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몸에 대해서
부활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명사 용법과 동사 용법은 의미가 다르다. 부활이라는 명사는 헬라어 아나스타시스(ἀνάστασις)으로서, 예를 들어, 생명의 부활, 심판의 부활이라는 용어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부활한 몸을 의미한다. 그런데, 부활하다 라는 말은 헬라어 에게르데(ἠγέρθη)로서, 일어나다, 살아나다 라는 의미다. 신도들은 대부분 부활(명사)이라는 용어를 부활한 몸을 생각하는데, 죽었던 것이 살아나는(동사) 의미도 포함된다. 즉 부활(부활하다)이라는 말은 명사적 용법과 동사적인 용법이 혼합되어 있다.
첫째, 부활이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인가, 아니면 영적으로 부활이 일어나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이라고 말씀을 한다. 부활이라는 말에 대해서, 육신의 입장에서 보면, 육이 부활한다고 믿게 되지만, 영의 입장에서 보면 원래 하늘의 생명인데, 흙에 잠시 갇혀 있다가 다시 하늘의 생명이 부활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생명이므로, 육이 죽고, 하늘의 생명으로 부활한 것이다. 그런데도, 육이 부활했다고 주장한다면, 육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0장 35-36절에서"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그리고, 마태복음 22장 30절"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라고 말을 한다. 천사는 영이다. 그래서 부활은 죽었던 영이 생명의 영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요한복음 20장 24-25절에서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도마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가 자리에 없었다. 다른 제자들이『우리가 주를 보았노라』고 말하였지만, 자명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돌 무덤에 묻힌 죽은 이가 눈 앞에 나타났다는 동료들의 말을 도마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요한복음 20장 26-27절에서『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라고 했다. 그런데, 누가복음 24장 38절에서는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라고 되어 있다.
이를 헬라어 성경으로 보면,『αὐτός ψηλαφήσατέ με καὶ ἴδετε ὅτι πνεῦμα σάρκα καὶ ὀστέα οὐκ ἔχει καθὼς ἐμὲ θεωρεῖτε θεωρεῖτε ἔχοντα』
다시 번역해 보면, 『그는 나를 만지고 영의 몸이라는 것을 보았고, 나는 뼈를 가진 너를 보듯이 뼈가 없다.』 도마가 본 것은 예수님의 죽은 상태에서 있었던 못자국과 창자국이 아니라, 그 자국들이 변신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는 모습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자들도 놀라고 기뻐한 것은 도마와 같이 그런 부활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한글 개역개정은 마치 예수님이 살이 있고 뼈가 있는 것처럼 번역이 되어서, 이전의 몸으로 돌아갔구나 라고 착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몸은 영의 몸(πνεῦμα σάρκα 프뉴마 사르카)이다. 그리고 뼈가 없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에서 사람이 움직이기 위해 뼈가 필요하듯이 그런 몸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죽었던 사람들을 다시 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이 나사로와 나인성 과부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다. 만일 부활이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으면, 이들은 다시 살아났으므로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의 몸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라고 분명히 말했다.
고린도전서 15장 21-23절에서『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하기 전에는, 부활한 자가 없었다는 말이다. 요한복음 3장 13절『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라는 분은 누구인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성육신으로 예수님이 성령으로 태어나셨다는 것이다. 오직 성령으로 태어난 예수만이 부활의 첫 열매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부활의 몸을 영의 몸이라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15장 35-38절에서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농부가 씨를 뿌리지만, 장래의 형체를 뿌린다는 것이다. 나중에 씨가 열매가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씨를 뿌린다는 것이다. 씨껍질이 죽고(사라지고) 그 속에 있는 씨눈이 자라서 다른 형체로 바뀌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엔 아프타르시야) 살아나며(에게이레타이)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소마 프뉴마티콘)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엔 아프타르시야(ἐν φθορᾷ)는 영생 안에서, 에게이레타이(ἐγείρεται)는 일어난다는 말이다. 영원한 생명 안에서 영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글 개역개정은 다시 살아난다 라고 번역하므로 마치 죽었던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오인하게 한다. 신령한 몸이라고 번역된 소마 프뉴마티콘은 영의 몸이다. 부활은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하이마)과 육(사륵스)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처럼 수많은 성경 귀절을 통해서 영의 부활임을 말해주고 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부활이 육체가 죽은 후에 일어나는 미래적 부활인가, 아니면, 현재적 부활인가?
로마서 6장 5절에서『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그의 죽으심과 연합이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에 부활의 연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1장 23-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는데, 예수님이 마르다의 집에 있었더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마르다가 말했다. 11장 22절에서 마르다가 말하기를『예수님이 하나님께 구하면 무엇이든지 다 주실 것을 믿는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예수님이『다시 살리라』라고 했는데, 마르다는『다시 사는 것』을 현재적이 아닌, 육이 죽은 후 미래 마지막 날 부활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현재적이다.
예수님이 11장 23-26절에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은『나는 항상 부활이요 생명이야, 나를 믿는 자는 영이 죽었었지만 살아나고, 영이 살아나면 하늘로 부터 오는 믿음의 선물을 받아 영원히 죽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을 육의 관점에서 보면『나를 믿는 자는 육이 죽지만 언젠가 살아나고, 육이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문장의 구조가 대단히 어색하다. 성경의 말씀은 영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신도들은 육의 부활로 생각한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이 말은 예수의 십자가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가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48-50절『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은 부활생명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않는 것으로 말한다. 죽지 않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되어 영의 몸으로 영생하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