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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스님금강경 02/01
작성자發菩提心|작성시간17.06.14|조회수162
금강경 2(선현기청분)/01
++++++++++++++++++++++++++++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금강경
두 번째 품을 이야기 하는 날이다.
금강경에 보시면,
두 번째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선현(善現)은
수보리(須菩提)인데,
수보리(須菩提)를
한문으로 번역을 하면
선현(善現)이라고도 하고
공(空)의 도리에 대해 잘 안다고 해서
공생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본문에는
‘수보리(須菩提)야’
라고 하셨는데,
제목에는
선현(善現)이라고 되어 있다.
●선현(善現)이 무엇인가?
●그것은 수보리(須菩提)다.
수보리(須菩提)가 일어나서
법을 청한다고 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그 때에 어느 때인가?
●●●부처님이 자리를 펴고 편안히 앉아 계실 때,
그 때를 말한다.
아무 말씀도 않하고 앉아 계실 때,
그 때에 수보리(須菩提)가 일어나서
부처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어떤 방식으로 질문을 드리느냐?
장로(長老) 수보리가
장로(長老)라는 말은
법도 높고 연세도 많은 분을 장로(長老)라고 한다.
장로(長老)인 수보리(須菩提) 존자가
재대중중(在大衆中), 대중 가운데에 앉아 있다가
즉종자기(卽從座起),
독송할 때는
즉종자기(卽從座起)라고 연결해서 읽는데,
의미로 붙일 때는
즉종좌기(卽從座起)
이라고 읽으면 의미가 않된다.
●●●즉 띄우고
●●●종좌기(卽~從座起)로 해야 한다.
그게 한문으로 읽는 법이다.
●●●그래서 읽는 것을 보면
●●●아는지 모르는지 금방 안다.
그런데 독송할 때는
즉종좌기(卽從座起)
연결해서 읽으면 편하다.
그러나 뜻으로
이것을 독해할 때는
즉종(卽從)을 짧게 읽으면
[아, 저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다.]
즉종(卽從)이라고 하지 않는다.
종자기(~從座起)로 시작해야지,
즉종(卽從)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그게 한문의 문맥이라고 한다.
한문에도 맥이 있다.
즉~고종자기(卽~고從座起)하야
종좌기(從座起)라고 하는 것은
자리로부터 일어나서
편단우견(偏袒右肩)하고
가끔 보면,
수보리(須菩提)한테도 하시고,
하시고
이렇게 토를 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맞지 않다.
왜 그런가 하면
수보리(須菩提) 존자가
장로(長老)가 아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상대할 때는
부처님께는
‘하시고’를 하고
수보리(須菩提)에게는
‘하고, 하고’ 그것이 격이다.
그것을
●●●압존불(壓尊佛)이라고 한다.
존불(尊佛),
●●●존중한 부처님께 눌렸다.
‘누루다’는 압(壓)자가 있다.
압존불(壓尊佛),
존불에게 눌렸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께 축원할 때도
●●●그 축원을 올리는 대상에게는
존칭을 쓰지 않아야 한다.
●●●‘아무개’라고 해야 되지.
‘아무개님’라고
●●●‘님’자를 붙이면 않된다.
●●●부처님께
‘님’자를 붙이면
부처님의 제자 그 이하의 격에서는
‘●●●님’자를 쓰면 않된다.
그것을
●●●압존불(壓尊佛)이라고 한다.
존불(尊佛)에게 눌린다고 한다.
그게 전부
문맥이라고 한다.
편단우견(偏袒右肩)하고,
편단(偏袒)이라고 하는 것은
한쪽만 벗는다는 의미다.
옷 벗을 단(袒)자인데,
편(偏)은 한 쪽이라는 소리다.
우견(右肩)이라고 하는 것은
오른 쪽 어깨로서
전체적으로는
오른 쪽 한 쪽만
옷을 벗는다고 한다.
우슬착지(右膝着地)하고,
오른 쪽 무릎을 땅에 붙이고,
합장공경(合掌恭敬)해서,
합장하고 공경한다.
여기까지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질문을 하기 위해서
공경을 표시하는 내용이다.
질문을 할 때는
질문을 하는 격식이 있고,
예절이 있어야 한다.
저 솥에 있는 밥을 먹는데,
솥에 가서 밥을
주먹으로 밥을 쥐어서 입에다 넣으면
먹는 것은 먹는 것이지만
그게 좀 이상하지 않겠나?
솥에 있는 밥이라도
자기 입에 들어가는 데는
●●●과정과 절차가 있듯이
●●●질문을 하는 데는
거기에 대한
●●●예절과 그 공경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법이
●●●그 질문하는 사람의 속에 들어간다. ⚡⭕⭕‼
그렇지 않으면 않들어 간다.⚡⚡💥💥💣💣✳‼⭕
그래서 이런 것이
질문을 하는 공경례(恭敬禮),
☸☸공경으로서 예절을 표한다고 한다.⚡⚡⭕⭕‼
이백불언(而白佛言)이라,
말 이을 이(而)자는
그냥 밑으로 내려온다.
위로 읽지 말고 밑으로 읽어야 한다.
합장공경(合掌恭敬) 띄우고
이백불언(而白佛言)이게
이런 번역들이 참 중요한데,
한문 그대로 문장만 보면,
“하얀 부처님이 말씀하시데”
라고 이렇게 번역해야 된다.
그런데 그게
‘희다(白)’라고 하는 명사가 아니고,
‘아뢴다’, ‘말씀드린다’,
‘고백한다’라고 하는 동사이다.
그래서
“부처님께
아뢰어 말씀을 올리데”
이런 뜻이다.
처음 보는 사람은
백발백중으로
백불(白佛)이라고 하면
‘하얀 부처님’이라고 새긴다.
이런 데서 어려운 점이다.
“부처님께 아뢰다”
이것은 동사다.
말씀을 올리데,
희유세존(希有世尊),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세존(世尊)이라는 말이 나오고,
희유(希有)라는 말이 나온다.
희유(希有)라는 말은
보통 볼 수 없는 그런 일이다.
바랄 희(希)자로 새기지 않고
드물 희(希)자다.
희망(希望)
이라고 새기는 것이 아니고
⭕드물다고 새긴다.
희유(希有),
☸“드물게 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다”
고 하는 뜻이다.
이것을 비유해서
‘우담바라(優曇跋羅華)’
라고 하는 꽃이 있는데,
삼천년 마다 한 번씩 꽃이 피운다.
그 우담바라를
‘희유하다’라고 설명한다.
해마다 피는 것이 아니고
삼천년 마다
한 번씩 꽃이 핀다고 해서
‘희유하다’라고 한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 우담바라(優曇跋羅華)처럼
자주 세상에 나타나시는 분이 아니라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
☸한 번씩 나타날 수 있는 분이어서
‘희유하십니다’라고 한다.
그래서 그 이름을
세존(世尊)이라고 했다.
부처님에게는
십호(十號)가 있는데,
세존(世尊)은
십호(十號) 가운데 하나다.
밑에는
여래(如來)라고 하는 말도 있는데,
여래(如來)도
십호(十號) 중에 하나다.
☸왜 이렇게 호(號)가 많은가?
☸그 호(號)라고 하는 것은
그 부처님의
☸행(行)과 덕(德)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실행한 덕(德)을 하나하나
지목해서 호(號)로 부른다. ⭕⭕⭕‼☸☸☸💎🦋
그래서
그 호(號)는 피하는 것이 아니다. ⭕⭕⭕‼
자주 부르는 것이다. ⭕⭕⭕⚡💎💎💎
그런데 사람을
지적하는 명(名)은 피한다. ⭕⭕
그것을
인명덕호(人名德號)☸☸⭕⭕⚡‼
라고 해서
사람 자체를 지적하는 것은
이름(名)이고,
그 사람의
덕(德)을 나타내는 것은 호(號)라고 한다.☸☸⭕⭕‼
그래서
●●이름(名)은 피하는 것이 동양의 관습이고,
●●호(號)는 피하지 않고 자주자주 불러야 한다. 💎⭕
●●그런데 스님들의 법명이 호(號)인가? 명(名)인가?
사실상으로는
명(名)이 아니다.
●●호(號)가 된다.
따라서
법호(法號)이기 때문에
큰스님의 이름이라도
무슨 자, 무슨 자라고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근래에
종자, 범자라고 하는데,
자(字), 자(字)는 없다.
그냥 ‘종범’이다.
‘청정법’을 근본으로 한다고
이렇게 이름을 지어 주셨는데,
그것이
일종의 법호(法號), 즉 호(號)다.
개인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이념을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스님들의 이름은 피할 필요가 없다.
근래에 보면, 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불교의 전통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냥 ‘석가모니’라고 하지,
‘석’자, ‘가’자, ‘모’자, ‘니’자
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자, ‘존’자가 아니고
‘세존’으로 끝내지 않았나?
세존(世尊),
세상에서 아주 존귀한 분,
아주 휼륭하신 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은
왜 이렇게
희유(稀有)하고
세상에서 존귀(世尊)하신 분인가?
여래 십호(十號) 가운데 설명이 있는데,
부처님은
선서(善逝),
‘잘 갔다’ 라고 한다.
선서(善逝)라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인가?
‘중생들은 잘못 간다’고 한다.
무엇이 못 가는가?
●●중생들은 많은 ‘죄를 지어 가지고
●●않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한다.
그러면 잘못 간 것이다.
그러면
●●죄는 왜 짓는가?
●●번뇌가 짓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 무명 번뇌를 다 끊고,
탐욕을 끊고, 분노를 끊어서
탐, 진, 치 삼독을 다 끊어서
생사윤회로 들어 간 것이 아니라
해탈열반으로 갔기 때문에
‘잘 갔다’라고 한다.
그런데 중생들은
탐, 진, 치 삼독을 그대로 가지고
또, 죽고 또, 나고,
또, 죽고 또, 나고,
그러니까
그게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서(善逝)를
‘호거(好去), 잘 갔다’
‘묘왕(妙王), 묘하게 간다’ 이라고 한다.
묘하게 어디를 가는가?
‘해탈열반으로 가신다’고 한다.
그것을
선서(善逝)라고 하고
호거(好去)라고 하고
‘묘하게 간다’ 해서
묘왕(妙王)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부처님은
조어장부(調御丈夫),
‘중생을 잘 이끌어 가르치는 장부’,
‘중생을 올바르게 길들이는 장부’
라고 한다.
중생을 어떻게 길들이는가?
부처님은
●●●악한 중생은 선하게 길들이고,
●●●선한 중생은 생사해탈(生死解脫)하게 길들이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한 중생은
보살도를 닦게 길들이는 것을
●●●조어장부(調御丈夫)라고 한다.💎💎💎☸‼
중생은
☸‘나’라는 것을 위해 죄를 짓게 되는데,
●●●죄업을 짓는 것은 다른 이유가 하나도 없다.
‘아집(我執)’ 때문에
‘나’ 때문에
●●●‘나’를 위해서 죄를 짓는다.
●●●그런데 ‘나’는 없어진다.
늙어서 죽는다.
●●●죄만 그대로 남는다. 💥💥💥
이것 참 기가 막힌다.
✳✳‘나’를 위해서 죄를 지었는데
✳✳‘나’는 없어지고 죄만 남는다. 💥💥💥💣💣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그런 중생을 위해서
오계(五戒),
십선계(十善戒) 법문을 설해 가지고
선하지 못한 중생을
선한 중생이 되도록 길을 들인다.
이것이
●●●삼악도(三惡道)에 빠지는 중생을 위해
인천락(人天樂)을 받게 한다. ☸☸💎⭕‼
이것이 첫 번째
조어장부(調御丈夫)가 하는 일이다.
그래서
💎☸‘경전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먼저 ‘인간 세계, 천상 세계에 태어난 중생’이라야 가능하다.
그래 가지고
‘선남자, 선녀인’이라고 했다.
‘삼악도(三惡道) 중생’
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첫 번째 착하지 못한 중생은
오계(五戒),
십선계(十善戒)의 법문을 통해서
선한 쪽으로 인도해야 된다.
‘인간 세계에 나고,
천상 세계에 태어나서
●●●인천락(人天樂)을 받는 중생도
그곳에 집착을 하면
●●●또 그 복이 다하면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거기는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쪽으로
인도를 해야 한다.
그게 두 번째
조어장부(調御丈夫)이다.
그래서
인간의 몸을 받았을 때에는
도를 닦아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한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러니까.
착하지 못한 중생은
우선 오계(五戒),
십선계(十善戒)을 잘 닦아서
삼악도(三惡道)에서
인천락(人天樂)을
빼앗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 💎💎💎☸☸⭕⭕
그러면
생사해탈(生死解脫)은
닦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성제(四聖諦),
●●●십이연기(十二緣起)를 닦는 것이
생사해탈(生死解脫)을 닦는 길이다.
사성제(四聖諦),
십이연기(十二緣起)는
●●●삼악도(三惡道)에 있는 중생들에게는
사성제(四聖諦),
십이연기(十二緣起)는
닦을 수 없는 복력(福力)이다. 😭😭😭
우선 오계(五戒),
십선계(十善戒)을 잘 닦아서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나야 한다. ⭕⭕⭕‼
그래서
●●●인천락(人天樂)을 받는 중생에게
●●●가능한 복력(福力)이다.
그러면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다시 재발심하고
육바라밀로서 보살행을 닦아야 한다.
그래야
💎💎☸☸자리이타를 해서
나도 제도하고,
중생도 제도하게 된다.
그것이
부처님이 하시는 일이다. ⭕⭕⭕‼
그리고
선서(善逝),
조어장부(調御丈夫)
이런 분이기 때문에
세상에 그것보다
존귀하신 분이 없다.
그래서
‘세존이시여’
라고 하게 된다.
앞에서는
세존(世尊)이라고 하고
여래(如來)라고 하였다.
여래(如來)께서는
선호념 제보살
(善護念 諸菩薩)하시고
선부촉 제보살
(善付囑 諸菩薩)하십니다.
☸여래(如來)가 무엇인가?
“예로부터 왔다”
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변함이 없다’고 한다. 💎💎💎‼
변함없는 것은 무엇인가?
예를 들면,
‘저 허공이 어디서 왔는가?’
또 ‘허공이 어디로 가는가?’
그러면
허공은 어디서 왔을까?
또 허공이 어디로 갈까?
부처님이 오신 것은
‘허공처럼 오셨다가
허공처럼 간다’고 한다. 🔑⭕⭕
그것이 ‘여래(如來)’이다.
그러면
‘허공’이 정말 오는가?
허공은 온다고 한다.
어떻게 오는 걸까?
눈을 딱 감고 있다가
눈을 탁 뜨면
허공이 바로 나타나니까.
그것을 보고
허공이 왔다고 한다.
그리고
깜깜하면 않보이니까.
그것을 보고
허공이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허공이 어디서 왔을까?
그런 것을
‘여래(如來)’라고 한다.
☸분명히 오기는 왔는데
온 것이 없다.
☸분명히 가기는 갔는데
가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부처님만 그런가?
그렇지 않다.
☸일체 중생이 다 그렇다.
☸단 ‘중생은 모를 뿐이다’라고 한다.
이 ‘몸이 오는 것은
허공같이 오는 것이고’,
이 ‘몸이 가는 것은
허공처럼 간다’고 한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것을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을 통해서
‘그것을 아셨고’,
‘중생은 모를 뿐’이다.
그러나
‘오고 가는 사실은
부처님하고 똑같다’고 한다.
그래서
‘오고, 가는 사실은
똑같은데’,
‘부처님은 아시고,
중생은 모를 뿐이다’ 라고 한다.
그래서
여래(如來)께서는
선호념 제보살
(善護念 諸菩薩)하시고,
●●●호념(護念)이라고 하는 것은
●●●‘잘 가르쳐 주신다’고 하는 말씀인데,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십주(十住)보살’ 이상을 가르치는 것이다.
●●●‘십주(十住)’라고 하는 것은
‘발심한 분’을 말한다. 💎💎💎
십주(十住)의 제일 처음이
‘발심주(發心住)’이다.
‘발심(發心)’은 무엇인가?
💎☸성불하도록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보리’라고 하는 것이
‘깨닫고자 하는 마음’,
‘깨달은 마음’,
‘깨달으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킨 분을
십주(十住)보살이라고 하고,
💎☸십주(十住)의 첫 번째가
발심주(發心住)이다.
그래서
●●‘발심(發心)’을 하면 십주(十住)의 보살이 되고,
●●‘발심(發心)’하지 못한 분은
‘십신(十信), 열 가지 믿음’이라고 한다.
따라서 심(心)만 하면
‘발심(發心)’이 된다.
심(心)이 꽉 차면
‘발심(發心)’이 된다.
●●●‘발심(發心)’만 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십신(十信),
●●열 가지 믿음’의 경우에는 흔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십신(十信), 열 가지 믿음’을 미숙(未熟)이라고 하고,💥
또 십주(十住) 그 이상을 근숙(根熟)이라고 한다. 💎
그 호념(護念)은
‘잘 가르쳐 주신다’고 하는데,
●●●십주(十住) 이상의 보살들을 잘 가르쳐 주신다고 한다. 🌿🌿🌿
또 부촉(付囑)은
그 휼륭한 보살들에게
당부 하는 것이다.
이들을
‘잘 인도해 주십시요’
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미래의 보살들을
현재의 그 수승한 보살들에게
부탁(付託)하고
당부(當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부촉(付囑)’의 대상은
‘●●십신(十信), 열 가지 믿음’ 이하(以下)의 보살들을
●●십주(十住) 이상의 보살들에게
●●당부(當付)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부촉(付囑)’이라고 한다.
ㅡ종범스님 강설
첫댓글
솥에 있는 밥이라도
자기 입에 들어가는 데는
●●●과정과 절차가 있듯이
●●●질문을 하는 데는
거기에 대한
●●●예절과 그 공경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법이
●●●그 질문하는 사람의 속에 들어간다. ⚡⭕⭕‼
그렇지 않으면 않들어 간다.⚡⚡💥💥💣💣✳‼⭕
그래서 이런 것이
질문을 하는 공경례(恭敬禮),
☸☸공경으로서 예절을 표한다고 한다.⚡⚡⭕
●●●삶의 질(質)이 아주 넓고 깊으면
💎☸※※※단 하루만 살아도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삶의 질(質)이다.
●●●그런데 삶의 질(質)이 낮으면 💣💣💣
억만 년을 살아도 모자란다.‼‼‼💥💥💥✳✳✳
☸왜 이렇게 호(號)가 많은가?
☸그 호(號)라고 하는 것은
그 부처님의
☸행(行)과 덕(德)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실행한 덕(德)을 하나하나
지목해서 호(號)로 부른다. ⭕⭕⭕‼☸☸☸💎🦋
그래서
그 호(號)는 피하는 것이 아니다. ⭕⭕⭕‼
자주 부르는 것이다. ⭕⭕⭕⚡💎💎💎
그런데 사람을
지적하는 명(名)은 피한다. ⭕⭕
그것을
인명덕호(人名德號)☸☸⭕⭕⚡‼
그 사람의
덕(德)을 나타내는 것은 호(號)라고 한다.☸☸⭕⭕‼
그래서
●●이름(名)은 피하는 것이 동양의 관습이고,
●●호(號)는 피하지 않고 자주자주 불러야 한다. 💎⭕
●●그런데 스님들의 법명이 호(號)인가? 명(名)인가?
사실상으로는
명(名)이 아니다.
●●호(號)가 된다.
●●중생들은 많은 ‘죄를 지어 가지고
●●않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한다.
그러면 잘못 간 것이다.
그러면
●●죄는 왜 짓는가?
●●번뇌가 짓는다.
중생을 어떻게 길들이는가?
부처님은
●●●악한 중생은 선하게 길들이고,
●●●선한 중생은 생사해탈(生死解脫)하게 길들이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한 중생은
보살도를 닦게 길들이는 것을
●●●조어장부(調御丈夫)라고 한다.💎💎💎☸‼
중생은
☸‘나’라는 것을 위해 죄를 짓게 되는데,
●●●죄업을 짓는 것은 다른 이유가 하나도 없다.
‘아집(我執)’ 때문에
‘나’ 때문에
●●●‘나’를 위해서 죄를 짓는다.
●●●그런데 ‘나’는 없어진다.
늙어서 죽는다.
●●●죄만 그대로 남는다. 💥💥💥
이것 참 기가 막힌다.
✳✳‘나’를 위해서 죄를 지었는데
✳✳‘나’는 없어지고 죄만 남는다. 💥💥💥💣💣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그런 중생을 위해서
오계(五戒),
십선계(十善戒) 법문을 설해 가지고
선하지 못한 중생을
선한 중생이 되도록 길을 들인다.
이것이
●●●삼악도(三惡道)에 빠지는 중생을 위해
인천락(人天樂)을 받게 한다. ☸☸💎⭕‼
이것이 첫 번째
조어장부(調御丈夫)가 하는 일이다.
그래서
💎☸‘경전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먼저 ‘인간 세계, 천상 세계에 태어난 중생’이라야 가능하다.
인간 세계에 나고,
천상 세계에 태어나서
●●●인천락(人天樂)을 받는 중생도
그곳에 집착을 하면
●●●또 그 복이 다하면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거기는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쪽으로
인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의 몸을 받았을 때에는
도를 닦아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한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러니까.
착하지 못한 중생은
우선 오계(五戒),
십선계(十善戒)을 잘 닦아서
삼악도(三惡道)에서
인천락(人天樂)을
빼앗기지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 💎💎💎☸☸⭕⭕
생사해탈(生死解脫)은
닦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성제(四聖諦),
●●●십이연기(十二緣起)를 닦는 것이
생사해탈(生死解脫)을 닦는 길이다.
사성제(四聖諦),
십이연기(十二緣起)는
●●●삼악도(三惡道)에 있는 중생들에게는
사성제(四聖諦),
십이연기(十二緣起)는
닦을 수 없는 복력(福力)이다.
우선 오계(五戒),
십선계(十善戒)을 잘 닦아서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인천락(人天樂)을 받는 중생에게
●●●가능한 복력(福力)이다.
그러면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다시 재발심하고
육바라밀로서 보살행을 닦아야 한다.
그래야
💎💎☸☸자리이타를 해서
나도 제도하고,
중생도 제도하게 된다.
그것이
부처님이 하시는 일이다. ⭕⭕⭕‼
여래(如來)께서는
선호념 제보살
(善護念 諸菩薩)하시고,
●●●호념(護念)이라고 하는 것은
●●●‘잘 가르쳐 주신다’고 하는 말씀인데,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십주(十住)보살’ 이상을 가르치는 것이다.
●●●‘십주(十住)’라고 하는 것은
‘발심한 분’을 말한다. 💎💎💎
십주(十住)의 제일 처음이
‘발심주(發心住)’이다.
‘발심(發心)’은 무엇인가?
💎☸성불하도록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보리’라고 하는 것이
‘깨닫고자 하는 마음’,
‘깨달은 마음’,
‘깨달으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킨 분을
십주(十住)보살이라고 하고,
십주(十住)의 첫 번째가
발심주(發心住)이다.
그래서
●●‘발심(發心)’을 하면 십주(十住)의 보살이 되고,
●●‘발심(發心)’하지 못한 분은
‘십신(十信), 열 가지 믿음’이라고 한다.
따라서 심(心)만 하면
‘발심(發心)’이 된다.
심(心)이 꽉 차면
‘발심(發心)’이 된다.
●●●‘발심(發心)’만 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십신(十信),
●●열 가지 믿음’의 경우에는 흔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십신(十信), 열 가지 믿음’을 미숙(未熟)이라고 하고,💥
또 십주(十住) 그 이상을 근숙(根熟)이라고 한다. 💎
그래서
‘십신(十信), 열 가지 믿음’을 미숙(未熟)이라고 하고,💥
또 십주(十住) 그 이상을 근숙(根熟)이라고 한다. 💎
그 호념(護念)은
‘잘 가르쳐 주신다’고 하는데,
●●●십주(十住) 이상의 보살들을 잘 가르쳐 주신다고 한다. 🌿🌿🌿
이들을
‘잘 인도해 주십시요’
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미래의 보살들을
현재의 그 수승한 보살들에게
부탁(付託)하고
당부(當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부촉(付囑)’의 대상은
‘●●십신(十信), 열 가지 믿음’ 이하(以下)의 보살들을
●●십주(十住) 이상의 보살들에게
●●당부(當付)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부촉(付囑)’이라고 한다.
십주 十住 보살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거치는 52단계중《제11위에서 제20위까지》의 계위
[불교] 보살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거치는 52단계 중 제11위에서 제20위까지의 계위(階位). 곧 발심주(發心住), 치지주(治地住), 수행주(修行住), 생귀주(生貴住),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 정심주(正心住), 불퇴주(不退住), 동진주(童眞住), 법왕자주(法王子住), 관정주(灌頂住)를 이른다.
십신(十信)을 지나서 마음이 진제(眞諦)의 이치에 안주(安住)하는 지위에 이르는 계위이다.
참고어십행(十行),오십이위(五十二位)
십신十信
보살이 수행하는 단계로, 최초의 1위(位)로부터 제10위까지의 단계. 곧 신심(信心)에서 염심(念心), 정진심(精進心), 혜심(慧心), 정심(定心), 불퇴심(不退心), 호법심(護法心), 회향심(廻向心), 계심(戒心), 원심(願心)까지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