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는 갯내음에 붓꽃 피운 교장선생님
비비꼬인 등나무 몸통을 타고 올라 빛 고운 여인의 머릿결을 풀어헤친 듯 살랑살랑 불어대는 바람결은 나지막한 그늘 사이로 햇살 모양 사연 남겨놓고 어디론가 멀리 사라져가는 시골의 굴뚝 닮은 가을날.
서산시 부석면에 있는 '부석중학교' 교장 선생님이신 박정섭 님의 미술작품전 팸플릿에 나와 있는 인사말이 말해 주듯이 저희 서산은 장마도 피해갈 정도로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고장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는 27일(금)부터 10월 2일(수)까지 서산시 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디스플레이'라는 작품 외에 30여 점이 선보일 예정인데요. 박정섭 님의 작품을 살펴보면, 여름의 녹색조와 가을 단풍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표현하여 실제 피부로 와 닿는 감상이 가능하며 토속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바구니나 광주리에 담겨 있는 과일을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이룬 화면 구성으로 누구나가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아울러 물과 연꽃, 약수터, 장독대 등의 풍경을 정감 있게 담아 차분히 가라앉는 분위기를 창출해 내는 잔잔한 필치기법은 깊어가는 이 가을 고향의 향기를 한껏 품어내어 진한 감동을 줄 것입니다.
아울러 박정섭 님의 약력을 간추려보면 1947년 서산 팔봉에서 태어나셨고, 1967년에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셨습니다. 그 이후 '68년부터 근흥, 가사, 서산초등학교등에서 교사생활을 하시다가 원이중, 서산중, 해미중학교 등을 두루 거친 후 '99년에는 근흥중학교 교감으로 부임을 하셨으며 작년 9월부터 현재의 부석중학교 교장으로 재임 중이신 서산 토박이 입니다.
그동안 수차례의 미전을 개최하여 서산 시민들에게 문화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신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있는데요. 아무튼, 올가을엔 독서 말고도 여러 장르의 문화체험을 많이 할 생각이에요. 박정섭 님은 지난날 미술협회장과 화촌 미술 동호인 회장을 역임하면서 지역 미술 문화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미술을 통한 인성 교육에 앞장서신 공로가 인정되어 지난 '87년에는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답니다.
사실 저희 서산지역은 문화예술 부분이 미약한 편이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많은 문화공연과 미술작품 전시회 등이 계절에 상관없이 개최되고 있어 많은 시민의 호응을 얻고 있지요. 학생들은 학생들 나름대로 스승이나 선배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생겨 감동이 새롭고, 일반 사회인들 역시 자칫 지치고 긴장된 삶 속에서 머리를 맑게 해 주는 공간이 자주 열려 매우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예술 교육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함과 동시에 삭막한 기계문명 사회에서 인간에게 따뜻한 사랑과 감동을 주는 원천이라고 믿기에 이토록 따스한 감동이 살아 있는 현장이 필요한 가 봅니다.
우리 서산의 문화 예술이 학생과 주민들의 정서 순화에 크게 도움이 되며 미술 동호인의 예술적 기량을 더욱 향상하는 계기로 발전시키니 이처럼 전공과 취미가 합치된 교장 선생님의 생활 모습 자체가 저에게는 한없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요.
모쪼록 우리 서산지역 학생 및 주민들의 작품 감상 수준과 안목을 높여 한 차원 높은 삶과 창조력을 보여주고 계시는 박정섭 님의 전시회가 해맑은 어린아이의 고사리손에 물감 뿌린 단풍 색깔로 풍성해지길 기원해 봅니다.
박정섭 작품전이 시작되는 다음 날인 28일(금요일)에는 놀이패 뻘바람의 신명 나는 한마당 「박첨지의 딸」이 공연됩니다. 문화회관에서요. 할머니, 할아버지, 엄니, 아부지 할 것 없이 다 나오셔서 흥겨운 시간이 되세요.
초대전시회에 부쳐
어린 시절 사시사철 변화하는 팔봉산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운 자태를 화첩 위에 그려보고 싶은 저의 꿈을 키웠습니다. 갓 태어나 여리디여린 연두색 바탕 위에 출렁이던 삐비꽃 그 위에 포개지던 맑은 바람 소리와 우리 집까지 번져오던 간기 밴 갯내음 초가집 흙담 위에 제멋대로 자라던 호박 넝쿨들 그 사이로 비끼던 가을 색 노을 풍성하게 내려 우리 마을을 하얗게 덮던 흰 눈은 추운 겨울이 아니라 포근한 어머니 품속이었습니다.
고향 땅은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다섯 번 넘겼고 그 변화와 발전 속에서 저 또한 오십을 훌렁 넘기며 자랐습니다. 희끗희끗 성근 머리, 잔주름 패인 얼굴 그래도 어릴 적 내 고향 서산의 그림 같던 풍광과 넉넉한 인정들 제 맘속에 넘실대며 터질 듯 차오릅니다.
쉼 없이 억수 지게 내리던 비, 전국이 물난리로 큰 몸살을 앓을 때도 고향은 그런 재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하제일 살기 좋은 땅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흙을 적시는 빗방울 위로 튕기는 고향 흙냄새를 맡으며 제 안에 살아 꿈틀대는 고향 풍정들을 그려보았습니다.
부끄러움을 감추고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을 고향 분들께 보여드린다는 자랑이 큽니다. 많은 격려와 채찍을 주시면 더 나은 발전의 디딤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리를 마련해 주신 고향의 모든 분과 조규선 시장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2002. 9. 박정섭 올림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선생님께 명복을 빕니다.
작성일: 2002/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