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박이일
오래되고 낡은 전화 수첩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내 인생의 한 때 그리고 줄곧 살뜰한 우정과 배려를 주고받는 고맙고 그리운 많은 분들의 연락처가 있다. 지금 우리들의 시계는 인생의 오후 시간, 아직은 손발이 그런대로 썽썽한 때, 너무 늦지 않게 한 번쯤 만나 따듯한 밥 한 그릇과 커피 한 잔에 묵은 회포를 주절주절 포도송이처럼 곁들여도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언감생심이다. 코로나, 삼복더위, 게다가 시간 있다고 아무 때나 나 다닐 수 없는 조직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30여년 소임 중에 본당 전교수녀를 가장 많이 했다. 가는 곳마다 남녀노소 교우들께 배우고 과분한 사랑을 받았었다. 그 중 첫 본당이 가장 기억이 많다. 모든 것이 새로운 처음이었기에. 그 첫 본당 교우 중에 오랫동안 인연이 지속되는 언니 같이 배려해주시는 안젤라 자매님과 로사리아님께 전화를 드렸다. 대뜸 한 번 만나자는 제안을 하셨다. 속생각은 ‘좀 힘들 텐데’ 하면서 입으로 대책 없이 ‘그러자’고 했다. ‘뭐 시간 여유 있는 날 하루 뵈면 되겠지’하면서. 그런데 두 분은 일박이일을 하자고 했다. 속으로 ‘쉽지 않은데’ 하면서도 입으로는 또 대책 없이 ‘그러자’고 했다. 하루가 아닌 일박이일은 상호 좀 번거롭고 복잡하다. 코로나 시대, 삼복 더위중이고, 마음과 돈 써야하고…….나야 차비 들여 몸 만 가면 되지만, 그 모든 것은 거의 두 분 몫인데…….그럼에도 불구 일박이일을 하자는 두 분께 무진장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감동을 받는 것도 애덕이고 추억이다. 복잡하게 생각 말고 가보자!
약속 하루 전 날, 직장에 가정에 봉사에 늘 시간을 쪼개 사시는 마리아님을 전격 만날 수 있었다. 최 마리아님은 세례명도 신앙도 인품도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마리아를 참 많이 닮으신분이다. 신앙이 그렇고 삶이 그렇다. 바쁘다고 힘들 텐데 피해가도 누가 뭐라겠나? 그럼에도 이렇게. 늦은 점심을 맛나게 먹고 칠곡에서 유명하다는 팥빙수 집에서 2차를 했다. 그 집엔 코로나인데도 손님이 제법 있었다. 충분히 손님이 있을 만 했다. 그냥 평범한 팥빙수가 아니었다. 팥빙수 위에 여러 푸짐한 생과일들이 손님들의 입맛과 입터넷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약속 당일 안젤라 자매님의 친정아버님(바오로 어르신)이 농사하시는 김천 복숭아밭을 방문했다. 90연세의 어르신이 봄부터 가꾼 복숭아들이, 그 옛날 에덴동산의 문제의 그 과일처럼 복스럽고 탐스럽게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마침 큰 아드님 요셉과 며느님 마리아 부부도 농사일을 거들어 주시기 위해 다니러 와 계셨다. 다 성당 다니는 사람이라 서슴없이 형제자매처럼 어울릴 수 있었다. 점심은 가까이 있는 유명한 흑돼지 고기를 90세 어르신이 손수 쏘셨다. 멋있어 보였다. 단단해 보이시는 삶의 여정, 건강, 금전관리…….내 인생의 90이 온다면 나도 저 못지않게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마음을 단도리하였다.
김천 부항 댐을 드라이브하는데 갑자기 세찬 소나기가 내렸다. 그동안 너무 메말라있었는데 두어 시간 많은 양의 비가 가뭄에 시달리는 대지를 맛나게 적셔주었다. 두 분은 내가 비를 몰고 왔노라. 뻔 한 말씀을 참 예쁘게도 하신다. 하긴 내가 하느님께 제발 비 좀 주시라고 기도를 많이 하긴 했다.
김천을 벗어나 성주로 가는 길, 국도를 타고 마냥 돌아 돌아 가노라니 새삼 더 확인되는 대한민국 우리 강산도 비할 수 없이 아름답다. 산천경계에 취해 그동안의 안부를 들려드리면서 마무리로 라이브 노래 한 곡을 불렀다. 요즈음 참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노래인데 멜로디와 내용이 이만큼 살아온 마음에 꽤 와 닿는다.
인생유정(주현미)
저 강물 흘러흘러 어디로 가나,
정처 없이 굽이굽이 휘몰아 가네.
세월 따라 가다보면 다시 못 올 길,
어이도 미련만은 그리 많아서,
사랑도 미움도 저 강물에 실어,
나도야 따라 가네 흘러 흘러 가려~네
목소리가 곱고 노래가 좋다고 칭찬하셨다.
‘맞아요! 어쩌면 나도 뽕짝가수로 대성했을 수도.....?
그러나 지금 이 처지가 더 은혜롭고 영광스럽답니다!
이제부터 성주시,
다소곳 재건축된 가천성당엘 들렸다. 단아하고 거룩한 기운을 품은 한 낮의 성당은 오직 적막과 고요에 싸여 있었다. 그래서 더욱 좋았다. 예수님 앞에가 짧은 인사를 드린 뒤, 코로나로 폐쇄된 ‘추억의 박물관’을 월담으로 순례하고, 안셀모의 전원주택으로 향했다. 이곳은 오늘 우리의 숙소이다.
안셀모님은 안젤라님의 시동생이시다. 본당에서 활동할 때 같이 두 분이 같이 서점을 운영하셨는데 형수씨와 시동생이 어찌나 사이좋게 지내시는지 첨 보는 사람들은 죄다 신랑각시 사이인줄 알았었다. 이리 오래 변함없이 이어지니 이 시대 참으로 귀감이 되시는 분들이시다. 안셀모님의 댁은 대여섯 채 가옥들이 사이좋게 산 나무 계곡물이 오순 도순한 한적한 골짜기 아래 있었다. 그 부모님들과 여러 형제자매들의 살던 고향집이라고 했다. 형제님은 여러 밭작물들을 경작하고 계셨는데, 작물들이 어찌나 실하게 자라고 있던지 쥔 양반의 정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특히 하우스 고추밭 농사가 압권이었다. 붉은 빛으로 제 몸을 휘감고 익어가는 모습이라니…….안셀모 형제님, 하느님, 사람, 작물에게도 늘 최선을 다하는 하느님의 사람, 자신이 좀 손해를 보더라고 늘 상대방을 배려하고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정말 그리스도인이시다. 마침 아들 신부님도 고모님과 함께 대구에서 오셨다. 일박이일 나들이에 한꺼번에 얼마나 많은 그리고 좋은 분들을 만나는지…….신부님은 내가 그 본당에 있을 때 중 1학년이었는데 삼십대 중반의 범접할 수 없는 눈부신 변모를 하고 있었다. 마음 가득 풍요로운 만남들, 먹는 것 쯤은 생략해도 배부를 것 같은데 지금은 또 옥수수가 익어가는 때, 조용한 내조와 유머 가득하신 베아따님이 맛있게 쪄 낸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불었다. 성주시내 맛 집에서 육개장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귀가 이제부터는 이바구 시간, 코로나 시대로 집 콕 방콕만 하는 내 입에도 이끼가 파렇게 앉았지만, 그 저녁부터 밤까지 나는 다행히도 경청하는 자세로 일관할 수 있었다. 주로 쥔장 안셀모님이 그동안과 지금의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감동적이었다. 그 밤은 낮 시간의 여정으로 곤하기도 하고 또 내일이 기다리고 있기에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 방은 집에 오면 주무시는 신부님의 방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 다음날 아침 안셀모님은 부재중이시다. 시원한 시간에 고추를 따고 계신다고. 나머지 네 명의 자매들이 조그마한 산속 동네 한 바퀴를 돌고 하우스 고추밭으로 갔다. 어제 내 눈을 사로잡은 바로 그 하우스 고추밭이다. 세상에 농사를 얼마나 잘 지었는지 주렁주렁 빨갛게 달려 익어가는 고추들이 풍년가를 부르고 있었다. 농촌일은 손 하나가 대단하다. 마음 같아선 일복 갈아입고 고추를 모두 따 드리고 싶었지만, 이내 한 둘 나도 떨어져 나갔다. 짧은 시간이어도 고추 따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 수확의 기쁨은 팽팽하게 마음과 손끝에 작열하였으니, 직접 어린 묘목을 심고 가꾼 당사자의 마음을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서 모닝 생음악과 함께했다. 음악을 사랑하시는 안제라 자매님은 오르간 피아노 플륫 하모니카 여러 악기를 다재다능하게 다루고 계시다. 오늘 휴대 악기는 하모니카 연습된 몇 곡을 들려 주셨다. 아는 노래가 나올 때는 노래도 따라 부르면서, 황홀한 아침이었다. 언니들 칠십 잔치는 조촐한 음악회와 함께~ 안젤라님의 남편이신 안드레아님은 색소폰을 하시니까 분명 멋진 음악회가 될 것이다. 나도 축하 뽕짝 두어 곡 더 선정해서 맹연습을 해 두어야겠다. 이쯤에서 로사리아님의 사도직을 소개해 드려야지. 그분은 수녀님들을 돌보시는 요양사이시다. 내가 수도자이니 더욱 그분들 이야기를 여러 번 하셨는데 이야기마다 전문가 요양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 마냥 흘러넘치고 계시기에. 이분 덕에 치매 수녀님들이 참 편안하실 것이라는 생각에 감사하고 고마웠다.
다음 코스는 성주시내...와우~ ‘가는 날 장날’이라고 마침 성주 오일장 서는 날이었다. 백화점은 처지에 안 맞고 마트도 부담되고 재래시장이 딱 정감이 가는 것은, 나 어린 시절부터 재래시장과의 묵은 인연 때문일 것이다. 볼 것 많은 장을 몇 바퀴 돌고 강변 나무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이제는 귀원해야 할 시간…….오늘 저녁부터 연례피정이기에, 표가 있으면 바꾸어 더 일찍 들어가면, 어제부터 운전에 안내에 충분히 피곤하신 두 분에게도 실속 선물이 될 성 싶은데 그냥 정해진 시간표대로 하자고. 맞다! 원거리 또 만나기도 쉽지 않거늘 그 쪼끔 아끼는 것이 무슨 큰 보탬이 되랴. 남은 시간 기차역이 가까운 곳에서 맛난 점심, 다시 역 대합실에서 냉음료와 이바구, 마지막은 진한 악수와 포옹으로 일박이일을 마무리하면서 5년 후 칠순에 작은 음악회를 곁들여 만나기를 약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