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앗시리아라는 나라의 기원은 문명 국가 바빌로니아의 선조 갈대아인들과 치고받건 북방 셈족 야만족들 중 하나였습니다.
일단 갈대아인들의 선조가 먼저 세운 나라가, 계속해서 3세기 로마 같은 한계 수익성 붕괴의 패턴을 반복합니다.
로마에는 체계적인 체제 정리를 거친 끝에 그것을 집대성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나타났지만, 바빌로니아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같은 사람이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해서 앗시리아 인들에게 최종적으로는 붕괴한 모양인데, 여기서 또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죠.
갈대아한 앗시리아인들이, 또 후발 주자 셈족들하고 치고 받고, 그리고 그 치하에서 귀족으로 살아남았던 구 갈대아의
후손들이 또 다시 강국으로 일어서는 등....
흡사 5호 16국 그리고 망한 서로마 제국 치하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또 재연됩니다. 해서 이번에는 바빌로니아가
앗시리아를 콱콱 밟고 그들을 무릎꿇립니다. (좀 이상한 비유지만, 남조가 북조를 멸한 격이고, 명이 원을 멸한 격입니다.)
한편....그랬던 바빌로니아 제국은 또 한계 수익성 붕괴 패턴을 반복하고, 또 다시 앗시리아인들에게 무너졌던 패턴을 반복합니다.
바빌로니아는 한 때 주인이었고, 그 다음은 굴복시켰던 종 아시리아에게 또 다시 굴복해서 아시리아를 주인으로 섬깁니다.
헌데 그랬던 앗시리아가 또 앞서 패턴을 반복하면서 바빌로니아에게 밟히고...
벌써 그렇게 앗시리아 - 바빌로니아 간에 티격태격하며 주인과 종, 봉신과 군주의 자리를 뒤바꿈질 한게 확인된 것으로만
한 두세번인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양자는 얽히고 섥혀서 하나나 다름없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에
대한 경쟁 의식은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럼 한쪽을 완전히 제노사이드하면 되잖아요. 근데 그게 영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내부 갈등이란 문제도 있으니
함부로 그렇겐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사슬에 히타이트가 끼어들어서 당구공 치기 했던 적도 있었고, 그 히타이트가 서북방 야만족들한테 무너지면서
그 다음 당구공은 성서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 강적 아람에게 넘어갑니다.
아람이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를 상당히 괴롭혔는데....
갑자기 혜성같이 나타난 다윗이란 사람이 이 아람을 완전히 박살냅니다. 아람도 다윗하곤 굳이 척을 지진 않았는데,
암몬하고 모압 도와준답시고 원군 보냈다가 그놈들이 다윗의 군대에게 다 죽자, 성질나서 괜히 필요도 없는데
다윗한테 계속 2-3라운드 뜨자고 덤볐지요. 결국 그 라운드에서 임자 만난 아람이 뜻밖에, 플리셋한테도 털리던
한 때의 약골 이스라엘에게 갑자기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쳐맞는 겁니다.
이 바람에 골치아픈 아람을 털어내버린 앗시리아에...하필이면 묘하게도 때를 같이해서 조직 재개편의 명군들이 잇따라 등장해서
선진적인 군 체제, 행정 체제를 세웁니다. 앗시리아가 창끝을 돌린 대상은 현명하게도 아람이 아닌 오랜 라이벌 바빌로니아였습니다. 뭐...당연지사 바빌로니아가 앗시리아에게 얻어맞고 또 가랑이 사이를 기어간건, 늘상 반복했던 패턴이라 별로 새로울 건 없었지만, 이번에는 앗시리아가 뭔가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회적 군사적 역량을 축적했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그동안에는 바빌로니아 얘들 패주는 것에만 신경쓰고 지들끼리 뜯어먹곤 했는데, 이젠 바깥을 내다보는 거죠.
드디어 앗시리아는 용솟음치는 군사적 힘을 바깥으로 터트려서 내달립니다. 과거의 대제국 이집트를 쳐서 먹었고, 여러 차례
짜증나게 했던 아람도 쳐없애 버립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아람은 대체 뭘 하고 있었느냐? 이스라엘하고 샅바 겨루기 하면서
멍때리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습니다. 망하는 게 너무 당연했습니다.
앗시리아가 그래서 근동에 최초의 통합 제국을 세웠습니다만.....이집트를 먹어버린 위업이 무색하게 남유다 이 쬐꼬만 게 계속해서 아득바득 게기며 항복하질 않았습니다. 해서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앗시리아에도 디오클레티아누스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무려 분할 통치도 시도하며 무단 일변도 통치를 재고합니다만, 그 과실은 엉뚱한 녀석이 따먹습니다.
다름아닌 바빌로니아였는데요. 바빌로니아는 참으로 아니꼽게 앗시리아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몸종 노릇 하느라
참 불쌍하였으나...바빌로니아는 역시 다른 나라들과는 달랐습니다. 바빌로니아가 앗시리아의 여러 체제적 장점을
벤치마킹하면서, 아, 쟤들은 이렇게 하니까 안 되는 구나, 나는 따라하는 반면에 쟤들이 실수한 이건 안해야겠다,
뭐 이런 마스터플랜을 짜고 있었지요.
그렇게 납작 엎드려 기회를 엿보던 바빌로니아..... 앗시리아가 각지의 반란으로 약해질 때까지도 잠자코 참다가,
갑자기 일순간에 불의의 일격을 몇 대 먹여서 앗시리아를 쳐없애 버립니다.
앗시리아는 설마 자신들이 이렇게 바빌로니아의 발 아래 또 다시 무릎꿇는 캐삽질을 반복하리라는 건 예상도
못했지요. 게다가 이번엔 양상이 더 안 좋았습니다. 바빌로니아가 참으로 체계적으로 앗시리아 말살 정책도
병행했던 것 같습니다. 하여.... 앗시리아 VS 갈대아 전의 최종 승자는 바빌로니아가 되었습니다.
근 한 이삼백? 삼사백? 년도 넘는 투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로는 역사가 길지만......
이 갈대아 - 앗시리아 인들은 파르티아 및 나중의 사산조 페르시아에 상당한 충성을 바쳤고 그들도 나름의
반대 급부를 많이 주었던 모양입니다.
(한편, 사산조 페르시아와 원래 민족과 혈통과 언어와 풍습이 같았던 아르메니아는, 로마와 계속 놀다보니 어느새
로마화가 되어갔는데, 사산조 페르시아가 아르메니아를 장악했을 때 워낙 거지같은 굴욕을 많이 강요해서,
사산조 페르시아에 정치적으로 가까워질 때마다 반 페르시아 감정이 증폭되는 기현상이 일어납니다.
민족이 같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는데, 그런 조치는 이들을 페르시아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을 위정자들은
다들 몰랐던 것 같습니다. 현대 한국도 되새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나중에 보면 얘기가 길지만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가 페르시아에 전래되면서, 일명 페르시아식 기독교가 됩니다.
가톨리코스라고 해서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에 페르시아 기독교 교황도 하나 따로 서게 되죠. 생각보다 상당한 교세를 이룩했습니다. 또한 이들 말고 다른 시리아의 단성론파 종파 하나가 들어갔고, 그 이외에 이집트산 단성론파 종파가 더 들어갔는데,
이들이 들어간 지역에 주로 포교한 데마다 종족이 약간 달라서, 이것이 일종의 종족성 마저 띄게 되죠.
세월이 지나면 이들 중 일부가 또 가톨릭으로 컴백하고, 일부는 정교회로 컴백하고, 일부는 계속 독고다이로 남을 것을
고수하는 등등의 복잡한 역사가 있습니다. 갈대아 유민들은 아마도 단성론파 기독교나 네스토리우스 파를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단성론으로 단죄받았지만 원래 네스토리우스가 주장하던 건 성모 마리아 인정 못하겠다 이거였기 때문에,
가톨릭으로 복귀할 때는 다른 데보다 저항이 좀 적었던 것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거긴 원래 사실상 삼위 일체파죠.
개신교가 했던 말하고 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교황과 교계 체제를 부정하진 않았지만..)
첫댓글 뭔가 좀 복잡한 역사군요.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오랜 대립... 그리고 예외로 이스라엘은 강국이었던 건가요? 다윗 왕이 저런 강자일 줄이야... 성경에 나올 만 하군요.
넵먼칙힌. 애당초 이스라엘에는 다윗 이전까지 제대로 된 의미의 정치지도자가 없었습니다-_-;; 12지파간의 느슨한 혈연적 관계로 엮인 연맹체 정도였쥬. 걸출한 사사나 제사장들이 지도자로 등장할때도 있었습니다만, 그들의 지배력은 거의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과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형태였습니다, 유명한 사무엘이나 사울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리고 다윗이 바로 유다 세습왕조의 1세로 제대로 된 형태의 왕국을 세웠다지만 다윗 역시도 그 개인의 능력과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바가 큽니다.
마활님은 사울만해도 상당한 왕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의견을 견지하시는데 저는 좀 다른 의견인게-_-;; 일단 이스라엘의 생존에는 선민사상이 강한 유대교가 강한 보호기제로 작용했는데 이스라엘은 제정분리 사회였고(기본적으로 왕에게 신에대한 제사를 집전할 권리가 없었음은 물론이고 선지자나 제사장 따위를 임명할수 있는 권한도 없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이 삐딱선 타고 여론을 호도하면 왕들이라도 좀 짜증나는 상황이 펼쳐지곤 했스빈다. (사무엘과 사울의 반목처럼)
그리고 애당초 이스라엘 12지파들은 [왕]이라는 물건을 그때 처음 가져보는지라 왕가에 대한 충성.. 같은 개념은 막장갤의 개념만큼이나 없었쥬. 12지파 내부에서도 반목이 더러 심해 수틀리면 자기들끼리 물어뜯고 그랬습니다 (베냐민 지파 몰매 사건이라던지) 다윗 생전에도 당장 압살롬의 반역사건에서 지파간의 분열의 단초가 보이고 솔로몬 사후에는 아예 왕이랑 쇼부쳐보다 안되니까 북부 10지파가 통째로 떨어져 나갔쥬(..)
이스라엘도 사실 제정분리가 아니었습니다. 왕들은 마음만 먹으면 선지자나 제사장을 마구 죽일 수가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사항이지만, 이스라엘-유대 왕국의 제사장 집단은 페르시아 종교 제체를 본받아 체계화한 후기 로마 제국의 성직자 집단만큼의 조직화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정치 세력의 공격에 대단히 취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무장공비님이 말씀하시는 내용도 맞지만 그건 일반론에 해당할 뿐이지, 세부적인 면에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사울 같은 경우는 제사장이고 나발이고, 여론호도고 나발이고, 마음만 먹으면 심지어 사무엘조차도 죽일 수 있는 권력을, 겨우 집권 2~3년만에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성서에도 나옵니다.) 이는 사울이 놀라운 빨치산 활동의 성공을 통해 플리셋에게 처음으로 완벽한 승리를 여러 차례 가져다준 전쟁 영웅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울은 제사장 도시 하나를 반역죄를 뒤집어씌어 홀로코스팅했는데, 그랬는데도 제사장 집단이 사울에게 찍소리도 못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12지파만 해도 그렇습니다. 무장공비님 말씀과는 약간 달리, 그들이라고 왕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사울 이전에도 왕이라 할만한 자가 없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울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지지를 받는 임금이었고, (어쨌거나 초대 왕이었으니까), 유다 지파에서도 누명씌우고 쫓겨다니는 다윗을 도와주질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적어도 사울이 살아있을 때는 그랬습니다. 사울과 그의 유능한 아들들이 다 죽고 바보 므비보셋이 임금이 되니까 그때는 얘기가 달라집니다만, 무장공비님이 말씀하시는 이유와는 약간 다릅니다.
하여튼간에 한가지 확실한건 당시 초대 이스라엘의 왕권은 개인의 역량에 많이 의존하지 사회 시스템 자체에서 나오는 물건은 아니었쥬;; 그러다 보니 왕이 자신의 권익을 보호 해주지 못한다거나, 능력이 없는 바보라거나(므비보셋 처럼..)하면 좀 쉽게 이탈하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좀 다른 예지만 사무엘 같은 경우도 사무엘이 늙고 아들들은 똘끼 충만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인들이 사무엘에게 아예 왕을 추대해 달라고 부탁하쥬-.-;;; 그 결과물이 사울.
[제정분리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대목은 약간 의아한게-_-;; 이스라엘의 왕들은 제사를 집전하거나 종교지도자(제사장,선지자)을 임명할 권리가 공식적으로 '전혀'없었습니다. 그런 경향이 보이는건 최소한 북왕국 유다가 떨어져 나간후쥬. 그나마도 아무렇게나 입맛에 맞는대로 제사장을 세웠다가는 상당한 여론의 압박을 받습니다(제사장 가문은 레위 지파 뿐이었으니까유) 심지어 훨씬 후대인 아합왕대에 이르러서 조차 선지자 후보생들은 공동생활을 하면서 한 명의 스승에게 교육을 받는 일종의 사설 학원 생활을 했습니다.(켈트문화권의 드루이드나 바드와 비슷한 교육방법이쥬)
물론 마활님이 말씀하신대로 유대교의 종교 조직이 좀 허술한지라-_-;; 왕들이 정치적으로 압력을 가해서 상당수 종교지도자를 회유하거나 어용 선지자를 만들순 있어도 진정한 의미에서 초기 이스라엘에서 신권(神權)이 왕권에 귀속 된 적(앞서서도 강조하지만 왕이 선지자를 임명한다거나.. 말이쥬..)은 없는것 같습니다. 사울의 경우에도 신권이 왕권에 귀속 되었다기 보단 사무엘은 늙었고 사무엘 아들은 바보샛키들이고 사울의 능력이 워낙 걸출하다보니 신권이 왕권에 압도당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 하겠지융
그마저도 점점 체계화되어가는 양상을 보입니다. 이는 이미 사울 왕때부터 단초를 보이던 사항이었지요. 제정 분리라면 저도 단어 사용을 좀 잘못했습니다만, 제가 말하고자 햇던 점은 어디까지나 고대 이스라엘 왕국기의 사제 조직은 로마는 고사하고 중세 서양의 그것에 비해서도 엄청나게 힘이 미약했다는 그겁니다. 신권이란 것 자체가 존재치 않았고, 대놓고 임금 면전에서 삿대질해가며 임금을 욕했던 엘리사나 엘리야는 신권 조직 체계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민중 운동가나 비밀 결사 우두머리에 가깝습니다.
물론 사울 왕가가 계속 내려오면서 계속 왕권을 강화했다면 모르겠지만 사울은 아들과 전사해버렸고... 그나마 세습왕조를 연 다윗왕가도 3대만에 반란크리 맞았으니 좀 안습이군요-_-;;
음 확실히 이스라엘의 사제 조직의 중추는 레위 지파이지만 애당초 가나안 정벌이후 지파마다 땅을 분배 할 때 레위지파 몫은 없었쥬..; 그리고 조각조각 나눠서 11지파에 흩은후 사제업무를 보게했고. 댓가로 지급반은것이 바로 십일조였으니까요..... 이런 시스템이니 사제 계급들이 한 곳에 모이거나 경제력을 쌓거나 하는 일도 힘들고-_-;; 역시 돈과 권력은 정비례하니.. 고대 이스라엘 사제계급이 그런면에서는 힘이 미약했다는데는 동감합니다.
ps. 아 참 위에서 3번째 리플에서 충성에 대한 얘기는 [왕]개인이 아닌 [왕가] 즉 가문에 대한 충성이란 의미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섬기던 왕의 아들이니 충성한다라는 세습왕조의 기본적인 필요조건 말이즁) 그리고 선지자를 가르치는 사설학원 얘기는 [그런 고도의 조직이 있었다]가 아니라 [그런 조직이 수십개가 산재해 있어서 일일히 왕권으로 구속하는게 힘들다]라는 의미로 거론한 얘기였습니다. 엘리야 학원이 진짜 막가파였습죠 ㄲㄲ
혹시 궁금한게 있는데 기병이 아시리아에서 최초로 창시되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그런 설도 있습니다. 앗시리아 부조 중에 전차부조->말 한필에 두 사람이 타는 부조->기마병 부조가 등장하는데, 이를 전차에서 기병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인 상태로 보는 의견이지요. 물론 이것만 가지고 앗시리아가 기병을 최초로 사용했는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유목민들도 있으니까요. 단, 유목민들도 앗시라아에서 영향을 받아 기병을 사용했으리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적어도 정주국 중에서 기병의 효용을 깨닫고 활용하기 시작한 초기국가 중 하나임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으음... 그렇군요. 어느 책에서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최초로 말을 길들였는데 그게 타는 용도로도 쓰인 것 같다 해서 의문점이었거든요. 그리고 그 부조라면 무려 궁기병 부조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대영박물관에서 봤습니다.
앗시리아의 첫 기병사용의 증거가 투쿨티-니누르타 2세때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게 기원전 9세기의 물건이라니 기병의 역사가 생각보다 짧군욥... 스키타이인들과 앗시리아 사이의 관계는 에사르하돈의 딸과 스키타이인들의 지도자였던 바르타투아 Bartatua 와의 혼인.. 그리고 앗시리아의 멸망등등에서 여러 갈래로 드러난다지요;;
갈대아 인들이라는 명칭이 함무라비 시절에도 있었던가요? 전 이후 신 바빌로니아 나왔을 때 생긴 명칭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제가 읽은 책에는 칼데아인 Chaldeans 라는 명칭은 신앗시리아 이전부터 쓰였다고 합니다만...함부라비 시절엔 없었던 듯... 출처: http://cafe.daum.net/shogun/1Db/2620
리플에서 많이 배우고 갑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