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남 시인의 시집 [오하이오에서 며칠을]이
2009년 11월, 동학사에서 나왔다.
이주남 시인은
198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하였고
1991년 한국 시문학상, 2004년 월간문학 제2회 동리상 시조부문 수상,
2008년 소월문학상 본상 등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햇빛에 말걸기], 역서 및 장편서사시 [오메르스] 공역 등이 있다.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홍익대 박사과정 등에서 공부하였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 다음과 같이 썼다.
"... 남편과 동행했던 길에서의 불의의 사고에
사경을 헤매다 되찾은 삶의 환희는 컸다.
아! 이승은 저승보다 분명 아름다운 곳"
작품해설 '모국어의 강을 덥히는 감성의 뜨거움'은
이근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붙이고 있다.
다음은 해설의 일부이다.
"... 오늘의 현대시조는 최남선 이후 한 주제를 여러 수의 평시조로 연작함으로써
넓혀진 시대적 공간을 수용하고 있으나 아무래도 시조는
원형인 평시조 단수에서 응축되고 정제된 시적 진수를 보게 된다.
이주남 시인이 시조에 정통했음은 바로 평시조 단수에서 밝혀진다.
... 특히 사설시조에서 이주남 시인은 그가 왜 영미시에서 자유시로,
그리고 다시 시조로 모천(母川)에 이르렀는가를 약여하게 보여 준다.
혹자는 사설시조는 시조라는 허울만 쓸 뿐 또 다른 자유시의 한 형태가 아닌가 하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설시조는 확실한 형식이 갖춰져 있고
쓰이는 말투도 모국어가 오래 익혀 온 가락에 절은 것이어서
자유시와는 그 깊이와 넓이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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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홉다 / 이주남
무를 심어 놓고 게을러게을러, 줄기를 놓치고 이파릴 놓치고
공중에 보라꽃을 얻었다, 파다하게 텅 빈 꽃.
나물밭에 꽃밭을 가꾸었다, 신나게
나비가 또 한 마리 나비가 날아든다.
가녀린 발을 내딛고 짧게짧게 쉬고 있다.
선잠에 내준 무릎 내게만 내준 무릎.
본디는 내 하늘밭 둘도 없는 꽃밭이지만
잃었다, 내 꽃들에게 전다지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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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좋다 3 / 이 주 남
늦햇살 달궈지면 낟알튀어 달아나는
녹두알 녹두알처럼 때놓치면 망치는 시(詩)
비로소 내 무릎만 닦다가 뒤늦게야 알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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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과 같은 세상 / 이 주 남
실수도 여러 번, 사랑도 여러 번 떨켜 같은 삶조차 그려 몽땅 감싸는 일,
손등은 할 수 없는 일, 손바닥만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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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에서 며칠을 / 이 주 남
자궁을 들어낸 꽃나무들이 사는 곳
녹이 슨 철사줄을 넝쿨째 감아쥔 손
살점을 발라낸 앙상한 뼈에
한여름이 감겨 온다.
잇바디를 건드이자 알갱이는 빠진다.
마르고 후줄근한 목숨빛깔들 흐른다.
수없이
날 옭아매더라도
오하이오에선 며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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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남 시인을 처음 만난 건 올해 사월,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회에 참석하여서다.
그곳에 가니, 연세 든 시인들이 대부분이신데
생각보다 여성시인이 많았다.
처음으로 뵙는 분들이었다.
그 자리에서 만난 시인의 모습과
시집 사진의 모습이 아직 제대로 맞춰지질 않아
낯설기만 하다.
내가 서로 다른 두 분 시인을 헛갈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11월 말,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회가 다시 열리는데
그 자리에서 확실하게(?) 얼굴을 익히려고 한다.
(오실는지는 모르겠고......)
언어 조탁에 정성을 기울이는 시인인 듯하다.
시집 전체에 새로 만든 시어가 몇 보이고,
(해독 어려운 부분도 보이고,)
모르는 꽃나무 이름들이 여럿 나온다.
작품집 5부의 사설시조는
앞의 평시조의 수준을 따라잡지 못한다.
이주남 시인의 단시조는 명편이라 해도 손색없을 작품이
눈에 띄었다.
특히 '손바닥과 같은 세상'이나 '시인이 좋다' 연작은
삶의 현장에서 얻은 깨달음이나 낱말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이 살아 있는 가편이다.
내가 알고 있던 시조단이 전부는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방안에서,
인생의 묘미를 시로 쓰는 가슴이 있으리라.
그들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