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강
7-3-2. 풍자(satire)
풍자는 한 마디로 잘못이나 모순 등을 빗대어 비웃으며 폭로하고 꼬집고 깎아내리는 수사법의 일종입니다. 그러나 풍자는 아이러니와 비슷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부정적이며 비판적이므로 아이러니보다는 날카롭고 노골적이며 어떤 때에는 공격적인 의도도 있습니다.
오늘의 현대시들은 문명에 대한 비판이나 부조리, 부패, 부도덕 등에 대한 현실적인 풍자가 비유나 상징 또는 주제를 통해서 많이 등장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현실에 대한 풍자가 작품으로 형상화할 때 그 의미가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더욱 강하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 작품들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다짜고짜로
내게 바싹 다가 서더니만
‘너 돈 있나?’ 한다
나는 ‘있다’고 하니 또
‘너 아들 있나?’ 한다
나는 또 ‘있다’고 하니
‘그럼 너 죽는다’ 한다
나는 놀라서
‘그게 무슨 소린데?’ 하니
‘이 등신아 이게 요즘 유행어다’ 한다
--김연대의「눌청증(訥聽症)」중에서
아마도 당시 세간에서 화제였던 의사인 부자 아버지를 살해하고 재산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어느 못난 아들을 풍자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이어한 시적 어조가 적시(摘示)하는 의미는 시의 맛을 상승하는 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이러한 풍자는 옛 한시(漢詩)에서도 자주 표현되고 있습니다. 김삿갓이 평양에서 기생과 노닥거리면서 시로 화답하지만 풍자적인 요소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삿갓) 평양기생하소능(平壤妓生何所能)-평양 기생은 무슨 일에 가장 능한가
(기생) 능가능무우능시(能歌能舞又能詩)-노래도 춤도 능하고 그리고 시도 능합니다
(삿갓) 능능기중별무능(能能其中別無能)-아무리 능하다하나 능한 것이 별로 없구나
(기생) 월야삼경호부능(月夜三更呼夫能)-그러하오나 달 밝은 삼경에 남자 부르는 것 이 가장 능합니다
한편 ‘춘향전’에서 어사 이몽룡이 남원에 당도해서 변사또의 생일잔치 말석에 앉아 한 수 읊은 것이 당시 사회적인 부조리를 신랄하게 공격하는 시로 그의 의미는 백성을 위하는 충정이 서려 있습니다. 물론 이 시를 듣고 일부 눈치 빠른 관속들은 줄행랑을 쳤지만, 변학도 사또는 술에 취해서 흥청망청하다가 암행어사 출도를 접하고 체포되어 봉고파직(封庫罷職) 되었다는 소설 속의 스토리입니다.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금동이에 담긴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肴萬性膏)-옥소반 올려진 진미의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촉루낙시민루락(燭淚落時民淚樂)-촛물이 흐를 때 백성도 눈물 흘리고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성도 높더라
이와 같이 문명이나 사회에 대한 시각화와 물질화에 대한 비판이나 이를 고발하면서 개선하고자 하는 풍자는 어디까지나 비평적 태도를 가져야 하며 감정보다는 이성에 의한 풍자가 오늘의 문학적 요청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풍자시는 사회, 인물의 결함, 죄악, 모순 등을 정면에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비유 등의 표현을 통해서 재치를 활용하거나 비평하는 시입니다. 주로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암담하고 억압된 시대에 많이 성행하지만, 풍자시는 단순히 현상을 김빠지게 만들어 독설(毒舌)을 뿜게 할뿐만 아니라, 현상의 그늘에 숨겨진 본질을 꼬집어 내는 뚜렸한 비평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현대의 풍자시는 풍자 그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도 시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다하여 그 속에 풍자정신을 둔다고 하는 종래보다 한층 복잡한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부드럽게 노래 불려지는 것도 있으며 명확한 이미지와 리듬을 살리는 것도 있습니다. 시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무엇보다도 시로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데 풍자시의 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7-3-3. 역설(paradox)
역설은 일반적으로 상식이나 믿음을 뒤집어 엎는 이론을 말하는 것으로 언뜻 보기에는 진리와 모순된 것 같으나 실제로 그 속에는 상당한 진리를 내포(內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는 ‘좋아서 죽겠다’거나 ‘즐거운 비명’ 등이 에에 해당합니다. 하나의 기론(奇論)이나 역리(逆理)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바람 짙은 소망의 둘레 안에서 모순의 뜻은
포도주로 변하고 있을까
--신동집의「모순의 물」중에서
잘 모르겠어요
왼쪽 옷고름이
흠뻑 젖은 채
반으로
찢어져 있다니
가까이 보기 싫어
입술처럼 씹습니다
멀수록 눈부신
당신
오늘은 당신 몫입니다
--김봉길의「청산별곡 주제에 의한 변주 . 2」중에서
이처럼 역설을 시의 구조로 보는 현대시에서 시를 역설의 언어로 보는 것은 역설이 시적 진술로 성립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3-4. 패러디(parody)
패러디는 다른 사람의 작품 특성이나 문체 또는 운율 등을 모방하여 우스꽝스럽게 바꾸어 놓은 것을 말합니다. 다분히 풍자적인 의도가 깃들게 마렵입니다. 우리말로는 골계(滑稽), 익살, 해학(諧謔) 등으로 시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내 눈 맞출 색한을
어서 좀 불러 주어요
세버들허리 낭창거리며
세버들허리 낭창거리며
압구정동으로 가야것쓰나
난 지금(‘93) 패드중이거들랑요
--이수화의「패러디:어우동」중에서
골목처럼 그림자 진
거리에 피는
고독이 매독처럼
꼬여 박힌8字면,
청계천변 작부를
한아름 안아보듯
치정같은 정치가
상식이 병인양 하여
포주나 아내나
빚과 살붙이와,
현금이 실현하는 현실 앞에서
다다른 낭떠러지!
--송 욱의「何如之鄕5」중에서
이와 같이 패러디는 어떤 대상을 미묘하고 기발하게 변형하여 풍자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어나 문장 이외에도 대상 사물이나 소재가 존재를 희화(戱畵)하고 있다는 점에서 흔하지는 않지만 현대시인들이 즐겨 쓰는 경향도 있습니다.
위의 작품에서는 ‘어우동’이라는 특정 인물을 통해서 ‘압구정’의 풍물들을 해학적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고독’과 ‘매독’, ‘치정’과 ‘정치’, ‘실현’과 ‘현실’ 등으로 정치인들의 도덕성을 풍자하고 있지만 너무 현실 비판이 노골적으로 묘사되면 말장난, 좀더 고상하게 말하면 언어유희(言語遊戱) 혹은 펀(pun)이 될 염려가 있어서 시적 완성도에서 약점을 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