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0일 금요일
참으로 시간이 빨리 간다. 벌써 일주일이 넘어 간다. 오늘은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부활> 을 다 읽었다. 두 권이었으나 금방 다 읽었다. <부활> 은 주인공 카튜사와 네흘류도프의 사상 변화를 중심으로 그려진다. 먼저 카튜사. 카튜사의 갱생. 참된 '소생' 의 과정은 점진적으로, 그러나 부단히 행해진다. 자신의 범죄와 그 무서운 결과에 충격을 받은 네흘류도프는 카튜샤를 구원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정신적 삶에 지나치게 몰두해 있었기 때운에 우선 자기 자신을 찾아야만 했다. 결국 네흘류도프와 카튜샤의 길은 서로 갈리게 된다.
카튜샤의 갱생은 숙영감옥에서의 고달픈 삶. 유형당한 혁명가들과의 교제 그녀가 이해한 것처럼 '민중을 위해 권력자들에게 맞섰던' 사람들과의 교제 속에서 찾아온다. 네흘류도프와의 운명은 점점 더 '민중 출신의 인간' 인 마슬로바의 운명에 의존하게 된다. 민중 출신의 카튜샤는 다시금 민중을 향해 나아가고, 민중과 함께 했던 사람들 속에 녹아든다. 작품 속에서 카튜사의 '부활' 의 과정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점점 더 예술적으로 다듬어지게 된다. 그녀의 운명은 소설의 토대를 구성하게 된다. 카튜샤는 소설에서 네흘류도프를 포함하여 그녀가 부딪치는 모든 사람들의 행위와 행동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진실한 척도의 역할을 하게 된다.
네흘류도프의 통찰은 필연적으로 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책임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자주 귀족의 나태함과 수동성에 대한 거부를 동반한다. 그리하여 네흘류토프는 끊임없이 불안정한 편력을 시작한다. 네흘류토프의 편력의 길에서 그의 앞에 점점 더 폭넓게 열리는 것은 민중의 삶의 의미이며, 그의 개인적인 존재와 개인적인 불행은 점점 더 민중의 존재에 의해 가려진다. (한편 여기서 네흘류토프가 명백한 모순ㅡ작가가 부여한 농민 계급의 이념과 그의 계층적인 본성의 불일치 ㅡ을 자기 자신의 내부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기도한다.) 네흘류도프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민중, 러시아 농민의 세계와 정신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영혼은 기쁨과 희망으로 채워지고 이기적인 자아는 구원받는다. 도덕적으로 갱생하기 위해 네흘류도프는 카튜샤에게 저지른 자신의 죄를 보상하려 할 뿐만아니라, 토지 사유 문제를 급전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 러시아 농민들의 현실에 대한 그의 진지한 사고와 도덕적 갱생 과정이 뚜렸이 드러난다.
톨스토이는 민중의 세력을 파괴하는 삶의 구조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결정적이고 단호하게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서는 데 혁명 운동의 진실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바로 민중 출신의 인간으로서 정치범들과 만나게 된다.
나는 대학생 때 러시아 혁명의 과정을 사회과학 책으로 읽었다. 그래서 이 작품 <부활> 을 읽기에 쉬웠다. 이 작품은 두 세기, 19세기와 20세기의 경계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의 의미심장하고 의미있는 상징적인 문제들을 찾아내었다. 민중을 위하는 삶이 그것이다.
사진은 까마중이다. 통통한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