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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May(수)
오늘 12시에 Pilot간다는 Mr.Saka의 목소리가 무척 생기 있어 또 속는 셈치고 기다린 하루가 영 속고 말았다. 제놈들도 염치가 있는지 어물어물 한다. 별로 뜻은 분명치 않으면서도 처음 글자 익힌 국민하교 1학년이 동화책 읽듯이 훑어가는 영어소설. 그리고 낮잠, 글씨쓰기 한 시간정도, 세끼 밥. 다음은 VHF앞에 앉아 마치 설익은 감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리듯이 온갖 잡소리 속에서 들어야 하는 시간. 한 장을 읽고 다음 장을 넘길 때는 벌써 앞장을 잊어먹더래도 그 뜻만은 알 것 같다. 더욱 유심히 읽는 신동아의 정치 경제물. 그러다보면 하루는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새로운 오늘이 시작된다.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되지 않도록 해보려는 노력이 마음같이 되지 않는다. 너무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은 것도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나보다. 며칠간 바람이 멎고 마치 호수 같은 해면을 이루더니, 바람 없는 날 모기가 들끓던 어릴 적 초여름 저녁처럼 어디선가 수많은 벌레들이 불빛을 찾아 모여든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어느새 두어군데 물렸다. 가렵고 따갑고 부릅튼다. 엎치고 덮친 위에 또 올라타는 격이다. Las Canpex의 Mr.육으로부터 전보, Mr.Tikam 및 Parso 형제가 London에 출장 중이니 본선 전보내용을 잘 모르겠으니 직접 연락하란다. 아마도 작업비 송금치 않으면 양하작업 거부하겠다는 전보얘긴 모양이다. 그 친구도 딱하군. 그 회사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이 더구나 사주가 한국선원 상대하기 위해서 고용한 입장인데도 그렇게 깜깜해서야 어떻게 한담.
“이미 관계서류는 Mr.Kishinani편에 송부했으니 속히 London과 Contact 하라”고 답했다만 억세게도 손발이 안 맞는군. 제대로 받을 것 받고 넘겨줄 것 빨리 넘겨주고 갖출 것 갖추고 다음 항구를 향해 닻을 올리는 것이 오직 유일한 소망일 뿐이다. 저들한테 가졌던 한 가닥 기대도 오히려 실망만 크게 했을 따름이다. 보낼 친구들이 걱정이다. 늦어도 이번 주일내에는 여기서 떠나 보내야 하는데-.
발전기가 20여분 완전히 Stop되다. 큰 원인은 아니었으나 담당 기관사들의 주의를 촉구하다. 아무것도 안 된다. 통신. 보트. 식품냉장고 등등. Cooler를 소재해야 겠단다. ‘입항 일정봐서 입항 후에 기회 봐서 하시오.’ 마침 Agent에서 예정으로 알려온 12시를 한시간 반쯤 남긴 시각이라 더욱 당황하게 했다. 긴급한 사고시에 기관장이 맨 먼저 상황을 파악하여 Bridge에 보고하고 그 다음 조치를 해야 하는 상식을 모르는 모양이다. 옛날 동방51호의 김원술 기관장처럼 경험이 풍부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일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이유를 새삼 설명해가며 가르치기에는 너무 늦다. 방심! 그것은 절대 금물이다. 이제 마치고 다시 시작해야 할 때는 배전의 주의를 해야 한다. 장기간 Waiting하는 것이 자칫하면 소홀하고 잊어버리기 쉬운 것이 곧 큰 사고의 원인이 된다. 각 기기, 계기등에 주유하는 것도 Part별로 실시 재점검하도록 하다.
4th.May(목)
짜증과 울분만 치미는 종일이다. Mr.assaf은 아예 대답조차 없다. 아마도 일부러 피하는 모양이다. 그럴테지. 제놈도 낯짝이 있으면-. 출장 중이던 Mr. Okamudo가 대신 나왔다. 그놈만 불러 닥달 했더니 오후4시 이후에는 아무도 안 나온다. 속이 부글부글 할 수밖에 -. 당장 뛰어가서 책상이라도 들썩했으면 싶다. 제놈들도 문틈에 손가락 끼인 듯이 애먹는 줄은 안다. Trans-con에 졸리지, 나한테 졸리니. 그래서 직접 Mr.Toni가 Tincan까지 뛰어 갔다고도 했다. 아직도 행정체제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아 적당히 비집고 들어가서 조금 쑤셔주면 그걸로 끝나는 수가 있기도 한 모양이다. “입항이야 늦어도 상관없지만 귀국자 좀 빨리 보내라. 안 그러면 모두 봇다리 들고 여기 사무실에 와서 기다리게 할테니, 호텔부터 수배해라” “Oh, No”다. 좌우지간 입항하면 모두 다 하잔다. Immigration이 어떻고 호탤잡기도 힘들고 어쩌고 한다. 어째 내일 내일만하냐? 한 달도 좋고 두 달도 좋으니 정확한 일정을 정해라 차라리 아침 일찍 보트로 직접 나왔더라면 좋았을 걸 ‘오늘’이란 소리에 또 하루 발을 묶은 셈이 되었다. Berthing meeting에 갔다는 Mr.Toni가 분명이 왔을 텐데 안 왔다고 시침일 뗀다. 별수 없다. 기다리는 수밖에-. Iceland호 입항하다. 2,300톤급 냉동운반선, 반도해운 소속이랬다. 2월에 동경출발, Sydeny거쳐 이곳엘 왔다고. 3개월 기다렸다는 말에 정신이 확 드는 모양이다. “여기서 만기 채울 각오하소” “허허허..” 질좋은 소고기나 좀 얻고 싶으나 이젠 그것도 삼가야겠다. 잘못하다간 ‘히로시마마루가 Lagos에서 거지노릇하고 있다’는 소문이 부산까지 날라 갈 우려가 다분히 있다. 선내의 일까지 회사가 알고 선장의 소행을 안 선원가족들이 선장의 부인을 향해 더욱 큰 소리로 욕을 한다는 요즈음이다. 벌써 몇번째인가? Mino Star, Blue Diamond, Matsuyama, Eastern Peal, Sun Flower, 동방 등등. 물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사는 것이지만 그 내용을 모르는 하급선원들은 그렇지가 않다. 어쩌면 벌써 소문이 났는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으니 다음 기항지에서 구입하자.
崔翔圭씨의 ‘빈자의 탑’. 8남매를 둔 마흔 여섯살의 가장이 9번째의 아기를 자신의 손으로, 마침 18살난 맏딸의 협조를 받아서 순산시킨 얘기다. 사내자식이 여자 애 낳는 것을 유심히 지켜봤는지는 모르나 자세히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 보통 남편은 아내의 산실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으려 한다. 병원에서도 그렇지. 복도에서나 안절부절하지 절대로 산실 안엔 못 들어간다. 그게 무슨 법률로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나, 흔히 하는 말로 남자가 자기 아내 분만을 목격하면 부부생활에 파탄이 온다나 -. 그게 동서양을 막논 하고 불문율이 돼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여자쪽에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 너도 여자니까 생각해 봐라. 상판 남들 앞에, 그것도 남의 남자 눈앞에 그가 의사라는 것 하나를 핑계로 두 다리를 벌리고 있기는 해도 남편이 보는 것은 부끄러워 하거나 게면쩍어 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니? 그게 떳떳한 일이고 아무 불만도 없는 일인가? 원래 그게 자기에 둘 사이의 일이데 말이야, 그리고 또 자기 아기를 낳는 것을 목격하고는 생각이 이상해지는 남자의 마음속은 또 뭐냐? 아기를 낳는 건 누구고, 낳아지는 아기는 누군데? 그게 자기네끼리의 일인데 말이야. 그런데 그게 당연한 일로 통하고 있단 말이야...」
순산에 협조한 딸에게 아버지가 한 말이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한 것은 아니고 사정이 부득이해서 한번 받아본 낸 것이 결국 산모보담 더욱 녹초가 되긴 했어도 뜻밖의 그 일로 인해서 아내에게 새로운 애정을 느꼈고 오히려 지금끝 없었던 이해심과 존경심마져도 생겼다고. 그러길 네 번째라는 캐리어가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능숙하게(?) 딸을 지도해가면서 조산을 끝낸 후 딸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신비스럽게 느끼게 했고,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큰 감동을 줬으며 그래서 생명의 존엄성을 무겁게 느끼게도 됐으며 9남매가 결코 많지 않다고 생각하겠금 했다. 비록 소설속의 인물이지만 존경스런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낳기 전 추해서 모두 모은 애들한테 한 교육의 실체는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9남매가 모두 2억대 1을 돌파한 정수분자라는 것, 그래서 용감하고 강하며 잉태 전에 수태조절 같은 것을 했으나 그걸 돌파한 정충시절의 얘들마져 칭찬하는 그는 호걸이다. 스스로 9층탑을 쌓았다고 하면서 한 층 한 층 쌓여 갈 때마다 느껴지는 부담 때문에 즐기던 술마져 끊고 더욱 아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그는 나 역시 애들을 가진 ‘아버지’로서는 우러러 볼 사람이다. 겨우 딸 셋을 가졌으면서도 한 번도 곁에 있어주지 못했고 그들이 자라는 모습조차 볼 수 없었으니 그 재롱을 함께 하지 못하는 그 서운함은 내 것이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존재가 보이지 않음으로서 받는 애들이나 그것을 의식하면서 길러야 하는 아내의 입장에서 볼 때는 단순한 감정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늘 염려했듯이 혹시라도 그것이 애들의 성격에라도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분만, 출산을 한다는 것은 실로 경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과학으로 인공생명체가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그것이 인류사회에 엄청난 반대의 벽에 부딛치는 그 원천적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내 자신도 출산현장을 잠시 본 기억은 있고 또 옆에서 조산한 경험을 자세히 들은 적은 있어 읽기가 한결 실감나긴 했으나 막상 그처럼 느끼기는 처음이다. 한번쯤은 진통을 겪는 동안 손이라도 잡아 줬더라면 -. Africa의 어느 종족은 아내가 진통을 할 때면 남편은 밖에서 함께 진통하는 시늉을 한다고 했다. 문명된 사회에서 의학이라는 이름아래 약삭빠름에 비한다면 얼마나 순진하고 진실성 있는 행위인가? 지금까지 별로 나이를 의식한 일은 없었는데 이제는 차츰 그런 걸 느낀다. 아이들의 교육, 장래문제, 가정의 유지, 그리고 부부의 사랑도 더욱 절실한 현실로서 닥아오고 있다. 주위의 사람들을 지나치게 염두에 두고 살아가서는 안 되겠지만 또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없는 일.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열심히 뛰고 벌어야겠고 벌기위해서는 또 다른 한쪽의 욕망을 눌러야 하니, 양립할 수 없는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 아내의 심정에 많은 공감을 갖기도 한다. 결국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처지라면 최대한의 노력으로 최대치의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고 가꾸어 나아는 길 뿐이다. 늦지는 않다. 요는 이제부터가 중요하고 어려워갈 따름이다.
5th. May(금)
5월 5일. 한국 달력에는 분명히 붉은 글씨로 되어있다. 어린이날, 휴일이다. 내리 3년을 같이 해주지 못하는군. 진정 애들이 서운해 하겠다. 나이들수록 애들과 마누라의 인식이 뚜렷해 가는 데 비해 이런 날마져 곁에 있어 주지 못하는 주제가 더욱 한스럽다. 아침 일찍 또 Assaf를 불렀다. 또다시 어물어물 하면 당장 뛰어갈 작정, 그래서 한 번 와장짱할 각오를 갖추고 -. 우선 'Big Boss' 하면 얼른 대답을 하는 Mr.Toni의 목소리가 한결 희망적인 느낌이다. ‘미안하다’는 말이 앞서는 거야 당연지사. 오늘이나 내일 아침까지는 꼭 접안되니까 오지 말고 기다리며 VHF Ch.16을 잘 Keep하란다. Bunkering, 선원귀국 문제 등은 입항하면 즉시 하도록 수배되어 있다고-. “Are you kidding me now?” “Oh, No, This is sure.” 그래서 주저앉은 째 기다렸다. 오후 Novement까지 기다리기도 그렇고 C/O를 직접 Tincan No.10으로 보냈다. 그게 가장 정확한 예정이 될 수 있다. Myrtia의 다음이라 했으니 그 배의 LOA도 알아볼겸. 그러나 PM Move.에 나왔다. '17:00 Hiroshimamaru Sea to T.C 10. Pilot Kilo'라고. 현장에 간 C/O로부터는 내일 오전 10시 출항예정이라고 한다. 되긴 되는 가보다. 내일은 결단이 나겠지.
Byron의 김 선장이 "물 좀 줄라요?" 한다. “여기서 물은 약으로 쓰는데 아니요?”
결국 5시에도 입항을 못했다. 대신 내일 아침 08:30시 Pilot Juliet이라는 AM Move를 청취하다. 아침부터 설사가 난다. 근간에 없던 일인데 -. 며칠간 찬물을 많이 마신 편이고 다소 심한 일교차인데도 그냥 옷을 가볍게 입고 잘 때는 벗은 채 덮지 않은 탓인가? 미열과 함께 약간의 한기도 있다. 맑은 물 쏟아지듯이 내리 붓는 변소출입을 서너번 했다. 제기랄이다. 하나도 속시원이 돼는 게 없는 데다 이런 것 마져 끼어들다니. 아무래도 이번항차에는 무슨 놈의 ‘마’가 끼인 모양이다. 워낙 일이 삐뚤어져 가니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결국 인간생활에 미신이 생기고 종교가 끼어든 것도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럴수록 남은 두어달의 긴 항해가 염려스럽다. 더욱이 3/O가 결원일 경우 내가 한 당직을 봐야 한다. 갈길이 지구를 반 바퀴를 돌아야 하는 13,200마일이 남았는데-.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래서 무사고 안전항해를 마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건강한 몸으로 무사히 귀국, 귀가하는 것이 선주측, 대아 그리고 내 가족에게도 가장 귀중한 선물이 될게다. 오늘 하루 아빠 없음을 무척이나 서운해 했을 거다. 마음에 걸린다. 정화 정주가 아빠 거짓말쟁이라고 해도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지 않은가. 가정의 달 5월! 이 달은 또 어떻게 전개되어 갈 것인가? 내일을 분기점으로 새로운 한 항해가 이루어져 나가길 빌 뿐이다.
6th. May.(토)
08:30 Plot Juliet의 소식은 없다. 또 미역국을 먹는가? 종일을 VHF앞에서 서성대다. 결국 오후 4시가 돼야 되겠다는 그네들 얘기를 도청(?)한 후에 Assaf에 문의하니 역시 그렇단다. 5시 Pilot J가 나간다고. 이런 경우에는 시간이 곱빼기로 갔으면 좋을 성 싶다. 오후 직접 Tinkan Port에 문의하니 오후 5시에 접안예정이라 했고 4시 10분에 점잖은 목소리로 Pilot Juliet이 부른다. 방파제 바로 입구에서 승선, 18시 30분에 접안하다. 이번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다 마치고 나와야지.
늦게 온 키다리 Saka군에게 청수, 급유, Cash advance, Shipchandler, 귀국선원의 Ticket 등을 최종 신청했다. 차항은 Las가 유력시 되는가보다. 그처럼 마음 조여 했는데 또 언제 외항 Shifting 이란 날벼락이 떨어질는지 자꾸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바로 그런 일이 없어야 정상임에도 수시로 일어나는 곳이 또 한 이곳이다. 어쨌든 줄곧 배에서 지키자.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저 땅만 보면 나가고 싶어 못 견디는 놈들이 또 돈타령이다. 거의 습관적이다. 아무 일도 없고 쇠푼도 없으면서 이 배 저 배 기웃거리는 놈들도 있다. 하필이면 내일이 일요일이람. 아무것도 안 되겠군. 우선 보낼 사람부터 보내고 급유만 하면 큰 문제는 없어진다. 다음을 위한 준비는 그런대로 갖추어 질 것이다. 내일부터 무사히 마치고 Lagos를 떠는 날까지를 위해 축배라도 들자. 그리고 푸근히 잠이라도 자두자.
7th. May (일)
예정보다 늦게 작업을 시작, 빌어묵을 깜둥이들이 Slow Motion 하는 데는 속이 터질 지경이다. 기한이 5일이랬다. 이 기간동안 모두 양하하지 못하면 또 나가야 한다나. 어느 놈 겁주는 것 같다만 이제는 그리 쉽게 넘어가지도 않을 거고 그것은 너희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필요하면 우리가 거들어 주긴 할테니 작업비만 잘 내라. Mr. Toni란 놈, 일본 어서 안 가고 싶냐고 꼬신다. 웃기는 친구들이다. 대리점 잠시 다녀오다. 마침 Trans-con의 Mr.Lalu가 있다. 귀국자 화요일(9일) 가능하고 급유는 서로 미룬다. 좌우지간 10일이 Dead-Line이다. 알아서 하고-.
Cash도 내일. 모든 것이 내일이다. Mr.Ashok가 꼴사납게 설친다. 개망나니 같아 상대하자니 속이 뒤틀리고 그냥 두자니 일에 지장이 있다. 선박업무의 기본상식을 무시하고 대드는 데서 항상 C/O와 의견의 마찰이 있다. 모든 일에 돈이면 쉬이 야간작업도 하고 NO.1 창고는 Shore Crane으로 수배를 해라. 그럼 3-4일이면 끝낼 수 있다. 너 보담 내가 더 급하다. 이놈의 Lagos는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으니까. 또 석달을 Waiting시킬라고. 설사가 계속 멎지 않는다. 약을 먹지 않고 견디는 중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런가 몸이 시원찮다. 기운이 없고 늘어지는 느낌이다. 더욱 기운을 내야한다. 우선은 스스로를 이기고 봐야 한다. 내일부터 한 주일이 고비다.
8th. May(월)
기다린다는 것도 여러 종류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 하숙비 떨어진 학생이 고향의 등기편지 기다리는 것도 감질 나는 일이고, 숯불에 고기 한 점 얹어 놓고 익기를 기다리는 것도 침 넘어가는 것이다. 아무튼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리 좋은 소식일 지라도 그 과정만은 불안을 낳게 하고 짜증을 나게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욕이 저절로 튀어 나오게도 한다. 소리마다 ‘내일 내일’하는 놈들이 오전을 기다려 봐야 소식이 없다. 비 탓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아침부터 비가 오긴 했다. 하루의 비는 10여일 만큼이나 마음을 되돌려 놓는다. 중국 우동집 이상으로 ‘곧 된다.’는 대답을 듣길 여러 번, 해가 설핏해서야 Safa란 녀석이 선용금을 가져오고 해가 지고 컴컴해서 Hakeem이란 녀석이 Ticket을 가져왔다. 그래도 저희들이 잘했다고 뭐 없냐 한다. 귀국자 10일 오후2시 Lagos 출발. Athenes, Hongkong 경유 서울이다. 며칠만인가 이걸 받아 쥐기까지 -. 잘 됐다. 한시름 놓겠다. 10일 아침 8시반에 차가지고 오도록 Hakeem과 약속을 했다만 잘 될라나. 대아, 德丸에 보낼 월말 보고서 작성하다. 일본 것도 귀국자편에 보낼 작정이었는데 어렵다. 항상 일을 제때 하지 않고 늘 미뤄두는 버릇이 고약한 줄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너무 자주 변하는 이쪽 사정 때문에 여러 번 되풀이 한 것이 그렇게 돼버린 것이다. 임박해서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허겁대니 나 혼자니 망정이지 사무실 같은 데서 그랬다간 같은 직원들이 이상하게 뵐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내 게으런 탓이다. 각 Part 별로 송별회 한다고 거의 나갔나 보다. C/E를 불러 다시 한 번 주의를 시켰다. 끝까지 그렇게 해서는 좋을 게 없다고 -. 주부식 인계인수에 잡음이 들린다. C/O, 1/E. R/O가 올라오기까지 했다. 아무리 미천한 사람이라도 그 최후의 자존심은 인정해 줘야 하지 않겠나? 그 불신풍조가 끝까지 분위기를 망칠까도 싶다. 적어도 공공기관에서 인정을 하고 또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해서 한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 승선한 사람을 같은 동료들이 인정을 해주지 않으면 과연 그 사람이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아랫사람을 거느리고 승선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을 가르치고 이끌기 위한 것이 본래의 목적이 아니다. 다만 같이 있는 동안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의 능력을 100% 발휘하도록 이용하고 사고 없도록 하면 된다. 그 이상의 것을 부수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다. 그 한계를 벗어나는 데서 불만이 생기고 신경질도 낸다. 물론 지금까지 가는 C/S 자체가 그런 결과를 초래했고 C/K 그놈도 성깔이 못돼 전체적으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나도 안다. 그렇지만 남은 2-3개월을 위해 그놈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도 또한 내 의무다. 다른 일과 달라 강요하고 시킨다고 해서 없던 음식 맛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원래 맛이란 정성에서 나온다. 제가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한 놈 때문에 전체가 입맛을 잃어야 할 판아닌가? 맛이 없어도 맛 있다고 해주어야 더 성의를 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제 놈들이 적당히 한다고 해도 될 일이 아니다. 그렇게도 서로를 믿지 못하면서 어떻게 생명을 서로 맡기고 한 배를 타냐? 지난해 그런 사례가 있었다고 해도 아무렇게나 아무나 그렇게 보지말자. 공법이라는 것은 상호간에 약속이 없고, 신의가 없으면 이뤄질 수가 없다. 꼭히 그네들이 의심스럽거든 일단 본인들의 의견만은 듣고 해라. 그렇지 않으면 나도 찬성도 책임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예상대로 C/S, C/K가 뒤따라 올라왔고 결국은 서로간에 원만히 이해를 한 모양이다. 여우를 피하고 보니 호랑이를 만난다더니 남은 두어달이 걱정이다. 부족한 인원, 장기간의 항해, 계속 더운 기후, 무사히 마칠 수 있어야 할텐데. Blue Kochi의 1/E와 2/E가 찾는다. FAO 9기. 10기생이란다. 내가 선배란 소릴 듣고 왔다고-. 함께 맥주라도 한 잔 하려는데 그만 그 배의 기관장 방에서 얻어먹고 만 결과가 되었다. 43살의 해군출신 선장이 나보다 더 어려보인다. 그 배 C/O의 고충이 태산이다. 고주망태가 되어 왔다갔다 한다. “미국놈들이 그럴 줄 몰랐다”고 불평하는 그의 말속에서 다분히 서양놈들이 동양인에 대한 경멸의 뜻이 포함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것이 심지어 이곳 검둥이놈들에게 까지 물들고 말았다. 오직 백인들에게 당했으면 두려워하면서도 불신하고 도둑놈처럼 생각하겠금 되었을까?
9th. May (화)
골치가 아프고 입이 쓴 탕약 마신 듯 쓰고 깔깔하다. 4월분 수당 지급 정리하다. 말썽 많던 주부식도 정리를 마쳤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왜? 예상을 넘어선다는 군. 본사 그리고 대아에 Schedule을 타전하다. Uniqe 입항. 역시 Assaf과 중계를를 의뢰해오다. 전번 선장은 가고 Sanata Tomikatsu(真田富勝)란 새 선장이다. 교신을 들었는가 KoyKoy maru란 배에서 다시 부른다. 아마도 같은 일본인들이 타고 있는줄 아는 모양. 처음입항이라서 그렇고 3개월 기다렸다니 앞날이 아득한 모양. GBN Line이라니 쉽게 입항할테니 염려 말라고 했다. 아마도 Lagos하면 외항 대기하는데 겁부터 먹는 모양이다. 먹을 것 있고 마실 물 있는 배야 여기보다 더 좋은 곳 없다. 1년 365일 중 여기서 기다리는 시간만큼은 몽땅 제 것이다. 남줄레야 줄 수도 없는 순전한 것이다. 급유 내일 다시 확인하다. 지난 7일 대아에 친 10일경 귀국자 출발이라는 전보의 답신이 오다. Flight Schedule를 알려달란다. 의도가 거기 있는 것은 아니다. 혹시 회사에서 참고 하라고 했을 뿐이다. 내일이 급료일 아닌가. 귀국자 최종 점검하다. 막상 가려니 뭔가 캥기는 모양이다. 그럴테지! 여행 중 몸조심하고 더 좋은 발전이 있기를 빌어주다.
“아직도 우리의 해운계는 너무도 좁다. 좁은 속에서 좁다고 느끼는 사람들 중에도 계속 좁다고 우기는 사람은 그걸로서 끝이다. 그러나 좁음으로 해서 더욱 넓은 곳을 찾으려는 사람에겐 반드시 장래가 보장될 수 있는 것이 또한 우리의 실정이다. 건강을 이유로 가는 사람은 더욱 정양에 힘쓰고 개인 사정에 의하여 가는 사람은 어서 원만히 해결해라.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왕 배를 택하려고 하려거던 너무 사소한 일에 마음을 앗기지 마라. 그것은 어느 한쪽도 이루지 못하는 결과가 되고 심하면 자신을 해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배를 택하지 말든지”.
내가 어째서 이런 얘기를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다만 그들이 내일 출발하게 되기까지 내가 겪어야 했던 오랫동안의 정신적 여건이 성가셨기 때문이리라.
Blue Kochi 오후에 출항하다. 선수에서 손 흔드는 C/O의 얼굴이 쌍안경 속에서 찌그러져 보인다.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엊저녁의 주독이 아직도 머리랑 뱃속을 뒤집어 놓고 있을 것이다. 할 수 있냐? 배운 도둑질이고 맡은 일이 그건데-. 아무튼 몸조심하소. 실상은 내 속도 종일 말이 아니다.
10th. May(수) 1978
다시 아침부터 짖궂은 비가 뿌린다. 쳐다본 하늘 끝까지 꽉 찬 구름이 좀처럼 쉬이 그칠 것 같지 않은 비다. 어쩌면 후닥닥 하고 치우는 소나기보담 더 치근치근하고 Dirty한 것 같다. 8시 반에 온다던 작자가 10시반에야 왔다. 그나마 몇번 VHF로 졸랐는데, 늦게 온 놈이 시간 없다고 더 지랄이다. 성의 없는 Immigration. 수도 없이 막히고 기다린 차속의 시간들. 겨우 5분전에 공항에 도착. 짐의 중량이 Over됐다고 몇 푼 뜯기고, 검역에서 또 몇 푼 뜯기고, 그저 오만 창자가 뒤집힐 지경. 대가리 속에 똥만 들었다는 것을 확인한 Hakeem 새끼의 업무처리에 진짜로 눈알을 굴리고 고함을 쳤더니 잠잠하니 풀이 죽는다. 몇방울씩 떨어지는 비속에서 15:00시 5명이 떠났다. 부산 떠난지 꼭 14개월만에 Lagos를 뜬 셈이다. 뭣 때문에 남았는지 아무런 느낌도 없다. 그저 공허할 뿐이다. 공항에서 머리를 짧게 깎았단 이유로 이북사람인줄 알았다는 두 한국인을 만났다. 이란에 취업중인 두 사람이 휴가차 아프리카를 여행 중인데 Lagos는 처음이며 역시 이북대사관만 있다는 소리만 듣고 주눅이 들어 꼼짝 못하고 공항에서 10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어찌 그리 머리를 짧게 깎았소?” 그래서 저쪽사람인가 해서 옴치고 튈 참인데 쓰고 있는 서류를 보니까 아니라고 -. 바야흐로 세상은 머리도 마음대로 못깎게 됐구만-. 귀로에 마중 갔던 5명이 맥주 한 잔씩 하다. 예상했던 급유가 안됐다. 또 내일 어쩌고 한다. 오냐 두고 봐라. 3/E가 C/E의 건을 얘기한다. 도저히 자기로서는 통역을 못하겠으니 좀 협조해달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문제라 모른척해버릴까 보다. 또 개버릇이 나온 모양이다. 오직 ‘책임’ 그 하나 때문에 남겨 두긴 했지만 걱정은 가시질 않는다. 새로 온 냉동사가 전문직이라면 또 괜찮을 텐데-. 오자마자 티걱태걱 했다니 심적 부담이 크다. 회사에서도 최대한의 Idea를 짜낸 것이지만 끝까지 무엇인가 잉크 잘 안 나오는 만년필처럼 술술 풀려나가 주질 않는데 의욕을 잃는다. 원칙대로 해서 사고의 확률을 높이는 것보다 적당히 이용하고 마는 것이 소기의 목적달성에 유효하다면 내가 한두 번 더 참아 줄 수는 있다. 이제부터는 어떤 사고는 곧 바로 우리들 자신이 받아야하는 몫이 된다. 큰일 하나 마친 셈이다. 급유만 하면 또 한시름 놓을 것인데 -. 끝까지 애를 먹일 모양이다.
11th Mag(목) 1978
금일 오후 3시에 Bunkering 않으면 선내 발전기 Stop, 냉동기 및 하역중지. 그로인한 모든 책임은 Tranx-con에 있다는 Letter를 작성. 현장의 인도놈에게 전했다. Mr. Ahok, 손가방의 돈뭉치를 꺼내뵌다. 뭐냐? 나 줄건가? 본선 접안 기일이 오늘까진데 그로 인해 말썽이 나면 입막음 할 ‘개밥용’이란다. 잘한다. 그래라도 해야지. 보유 때문에 바로 저놈들이 불똥이 떨어졌다. 몇놈이 뛰고 목이 쉬도록 어딘가를 불어대고 야단이다. 그 보라구. 내말 진작 안 듣더니-. 송금을 London에서 직접 Total사에 했는데 어쩌구 저쩌구다. Byron, Flo 두 선장 오다. 저녁 약속을 했다. Assaf에도 최종통고를 내다. 청수, Gas. 구서증서 등. 급유는 제 놈도 딱하게 되긴 됐다만 생지랄를 해도 못 본척했다. “오늘밤만 어떻게?” 글세 나도 모른다. 펌핑되는대로 해봐야지만 언제 바닥날지는 나로 모른다. 저놈들 잘하는 시늉. 찡그린 얼굴표정이 두 어께만 덜썩 했다. 죄 없는 검둥이 두어 놈만 혼줄이 나는 가 보다.
Lagos 전신전화국에 가다. 형님에게 전화. 내일이나 오늘밤쯤 김계오씨를 만나 뵙고 인사 겸 부산에서 의뢰한 게 뭔지 물어보려 했는데 3시간을 기다리다 취소하고 귀선하다. Nr.Samuel이 직접 식수차를 타고 와서 야단이고, Health Dep. 에서 위생검사 마치고 가는 중이고-. 그러나 역시 급유는 소식이 없다. 6시가 되면 무조건 Stop하도록 지시했다. 국장이 발병하다. Malaria는 아니어야 할텐데. 부식구입차 갔다 와서 냉수마신 게 탈이 났다는군. 슬금슬금 해는 지는데 태연함을 가장해도 역시 속은 탄다.
방금 출발을 했다고 현장에서의 깜둥이 연락받고 30분이 지났는데도 안보이더니 7시경 Total의 Tanker가 왔다. 인도놈 두 녀석이 안심이 되는가 악수를 청한다. “오냐 수고했다.” 그러나 애태우며 기다렸던 내 속 마음은 무엇으로 보상돼야 할 것인가? Byron호 김 선장, 내 같이 한다면 자기는 선장노릇 못하겠다나.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입장이 다르다. 그는 Owner가 여기 있고 Port Capt. 마져 있다. 불실한 용선자측의 모든 대행을 그들이 도맡아 주고 있지 않는가. 무슨 걱정이 있나? 진짜 이번항차는 끝까지 말썽이고 지랄같이 얼키고설켜서 사람 골병들인다. 선박으로서 극한상황에까지 이르러길 몇번을 했지만 3개월간 큰 탈없이 마칠 수 있었다는 것은 스스로의 노력 탓이기에 내 자신이 생각해도 보람 있는 일이다. 얻은 것도 느낀 것도 많다. 그래 오늘저녁 한잔하자. 기분나면 검은말도 하나 사자. 늦게 두 선장과 Lagos 시내의 Poenix까자 훑었으나 별 소득도 없이 Byron호 김 선장과 나 둘이서만 고주망태가 된 체 귀선. 그러나 기분만은 저버릴 수 없어 흘러간 옛노래 가락으로 셋이서 새벽 5시까지 흥을 거렸다. 항상 입은 바깥에서 놀고 옆에 가면 죽기라도 하는 척하더니만 정작 꾸릿한 분위기 속이지만 계집애들이 있으니 남 먼저 차고 가던 Flo 김 선장도 나이 값이 싸다. 못하면 못할수록 변명하지 말고 공부할 생각을 해야지. 고마우면 고맙다고 하고 -. 2-3년 전 3억원을 만졌다는 Byron 김 선장도 그게 무슨 소용이여. 말도 제대로 한마디 못해 이놈의 Lagos 검둥이네들 한테 풀죽을 쑤고 있으면서-. 지금도 문제지만 내일이 더욱 문제다. 이 사람들아!
12th. May(금)
과연 오늘이 D-day가 될럴지? 약150톤 남았으나 Hatch별 잔량이 불균형해 아무래도 오늘 마치기는 무리일 듯 싶다. 목표를 오후 6시로 하고 Pilot Booking 하기로 했다. C/E가 찾아왔다. 마치 원숭이꼴이다. 하는 소행을 보면 발길로 차버리고 싶고 몰골 보면 불쌍하다. 내가 정에 약한 것도 분명한 결점이다. 이런 것은 그냥 쫒아버려야 하는데-. 골자가 뭐요? “경찰에 가서 얘기 좀 해서 어쩌구-”다. 간밤에 계집 따라갔다가 술값 대신에 카메라와 카셋트를 빼앗긴 모양이다.
Tinkan Port내의 지서주임치고는 끌발이 대단했다. 후진국일수록 공무원 특히 계급을 가진 자의 권위는 절대적임은 익히 보아온 일이다. 기관장이 이야기 한데로 옮기기엔 너무 챙피스럽다. “난 HiroshimaMaru 선장이데, 우선 내가 영어가 서투니 혹시 잘못이 있어도 양해를 하시오. 당신은 경찰이고 나는 외국인이다. 내가 이곳에서 믿을 곳은 당신뿐이다. 또한 그것이 당신 의무이고 책임이다. 우리의 잘못에 대해서는 변상하마. 그러나 Camera와 Casset는 엄연히 임자가 있으니 돌려주시오. 대신 우리가 자주 이곳에 오니까 언제라도 당신의 후의는 보답하겠오.”
지서장이란 놈. 입이 함지박같이 벌어지며 옆에 있는 놈들에게 자랑이다. “Capt.가 나보고 이렇게 한다.”고. 좋단다. 나는 무슨 일인지 보고 받은 바 없다며 몇놈부르더니 저이말로 물어보더니 대갈일성으로 꾸짖고 야단이다. 당장 그 여자를 잡아오란다. 잠시 후 연락을 받더니 저녁에 직접 자기가 물건 찾아서 배로 갖다 주겠다고 했다. 고맙소 기다리겠오.
그만해도 돈 몇 푼과 자존심 굽혀주는데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이곳의 실정이니 망정이지 어지간히 질서 잽힌 곳이라면 어림도 없이 꼼짝없이 당하는 일이다.
“사람의 좀 부끄러운 줄 아소. 나이 값도 좀하고. 그게 뭐요 도데체-.” 아무 대답도 없이 고개만 끄덕인다만 과연 그가 생각하는 게 뭘까? 일련의 후회나 양심의 가책보다는 어서 그 지서장 놈이 제 물건이나 빨리 가져왔으면 하는 생각뿐일 것이다.
내일 아침 10시로 출항시간 변경. Victory Island에 가다. 김계오 소장댁에서 FAO 직원 3명과 식사. 그리고 아쉽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이 생활에서 과연 오늘의 삶이 보람 있는 일인가 회의를 느끼게 한다. 역시 내가 헤집고 부딪고 살아야 할 곳은 지구 저쪽 내 나라 땅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울어도 그 울음소리의 뜻을 알 수 있고 웃어도 그 참뜻을 이해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하루의 전부가 가식과 가장과 외로움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너무도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있는 그대로를 들어내고 먹고 마시고 자고 입고 놀고 -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내가 흑인과 함께 맨손으로 식사했다는 소리에 마치 벌레라도 씹은 듯 찡그리고 고개를 흔드는 그의 부인의 표정은 온통 거짓투성이고 위선이다. 그것도 외국생활이라고 어쩌고저쩌고하는 것은 개좆이다. 쌍말로-. 김계오씨가 처량해 뵌다. 혼자서는 집문 밖도 못 나가는 그의 부인에다 매일 할 일이 없어 빌빌하는 다 큰 아들 하며-. 성격과 기질 탓인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저렇듯 방랑자가 되는 수가 있는가. 그러나 적응치 못하는 자신을 탓하기 전에 사회와 다른 사람을 탓하고 합리화 시키려 하는 것도 같다.
잠든지 두어시간, 자정이 되어 낮의 지서장이 왔다. 사복을 입었다. 그의 형과 부로커 비슷한 놈 두어 명을 데리고 -. 기관장의 카메라와 카셋은 자기 부하에게 들려서 왔다. 왜 10시쯤 온다더니 -. 볼일이 있어 늦었다고-. “다음 또 언제오냐?” “내일쯤 가면 20일 후면 다시 올거요.”
결국은 Las에서 전축 Stereo로 큰놈 하나 사다 달란다. 바로 그거로군. 좋지. 어떤 Maker로 원하는데? 두 부로커들이 어떤 것이 좋고 저쩌고 하는 것을 보니 한통속인 모양이다. “좋소. 큼직한 놈 사오지. 그러나 세관문제는 난 모르오.” 염려 말란다. 만족한 모양이다. 제기랄 구하지 못해 며칠간 아끼던 맥주를 6병이나 까고 일어선다. Lagos의 마지막 밤을 이렇게 장식하는군. 그러나 이 녀석들아 나는 이번에 가면 내 가족이 있는 고국으로 간다. 스트레오 전축! 개 떡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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