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강)
7-4. 현대시의 중층묘사(重層描寫)
현대시에서 중층묘사(multiple desctiption)는 한 가지 대상이나 사상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또는 감각적인 표현)에다 추상적인 표현(또는 사상적인 표현)을 서로 교차시켜서 서술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처음 시창작에 임하는 사람은 약간 난해(難解)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감각적인 묘사에서 그것을 다시 추상적으로 서술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대상(사물)이나 사상(관념)이 이미지와 관념 작용이 교차되어 입체적으로 드러나게 되어 감각이 추상을 통합시킨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덕수 지음 『詩 쓰는 법』(1982. 8. 동원출판사)에 따르면 ‘중층묘사의 방법’이 우리 현대시에 있어서 가장 결여(缺如)되어 있는 방법으로써 앞으로 우리 시의 중요한 방향이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발전해 온 우리 시는 ‘관념시’와 ‘사물시’라는 두 방향을 취했으며 이 둘을 종합한 시 ‘감각과 사상이 통합한 시’의 발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물과 관념을 결합하여 보다 이상적인 시적 표현을 시도하는 일종의 형이상적(形而上的-제9장 ‘형이상시’ 참조)인 표현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 강물과 저 평야와 산들이
모두 금은보석으로 만들어졌다면
그때는 한 줌의 흙을 얻기 위하여
사람들은 오늘과 같이 싸웠을 것이다
만일 이 거리와 저 마을들이
모두 화려한 주랑으로 두른 궁전이었다면,
그제는 한 작은 오막살이를 위하여
저녘노을은 더욱 아름답게 저 언덕에서 빛났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저 별 위에 깃드는 사람들이라면
이처럼 산만한 우리들의 지구도
거기서 진주보다도 더 견고하게 빛났을 것이다
가치란 무엇인가,
결핍에서 오는 것들인가?
순수란,
자기의 처지와 동포의 문제를
함 줌의 흙을 사랑하듯,
씨를 뿌리며
꽃나무를 가꾸는 마음........
김현승의 작품「순수」전문입니다. 역시 문덕수의 해석대로 지1연에서 제3연까지는 구체적인 이미지의 표현이며 제4연에서 추상적인 표현으로 바뀌었습니다. 제4연에서 ‘가치란 무엇인가 / 결핍에서 오는 것들인가?’라는 추상적인 표현으로서 앞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다시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제5연에서 ‘순수란 / 자기 처지와 동포의 문제를’ 이라는 추상에 뒤이어 ‘한 줌 흙을 사랑하듯’으로 구체화함으로써 구체적인 표현과 추산 표현이 교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관념이나 추상이 구체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다시 이미지가 추상화하는 구조로 형성된 묘사를 일러 중층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8. 시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어쩌면 ‘인생이란 무엇인가?’하는 의문에 답하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이것은 인생을 살아보지도 않고 ‘인생은 무엇이다’라고 한 마디로 딱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시도 시에 대한 구성요소라든지 시의 본질 등을 이해하지 않고는 시를 이야기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대체로 시 쓰기 입문에서는 ‘시란 무엇인가’하는 문제를 제1장에서 다루지만 여기에서는 마지막쯤에서 다루는 이유도 이렇게 먼저 시에 대한 모습이나 짜임새 그리고 시 쓰기에 필요한 여러 가지 요건들을 이해함으로써 시는 과연 무엇인가를 정리하면 시와의 접근이나 친숙해질 수 있다는 소박한 생각에서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를 이해한 경험을 통해서 시는 무엇인가를 어느 정도 윤곽을 그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직접 시 창작에 열중하면서 시의 이해에 대한 폭을 넓히고 각자 나름대로의 시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중요한 일은 어느 권위있다는 시인이나 유명한 대학 교수의 어마어마한 시 이론적 정의를 애써서 기억하고 무조건 수용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쉽고 소박한 생각으로 시에 대한 의문을 풀어 나가는 일입니다.
릴케가 「말테의 수기」라는 작품에서 ‘쓰지 않으면 못배길, 쓰지 않고는 죽어도 못배길’ 속마음의 절실한 요구가 우러나올 때 비로소 시는 쓸 수 있다는 말을 상기해보면 시는 진실의 전달이라는 일차적인 정의를 이해하게 됩니다.
8-1. 시의 정의
‘마음 속에 움직이는 바가 곧 뜻이 되고 그것이 마침내 그대로 머물러 있지 못하고 절실한 언어로 다듬어져서 밖으로 나타내면 바로 시가 된다(詩言志)’고 한 서경(書經)에서는 시는 한 뜻(志)-즉 의지를 주로 한 정신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지훈이 ‘시란 지(志), 정(情), 의(意)가 합일된 그 무엇을 통하여 최초의 생명의 진실한 아름다움을 영원한 순간에 직관적으로 포착하여 이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어서 그냥 느끼는 감탄이 아니라, 절실한 내면적인 갈망이 진실로 승화하여야만 시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시는 시인의 절실한 감정 또는 경험에 의한 생각의 표현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함께 느끼며 어우러지게 하는 매체 수단입니다. 넓고 거치른 세상에서 사람들이 서로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말하고 노래하면서 함께 살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 봅시다.
시란 다른 방식으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바를 말하기 위한 언어의 사용법이다. 시 속에 태어나기(또는 재생하기)까지는 어떤 의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하기 위한 언어의 사용 방법이다.(C. D. 루이스)
상상력과 정열의 움직임이 정신에 새겨질 때까지는 어디에서나 정신에 의해 그 정서를 길게 끌고 되풀이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온갖 다른 것을 끌어다가 그 정서와 조화시키려 하는 것. 또한 한결같이 지속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정서를 표현하는 음을 따라서 점차 변해질 수 있는 그런 조화된 움직임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그것이 시이다.(해즐리트)
시란 함께 달리고 있는 피와 상상력과 지성이다. 시는 우리에게 명하기를 세계와 접촉하고 세계를 맛보고 듣고 보라고 한다. 또한 두뇌에서만 나오는 것이나 육체의 전체적 희망과 기억과 감각으로부터 솟아나는 샘이 아닌 것은 피하라고 한다.(W. B. 예이츠)
시는 현실 이상의 현실, 운명 이상의 운명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고 이 창조력은 언제나 현세적 속박의 반작용의 힘에서 얻어지는 것이다.(이어령의‘통금시대의 문학’에서)
그러나 시의 주소는 여기에 있다. 지루하고 긴 회읨(懷妊), 쉽사리 단안을 못 내리는 사념의 발열, 심층심리안의 문답, 외롭게 회귀한 개성적 심상(心像), 선명하지도 밝지도 못한 사고의 교착(膠着), 암시 모든 잠재의식과 꼬리가 긴 여우, 시인이 버리면 영 유실되는 것, 시인이 명명하지 않으면 연 이름이 붙지 못하는 것, 원초의 작업같은 혼돈에의 투신과 첩첩한 미혹, 그리고 눈물나는 긴 방황.( 김남조의 ‘시의 주소는 어기인가’에서)
이와 같이 시의 정의는 문학을 형식상으로 크게 분류하면 산문과 운문으로 나뉘어 지는데 운문의 대표적인 형식이 시입니다. 시의 정의는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일반적인 공통점을 추려서 말한다면 ‘시는 인간의 정서와 사상을 운율과 이미지로 결합하여 압축 통일시켜서 언어로 표현하고 독자에게 예술적 감동을 일으켜주는 주정적 문학의 한 장르이다’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