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난 정말 소설과 안 맞나보다.
설마 내가 이해한 게 주제는 아니겠지 설마설마 하며 읽고 나서 평론가해설을 읽고 좌절했다.
수십, 수백 년 뒤를 배경으로 지금 사회와 한치의 변화도 없는 인종갈등이나 여성에 대한 차별, 비혼모, 여성의 임신,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인문학은 문사철이라 했다.
문학은 서민들의 삶을 통찰하고
역사는 지배자의 삶을 통찰하며
철학은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했다.
그래서 문학은 인간에 대한, 사회에 대한 통찰이라 생각해서 대단한 영역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최소한 교과서에서 배운 소설들과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들은 재미는 없었어도 그랬던 것 같다.
시대를 앞서가는 고민이 있었고, 당대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던 걸로 기억한다.
운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잘 읽지도 않은 소설들을 어쩌다 최근 손에 잡을 때마다 해묵은 주제로 질린다.
소설에서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그 주제를 온전히 잘 드러내기 위한 훌륭한 장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현재에도 로봇 청소기가 청소하다 말고 배터리가 부족하면 알아서 충전을 한 뒤에 다시 청소를 하고,
전기자동차의 충전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건전지처럼 갈아 끼우는 스테이션이 (문제가 있을지언정) 있는데
1,2백년 뒤에 로봇 배터리를 갈아주는 노동자라는 말도 안되는 설정들이 너무 많이 보일 뿐더러
도대체 지금도 충분히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인종, 성차별과 갈등, 여성에 대한 문제들을 굳이 SF를 사용하여 다룬 이유를 모르겠다.
사실 그 문제들이 여전히 정말 크게 남아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제기는 지겹도록 됐고, 그게 해결되고 개선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속도가 늦거나 그 방향이 틀린 방향이라면 소설은 그에 대한 경각심을 던져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계속 문제제기만 한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설마 심지어 수 백년 뒤, 시간이 한참 지낸 뒤에도 우리는 변하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를 던졌던 걸까?
설마? 진짜?!
디스토파이든 유토피아든 우리가 미래에 겪을 만한 고민들을 미리 하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제시해 줘야 하는 게 소설의 역할이 아닐까....
최소한 그저 발랄한 상상이 아니라 사회에 대해 비판을 하려면 말이다.
계급 사회가 신분에서 경제력, 앞으로는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으로 갈 거라는 상상이나
AI의 발달로 더욱 인문학이 중요해지는데 AI들이 미래판 분서갱유 사건을 일으키거나 철학자들의 사상을 왜곡하여 재기록하는 일을 벌인다거나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내어 혼란에 빠뜨린다거나
인구가 줄면서 지구가 다시 정상화 되고, 에너지의 소모가 줄어 일론머스크 생각처럼 우주로 갈 필요가 없어져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구가 줄며, 문명이 퇴보하는 혹성탈출급 반전 상황으로 진행된다거나 하는 스토리가 차라리 발전적 메시지를 던져주지 않을까 싶다.
당분간 소설은 없다.
당분간 여성 작가의 소설은 없다.
한줄평 : 왜 과거의 고민을 미래에 하고 있을까?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더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했던 시도. 그로 인한 부작용. 분리주의. 인간에게 소위 말하는 부정적인 것들을 제거하면 우리는 과연 더 행복할까. 세상을 바꾸는, 이기려는 노력. 누군가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지만 그래도 지구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스펙트럼>
우주에서 다른 생명체를 만났다면 우리는?
두 번째 인류가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침략일까 협력일까?
그녀가 침묵한 이유는?
83. 그렇지만 희진은 이 행성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남기는 일에, 지구의 도구들 없이 행성 자체를 감각으로만 받아들이는 일에 천천히 익숙해졌다. 오랜 시간동안 희진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 관념적인 것, 감각의 바깥에 있는 것들을 다루었다.
95.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다시 만날 때는, 우리는 더는 유약한 이방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도구를 가져갈 것이다. 그들에 관한 정보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분석하고 그들의 문자를 분석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SF가 낯선 이유는... 설정의 어색함 또는 미숙함 때문일 거다.
그래도 포스텍 화학과 출신이라는 작가임에도.
시간 개념에 대한 너무 평이한 설정, 공간에 대한 상상력 부재, 외계 생명체에 대한 부족한 묘사, 첨단 장비들 묘사에 대한 어설픔(차라리 하지를 말지), 답답하게 느껴지는 상상력의 한계가 느껴진다.
<공생가설>
126. 어쩌면 가장 중요한 특성은 인간 밖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정서를 학습한다고 생각한다. 기분을 학습한다랄까.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진기한 것들 구경하러 가는 경향이 커 보이는데 나는 그들이 살아온 삶을 통해 형성한 정서가 궁금하다. 며칠 정도 여행 간다고 해서 크게 느껴질 것도 없어서 'OO에서 1년 살기'를 여러 지역에서 하고 싶은 거다. 사람이 궁금해서.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인간이 최소한 7세 이전까지 류드밀라라는 외계에서 온 무언가에게 사랑, 감정, 마음, 이타심을 배운다고 설정했다. 나는 그걸 사회화라고 생각한다. 정서의 학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를 둘러싼 강제성에 가까운 학습. 어떤 지역에 가면 낯설지만 내가 사는 이 나라, 이 지역, 이 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해서 배워야 할 것들.
정말 어렸을 때 과학잡지를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기체 생물이라는 개념을 보고 그 상상력이나 기발함에 놀란 것인데 이 소설을 읽으며 그 기체 생물이 생각났다. 어쩌면 정말 우리는 우리가 아닌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읽었던 <뉴럴링크>에 우리가 팔을 올리기 이미 1초 전부터 이미 뇌가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어쩌면 정말이지 우리의 정신과 몸은 우리 것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우주 개척 시대에 웜홀을 얘기하고 워프 항법, 냉동인간이 실현된 시대에
갑자기 다른 이민 행성으로 가는 교통편이 경제적 논리로 중단되고(정말 갑자기...)
종이 티켓은 웬말이고, 맛없는 무가당 주스와 배터리 교체를 위한 파견직과 복잡한 전선들 설정은 너무 지금 아닐까.
181.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감정의 물성>
193.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
인간의 정서를 조종하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관내 분실>
'233. 수십조 개가 넘는 뇌의 시냅스 연결 패턴을 스캔하고 마인드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구현된 결과물'을 제어하는 시대에 인덱스를 제거하는 기능은 있지만 살리는 기능이 없다니...살릴 수 없으면 죽이는 기능을 서비스하면 안되지 않냐
252. 엄마는 세계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인덱스가 지워지기 전에도. -그만.... 엄마들이 세상을 얼마나 잘 살고 있는데요..
<나의 우주 여행에 관하여>
정말이지 미래에 하는 옛날 이야기...
279. 재경을 제외한 다른 비행사들은 항공우주국 본부 출신의 백인 남성이었다는 사실도. - 하.....
뭘 말하고 싶은 걸까?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디자인을 한 걸까?
<해설: 아름다운 존재들의 제자리를 찾아서>
321. 김초엽이 그려내는 소설 세계는 지금 여기의 사회 문제들을 예리하게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여성, 장애인, 이주민, 비혼모를 비롯한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은 선명하고, 성과 위주의 시스템 속에서 비경제적인 가치는 배제되며, 정상성이라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존재들은 역사의 기록에서 배제된다. 첨단 과학기술로 인류가 도달한 세계는 정말로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을까>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차별, 억압, 소외, 고통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가 있을까? - 문제에 대해선 다들 충분히 공감하니 이젠 문제제기는 그만... 방향성 제시로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