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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6:13-20, 18:15-20> 교회에게 주신 권세, 교회가 되는 두 사람, 두 사람의 매고 푸는 권세, 교회의 기초가 되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1. 말씀배경
성경에서 처음으로 “교회”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사용된 곳이 오늘 말씀 마 16: 18절입니다. 그리고 마 18:17절에서 다시 사용되었습니다. 교회를 해석함에 있어서 서로 관련이 있는 말씀이므로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마 16: 18절에 대한 해석이 천주교와 개신교 간에 너무 다르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베드로 위에 교회가 세워졌고 베드로에게 천국열쇠의 권세가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베드로를 초대교황으로 삼고 지금의 교황들은 베드로의 뒤를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참고로 예수님도 베드로를 교황으로 임명한 적이 없고, 본인도 교황이라고 한 적도 없으며 그렇게 행동하지도 않았고, 다른 사도들도 교황으로 그들 뽑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대표한다는 말도 성경에 없습니다.
그래서 천주교는 교황 중심의 교회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교황의 권위가 대단합니다. 성경의 권위와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하면 교황이 없다면 교회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 교회에 대한 원어적 해석은 제 다른 블로그 참조
교회라는 단어를 두 번째로 사용하고 있는 마 18장의 내용을 보면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오늘은 마 16장과 18장을 함께 보면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교회가 무엇인지, 누가 교회인지, 교회의 권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 교회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3절)을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다름 사람들이 곧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4대 성인 중 한 명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의 대답인 것입니다.
오늘 교회라는 말씀과 연관되어 본다면 교회의 구성원이 되지 않은 사람들의 대답인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5절) 이때에 제자를 대표하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6절)라고 대답합니다.
이 고백이 오늘 말씀의 핵심 단어인 “교회”가 교회되는 가장 중요한 고백인 것입니다. 이 고백이 교회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없으면 교회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예레미야, 엘리야 등으로 아무리 불러도 성경적인 교회는 생기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베드로와 같은 이 고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모임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00사모”처럼 말입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이렇게 고백하게 한 것이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와 관련되어 본다면, 교회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어떤 교리를 만들어 놓고 세우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마치 친목회처럼 말입니다. 오직 한가지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교리 곧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한 자만이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며, 또 이 고백은 아무나 못하고 하나님께서 하게 하는 사람만이 한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우는 것은 학교나 학원이나 유대교 회당이나 성경학교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참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기초가 되는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은 성령으로 되고 배워서 되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너는 베드로라“ 하시면서 ”이 반석 위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페트로스“의 뜻은 반석 ”페트라“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반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분명하게 반석인 베드로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 한 사람 위에 세우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베드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조금 전에 16절에서 그 유명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를 고백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이렇게 고백하는 베드로와 같은 자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잠시 후에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23절)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비록 베드로와 같이 연약하여 멋진 신앙고백을 하고도 곧 넘어질 수 있지만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한 자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그의 신앙고백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 그의 연약함이나 완벽함이 중요요소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불안전한 인간들도 신앙고백만 있으면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늘날 교회를 구성하는 자들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베드로와 같이 넘어지고 책망받을 것이 많은 자들이지만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기만 하면 교회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한자적으로도 교회는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자 둘 이상만 있으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 “에클레시아” 는 불러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한 자들을 불러내어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불러내어 졌기에 세상의 모임과 다른 것입니다. 구분되는 것입니다.
▶ 반석도 단수요 교회도 단수임을 유의해야 합니다.
천주교처럼 베드로 한 사람 위에만 교회를 세우신다고 해석할 수 있으나 아닙니다. 왜 아닐까요?
마치 건물을 떠받치는 기초석이 여러 개가 있어야 되듯이 교회도 각자의 신앙고백이라는 개별 기초석이 여럿이 모여 교회가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은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의 신앙고백이 개별적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각자의 신앙고백이 먼저 있어야 각자의 마음에 성전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고전 3:16)
만약에 단수이기 때문에 베드로 위에만 교회가 세워진다고 주장을 하면 교회도 단수이므로 하나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가톨릭과 개신교의 교회가 전세계적으로 수없이 많은데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건물교회도 많고 교인들이 모임인 회중교회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해석할 것입니까?
다만 이런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두 세 사람이 모이면 그것이 교회가 되고 또 그 힘이 더욱 강력해 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교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단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 18장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18장에서는 교회가 어떤 것인지 다시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18절에 보면, 마 16:19절의 말씀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천국열쇠를 빼고는 같습니다.
여기서 이런 권세를 받은 자가 누구인가 하면, 베드로 혼자가 아니라 제자들인 “너희에게” 입니다. 그러므로 마 16:19절에서의 천국 열쇠는 베드로에게만 준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한 자가 다 받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제자들과 같이 여럿이 모인 교회인 것은 그 앞절 15-17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죄를 범한 형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1:1로 그 사람과 상대하여 권고하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듣지 아니하면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듣지 않습니다. 그러면 교회에 말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라는 단어가 신약성경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곳입니다.
분명히 여기서의 교회는 두 세 사람 이상의 여러 명임이 분명합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교회는 베드로 혼자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까? 아니면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한 자들의 모임 교회입니까?
너무 분명하지 않습니까? 1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너희가”가 제자들이며 제자들은 신앙고백을 한 자들의 모임인 교회인 것입니다.
베드로의 권위를 이어받았다고 하는 교황 위에 만약 교회가 세워진다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망하고 맙니다. 베드로처럼 쉽게 넘어지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교황이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 자 아무도 없습니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죄인입니다. 그래서 넘어질수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일일이 예를 들지 않겠지만 얼마나 나쁜 교황들이 많았는지 역사를 한번 보십시요! 인터넷을 뒤져 보십시오. 종교재판이라는 이름으로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을 교황들이 죽였습니다. 교황 위에 교회를 세웠다면 그리고 교황이 교회를 대표한다면 오늘날 교회는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이 교회가 되니까요? 그런 모습은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교황의 무류성(무오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1869~1870년까지 열린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불안전하며 죄인의 한 사람이 되는 교황도 진정으로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한다면 교회의 일원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하십시오. 그러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 교회의 권세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면 더 분명해 질 것입니다. 이 교회의 권세는 결코 교황 만의 권세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3. 교회가 가지는 권세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마 16:18절,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시면서 교회에 주신 권세가 있습니다.
먼저는 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권세입니다.
음부의 권세는 사망 권세입니다. 죄인들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반대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사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권세가 교회에 주어진 것입니다.
교회가 누구입니까?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주로 모시는 자에게 주어진 권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죽어도 다시 부활하여 살고 살아도 영원히 죽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베드로에게만 이런 권세를 주어졌다면 오늘날 교황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천주교회는 모순에 빠집니다. 베드로에게만 주신 권세가 아님을 다시한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누구나 하면 교회의 일원이 되고 그런 권세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권세인 것입니다.
더구나 혼자보다도 두 세명 이상 함께 할 때 더 큰 권세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 18:18-19절에 매고 푸는 권세가 나오는데 주체가 “너희가”입니다. 너희가는 교회가 되는 제자들입니다. 베드로 혼자가 아닙니다. 신앙고백을 한 제자들을 통하여 즉 교회를 통하여 엄청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을 통해서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② 교회에 주신 두 번째 권세는 천국 열쇠입니다.
마 16장 19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곧 베드로와 같은 교회의 구성원에게 “천국열쇠”를 준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 주신 천국열쇠인 것입니다. 열쇠는 복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열쇠가 아니라 여러 개란 뜻입니다. 그것은 교회 공동체가 여러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것을 매고 푸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입니다.
천국열쇠는 원어적으로는 “천국의 열쇠”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가게하는 열쇠도 되지만 천국에 속한 열쇠인 것입니다 (속격 사용). 천국의 능력과 권세가 나타나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이 열쇠는 어떤 열쇠인가요?
마 16:19, 마 18:18절에 보면, 교회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교회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권세의 열쇠입니다. 그것도 무엇이든지입니다.
매고 푸는 방법은 기도일 것입니다. 기도로 무엇이든지 교회가 매면 매이고 풀면 풀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20절에 두 사람 곧 교회의 합심기도에 관한 말씀이 나오고 그 교회 가운데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신는 것입니다.
교회가 지상에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땅에서 매고 푸는데 그러면 하늘에서 매이고 풀린다는 것입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지면 땅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마 6:10, 주기도문)
조심할 것은 교회가 아무거나 매면 안됩니다. 사탄은 묶고 사람은 풀어놓아야 합니다. 함부로 저주로 묶으면 안됩니다. 가급적 축복을 풀어놓아야 합니다.
천국열쇠의 권세와 같은 내용이지만 교회가 되는 두 세 사람이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두 세 사람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구성원인 여러 명이 기도하고 전도하고 사역하면 더 강력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연합하여 기도하고 사역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주어진 사람이 혼자 독불장군처럼 하면 교만해져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연합해서 사역을 해야 합니다.
교황처럼 권세를 독점하면 안됩니다. 모든 성도가 그런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여 전도하게 하실 때도 둘 둘씩 보낸 것입니다. 둘은 증인의 수이기도 하지만 교회가 되는 최소의 수이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두 증인” (11장)이 나옵니다. 두 명은 증인의 수이기도 하지만 교회로서 더 강력한 권세가 나타나는 수 입니다.
왜냐하면 두 세 사람이 있는 곳에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 18:20)
<맺는 말씀>
여러분들, 베드로와 같은 고백으로 교회가 되셨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은 교회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권세가 주어질 것입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는 권세이며 천국 열쇠로 매고 푸는 권세입니다. 모여서 기도하면 강력하게 이루어지는 권세입니다.
교회가 되는 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고백을 하면 됩니다.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여 사탄은 묶고, 묶여 있는 성도들을 풀어내는 축복이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