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몸치의 댄스일기26 (왜 이리도 외로울까?)
2003. 9. 6. 토
오늘 필라에 저녁 7시쯤에 입장해서 10시까지 혼자서 댄스 연습을 했다.
오랜만에 그곳에 갔는데 예전처럼 동호회의 회원들이 연습하는 사람도 없었다.
8시 이후에는 옆에 작은 홀에서 레슨 받는 팀 이외에는 큰 홀에서 연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홀로 그 큰 홀을 휘젓고 다녔다.
홀을 독점해서 연습할 때는 좋았는데 문제는 연습이 끝나고였다.
혼자서 연습실을 나오는데 난 문득 엄청난 고독감과 외로움이 엄습했다.
정말 이상했다.
이때껏 혼자서 연습을 했어도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었는데...
전에는 혼자서 실컷 연습하고 나오면 무언가 뿌듯한 심정이었고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는데...
그런 연습의 결과로 짧은 시간에 비해 왈츠 실력이 향상되어 지난번 파티 때는 최고의 고수이신 우리 사부님과 대중들 앞에서 멋진 왈츠 시범까지 보였는데... 그리고 나도 무척 만족스러웠는데...
오늘은 연습을 하고 나오니까 왜 이리도 외롭고 고독한지 모르겠다.
하긴 연습할 때부터 왈츠도 예전처럼 그렇게 재미있고 짜릿한 쾌감을 느끼지도 못했다.
왈츠의 기본 루틴은 몇 번 하지도 않았지만 혼자 연습하기가 좀 시큰둥한 맛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안되던 동작이 하나씩 되어 질 때마다 성취감도 맛보았다. 새로운 걸 터득할 때마다 짜릿한 묘미도 있었다. 거의 환상적인 경지의 묘한 걸 느꼈었다.
이제는 각 동작에서의 특징은 물론 각 스텝에 배어있는 독특한 묘미들을 이해하고 나니까 혼자 하기가 별로 재미가 없었다.
이제는 기본 동작에서는 올리고 싶은 데는 올릴 줄 알고 내가 열고 싶은 방향으로 각도도 의도적으로 조절해서 잡을 줄 안다. 다운할 때의 타이밍을 어떻게 맞춰야 상대방과 텐션감을 느끼고 라이징과 업이 될 시점은 어디쯤에서 어떻게 템포 조정을 해야 된다는 걸 감을 잡았다.
그걸 받아줄 수 있는 사람과는 어떻게 한 번씩 해보면 어떤 동작에서는 그런대로 쾌감과 맛을 느끼겠는데 혼자서 하기에는 좀 싱겁고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으로 몇 바퀴 혼자서 홀을 돌아봐도 밋밋하기만 했다. 예전처럼 혼자서도 무아지경이나 자아도취 같을 걸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요즘 공부하고 있는 왈츠 바리에이션 루틴을 익힐 목적으로 돌아봐도 그것도 기본 베이직 루틴을 익힐 때처럼 그렇게 흥미 있거나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동작이야 초급 루틴에서 모두 응용되는 것 같았다. 단지 픽쳐라인이 많아서 아름다움을 표현한 동작이 많은 듯 했다. 또 발동작과 몸의 회전 같은 복잡한 기술이 필요한 것뿐이지 라이징과 토우 바란스로 피벗 스핀 같은 것은 발목과 다리의 힘이 길러진 상태라면 그렇게 어렵거나 고난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를 느낀 건 바리에이션 루틴은 여성이 제대로 동작을 취하면 여성 자신은 제 멋에 흠뻑 도취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게 파악되니까 연습하면서도 혼자서 루틴을 익힐 목적이지 예전에 초급 루틴을 연습할 때의 그 흥미와 묘미는 도무지 맛볼 수 없었다.
단지, 아름다운 파트너와 할 것 같으면 이 장면에서는 어떤 연출을 어떻게 아름답게 표현해줄까. 아니면 이건 여성이 좀 힘이 들 것 같은데 스텝은 엉키지 않을까. 중심은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 내가 불편하게 홀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상상만 들 뿐이었다.
아직은 그 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탱고도 몇 바퀴 돌아보았지만 그저 그랬다. 어떻게든 스타카토의 그 샤프한 맛을 좀 느껴보려고 해도 아직은 탱고는 제대로 되지를 않았다.
오히려 이제 막 시작한 슬로우 폭스트롯의 기본 워킹 [페더스텝]과 [쓰리스텝]을 연습할 때는 약간 흥미가 발동했다.
아무도 없는 큰 홀의 이쪽 대각선에서 저쪽 대각선 쪽으로 [슬로우] [퀵] [퀵]을 카운터 하며 상체의 CBM이 묘미가 약간 있었다. 그나마 오늘은 그 연습을 하며 버틸 수 있었다.
사람이 없기에 옳다구나 이때다 싶어서 슬로우 폭스트롯의 기본 워킹 연습에 집중적으로 매달렸다. 그 연습은 다른 사람이 많이 있으면 아무래도 서로가 방해가 되고 불편을 주기 때문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홀이 그렇게 넓게 비어서 나 혼자였다면 당연히 왈츠 루틴만 죽어라고 돌면서 혼자서 온갖 쾌감을 맛보았을 텐데...
룸바 베이직 워킹도 해보다가 이것저것 할 게 많은데...
아무리 해보아도 얼마 전까지 왈츠를 집중적으로 연습할 때처럼 그렇게 재미있거나 심취가 되지는 않았다.
밤 10시가 넘어 문 닫을 시간이 되어서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나오는데 문 바깥에서 작은 홀에서 개인교습을 받고서 동호회의 회원 한 분이 있기에 댄스 얘기라도 하고 싶었는데 다른 분과 어울려서 가버리고...
나 혼자 달랑...
내 차에 올라타고 시동을 거니까 눈물이 왈칵 앞을 가로막을 정도로 이상한 설움과 고독과 외로움이 한꺼번에 몰아 닥쳤다.
창문을 열고 좀 와일드하게 찦차를 운전하면서 거리로 달렸지만 왠지 자꾸 눈물이 앞을 가렸다. 어디론가 밤을 달려서 무작정 달려가고 싶었다. 동해안으로 달려갈까 하는 충동이 문득 들었지만 방향은 우리 동네 쪽이었다.
좀 더 젊었을 때였으면 기차를 타든가 버스를 타고 밤 차창에 어리는 내 모습을 즐기며 훌쩍 어디론가 실컷 밤을 달렸다가 날이 새면 다시 돌아왔을 텐데... 벌써 낙엽이 지는가? 아직은 아닐 텐데 오늘은 정말 이상했다.
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왈츠가 가장 재미있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 같았는데...
오늘 밤은 왈츠 때문에 내 사랑을 빼앗긴 나의 테너 색소폰이 자꾸 생각났다.
차라리 색소폰이나 제대로 연습해 뒀더라면 이럴 때 나 혼자 관악산 언저리에라도 찾아가서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는 저음으로 내 마음을 마음껏 담아서 밤하늘로 날려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이 밤의 심정은 댄스보다 그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댄스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되는 복잡한 것 같았다. 장소라는 공간적 제약과 음악이 있어야 되고 상대가 있어야 되고 무드가 필요하고...
댄스를 한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면 슬럼프라든가 권태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제 겨우 몇 달 하고서... 벌써 변덕심의 발동인가. 아직 제대로 할 수 있는 댄스라곤 한 종목도 없으면서... 무엇보다 댄스다운 댄스를 제대로 즐겨보지도 못하고 댄스의 참된 맛도 못 보았으면서...
자꾸 내 기억 속에는 일주일 전 파티에서 시범을 보인 그때의 그 왈츠의 짜릿한 쾌감만 생각났다.
이젠 그 일을 잊고 더 이상 기대도 아쉬움도 욕망도 안 가지려고 해도 그런데도 왈츠를 연습할 맛이 안 나니까 정말 미치겠다.
이젠 단체반에서 좀 더 배워보겠다는 욕구도 급격히 시들해져 버렸다.
내가 발도 못 뗄 때의 그 생각으로 처음 입문하는 분들을 잡아주는 거야 괜찮지만 내가 좀 더 배우고 한 번이라도 연습을 더 해야겠다는 목적으로 등록해둔 단체반의 왈츠 강습이 이젠 후회가 된다. 더 배우고 싶지도 않고...
오늘 같은 밤에는 누구에게 전화라도 하고 싶다. 그리고 대화도 나누고 싶은데 아무도 그런 상대도 없었다.
동호회의 많은 사람 중에서도 함께 어울릴 때는 몰랐는데 군중속의 고독감이랄까. 내 심정이 이럴 때 나와 아무도 상대해줄 대상이 없다는 게 참으로 외롭기만 했다.
왈츠에 심취되었을 때처럼 새로운 종목에 다시 한 번 미쳐보고 싶다. [슬로우 폭스트롯]에 이제 도전장을 던져 볼 계획이다.
무언가에 심취되고 미쳐야만 이 밤처럼 무섭게 다가오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서...
cbmp 하나의 과정 아닐까요........힘내세요........ 03.09.07 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