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분석1 손광성의 ＜달팽이＞

[오덕렬]

달팽이

손광성

달팽이를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험한 세상 어찌 살까 싶어서이다.

개미의 억센 턱도 없고 벌의 무서운 독침도 없다. 그렇다고 메뚜기나 방아깨비처럼 힘센 다리를 가진 것도 아니다. 집이라도 한 칸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시늉만 해도 바스러질 것 같은 투명한 껍데기. 속까지 비치는 실핏줄이 소녀의 목처럼 애처롭다.

달팽이는 뼈도 없다. 뼈가 없으니 힘이 없고 힘이 없으니 아무에게도 위협이 되지 못한다. 하물며 무슨 고집이 있으며 무슨 주장 같은 것이 있으랴. 그대로 ‘무골호인’이다. 여리디여린 살 대신에 굳게 쥔 주먹을 기대해 보지만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그렇다고 감정마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민감하기로는 미모사보다 더하다. 사소한 자극에도 몸을 움츠리고 이마를 스치는 바람에도 고개를 숙인다. 비겁해서가 아니다. 예민해서요 수줍어서이다. 동물이라기보다 식물에 가깝다.

누구를 찾고 있는 것일까?

달팽이는 늘 긴 목을 받쳐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그의 이웃은 아무데도 없다. 소라, 고둥, 우렁 그리고 다슬기 같은 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의 이웃이 아니다. 아득히 먼 물나라의 시민들이다.

모든 생물이 다 그러하듯 달팽이의 고향도 바다였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먼 조상들 중 호기심이 많은 한 마리가 어느 날 처음 뭍으로 올라왔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물달팽이가 육지달팽이로 바뀌는 기구한 역사가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다.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 육지에 사는 달팽이의 목과 눈은 물달팽이의 그것보다 훨씬 가늘고 길다. 슬픔도 내림이라, 수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조상들의 슬픔으로부터 그들은 자유로울 수가 없는 모양이다. 실향민의 후예. 달팽이는 늘 외로움을 탄다.

어디 좋은 친구하나 없을까?

달팽이는 개구리에게 다가가 본다. 개구리도 습지를 좋아하니 벗이 되어줄 법도 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크고 너무 빠르다.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다. 벌이나 개미는 어떨까? 부지런한 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지만 배타적인 것이 좀 마음에 걸린다. 제 동족이 아니면 자기들의 먹이로 밖에 생각하지 않으니 말이다.

시인이 죽으면 나비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나비가 죽으면 무엇이 될까. 아니, 달팽이가 죽으면 무엇이 될까.

달팽이는 나비 곁으로 다가간다. 그냥 사귀기만 했으면 싶다. 그러나 나비는 잠시도 한곳에 머물러 주지 않는다. 설사 머문다 해도 걱정이다. 어떤 때는 환희에 넘쳐 춤을 추다가도 금세 침울해져서는 두 날개를 접은 채 마른 나뭇잎처럼 조용하다. 그 엄청난 감정의 기복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아, 배추벌레하고 놀아야지.

달팽이는 그들 옆에서 잠시 외로움을 달래본다. 외모는 좀 그렇지만 벌처럼 시끄럽지도 않고 나비처럼 팔랑대지도 않아서 좋다. 한데 한 가지 안 된 것은 그들은 탐식가라는 사실이다. 옆에 가서 등을 대고 누워도 눈 한번 거들떠보는 일이 없다. “나는 먹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식이다. 달팽이는 풀이 죽어서 돌아온다.

달팽이는 이빨도 없다. 그의 입은 먹기 위한 기관이라기보다 차라리 이목구비를 갖추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 생긴 것 같다. 살아 있는 것을 보면 뭐든 먹기는 먹는 모양인데 그런 순간을 거의 볼 수가 없다. 게다가 짝짓기를 하는 장면도 들키지 않으니 말이다. 귀여운 금욕주의자, 이 모든 쾌락보다 더 절실한 어떤 문제가 있다는 말일까.

달팽이는 언제나 긴 목을 치켜들고 길을 떠난다. 현실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어떤 비밀의 문이라도 찾고 있는 것일까. 방황하는 영혼, 고독한 산책자.

그러나 달팽이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기쁨을 노래하지도 않고 슬픔을 울지도 않는다. 매미에게는 일곱 해 동안 동안의 침묵과 극기를 보상하고도 남을 이레 동안의 찬란한 결정의 순간이 주어지지만 달팽이에게는 그런 눈부신 순간이 없다. 그렇다고 종달새 같은 황홀한 비상의 기회가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가시며 그루터기 사금파리 같은 현실, 맨살로 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이 그 앞에 놓여 있을 뿐이다. 육체의 고통이 때로는 영혼의 해방을 가져온다고 믿는 어느 고행승과도 같은 그런 표정으로 그저 묵묵히 몸을 움직일 뿐이다.

오지투지五體投止의 말없는 순례, 지나간 자리마다 묻어나는 희고 끈끈한 자국들, 배설물일까, 낙서일까. 아니면 그들끼리만 통하는 상형문자일까. 끝내 판독되기를 거부하는 암호들.

여름도 다 끝나려는 어느 늦은 저녁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달팽이의 이상한 몸짓을 보았다. 억새풀의 제일 높은 끝에 한 방울의 이슬처럼 위태롭게 맺혀 있었다. 목은 길게 솟아올랐고, 조그만 입은 약간 벌어졌으며, 꽃의 수술 같은 두 개의 눈은 긴장되어있었다. 마치 노래를 부르려는 순간의 어떤 가수처럼, 나뭇가지를 떠나려는 순간의 새의 자세처럼 보였다. 가늘고 긴 목에서 벌레 소리 같은 어떤 슬픈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달팽이는 끝내 아무 소리도 내지르지 못했다. 투명한 달빛이 조그만 몸을 비추고 있었다.

밀폐된 유리벽의 저편에서 키 작은 한 남자가 울고 있는 것을 나는 보고 있었다. (다시읽는 우리수필 김종완 편저)

<작품 분석>

창작적인 변화가 용인된 산문수필

오 덕 렬

  수필(에세이)은 태생적으로 ‘나’ 시점 형식의 문학이다. 에세이는 이미 있는 것에 대해 ‘토의하는 문학’ 형식이다. <산문수필>은 몽테뉴의 에세이 문학이 창작문학 쪽으로 진화하는 과정의 첫 번째 가시적 결과였으며, 그 완성자는 찰스 램이다. 창작은 <존재의 총계에 부가하는>새로운 형상적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조연현: 󰡔개고 문학개론󰡕 정음사, 1973. 46쪽)이다.

  에세이를 진화 과정에서 보면 <에세이> → <산문수필> → <창작에세이>, 이렇게 세 가지의 소 장르로 분류할 수 있다. 시(창작)가 <존재의 총계에 부가하는 문학>이라면, 산문은 <기존한 것에 대한 토의의 문학>이다. 여기서 <산문수필>은 ‘창작적인 변화가 용인’(조연현, 전게서 100쪽)되는 산문문학이다. 창작적인 <산문수필>과 <창작에세이>는 어떻게 구분해 낼 수 있을까? 전자는 토의의 직능을 수행하고, 후자는 창조의 직능을 수행한다. ‘토의’와 ‘창조’가 핵심어이다.

  작품 분별법-창작문예수필 찾아내기-에 의하여 서두문단과 종결문단문의 문장이 개념적인가, 형상적인가를 살펴보면 손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서두문단의 ①∼⑦문장, 종결 문장을 예로 들어 <달팽이>의 문장 세계로 작품 속의 사유를 들여다본다. 문학 작품 속의 사유는 두 갈래, 즉 시(창작)냐, 비창작 산문이냐로 나눠진다. 서두 문장부터 보자.

  ①‘달팽이를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이 첫 문장이 형상이 되려면 ‘걱정이 앞선다’고 진술할 것이 아니라 ‘걱정이 앞서는 삶의 현장을 그려주어야(형상화) 하겠다. 형상적 문장 세계란 그 문장법에 사물·존재들이 존재하는 양상이 드러나 보이도록 하는 문장법으로 된 문장 세계이기 때문이다.

  ②‘험한 세상 어찌 살까 싶어서이다.’

  -삶의 현장을 그려주는 문장이 아니고 화자의 ‘생각’이 드러난 문장이다.

  ③‘개미의 억센 턱도 없고 벌의 무서운 독침도 없다.’

  -삶의 현장을 그려주지 않고, ‘달팽이’에 대해서 ‘개미’와 ‘벌’과 대조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④‘그렇다고 메뚜기나 방아깨비처럼 힘센 다리를 가진 것도 아니다.’

  -역시 메뚜기나 방아깨비와 대조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⑤‘집이라도 한 칸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문장도 삶의 현장을 그려주지 않고, 화자의 ‘판단’이 앞서는 개념적 문장이다.

  ⑥ ‘시늉만 해도 바스러질 것 같은 투명한 껍데기.

  -‘달팽이’에 대한 화자의 ‘판단’이다.

  ⑦‘속까지 비치는 실핏줄이 소녀의 목처럼 애처롭다.’

  -‘달팽이’의 한 부분을 소녀의 목을 끌어들여 직유법으로 필자(화자)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했다. 직유는 유사성(類似性)의 비교다.

  이제 종결문단이다.

  ‘밀폐된 유리벽의 저편에서 키 작은 한 남자가 울고 있는 것을 나는 보고 있었다.’

  -‘울고 있다’ ‘보고 있다’는 행동이다. 행동은 사건이며 사건은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형상적 문장이다. 작품 전체에서 유추해볼 때 종결문단에서 ‘달팽이 = ‘키 작은 남자 =  ‘나(작가)’라 할 수 있다. 은유가 탄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제 평자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서두나 종결문단이 다 같은 문장 세계라면 편할 텐데 그렇지를 않다. 또 작품 전체를 샅샅이 살펴야 하겠다. 나머지 문단의 ‘토의’ 부분을 찾아본다.(한두 곳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의 원문 밑에 밑줄을 쳐서 표시하기로 한다.)

  밑줄 친 문장 세계는 모두 개념적 문장 세계들이다. 설명이요, 자기 판단이요, 화자의 주관적 생각을 드러내는 묘사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일반산문의 본질인 ‘토의’에 가깝다. 이렇게 많은 부분이 토의적 직능을 수행하고 있는데도 선뜻 <산문수필>이라고 판단내리지 못하고 <창작에세이>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이는 것은 작품의 어떤 점에서 오는 현상일까?

다음의 작품 분석 순서를 따라가면서 살펴보자.

1. 소재 파악

  작품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소재가 무엇인가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 이유는 시, 소설과 달리 수필은 사실의 소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아 작품 안에서 창작 작업을 하는 문학 양식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소재는 ‘달팽이’이다.

2. 주제 파악

  문예 창작법은 주제를 형상화하는 일이다. 비평하고자 하는 작품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는 이 작품이 무엇(주제)을 형상화하고 있는지 분석할 수 없게 된다. 작법의 과제는 주제를 어떻게 형상화 할 것인가에 있지 않던가.

  보조관념 소재를 가지고 원관념(주제)를 형상화해야 한다. 주제, 즉 ‘원관념 = 달팽이(작가)의 상’이라 할 수 있고, ‘보조관념 = 달팽이’이다. 그렇다면 ‘달팽이’로 달팽이(작가)의 상’을 형상화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주제는 개념적으로 말해본 주제다. 종결문단에서 유추해 보면 ‘달팽이 = 키 작은 한 남자’ = 나(작가)’로 유추할 수 있다. 즉 ‘은유’가 탄생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구성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반산문문학인 에세이(수필)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말한 <창작적인 변화가 용인되는 문학>(조연현: 󰡔개고 문학개론󰡕 정음사, 1973, 100쪽)에 머물고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창작에세이의 창작문학의 형식을 빌어다 쓴 <산문문학>이 아닐까 한다.

  전체적으로 서술법이 주제를 향하여 개념적 표현을 하고 있고, 형상화하고 있지 못하다. 가끔 주제를 형상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을 뿐, 전체적으로 존재론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산문수필과 창작에세이를 구분하는 리트머스시험지가 있다면 산문수필의 색깔을 띠게 될 것이다.

3. 구성

  작품 전체가 창조적으로 구성되었는가? <달팽이>는 종결문단에서 ‘달팽이를 키 작은 남자(나)’로 은유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구성이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 소재 ‘달팽이’를 1인창 관찰자 시점에서 요모조모 관찰한 구성법이다. 아무리 구성력이 뛰어나다해도 결국 ‘달팽이’의 상이 될 뿐이다. 구성을 잘해도 개연성(蓋然性)을 가지게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형식적으로 <소재에 대한 비유 창작 + 서사구성법>을 원용하고 있을 뿐이지 창작 작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창작물이 되려면 구성이 아닌 창작 이론의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하겠다.

4. 시점

  손광성의 <달팽이>의 視點은 화자(작가)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그때 나는 달팽이의 이상한 몸짓을 보았다.”

  “밀폐된 유리벽의 저편에서 키 작은 한 남자가 울고 있는 것을 나는 보고 있었다.”

  시점은 창작 양식을 결정한다. 소재 ‘달팽이’의 생김새 삶의 방식 등을 관찰하여 쓴 작품이기 때문에 형상적 문장보다는 ‘토의’한 개념적 문장으로 흘렀다. 앞에서 ‘창작 이론의 다른 곳’이란 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달팽이’를 의물화하여 달팽이 의물화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다면 형상적 문장으로 되어 창작문학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종의 액자구성이 되어 종결문장에서 구성이 뒷받침되는 동일성 은유가 성립하여 창작에세이가 되었을 것이다.

  산문수필은 에세이와는 달리 그 작법에 창작적인 기법을 요구하며, 산문수필이 다루는 소재와 주제는 작가의 정서이다. 정서는 밖으로 표출될 때 어떤 형태를 입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 형태가 올챙이의 한 살이라 하자. 아직 꼬리가 달려 있다면, 네 다리가 나와 있어도, 우리는 이것을 개구리라고는 부르지는 않는다.

[최정석]

선생님의 작품분석 잘 읽었습니다.
작품을 읽고 분석 하는데 典範 으로 삼아야 할것 같습니다.

[은종일]

공부를 하고 갑니다. 모임 날짜인 다음 주 월요일이 코 앞에 다가왔습니다.

[이관희]

ok
힌트 : 종결 문장 <키 작은 한 남자>는 막연한 일반 남자입니다. 구체적인 어떤 대상이 아니지요. 따라서 <키 작은 남자>도 전체 <산문적 느낌>의 한 묘사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작품의 해석이 될 것입니다. 묘사와 형상화를 혼동하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 것이 창작비평의 중요한 키가 될 것입니다.

[오덕렬]

네 샘아저씨!! 잘 알겠습니다. <형상적 묘사>와 <형상화>의 구분에서 서술법이 주제를 묘사하고 있는가, 형상화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일을 지나쳤습니다. 서술법이 단순히 주제를 형상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을 뿐, 존재론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창작 작품이 아닌 에세이나 산문수필 작품일 것으로 처리하는 일에서 놓쳤군요. 몇 번 만지작거렸으나 <키 작은 남자>가 작가라고 미리 치부해버린 결과였습니다. 그 부분 바로잡겠습니다. 감사합니다