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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하나님의 인, 이마나 손에 맞는 것일까요?
이제 마지막 13과를 공부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번 과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인을 어떻게 받는 것인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습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본문을 읽고 아래의 질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1. 누군가의 종이 된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2. 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종이 되고 어떻게 하면 사단의 종이 된다고 하였습니까?
3.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번 소그룹 교재를 통해서 한 사람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되는 과정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온전한 율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죄인이 율법 되시는 예수님의 삶을 깨닫게 되고 자기 삶을 율법에 비춰 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죄 많고 불결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절망이 찾아오고 구원에 대한 모든 소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며 우리의 시선을 십자가로 향하도록 이끌어주십니다. 거기서 우리는 아무 죄 없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돌아가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화를 통해 그 죽음이 나를 위한 것이었음이 깨달아지며 믿어지는 경험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경험을 거듭남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는 한 영혼은 이제 새롭게 태어납니다. 새롭게 태어난 영혼은 삶에 방향이 전혀 달라집니다. 이제까지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전적으로 주인으로 모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 삶의 모든 주도권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길들을 순종하며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인은 매일 자신을 예수님의 삶에 비춰봅니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이 보일 때마다 십자가에서 베푸신 용서를 취할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모든 죄악 들을 버리기로 선택합니다. 매일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이와 같은 삶에는 매일 성장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매일 자신의 마음을 예수님께 바치는 이 영혼은 매일 매일 예수님의 정신과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품성의 열매들이 맺혀지게 되고, 그의 품성은 예수님 처럼 변해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의 삶에는 여전히 버려야 할 죄악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의 삶에는 아직 깨닫지 못한 연약함 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죄악들은 절대로 붙들고 있거나 고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모든 죄악 들을 버리기로 선택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받을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유월절을 지킨 유대인 들은 유월절 다음 날부터 7일 동안 무교절을 지키게 되어 있었습니다. 무교절은 죄를 상징하는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을 먹는 절기였습니다. 이 기간에 유대인 들은 집 안에 있는 모든 누룩 들을 샅샅이 찾아내서 모두 버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유월절이 상징하는바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 들은 반드시 자기 삶에 있는 모든 죄를 샅샅이 찾아내어 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표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2000년 전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 들이라면 우리는 결코 우리가 알고 있는 죄를 고집하거나 붙들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 동물을 가지고 성소로 나아오는 때는 언제였냐하면,
"(27)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28)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로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29)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레 4:27~29)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다시 말하면,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동물을 가지고 나와서 제사를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성소에 나아와 죄의 용서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의 죄가 깨달아지는 순간에는 즉시로 성소로 나아가서 피를 통해 속죄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속죄와 관련된 중요한 원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매일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그분과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게 될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지속해서 우리의 마음속에 율법 되시는 예수님을 더욱 밝게 비춰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되면 될수록 우리는 성령의 비추심을 통해서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우리 속에 있는 죄악 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까지는 전혀 죄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어떤 것이 오늘은 반드시 버려야 할 죄로 느껴지는 것은 성령께서 오늘 나의 마음에 그 죄를 깨닫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즉시로 양을 가지고 성소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 처럼 성소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2000년 전 나의 죄 때문에 생명을 주신 예수님께로 즉시로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며, 예수님의 용서 하심을 받아들인 사람은 더 이상 그 죄를 버리기로 결심한다는 뜻입니다. 그 죄를 버리지 않겠다는 것은 십자가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과 똑같은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십자가를 깨닫고 믿음으로 용서를 취하는 사람 들의 생애는 매일 매일 죄를 버리는 생애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매일 우리의 삶을 이끄셔서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더욱더 명확하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매일 매일 우리의 삶에 버려야 할 죄악 들이 무엇인지를 더욱더 명확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성도 들은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 들입니다. 처음에 그 길을 넓은 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성령의 조명을 통해 우리의 죄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빛 되신 예수님을 따라가면 갈수록 그 길은 좁아집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우리가 버려야 할 죄의 짐이 무엇인지를 더욱더 명확하게 보여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 들은 죄가 깨달아질 때마다 자기 자신을 부정합니다. 즉, 자기 뜻대로 죄를 고집하고 싶은 욕망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주님께서 2000년 전 이 땅에오셔서 나를 위해 생명을 주심으로 이 죄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내가 주인 되어 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나의 뜻, 나의 자아를 모두 내려놓고 예수님만을 주인으로 섬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아를 포기하고 죄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더욱 좁아지는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길이 좁아질수록 그는 자신 속에 있는 죄의 짐들을 계속 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짐을 버리지 않고는 그 좁은 길을 계속 나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길은 계속 좁아져서 그 어떤 죄의 짐도 붙들고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가기 때문에 그 좁은 길에서도 안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는 데서 눈을 떼는 사람 들은 더 이상 죄를 버리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자기 부정의 삶, 자아 굴복의 삶에 싫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죄를 사랑하며, 죄를 버리지 않기로 선택하게 되면 버리지 못한 죄의 짐들로 인해 결국은 낭떠러지기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좁은 길을 여행하고 있는 사람 들입니다. 좁은 길은 그 길이 매우 좁고 험준하기 때문에 이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매우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 들은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자아와의 싸움이 치열해서 이 길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도 느끼게 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를 바른길로 지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직 매일 그리스도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치는 사람들만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서두에 읽었던 그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자신을 하나님께 구별하고 드리는 사람들, 즉 그분의 모든 명령을 좇아 따르는 사람들만 좁은 길을 안전하게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시련이나 어려움이 오더라도,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예수님께 온전히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자신을 자신의 것으로 여길 마음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영원토록 우리의 삶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모시기로 선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선택을 연습하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연약해서 때때로 주님께 드렸던 우리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삶의 주인 되어 사단의 혹독한 공격을 당하고, 슬퍼하며 울부짖어야 하는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예수님께 바치는 연습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결국 선악 간의 싸움의 핵심은 우리 자신을 누구에게 바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바쳐졌던 마음을 자신 들이 가진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사단에게 바쳤던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사단이 이 왕국을 다스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발적인 마음으로 예수님만을 우리의 주인으로 섬기기로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온 하늘은 주목해서 보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떠한 경우가 닥치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는가? 이것을 주목해서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확실해져야, 다시 하늘에서는 죄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치지 않을 사람이 천국에 가게 된다면, 언제가 또 죄가 발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을 사람과 멸망 받을 사람을 나누는 기준은 과연 누가 끝까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는지입니다. 이전에도 반복해서 말씀드렸지만, 끝까지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십자가의 용서를 온전히 깨달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거듭났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계속 키워 온 사람 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오직 예수님만을 최고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부자관원이 갖지 못했던 한 가지, 예수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회복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심지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더라도 끝까지 예수님만을 주인으로 섬기기로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강요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발적인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각 개인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결정이 확실해진 사람들, 그리고 이러한 자발적인 결정이 이제는 영원히 변하지 않게 그들의 마음속에 확정 사람들에게 그분의 인을 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손과 발에 인을 치신다는 의미는 그 사람이 나의 소유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우리 물건에 이름을 쓰고 그 물건이 나의 소유임을 밝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생명까지도 그분께 온전히 바치지 않는 사람을 그분의 소유로 삼으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강제가 될 것이니까요. 오직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음으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들, 그래서 영원토록 그들의 결정을 변하지 않을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인을 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시대에 인치는 일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인은 결코 눈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릴 수 있는 사람들만이 그 인을 맞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소유한 사람들은 결코 그 인을 맞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가 인침을 받은 사람 들이 어떤 사람 들인지를 보여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야 온 우주는 하나님께서 인치심이 공의롭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치심 사건이 끝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에서 나오시게 될 것이며, 사단으로 하여금 제한 없이 이 땅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실 것입니다. 사단은 세상에 온갖 재난을 가져올 것이며 세상의 모든 사람 들을 선동하여 그러한 모든 책임이,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들 때문이라며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공격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이러한 마지막 환란이 다가오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 시간은 충성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단의 공격과 시험을 받으셨을 때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한 손을 놓지 않고 죽음으로서 그분의 믿음을 인치셨던 것처럼, 인 맞은 그리스도인 들도 온 우주 앞에 그들의 충성을 입증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을지언정 결코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안한 때에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목숨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 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온 우주 앞에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 들이 하늘에 살기에 적합한 사람들임이 입증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우주는 의인 들을 하늘에 데려오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의 모든 결정을 찬양하며 아멘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마지막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미 잠든 수많은 그리스도인 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궁금증 말입니다.
마지막 환난을 통과한 사람 들이 구원을 얻는 것은 그들의 힘과 노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십자가를 온전히 깨달았고, 값없이 주시는 은혜와 용서를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환난을 통과하며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 들은, 과거에 이 땅에 살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온전히 깨달은 사람 들이 어떤 믿음에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샘플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만을 최고로 사랑했기에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 사람 들이 비록 그 믿음의 여정 길에 잠들었지만, 그들에게도 시간이 더 주어졌고 상황이 허락되었다면 그들도 그 동일한 그 믿음의 지점에 이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살아서 구원 받은 사람들이나, 또는 이 땅에서 미리 죽음을 맛 본 후에 부활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나 모두 자신의 행위 때문에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는 우리가 그러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인지를 입증해 주게 되는 것이고요.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야 합니다. 과연 나는 오직 예수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인가? 나는 나의 목숨을 버리더라도,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 될 수 있는가? 만약 이 질문에 자신 있게 "예"라고 답 할 수 있다면 나는 거듭남을 경험한 사람이 맞으며, 또한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매일 성장해 나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주목하는 사람 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림들이 십자가에서 눈을 뗌으로 자신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결국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2~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2000년 전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분은 피를 쏟으셨고, 그분은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셨습니다. 온 우주의 통치자이시고 왕이신 그분께서 벌레만도 못한 우리를 위해 그 고결한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롬10:13)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따라 믿음으로 구원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생각할 때 한없는 감사와 기쁨으로 우리의 마음이 충만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놀라운 사랑과 은혜가 감사와 감동과 기쁨으로 누려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늘은 매우 지루한 곳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에서 누리는 기쁨은 그곳의 금과 은 같은 각종 보석들 때문이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생명을 주신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그 사랑을 찬양할 것입니다. 일만년, 십만년, 억만년만 찬양할 것이 아니고, 영원토록 그 사랑과 자비와 인애하심을 노래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토록 우리의 찬송 제목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이 땅에서 그 찬송의 노래를 배운 사람들만이 그곳에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꼭 이 땅에서 그 사랑과 구속의 노래를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은 참으로 값싼 곳입니다. 원하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위대한 선물은 결코 우리에게 값싸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생명 값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니까요.
우리를 위해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영원토록 높이고 싶습니다. 우리를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먼지 나는 길을 걸으시고 천대와 멸시를 받으셨으며 십자가에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자비와 희생을 영원토록 찬양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계시해주시며 하늘 가는 길을 인도해주시는 성령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고 싶습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7)
함께 나눠봅시다.
1. 유대인 들이 무교절에 해야 했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2. 예수님의 십자가를 깨달은 사람 들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3.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인을 맞게 되는 것입니까?
4. 오늘 내가 하나님의 인을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5. 구원의 모든 과정을 살펴보며 느낀 점을 나눠봅시다.
에필로그
저는 신학자가 아닙니다. 저는 신학에 대해 잘 모릅니다. 유식한 사람도 똑똑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해석할 목적으로 이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순한 마음으로 제가 깨달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구원의 과정 들을 제 수준에 맞게 정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혹 이 내용을 살펴보시는 가운데 불편함을 느끼신 분들이 있으셨다면 저의 부족을 용서해 주시기 바라며 부족한 사람이, 적은 지식으로 쓴 글이기에 너그러움을 가지고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혹 부족한 부분 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각자에게 말씀하셔서 바른길로 지도해 주시기를 빕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