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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행실과 관련해서도 빛의 번쩍임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립 문제를 고려해 봅시다. 「파수대」(영문) 1939년 11월 1일 호에 실린 “중립” 기사에서 이 문제에 특별히 밝게 빛이 번쩍였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직후에 나온 그 기사는 참으로 시기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그 기사는 중립이 무엇인지를 정의하였고, 그리스도인들이 정치 문제나 나라들 사이의 대결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였습니다. (미가 4:3, 5; 요한 17:14, 16) 이것은 그들이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한 가지 요인입니다. (마태 24:9) 고대 이스라엘이 벌인 전투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선례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마태 26:52에서 분명히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더욱이 오늘날, 고대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하느님의 통치를 받는 신권 국가는 한 나라도 없습니다. (굵은 글씨는 크레용.) |
그렇다면, 그 이전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을까요?
[선포자]책 제 14장 191,192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그들의 입장이 언제나 엄정 중립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다른 사람들이 믿던 것과 같은 신앙, 즉 “더 높은 권세들”(「제임스 왕역」)이 “하나님의 정하신바”라는 신앙의 영향을 받아 행하였다. (로마 13:1) 따라서 미국 대통령의 포고와 일치하게, 「파수대」는 성경 연구생들이 1918년 5월 30일을 세계 대전의 결과와 관련된 기도와 간구의 날로 삼아 지내는 일에 동참하도록 권하였다. 여러 해에 걸친 전쟁 기간에, 성경 연구생들이 처한 상황은 다양하였다. 그들이 그러한 상황에 대처한 방식도 다양하였다. 일부 사람은 세속 통치자를 가리키는 “모든 권세”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총을 들고 전선의 참호로 갔다. 그러나 그들은 “살인하지 말찌니라”는 성구를 염두에 두고 공포를 쏘거나 단지 적의 손에 있는 무기를 맞추어 떨어뜨리기만 하려고 하였다. (출애굽 20:13) (굵은 글씨는 크레용) |
1차 세계대전 당시 증인들 중 일부는 전선으로 갔습니다. 또한 일부는 양심적병역거부로 처벌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상할 수 있듯이 군대에 입대한 이후의 행동들도 아마 다양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당시에 협회는 기도회를 열 것까지 지시하였는데, 그것은 당시 1918년 6월15일호 파수대에 다음과 같은 광고내용으로 알 수 있습니다.
"4월 2일 의회 결의안 및 5월 11일의 미합중국 대통령의 선언에 따라 모든 곳에 있는 주의 백성은 5월 30일을 기도와 간구의 날로 정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게다가 그 뒤의 파수대 기사들은 미합중국을 찬양하는 기사가 실렸다는 점을 1976년 연감 106면에서는 시인합니다.
협회가 그 정도였다면, 당연히 일반 증인들의 입장이야 어떠했으리라는 짐작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에 참여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거부하였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전쟁공채를 사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해받기도 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비전투복무분야는 허용하였고 등 등....
아무튼.....
그러다가... 1929년이 되자, 갑자기 '성경연구생'들은 로마서13장에 나오는 "위에 있는 권위"가 세상 정부권위가 아니라 여호와 하느님과 예수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해에 파수대 6월1일호와 6월15일호에서 그렇게 설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 러셀시대에는 분명히 위에 있는 권위는 세상 권위를 말한다고 설명하였고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러더포드 회장 시절에 이렇게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세금문제 정도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군복무 문제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파수대 1996년 5월1일호 "하느님과 카이사르"라는 기사 제목의 14면에는 ""위에 있는 권위"에 대한 점진적인 이해"라는 소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일찍이 1886년에, 찰스 테이즈 러셀은 「시대에 관한 경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나 사도들은 모두 지상 통치자들의 일에 조금도 간섭하지 않았다. ··· 그들은 교회에게 법에 순종하라고 그리고 권위 있는 자들의 직위 때문에 그들을 존경하라고 ··· 그들이 정한 세금을 내라고 그리고 국가의 법이 하느님의 법과 상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사도 4:19; 5:29) 어떤 확립된 법에도 저항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로마 13:1-7; 마태 22:21) 예수와 사도들과 초기 교회는 모두 법을 준수하였는데, 자기들이 이 세상의 정부들로부터 분리되어 있었고 또 정부들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하였다.” 이 책은 사도 바울이 언급한 “더 높은 권세들” 즉 “위에 있는 권위”가 바로 인간 정부 권위임을 정확히 밝혔습니다. (로마 13:1, 「제임스 왕역」) 1904년에 「새로운 창조물」(The New Creation)이라는 서적은, 참 그리스도인들은 “현시대에―선동하고 다투기 좋아하고 흠잡는 사람들이 아니라―법을 가장 잘 준수하는 사람들 가운데 속해야 한다”고 언명하였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말이 정부 권세에 철저히 복종하는 것을, 심지어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군 복무를 받아들일 정도로까지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군 복무를 예수의 이러한 언명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칼을 잡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할 것입니다.” (마태 26:52) 분명히, 위에 있는 권위에 그리스도인이 복종하는 것에 대한 좀더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였습니다. 1929년에, 여러 정부들의 법이 하느님께서 명하시는 것들을 금하거나 하느님의 법이 금하는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하였을 때, 더 높은 권세들이 여호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2차 세계 대전 전과 그 기간 중의 어려운 시기에 그리고 공포의 균형을 이루며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춘 상태에서의 냉전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종들이 가지고 있던 이해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여호와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주권을 드높이는, 사물에 대한 이러한 견해가 하느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이 어려운 시기 중 내내 타협할 줄 모르는 중립 입장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준 것이 분명합니다. (굵은 글씨와 밑줄은 크레용) |
여호와의 증인의 현대 역사에서 "중립"이라는 획일화된 원칙이 확립된 것은 분명히 로마서13장에 나오는 "위에 있는 권위"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위 파수대 기사에서도 일부 시인한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당시 러더퍼드 협회장의 극단적인 견해 즉 모든 세상 정부는 사탄의 도구라는 식의 흑백논리로서만 바라본 견해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온 세상은 악한 자안에 처해 있다"는 요한1서4:19(개역한글)의 말씀도 있지만, 로마서13:4은 그들 정부들을 "하느님의 봉사자"(혹은 "하나님의 사자")라고도 표현함으로서 하느님께서 세상 정부들을 한시적으로 허용하셨고, 그들을 때때로 공의가 시행되도록 힘을 허락하셨음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로마13장에 나오는 "위에 있는 권위에 복종하십시오."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절대적은 복종을 세상 정부에게 하도록 요구하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그들은 하느님에 비해서 상대적인 지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그들에 대한 복종 역시 절대적 복종이 아닌 상대적 복종이어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각자가 어느정도까지 순종해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각자가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성구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다시 협회가 하게 되었을 때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습니까?
협회는 이 성구에 나오는 "위에 있는 권위"를 다시 이전의 견해대로 세상 정부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변경된 설명은 파수대 1962년11월15일호(영문)에서 나오게 되었으며, 그 설명에서는 사실상 "위에 있는 권위"가 지상정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새로운 해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문제가, 이보다 훨씬 뒤인 어느 해인가 발표되었던 것으로 들었습니다.)
이제 질문이 생깁니다. 협회가 다시 로마13장에 대한 올바른 견해로 돌아갔다면, 어째서 그 성구의 잘못된 이해때문에 영향을 받았던 "중립"교리가 유연하게 변경되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전처럼 그것을 그리스도인 각자의 양심문제로 허용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심지어 대체복무제도 1996년 5월1일호 파수대가 나오기 전까지는 전면 금지였습니다. (받아들인 형제들은 제명 혹은 이탈처리)
이제는 대체복무제 허용을 위해서 오히려 협회에서 언론에 호소하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은 불필요한 희생을 강요해온 탓일까요? 통치체는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어서 빨리 그들 세대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이전의 양심문제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저는 갑자기 다음 성구가 떠오릅니다.
악한 자에게는 그 마음 속에 범법의 말이 있고 그 눈앞에는 하느님에 대한 무서움이 없다.
자기 눈으로 보기에 자신에게 너무 매끄럽게 행하였기에 그는 자기 잘못을 깨달아 그것을 미워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입의 말은 유해한 것과 속임수이니, 그가 더는 선을 행하는 데 통찰력이 없구나.(시36:1-3. 신세)
ps: 출판물에 의해서 간간히 인용되는 다음과 같은 역사기록이 있습니다.
“입수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주의 깊이 검토해 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원 161년부터 180년까지의 로마 황제] 시대까지는 군인이 된 그리스도인이 없었으며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계속 군복무를 한 군인도 없었음을 알 수 있다.”―「그리스도교의 출현」([The Rise of Christianity] 런던, 1947년판), E. W. 반스, 333면.
- [성경을 사용하여 추리함]개정판361면에서 인용한 것을 다시 발췌.
이 기록을 근거로 증인들은 초기그리스도인의 본을 받아서 군 복무를 거부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사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군인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당시에 로마군대는 강제징집이 아닌 모병제였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초기 로마시대에는 비교적 공화제가 잘 유지되었으나 나중에 황제가 신의 자리에까지 추앙되는 권력형태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함으로 많은 박해를 받았는데, 군인이 되는 과정에 이 황제숭배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것을 거절한 것은 단지 군대였기 때문에 거절한 것으로만 해석해서는 무리가 있습니다.
세 번째로, 당시 로마군대는 전쟁시기에 침략군대였습니다. 지금의 일부 국가에서 평화시기에 방어적 목적으로 군인이 되는 양심까지 그러한 사례와 비교하기란 무리가 있습니다.
첫댓글 추리에는 추리로!/한스님의 추론이 타당성을 가진다면 크레용님의 추론또한 타당성을 가집니다/초기 그리스도인이 군복무를 거부했으리란 것에 대해서 일치하지만/현재에 그것을 따르는데 문제가 있음을/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입니다/당시의 군대와 현대의 군대가 다르며/종교적 신념에 따르는 게 개인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또한 그리스도인 양심의 자유를 용납하고 인정하지 못해서 제명시키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군대를 갔다 온 것이 살인자와 동일시되고 우상숭배자와 마찬가지로 여기는 그 눈이 선하지 못합니다/국가에게 병역대체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스님이 여기신다면 이제 협회에도 동일하게 군입대의 자유를 인정하라고 하십시오/정말 청년들에게 양심대로 선택할 기회를 주십시오
여러분들은 방조죄에 대해 의미를 파악도 못하고 계신것 입니까? 크레용님의 글은 너무길어 다 읽어보지 못했습니다...요즘세상에는 굳이 성서원칙으로 판단하지 않아도 세속 경찰에 의해서 방조죄로 판단받는것이 많이 있습니다...방조죄로 처벌받는것이 어떤것들이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십시오...우리는 분명히 세속정부가 정한 법보다 더 차원높은 법을 배우고 지지하고 있는줄 압니다.
글을 좀 겸손하게 써요. 남 무시하듯이 쓰지말고^^ 게다가 정말 그럴만한 사람도 아닌 사람이 그러면 더 어처구니가 없잖아요.
님들은 사회구조내에서의 원칙조차도 제대로 이해못하고 있는것 입니까? 그러면서 성서의 원칙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있다고 말할수 있는것 입니까? 허허 참 ^^
사돈남말처럼 들리네요.^^
그리고 크레용님? 제가 올린 자료에 당시 로마에 군인이 필요한 시기에도 군복무를 거부하였다는 자료는 보지못하셨나요? 아니면 모병제라는 말만하시는데 급급하시어 못본척 하신것인가요?
와치타워는 사람의 머리속에 이론을 집어 넣어 사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믿음을 만들어 주며 사상보다 강하지못하지만 부드러우며 따뜻합니다
제가 올린 자료중 군복무를 "거부하였다" 라는 의미로 저술된 자료는 3군데 정도가 되는군요...로마가 항상 모병제라면 거부하였다라고 말할필요가 없겠지요...
그런 고대의 예로써 사상화시키면 안됩니다 사상은 조직에 충성스러울지 모르지만 정작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따뜻함이 없습니다 한스님 조직이 우리 형제 자매들을 따뜻하게 안아 준다고 진정으로 생각하십니까?
크레용님께 쉽게 두가지만 지적드린겁니다....공군PX에서 커피와 라면만 판매한 군인도 적국의 입장에서는 사형시킬 방조죄이고 제 3국에서 볼때에도 방조죄는 성립됩니다. 하물며 여호와께서는 어찌보실까요? 또 한가지는 님이 말한 모병제라는 말로 군복무를 "거부하였다"는 당시의 진실을 은폐하시지 말라는 말입니다.
평화주의 사상을 저도 받아드립니다 저도 3년 썩었고요 난 솔직히 와치타워의 주장을 받아들인건 아니구요 평화를 사랑하는게 예수님이 가르치신 바라 생각하여 결정한 겁니다 그러나 사상은 사상일 뿐이지 사상이 믿음을 이길 수는 없어요
HANS™님 제 글을 찬찬히 읽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저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저는 군복무를 거부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양심의 그리스도인이 있더라도 비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넬료가 계속 군복무를 하였는지 그만두었는지는 한스님이나 저나 추측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확정적으로 알 수 없으므로, 우선 확실한 것 즉 고넬료가 군인이었을 때에 침례받는 것이 허용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로마시대 그리스도인들이 군복무를 거부한 다양한 이유가 존재했을 것입니다. 모병제는 그 중에 한 가지 이유를 거론한 것일 뿐입니다. 다시 확인드리지만, 저나 한스님이나 다시 복무하라
님의 말대로 차칸사람님도 그러하다면 추측만으로 알게된 지식으로 전단을 만들었다니...어이가 없군요...
님이 보신 전단지에는 고넬료의 침례후의 생애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무엇이 추측만으로 만들었다는 것인지요? 우선 고넬료가 침례받았다는 사실 그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 이후는 피차 이야기하지 말자니까요.
면 똑같이 거부할 사람들입니다. 제가 왜 그런 선택을 할 것인지를 설명드리자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생략하고 싶습니다. 또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싶지도 않고요. 그러나 많은 증인들의 경우에 있어서 그 이유가 본인의 심각한 양심문제라기 보다는 협회의 지침이기 때문에 관례대로 따르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성경상에 분명히 나온 것 외에는 모두 추측이므로 그 점만 분명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넬료는 침례를 허락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은, 글을 읽지 않으셨다면 꼬리말도 달지 않으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협회의 지침? 연구사회자의 지침? 학교시절 선생님의 지침?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의 지침? 내가 본 성경의 지침 ? 이 모두가 나의 양심을 연단하는데 필요한것이었다는데에는 동의하실수 있나요? 내가 가진 양심이 내것이 아니라 부모님,선생님의 것이라고 판단하실수 있는것 인가요? 그것이 현실이라구요? "허"허"허" ^^ 크레용님? 위의 님의글을 더 읽고 싶은마음이 없어지는군요......
ㅎ어거지는 쓰지 맙시다. 어찌 협회의 지침을 어리버리 묻어갈려고 하십니까.^^ 다른건 다른거지요. 비유도 좀 '양심적'으로 하세요.하하하
한스님~ 다시 반복드리는 말씀이지만, 제 글을 읽지도 않고 꼬리말을 다는 것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크레용님 한스님이 주장하는 이론을 맞받아 반대 이론을 펼쳐 봐야 세뇌된 사람에게 먹혀 들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조직의 차거움을 맛보아야 정신이 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