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특별한 날의 나는
전창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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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택배 왔습니다.
“택배 왔습니다.”
어라, 올 택배가 없는데?
얼른 주소를 확인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옆동으로 가야할 택배를 놓고 쌩하니 가버린 것이다.
나는 잽싸게 뛰어나가 택배를 놓고 간 아주머니를 불러 세우고,
여기가 아니라고, 여긴 옆동이라고, 그렇게 말했다.
요즘은 택배를 하는 여성도 많다. 원래 택배 기사 아저씨의 가족인 경우도 있는 것 같고, 직접 택배를 배달하시는 여성분들도 가끔 있다.
내가 택배를 갔다 주러 뛰어나가면서 누구를 배려한다 생각했을까? 그 아주머니? 아니다. 틀렸다. 내가 가져감으로 인해, 택배를 못받을 옆동 사람이 생각났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갖다 줄 거는 절대 아니니가. 뭐,택배회사에 전화해서, 가져가라, 잘못 왔다, 정도는 말해줄 수 있겠지. 그러면, 택배 기사분은 열심히 다시 와서 또 옆동에 전달해주고, 그렇게 된다면 옆동 사람은 과연 성질을 내게 될까? 그건 잘 모르겠다. 옆동에 사는 사람이지만, 어떤 사람이 사는지 얼굴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내가 뛰쳐나가 그 아주머니를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어휴! 주소, 제대로 보고 다니자구요! 택배 기사님들은 그런 실수 별로 없는데, 택배 부탁받으신 분들이 그런 실수를 종종 하는 듯 하니, 꼭 정확히 확인!
그나저나, 옆동의 우리 호수에는 누가 사는 걸까? 가끔, 궁금하기도 하다. 아, 그렇다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까지 모르는 건 아니니, 너무 깐깐하게 굴지는 말기.
2. 내가 쓴 글이 순간포착 된다면!
그런 생각을 해 봤다.
누군가가 나의 글을 딱 한 줄만 보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말을 해 준다면?
그러니까, 그 한 줄 외에는 나의 어떤 글도 읽지 않고, 그냥 딱 그 한 줄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의 기분은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쓰는 글에 조금 더 정성을 들여야겠다.
물론, 지금 내가 정성을 들이지 않는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나 지금 최선을 다해 요령을 부리고 있고 나 지금 최선을 다해 꼼수를 부리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팔리게 쓸까 열심히 연구 중이다. 므흐흐흐흫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 한줄의 포착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뀌게 한다면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다!) 나는 반드시 그렇게 말할 것 같다. 나 정말, 엄청 성공한 사람이라고!
근데, 그 바뀐 인생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실패로 가는 길이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건? 절대 아닐 거다. 그러면 절대 안 돼지! 나 때문에,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나의 글 때문에 바뀐 인생을 그린다면, 나의 소중한 글들이 더욱 더 아름답게 빛날 것이고 나도 아름답게(?) 빛나야 하는데……
하하. 누가 그렇게 말해주지 않다도 나 멋진 인생 살고 있다. 나에게 그렇게 말해야겠다.
3.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게 될 그날을 위해
아무리 돈이 좋아도, 나는 정당한 대가를 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받는 돈은 찜찜하고 서글프다. 정당한 노동에 정당한 대가.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내가 열심히 노력하여 쓴 만큼의 대가만을 원한다. 어떤 때 그것이 대박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그것이 쪽박이 될 수 있음에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것은 위험수당이 항상 붙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따로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일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글을 써서 글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천재일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참고할 증거는 있다.
대부분의 성공한 작가들은 가난했다. 물론, 이런 게 맞다면 성공선-일반착오 오류를 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다. 가난해서 돈을 벌려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글이 생존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걸까. 정말, 등단을 하고 그 상금을 챙기고 그리고 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면 그게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경우야 어떻든, 정당한 노동에는 정당한 대가가 따라야 한다. 별다른 공을 들이지 않고 타게 되는 상은, 별로 감동적이 못하고 진정성도 없다. 언젠가 내 글도 그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게 될 그날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글 하나를 힘껏 써 보고 있다.
4. 세상이 날 위해 돌아간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이 날 위해 돌아간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나 외에 모든 사람은 옳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다르다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사는 게 힘들었다. 다른 사람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은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니, 사는 게 덜 힘들어졌다.
나만 옳은 게 아니라, 나도 옳지만, 다른 사람도 옳은 것이다. 나도 틀릴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틀릴 수 있는 것이다. 모두는 다르기 때문에, 싸울 수도 있고, 화합할 수도 있다. 그걸 깨달았을 때, 쭈그려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울었을까, 웃었을까. 삶의 작은 발견이 삶의 큰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큰 변화를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고, 그 성장은 나의 능력을 무한대로 키우도록 도와준다.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기에, 오늘 조금만 더 힘써서 그 차이를 인정하자. 인정하고 나면, 세상 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루 먼저 일거리를 마치고 느긋하게 마지막 날 여유를 부리는 우리 사회 어떤 부분의 직장인처럼. 내일, 조금 더 느긋하게 하루를 맞이하고 일터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보다 더 가벼워지기를. 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5. 욕심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사실,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하루하루를 제 시간에 맞춰 뭔가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로는 내가 누린 적 있는 눈부신 시간들을 거스를 수도 있다. 그 시간들이 내게는 커다란 의미가 되고 있을 때,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은 누가 뭐라 하건, 내가 하루를 더 산다면, 죽음은 그만큼 더 가까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인생이 눈부셨다면 그 눈부심이 오래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만큼 더 많이 아팠을 것이고 인생이 별달리 빛난 것 없이 남루했다면 그 남루한 모습 때문에 초라해진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빛난 것인가, 남루한 것인가. 때로는 그 답을 찾으려 하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 내가 빛나고 있는 건지, 남루한 모습으로 남게 될지는 지금 여기에서 내가 결정할 문제는 아닐 거 같다.
욕심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신문이나 잡지에 나의 글을 연재하고 싶은 욕구, 그럼으로 인해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싶은 욕구, 또한 나의 책을 출판하고 싶은 욕구. 그런데, 그 욕구 이전에 나를 붙잡는 건, 나는 계속 잘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다. 내 스스로 나에게 허락하지 않은 시간은 어쩌면, 허락도 없이 데려가고 있는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일지도 모른다. 그 음침한 골짜기에서 나의 글이 탄생하고, 읽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내가 부리는 욕심, 내가 부리는 욕구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헛된 마음이 아님을 기억하게 된다.
시간이 늙어버려 지나 버린 세월 사이에는 새와 나비, 벌레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들마저 허락 없이 데려가려는 몸부림에 가끔은 힘에 겨운 발걸음을 내딛어보지만, 지금 그렇게 디디고 있는 돌의 덩이들, 돌의 아픔들은 치열한 삶의 경쟁을 예고하면서 내년 봄을 기다린다.
6. 나 다시 태어나고 싶다라고 생각했었지만
언제였던가. 나 다시 태어나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그때는 분명, 이번 생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생은 분명 존재할 거라, 그때는 이렇게 살지는 않을 거라고, 더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 더 좋은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의 삶을 부정하였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순간, 이대로 죽으면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거라고 이 따위 세상에서는 다시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게 마음이란 것은 수십번씩 바뀌는 순간순간의 어느 시점에, 나는 비로소 나의 삶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으며, 그 삶이 내게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다
한번 쓴 글은 다시는 소비되지 않을 거란 생각은 나만의 착각일 거다. 누군가는 같은 글을 몇 번씩이고 다시 보고 있을 것이며, 그리고 그 글과의 재회는 볼 때마다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에 자꾸만 반복시청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반복시청에 나의 글도 포함이 되어 있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반복되는 하루는 없지만, 반복되는 일상이 나를 새롭게 하기에, 나는 존재한다. 나는 글만 달랑 남겨두고 사라지지만, 내 글은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아름답게 새겨질 것이다. 남겨진 글들아, 사람의 마음에 속속 파고들어라, 하면서 사람들을 유혹한다.
삶에 연습은 없고, 삶에 훈련은 없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무대 위에서 상연 중이다. 그러므로, 이 무대가 조금 더 아름답고 흥미롭길 바란다. 누군가는 나의 본모습을 착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조차 나의 모습임을 알기에, 나는 무대 위에서 열심히 연기 중인 삶을 살아간다.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는 무대 위, 나는 누구보다 뛰어난 대배우가 되어 간다. 무대 위에서 같이 연기 중인 수많은 연기자들과 힘께, 무대를 보고 즐거워하는 관중들과 더불어!
7. 봄비는 조금 따스한 느낌이지만
어머니의 구수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잔소리꾼일 듯한 어머니가 투박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가을 저편에 있는 봄비. 가을에 오는 비가 봄비 같을까. 조금은 다른 느낌이긴 하다. 봄비는 조금 따스한 느낌이지만, 가을비는 조금 차가운 느낌이다. 그래도 봄이나 가을이나, 비가 오는 날은 조금 서늘하다. 그 서늘한 기운에 정신을 못 차릴 때도 있다. 집에 있는 날, 비가 오면, 마냥 신이 난다. 빗방울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낭만적인 느낌이랄까. 물론, 외출할 때 오는 비는 그리 반갑지 않다. 우산도 써야 하고, 차는 막히고, 길바닥은 젖어서 조심조심 걸어야 하고, 전철을 타러 들어갈 때면, 비에 젖은 우산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하고. 그래서 게으름쟁이한테는 비가 오는 날, 집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는 게 정말로 신나는 일이다. 무엇을 해도 신이 난다. 무엇보다도 이런 날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신이 난다. 그 신나는 마음에 내 마음은 또한 들뜨기 시작한다. 이유 같은 건 없다. 그저, 그 순간의 분위기, 그 순간의 즐거움에 취해 하루를 만끽한다. 정말, 게으름쟁이 잘 자게 비가 오시는 날이다. 봄비도 그렇고, 가을비도 그렇다. 여름이나 겨울이 아닌 한, 비는 그렇게 내 마음을 설레게 하기도 한다.
비가 필요한 지역에는 비가 내리게 하고, 비 피해가 있는 지역엔 비가 오지 않게 되기를! 마음으로 바라본다. 저 너머에 있는, 이런 기도밖에 할 수 없는 게으름쟁이, 그가 바로 나다. 눈물겹지만 편안한 길을 걷고자 하는 하나님의 다이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