후, 절터는 마을사람들의 전답으로 이용되다가 1959년 원경스님이 매입하여 내원사라는 이름으로 조성한 사찰이다. 그러나 내원사에는 신라 고찰임을 알려주는 두 점의 보물로 삼층 석탑과,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이 지정되어 있다.
4. 지리산 대원사 일원.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일대의 경승지.[내원사에서 12Km, 24분]. 경상남도 시도기념물 제114호. 면적 4만 8850㎡, 전체 14만 856㎡. 548년(진흥왕 9) 연기가 창건하여 ‘평원사’라 하였고, 1890년(고종 27) 구봉이 대원사로 중건하였다. 이 절 선원은 석남사, 견성암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 참선도량이다. 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1913년 방화로 소실된 것을 1955년 법일(法一)이 중창하였다. 뒤에는 암자인 사리전(舍利殿)이 있는데, 비구니 사찰이다. 경내 수도원 옆에는 9층의 반광탑(反光塔)이 있는데 1300년 전 자장율사가 건립한 높이 약 7m인 이 석탑은 철분을 많이 함유하여 붉은 물이 스며나와 강렬한 인상이며, 국가 중대사가 있을 때마다 파란빛을 발한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입구의 부도와 비가 있고 절의 부근에는 옛 선비들이 수학했다는 거연정(居然亭)ㆍ군자정(君子亭)이 있다. 그리고 수수약수(首水藥水)도 유명하다. 이 절의 좌ㆍ후방으로 계곡 따라 천왕봉 가는 등산길은 18㎞나 되며, 산로를 따라 8㎞까지는 마을이 있어 큰길이다.
*****중식-지리산식당-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8.
☎055-972-8985/010-2684-2079.닭토리탕, 백숙 등.
5. 산청 덕양전(德陽殿).산청 덕양전 (山淸 德讓殿).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대원사에서 31km, 52분, 동의보감촌에서 7.4kM, 15분]. 덕양전은 조선시대 사당으로 전구형왕릉의 재실이다. 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50호로 지정되었다. 금관가야 제10대 왕 양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향례와 삭막향화를 드리고 있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양왕은 금관가야를 신라에 선양하고 이곳 왕산(王山) 수정궁(水晶宮)으로 옮겨와 5년 뒤 죽었다. 그후 향화를 계속하다가 임진왜란으로 중단되었는데 1798년 심릉후 능하에 능침을 짓고 다시 향례를 올렸다. 1898년 승선전(수로왕 능침)이 사액됨과 동시에 덕양전으로 개칭하였다. 1930년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고 1991년 중건하였다. 가락국 제10대 왕인 양왕과 왕비, 두 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양왕은 신라 법흥왕 19년(532)에 나라를 신라에 선양하고 이곳 왕산 수정궁에서 생활하다 5년 후에 돌아가셨다. 그 뒤 제사를 올리다 전쟁 때문에 중단되었으나 1798년부터 다시 항례를 올렸다. 광무 2년(1898)년 덕양전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30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긴 후 1991년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6. 산청 전구형왕릉.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대원사에서 29km, 46분, 동의보감촌에서ㅜ 5.5Km, 9분]ㆍ길거리 서낭당처럼 돌무더기로 쌓은 왕릉이 있다. 경남 산청의 가락국(駕洛國) 제10대 구형왕(仇衡王)의 돌무덤(石塚)이 바로 그러하다. 사적 제214호로 지정되었는데, 주차장을 지나면 계곡 안쪽에 큰 규모의 돌무덤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같은 잡석으로 높이 1m 내외의 담을 쌓고, 전면 중앙에 『가락국호왕릉(駕洛國護王陵)』이라고 새긴 돌비석이 있다. 이 무덤은 층단(層段)을 이루는 방형(方形)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경사면에 축조하였다. 전면은 7단을 이루고, 후면으로 갈수록 경사져서 층의 높이에 따라 체감되고 있다. 꼭대기는 타원형으로 되었고 전면 중앙에서의 전체 높이 7.15m이며, 제4단 동면에 너비 40cm 내외, 높이 40cm 내외, 깊이 68cm 내외의 감실이 개설되어 있다. 구형왕릉 앞에 "전(傳)"자를 붙이는데 이는 "구형왕릉 무덤이라 전한다"는 뜻일 뿐 그 유적이 무덤인지 석탑인지도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7. 정취암-경남 산청군 신등면 양전리 산78번지,[전구형왕릉에서 25KM, 45분,동의보감마을에서 20km, 35분]. 산청 동남 약10km 지점의 대성산(일명 둔철산)의 기암절벽에 자리한 정취암은 정취관음보살을 본존불로 봉안하고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사찰이며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관음 성지로 알려진 곳인데 풍치절승인 것으로 유명하다. 정취암 창건설화에 의하면 신라 신문왕 6년(686년) 동해에서 부처가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발하니, 한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다른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 이 때 의상대사가 두 줄기 서광을 쫒아 금강산에 원통암, 대성산에 정취사를 세웠는데, 여지승람을 기타 조선 전기의 기록은 정취사이지만 후기에서 구한말에는 정취암으로 기록되어 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