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12. 21(금)
마케팅의 유령? : 김우정의 문화마케팅 분석(6)
뮤지컬을 사랑한다. 공연예술이라는 특수한 문화장르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정확한 기억은 중학교 시절 부모님과 함께 관람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진한 감동부터이다. 하지만 내가 춤과 노래를 따라 하기 시작하던 기억 저편의 어린 시절부터 아마 난 뮤지컬이라는 즐거운 문화에 중독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관객과의 의사소통,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등의 전문용어를 접하기 시작하면서 뮤지컬에 대한 나의 사랑도 차츰 전문화 되어갔다. 물론 아직 남은 길은 멀고도 험난하겠지만.
험한 길은 여행하기 좋은 길.
[ 뮤지컬의 유령 ]
뮤지컬은 노래, 춤, 연기가 어우러진 현대적인 공연 양식으로 미국에서 발달한 대중 예술이다. 노래가 중심이 되어 무용(춤)과 극적 요소(드라마)가 조화를 이룬 종합 공연물이라 할 수 있는 뮤지컬은 연극과 오페라 또는 오페레타(operetta,작은 오페라를 뜻한다), 무용극과 현대적인 화려한 쇼가 한데 모여 있다는 데 그 장르적 특징이 있다.
한국에서 뮤지컬이 시작된 시기는 세계 최초의 현대적인 뮤지컬이 탄생한지 꼭 100년이 지난 1966년 무렵이다. 유럽에서 태동하여 미국에서 절정을 이룬 뮤지컬은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 우리 문화 예술계에서는 이론적 체계 정리와 토착화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에 관한 방향을 계속 모색하여 왔다. 우리나라에는 그 양식은 조금 달라도 형식적인 면에서 뮤지컬과 같은 공연물들이 올려져 왔다. 1930년대에 유행하였던 대중극의 대표적인 악극, 우리의 정서를 담은 창극과 같은 전통 음악극 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뮤지컬의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입지적인 인물이 바로 영국의 전설적인 작곡가 <엔드류 로이드 웨버>다. 그의 업적과 성공을 일일이 기록하기는 힘들지만 4대 뮤지컬이라고 불리는 <레미제라블>, <캣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중 <미스 사이공>을 제외한 나머지 3작품의 작곡자가 바로 그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를 위대한 작곡가라고 부를 수 있다. 그는 제작자 <카메론 맥킨도시>와 함께 수많은 뮤지컬을 히트시키며 현재 <RUG : Really Useful Group>의 대표로 제직중이다. 뮤지컬의 유령, 뮤지컬의 마스터..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가 아닐지.
<엔드류 로이드 웨버>가 만든 수많은 뮤지컬 중에서 가장 만족해 한다는 <오페라의 유령 : The Phantom of Opera>이 얼마 전 드디어 한국을 찾았다. 전 세계 13개 국가, 100여개 도시에서 공연되었으며 15년 간 막을 내리지 않고 있는 위대한 작품. 과연 <오페라의 유령>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오페라의 유령>이 방문한 14번째 나라가 된 한국은 그 위대한 신화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 브랜드 파워, 머니 파워!! ]
현대 마케팅은 브랜드 마케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브랜드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브랜드는 [달구어 지진다], [화인(火印)하다]는 뜻으로 사용한 노르웨이의 고어 <Brandr>로부터 유래되었다. 브랜드라는 말이 생기기 전 세계 곳곳에서는 인두질로 가축이나 기타 물건 등에 화인(火印) 함으로써 소유권을 나타내었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의미로 고려시대에 사냥매 다리에다 꼬리표를 붙여 누구의 소유인지를 인식하게 해주는 '시치미'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브랜드는 이제 단순한 네이밍의 차원을 넘어서 개인과 조직, 상품과 사업 등의 사회전반에서 중요한 이미지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15년간 최고의 뮤지컬이라는 찬사를 받아 온 <오페라의 유령>은 최고의 브랜드 파워를 갖춘 뮤지컬 상품이다. 단 한번의 실패도 없었다는 흥행신화는 이 뮤지컬의 브랜드 파워를 한껏 높여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브랜드 파워는 열악한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100억 이라는 사상 초유의 제작비를 투자하게 만들었고 각계각층의 우려와 기대 속에서 지난 12월 2일 초연 된 이후 6만 5천장의 예매를 기록하며 50억의 매출을 올리는 진기록을 낳고 있다.
현재 300억 정도 되는 국내 뮤지컬 시장의 규모를 감안한다면 <오페라의 유령> 한국공연이 갖는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5000억이 넘는 일본시장이나 연간 4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미국시장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오페라의 유령> 한국공연이 성공한다면 국내 뮤지컬 시장도 500억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 <오페라의 유령>이 한국공연예술시장에 미칠 영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영화가 성공한 이면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대규모 자금이 지속적으로 투여되어 열악한 제작비를 극복하면서 작품의 양과 질이 성장하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뮤지컬을 비롯한 공연예술도 앞으로는 지원을 벗어나 투자를 적극 유치하여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 마케팅의 유령 ]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호주의 <RUG>에서 모든 공연을 총괄한다. 지난 15년간 단 한번의 실패도 없었다는 점에서 작품의 완성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믿지만 문화적 취향이 다른 13개국에서도 모두 성공했다는 점에서 <RUG>의 시스템화된 마케팅을 살펴볼 수가 있다. 한국 뮤지컬 마케팅의 가장 큰 오류 중의 하나는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하던 기존의 마케팅 관습(이것도 시스템이라면 시스템이다)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보 위주의 마케팅부터 시작해서 알음알음을 통한 파이낸싱, 끼워 맞추기 식의 스폰싱에 이르기까지 한국 뮤지컬 마케팅은 시간이 맞지 않아 완전분해가 필요한 태엽시계다.
<오페라의 유령> 티켓은 현재까지 6만장 정도가 판매되었다. 12월과 1월분 공연에 한해서만 티켓을 팔았고 2월분 티켓 예약은 아직 오픈을 하지 않았다. 1월 예매율이 70%를 넘지 않으면 2월 예매를 받지 않는 것이 공동제작사인 <RUG> 방침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2월 예매율이 70%를 넘어야만 3월 예약을 시작할 수가 있다. 70%를 넘지 못했을 때 다음달 예매를 시작하면 티켓이 분산되기 때문이 이를 막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한다. 또한 예매율이 70%를 넘지 못하면 그달로 공연의 막을 내리는 것이 계약조건이라고 하니 대단한 자신감이요 대담한 마케팅전략이 아닐 수 없다. 과연 한국 뮤지컬 중에서 <RUG>와 같이 대담하게 마케팅을 구사할 수 있는 작품이 몇 편이나 될까? 그런 용기는 있는지도 궁금하다.
[ 관람을 1주일 앞두고 ]
일반 뮤지컬 보다 비싼 티켓가격에 망설이던 본인도 지난 18일 <오페라의 유령>의 예매에 동참하였다. 혹시 내가 <오페라의 유령> 마케팅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아마 설익은 마케터의 자존심이 이런 것일 테지.
배우들의 성량이 부족하다, 화려한 무대장치만 볼 만하다 등의 전문평도 보았지만 나에게 뮤지컬은 그저 관심과 사랑의 대상, 그리고 간절히 참여하고 싶은 일상의 꿈이기에 실망도 사랑이 되리라 믿는다.
문화는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소비해야 한다. 제대로 된 소비행위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수백억의 자금과 수천 명의 전문가가 투여된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공연예술의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다. 문화의 주인, 문화의 주체는 바로 나,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관객이 주인 되는 문화상품은 올바른 소비를 할 줄 아는 관객이 많아 질 때야 비로소 실현가능한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마케팅의 유령>이 되어 무대 뒤 어딘가에서 관객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는 나의 미소도. 관객과 하나 되는 대한민국의 뮤지컬을 바라는 간절함도. 무대의 감동과 순수함에 대한 그리움도. 문화도 마케팅도.
Forever, I Believe, Lovely E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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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drew Lloyd Webber 와 Cameron Mackintosh
※ <오페라의 유령> 시놉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